봉사원에서 노동자로 장애인 콜택시 노동자들의 농성투쟁
2001년 오이도역 리프트 참사를 이후 지속적인 장애인 이동권 투쟁의 성과가 있었다. 저상버스가 도입되었고 지하철 역사에는 엘리베이터가 설치가 되었다. 그러나 모든 시내버스가 저상버스가 아님은 물론이거니와 언제 올지도 모르는 저상버스를 마냥 기다릴 수만도 없다. 장애인 동지들은 서울시의 저상버스 추가도입안의 기만성에 대해서 누 차례 지적한 바 있다. 또 지하철의 경우도 역사의 모든 동선에 장애인 엘리베이터가 설치된 것도 아니기에, 아직도 중증장애인은 위험천만한 리프트에 자신의 이동권을 내맡겨야 한다. 철도청 구간 등 오래된 역에는 아예 엘리베이터가 없는 경우도 있으며, 여/남의 성별이 구분된 장애인 화장실을 갖춘 곳도 미비하기에 지하철도 불충분한 이동수단이다.
서울시는 2003년 1월 1일부터 장애인 콜택시 제도를 도입하여 이를 서울시설관리공단(이하 공단)에 위탁하여 운영하였다. 장애인 콜택시에는 휠체어 리프트가 장착되어 있고 요금도 일반 택시의 40% 수준1)이어서 장애인들을 위한 거의 유일한 안전한 교통수단의 역할을 담당할 것이라는 기대도 받았다. 그 후 대전과 부산도 장애인 콜택시를 도입하였다. 그런데 콜택시의 수는 장애인들의 필요를 충족시키기에 절대적으로 부족하며 30분에서 심하면 몇 시간 동안이나 기다려야 택시에 탑승할 수 있다. 더군다나 장애인 택시를 운전하는 노동자들은 1년 단위의 위수탁 계약을 체결하는 ‘운전봉사원’으로 불리며 노동자성을 인정받지 못하였다. 장애인 콜택시 노동자들은 투쟁을 하지 않을 수 없었고 이에 장애인 운동가들은 안전하게 이동할 기본적인 권리를 위해 연대투쟁으로 화답하였다.
장애인 콜택시 노동조합의 설립과 투쟁
콜택시 운전기사들은 100만원도 안 되는 적은 기본급여와 자비부담비용, 또 4대보험도 체결되지 않는 상황 이었다. 결정적으로 2003년 4월 13일 운전기사 신동권 씨가 장애인 탑승자를 들어 옮기다 허리를 다쳤지만 공단은 산재보험조차 가입을 안했기에 모든 치료비용을 자비로 부담해야 했다. 이런 상황을 떨쳐내고자 운전기사들은 2003년 8월 5일 노동조합을 설립한다. 설립신고서를 제출한 뒤 무려 55일간의 심사를 거쳐 마침내 2003년 9월 30일 동부지방노동사무소로부터 신고필증을 교부받았다. 현재는 신형 경유차량이 도입되고 있지만 당시에는 모든 콜택시가 LPG2) 차량이었는데 가스비용과 수리비용까지 노동자들이 부담해야 했다. 노동자들의 투쟁에 공단은 가스비를 부담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와 동시에 개별적으로 불러내어 재계약을 빌미로 한 노조와 조합원에 대한 탄압과 회유가 자행되었으며 조합원 수가 적다는 이유로 단체교섭에도 제대로 응하지 않았다.
