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육희망

교육민주화운동 20년사<17>

25살 한국글쓰기교육연구회의 뚝심

글쓰기회는 뚝심이 있다. ‘화려한 휴가’ 이후 교사들의 20여년 교육운동 역사에서 Y교사회를 비롯하여 많은 모임과 단체가 생기고 변신하고 사라지는 과정을 겪는 중에서도 시나브로 성장하여 어느덧 가장 연륜이 긴 조직으로 남아 있다. 이 모임은 이 땅에 어린이와 우리말글이 존재하는 한 알차게 지속될 것이다.



글쓰기회가 결성된 것은 1983년 8월 20일(과천 영보수녀원)이다. 전국 각처에서 ‘외롭게 흩어져’ 실천하던 교육자들 47명이 모였다. 발기인은 초등 10명-고홍수(충북 덕신) 김녹촌(경북 서벽) 노미화(서울 고척) 백영현(부산 감전) 유인성(서울 문창) 이주영(서울 원당) 임길택(강원 사북) 장규일(경기 약대) 주중식(경남 샛별) 천정치(광주교대부) 중등 2명-최교진(충남대천여중) 채찬석(경기 영증중), 그리고 경북 대서국 교장 이오덕과 충북대 교수 윤구병이었다.



‘참 사람을 가꾸는(나중에 ‘우리말과 아이들의 참 삶을 가꾸는’으로 바뀐다) 글쓰기 교육을 더욱 효과적으로 실천할 수 있는 길을 모색하기 위해 뜻을 같이하는 교육자들의 지혜와 힘을 한 데 모아’(결성발기문) 만든 이 회는 ‘어린이와 청소년들의 인간다운 삶을 키워갈 수 있는 글쓰기 교육의 실천적 연구’를 목적으로(회칙 2조) 삼았다. 그리고 아이들이 자신의 ‘삶을 바로 보고 삶을 이야기하는 글을 쓰게 하는 데서 아이들의 세계를 건강하게 가꾸어 가려고 하는 것’(연구회 누리집)이 이들의 목표였다.



모임 창립 당시, 이들은 제도교육 안에서 횡행하던 상업성과 정치성을 띤 백일장 따위의 행사성 ‘글짓기’와 학생들 자신의 ‘삶을 외면하고, 실감이 없는 빈 말을 꾸며 만드는 손재주’만 가르치는 글짓기 교육의 병폐를 개탄하였다.



글쓰기회 창립은 워낙 <경북글짓기교육연구회>를 만들어 회보 「글짓기」(14호부터 「글쓰기」로 개명)를 통해 여러 교사들과 소통하던 이오덕 선생의 선구적인 안목과 실천행의 ‘법력’에 힘입은 바 크다. 선생은 1977년 그 힘을 오롯이 담아 두 권의 저작 (『시정신과 유희정신』,『이 아이들을 어찌 할 것인가』)을 펴낸 바 있다. 이 책들은 유신독재 하에서 제도교육의 모순을 아파하던 많은 사람들, 특히 젊은 초등교사들을 전율시켰다. 78년 서울 문창국에서 청년교사 모임을 하던 교사 이주영 정기훈 김광철도 그런 경우였다.



마음의 울림은 직접 행동으로 이어진다. 이들은 그 해 여름 경북 시골까지 이오덕 선생을 직접 찾아가 친견(!)하는 감동을 누렸다. 이 인연으로 이주영은 함께하던 야학교사 모임과 또 찾아가게 된다. 거기서 이주영은 각처에서 교사들이 보낸 많은 편지들을 보고 이들을 묶어 보기로 마음먹었다. 그를 움직이게 한 것은 스스로 흠뻑 빠져버린 이오덕 선생의 교육관에 공명하는 동지적 유대감이었다. 생면부지의 인사들에게 부지런히 연락한 결과 탄생한 것이 <교사수양회>라는 이름의 모임이었다. 그 연례 모임을 두 번째 할 때 이주영은 글쓰기 교육 정신을 살려나갈 전국 조직을 제안하여 참석자들의 호응을 받았다. 전국 단위의 글쓰기 교육 연구 모임을 만들자는 목소리는 진작 이구동성으로 나오던 때였다.



창립 당시 사무실도 없이 회장 이오덕 선생(경북 성주-회보 원고 수집), 총무 이주영(서울-회원 관리, 행사 기획), 회보출판 주중식(거창-회보 제작)이 각자 열정 하나로 조직을 꾸려나갔다. 교장, 장학사들의 방해에도 불구하고 방학 때마다 연수를 열면 늘 100명 안팎의 회원이 모였다. 전두환내란정권의 하수인 교육행정당국은 글쓰기회를 ‘사회의 어두운 면만을 아이들에게 보여주는 불온사상을 지닌 교사 집단’으로 찍고 요주의 교사 명단을 작성하여 감시의 눈을 떼지 않았다. 행사가 무산되는 경우도 있었다. 나중에는 비밀결사처럼 움직여야 할 정도로 탄압이 심했다. 가시밭길이었다.



그러나 스스로 바른 삶을 살면서 모임의 목표를 실현하기 위해 펼친 회원들의 노력은 우리 교육현장에 새로운 글쓰기 문화의 큰 물줄기를 이루었다고 평가받을 만하다. 어언 24주년을 맞이한 올해 8월 25일은 2003년 돌아가신 이오덕 선생의 기일이다. 선생을 기리는 사람들이 모여 두 번째로 서울 배재학당 자리에서 ‘이오덕 공부 마당’을 펼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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