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원 조성=노숙자 유입’이라는 요상한 가설
서울역 고가도로 공원화 사업이 막바지 단계에 접어든 모양이다. 서울시는 오는 5월 20일 서울역 고가공원(공식명칭: 서울로7017)을 공식 개장한다고 밝혔다. 같은 날, 한 언론사에서는 개장 이후 발생할 이런저런 문제들을 지적하는 기사 한 편을 내놨다. 그에 따르면, ‘노숙자 문제’ 역시 앞으로 해결해야 할 과제 가운데 하나라고 한다. 눈길이 가는 건 다음 대목이다. “서울역 일대 노숙자들과 서울로 이용시민들 간의 마찰 가능성도 골칫거리다.” 아직 있지도 않은 공원을 두고, 가지도 않은 사람들을 구태여 노숙자와 이용시민으로 분류하는 것이 영 마음에 들지 않지만, 일단 여기서는 하나만 살펴보자.
▲ 공원화 사업 초기, 사업에 반대하며 시위를 벌이는 주민・상인들 [출처: 연합뉴스TV 화면 캡쳐. '14. 10. 13] |
표면적으로 봤을 때, 기사를 쓴 기자는 노숙자와 시민 간의 마찰을 문제 삼는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사실 그가 정말 말하고 싶은 건 바로 ‘서울역 일대 노숙자들’에 대한 대책이다. 이들이 고가공원으로 들어와 그곳을 이용하는 시민들과 마찰을 빚지 않도록 막아야 한다는 것이다. 그런데 이때 기자가 기정사실처럼 받아들이고 있는 요상한 가설이 하나 있다. ‘고가공원 조성=서울역 노숙자 유입’이라는 가설, 이른바 ‘고가공원 노숙자 유입썰’이다.
이 ‘썰’은 고가도로 공원화 사업의 첫 단계부터 현재에 이르기까지, 해당 사업과 노숙인을 동시에 언급하는 거의 모든 언론 보도들에 등장한다. 달라진 게 있다면, 언론이 이를 가지고 ‘썰풀이’를 하는 방식뿐이다. 대체 이 썰은 누가 처음 만들었으며, 지금껏 언론에서는 이를 어떻게 다뤄왔던 것일까.
고가공원 노숙자 유입‘썰’의 등장
지난 2014년 9월 서울시가 고가도로 공원화 사업을 처음 발표했을 때, 가장 반발이 심했던 사람들은 남대문시장 상인들과 인근 지역 주민들이었다. ‘고가공원 노숙자 유입썰’이 처음 보도되기 시작한 것도 이때였는데, 이것은 당시 사업 철회를 요구하던 상인과 주민들의 반대 근거 가운데 하나였다. 반발이 매우 심했기 때문일까. 그해 10월 14일에 열린 국정감사에서 이 문제가 거론되었다. 노숙자들이 고가를 따라 남대문시장으로 유입될 가능성이 있으므로 이에 대한 대책이 필요하다는 취지의 지적이 나왔다. 이후 사안에 대한 언론의 관심은 더욱 높아졌다. 주목할 만한 건 국감 이후 약 1년여 동안 이 사안을 다룬 언론사들의 보도 방식이다. 노숙자 유입 문제는 철저히 ‘서울시 대 주민・상인들’이라는 구도 하에서 다뤄졌고, 주로 상권 쇠퇴・치안 불안・ 동네 이미지 하락 등의 문제와 맞물려 제기되었다. 분명한 사실 하나는, 당시 언론들이 ‘공원 이용객과 노숙자 간 마찰 가능성’ 따위에는 별 관심을 두지 않았다는 점이다.
언론사들은 주로 르포 기사와 인터뷰 기사들을 통해 이 문제를 언급하기 시작했다. 여기에는 다양한 이해관계자들이 등장한다. 개중에는 “공원화가 되면 치안 문제가 잦아져 상권이 후퇴할 것”이라는 상인회 관계자가 있고, “고가공원이 노숙자들의 쉼터가 돼 동네 이미지가 더 나빠질 것”이라 말하는 나이든 주민이 있으며, “날이 따뜻해지면 몇 천 명의 노숙자들이 고가 주변으로 모일 것”이라 믿는 젊은 상인이 있다.
물론 공원화 사업으로 인해 생존권을 위협받게 된 사람들이 적지는 않았을 것이다. 따라서 그런 사람들이 언론에다 노숙자 유입 문제에 대해 다소 과장되거나 격한 반응을 보인다 해도 그것이 아주 이해 못할 일은 아니다. 문제는 이런 사람들의 발언을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기계적으로 내보내면서, 서울시와 주민・상인들 간 갈등을 부각시키는 데만 골몰했던 언론사들의 행태다. 당시 기사들 가운데 노숙자 유입에 관한 이런저런 ‘썰’들이 얼마나 현실성 있는 것인지 평가하거나 분석한 기사는 단 한 건도 찾을 수 없다. 그저 언론사의 입장에 따라 주민들의 주장을 그대로 싣거나 혹은 서울시 관계자의 반론을 추가했을 뿐이다. 물론, 어느 경우에도 ‘공원 조성=노숙자 유입’이라는 가설 자체가 의심받는 일은 없었다. 결국 언론은 사업 초기 고가공원 노숙자 유입썰을 널리 퍼뜨린 숨은 공로자였던 셈이다.
2016년 이전까지, 적어도 언론 보도에 있어서 사안의 핵심 이해관계자는 오직 서울시와 주민・상인들 뿐이었다. 공원화 사업이 인근 지역 노숙자들이나 쪽방 주민들의 삶에 어떤 결과를 초래할 것인지는 전혀 관심의 대상이 아니었다. 어쩌면 언론의 입장에서 이들은 ‘어딘가에 널브러져 있는 물건 같은 사람들’, 따라서 ‘아무렇게 묘사해도 상관없는 사람들’에 불과했던 것은 아닐까.
고가공원 노숙자 유입‘썰’의 변주
2016년 이후에도 고가공원 노숙자 유입썰을 다루는 언론 보도는 계속되었다. 그러나 다만, 썰풀이 하는 방식이 바뀌었다. 이제 언론은 노숙자 유입을 우려하는 주민들과 상인들을 거의 거론하지 않는다. 이들을 대신해 거론되는 것은 노숙자들의 공원 유입 대책을 설명하는 서울시의 보도자료 내용이다. 그와 동시에 썰을 제기하는 맥락 자체도 바뀌게 된다. 상권 쇠퇴나 지역의 슬럼화, 치안 불안 등의 요인으로 지목되던 노숙자 유입 문제가 이후로는 관광객(공원 이용객) 유치에 방해가 되는 요인으로 언론에서 다뤄지기 시작한 것이다. 당연할 말이겠지만, 이런 변화들에도 불구하고 앞서 지적한 문제들이 해결되는 일은 없었다.
다음호에서 계속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