당시 노동자들의 전략적 과제는 노동자성 쟁취였다. 당시 서울시청 장애인복지과의 임한균 장애편의증진팀장은 "소득에 대한 원천징수가 없고 택시운행의 수입금 전액이 운전기사 자신 몫이라 노동자라고 보기 힘들다"는 궤변을 펼쳤다. 그러나 장애인 콜택시 노동자들은 10시간 이상의 장시간 노동을 하면서도 기본급 95만원에 보통 월 20∼30만원의 성과급3)을 버는데 차량 보수·유지비도 만만치 않다. 정해진 근무시간이 있고 기본급과 성과급을 받고 있는데 노동자성을 부정하는 것은 설득력이 없음은 분명하다. 2003년 8월 말 근로복지공단도 콜택시 운전기사들의 산재보상에 관한 질의에 대해 "장애인콜택시 운전기사는 근로기준법 제14조의 임금을 목적으로 근로를 제공하는 근로자에 해당되므로 산재보험에 가입해야 한다"고 답한 바 있다4). 또 현장투쟁과 법률투쟁을 병행한 끝에 2005년 행정법원으로부터 ‘근로자성’을 인정받는다. 공단은 근로자성 인정에 대해 제대로 된 조치를 하지 않았다. 또 2007년 7월 21일부터 9월 20일까지 4차례에 걸쳐 12명의 조합원을 노조에 가입했다는 이유로 조합원을 부당해고를 하였다. 해고의 사유도 기가 막힌데 10분 지각, 복장 불량, 교통신호 위반, 복통으로 인한 휴식에 근무지 이탈 ... 심장 장애인의 요청으로 이동경로를 바꾼 것을 회유에 의한 운행으로 몰았고, 한 벌 뿐인 지급 복장에 토사물이 묻어 같은 색의 바지를 입고 다음 날 출근하였는데 복장 미착용이라는 황당무계한 이유로 해고하였다. 이런 해고가 당일 통보로 자행되었기에 노동자들은 택시도 몰아보고 버스도 운전해 봤지만 살다 살다 이런 직장은 처음이라고 분개해 마지않았다. 해고자 중에는 공단 측이 우수운전자로 표창한 이들도 있었으며 63세의 정년을 1년도 채 남기지 않은 이도 있었다. 이중 10명의 동지들이 재판 투쟁을 전개하여 9명이 승소하였다. 같은 해 12월 지방노동위원회의 부당해고를 인정하고 복직명령을 내렸고 12월 28일에 복직되어 노동자들은 잠시나마 승리의 기쁨을 누렸다. 그러자 바로 청천벽력이 떨어졌는데, 12월 31일 일을 하기 위해 도시락까지 싸가지고 간 그 자리에서 계약기간만료라는 이유로 또다시 계약을 해지하여 다시 해고자 신세가 된 것이다.
장애인 콜택시와 장애인 이동권
요즘은 택시에 네비게이션이 장착되어 운전기사가 길을 모르더라도 자판만 누르면 지도를 보고 목적지 까지 갈 수 있다. 하지만 장애인 콜택시는 특성상 운전자의 경험이 더 우위에 있다. 장애인 승객을 사고 없이 안전하게 목적지까지 이동하기 위해서는 네비게이션뿐만 아니라 운전자의 숙련된 경험이 필요하다. 서울시 장애인 콜택시 노동자는 담당 구마다 다르지만 대체로 하루에 10콜 정도를 소화한다. 강남 지역과 같이 차량 정체가 심한 곳은 8~10콜 정도, 도봉구 같은 곳은 10~16콜을 마쳐야 한다. 또 장애인의 편의를 위해서 중간에 유연하게 이동경로를 바꾸기도 해야 한다. 해고된 장애인 콜택시 노동자들은 대체로 택시와 버스 운전으로 단련된 20년 이상의 숙련된 운전자이다. 공단을 장애인의 안전을 볼모로 한 노동탄압을 자행하고 있는 것이다. 게다가 언제 무슨 트집으로 징계를 받거나 해고 통보를 받을 지 모를 불안한 상황에서 장애인이 안전한 이동권을 누릴 수 있겠는가? 또 장애인콜택시 노동자들은 근무시간이 매우 불안정하다. 출근 조편성은 오전 7시, 8시, 9시 혹은 12시에 야간조도 있다. 매번 출근 시간이 바뀌기에 수면 시간도 불규칙하다. 또 퇴근 운전 상황에 따라 정해진 퇴근 시간 이후에도 초과 근무를 해야 한다. 일 평균 10~12시간을 불규칙하게 근무하며 법정공휴일도 제대로 보장받지 못하며 초과수당도 지급받지 못하고 있다. 운전자의 편안한 마음상태가 곧 승객의 안전과 직결되는데 이런 현실에서는 매우 요원한 일이다.
탄압에 굴하지 않은 투쟁 승리로 거듭나라!
2007년 1월 장애인 콜택시 노동자 김이조씨가 과로사로 사망한다. 공단측은 사망 노동자 가족의 동의도 없이 화장터로 시신을 보내는 만행을 저지른다. 이에 좌절을 겪었던 노조가 87명의 노동자들의 가입원서를 받고 공공연맹 산하에서 노조의 깃발을 다시금 높이 세우려 했다. 이런 찰나에 사측은 회유와 협밥 그리고 사조직 결성의 카드로 노조 무력화 시도를 자행했다. 공단은 노사협의회를 조직했고 이는 상조회로 이름을 바꾸고 다시 노사협의회로 변신하며 사무실을 얻었다. 가증스럽게도 노조가 수년간 요구했던 4대 보험 적용 및 연차휴가도 노사협의회를 키워 노조를 파괴하기 위한 수단이 되어버렸다. 또 지속적인 회유협박을 못이긴 다수의 조합원은 결국 노조를 탈퇴하지 않을 수 없었다.5) 선전활동도 보장하지 않고, 조합사무실을 제공하지 않음은 물론이었다. 2008년 2월 26일에는 참세상에 미리 기사가 났다는 이유로 우시언 공단 이사장은 면회를 취소하였다6). 또 장애인 콜택시를 총괄하는 공단의 허시강 파트장의 말바꾸기가 계속되었다. 결국 노조는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 장애인이동권연대, 서울시장애인자립생활센터협의회와 함께 5월 22일 11일 성동구 청계천로에 있는 공단 앞에서 기자 회견을 진행하며 천막 투쟁에 돌입하였다. 5월 23일 농성장에는 다음과 같은 농성 규칙 대자보가 붙어 있었다.
농성규칙
1. 농성장에서 음주, 흡연 절대금지.
1. 동지들에게 항상 좋은 말하기.
1. 짭새, 공단 양아치 절대 출입금지.
1. 여성(남성) 비하, 성차별 발언금지.
1. 개별행동 절대금지, 우선 논의하기.
1. 시간 엄수! 약속은 지킨다.
단결! 투쟁!
5월 23일 오전 농성장 방문 당시 장애인콜택시 지회 동지들은 한 동지를 제외하고 혜화의 학습지 노조 재능지부 농성장에 연대투쟁을 하러 가 있었다. 기다림 끝에 돌아온 동지들과 대화 할 수 있었다. 초보 농성장이라 다소 서툴러 보이는 구석도 있었지만 40~55 세의 베테랑 운전 경력의 노동자의 한 마디 한 마디는 진실한 투쟁의 의지가 담겨있었으며 억울함을 떨쳐내고자 하였다. 한 동지는 그와 중에서도 천에다 선전 문구를 적어내리고 있었다. 농성장에는 동료 노동자도 들렀으며 중간엔 몰래 천막을 엿보는 공단의 움직임도 있었다. 농성장은 조별 편성으로 사수되고 있었고 매일 농성장에서 취침하는 생활을 결의하고 있다고 하였다. 바깥이 바로 도로이기에 천막은 차량 소음을 차단할 수 없고 공단은 전기도 공급해주지 않지만 끝까지 투쟁을 사수할 것이라 하였다. 타 사업장에서는 거의 연대를 안했지만, 콜택시 동지들은 이랜드 뉴코아 기륭 등등 안 가본 사업장이 없을 정도로 연대 투쟁을 전개해왔다. 공단의 탄압과 생계의 어려움을 극복하고 해고자 복직과 민주노조의 깃발을 쟁취를 위해, 1년마다 재계약하는 봉사원이 아니라 정규직 노동자로 거듭나고 또 공공부문 구조조정 저지전선의 구심점이 되기 위해 장애인 콜택시 노동자들의 투쟁은 꼭 승리하여야 한다. 동지들의 투쟁은 장애인 운동과 노동자계급운동의 접목을 위한 소중한 발걸음이 될 것이다. <노사과연>
1) 현재 장애인 콜택시의 기본요금은 1600원이며 5km를 지나면 400m 당 100원의 추가요금을 받는다. (천막 농성장 인터뷰 2008년 5월 23일)
2) 현재는 80여대의 구형차량만 LPG 차량이고 나머지는 경유차량이다. 장애인 콜택시는 스타렉스 기종이로 현재 총 220대 운행 중이며 2008년 50대까지 증차될 예정이라 한다. (천막 농성장 인터뷰 2008년 5월 23일)
3) 근로기준법 상 임금의 구성항목, 계산방법, 지급방법 등을 명시하여야 함에도 불구하고 아무런 규정 없이 정액 95만원이다. 그리고 2003년 이후 기본급은 전혀 인상되지 않았으며 차량증가로 성과급은 오히려 줄었다.
4) 인권하루소식, “장애인콜택시 운전기사 노조의 힘겨운 출발”, http://www.newscham.net/news/view.php?board=news&nid=22810
5) 현재 노조의 조합원 현황은 정규적 지회장 이영철, 김무득 부지회장한 18명인데 이는 해고자 12명 포함한 것이다.
6) 이꽃맘 기자, 「서울시설공단, 보도 때문에 면담 취소”」, http://www.newscham.net/news/view.php?board=news&nid=4653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