탈레반이 또 다시 외신을 통해 오늘 5시 30분을 “마지막 협상시한”으로 못 박은 가운데, 한국정부의 협상력에 전 국민의 눈이 쏠리고 있다.
탈레반, 5시 30분 "마지막 협상 시한" 통보
25일 저녁 9시 8명의 피랍자들이 석방되어 미군기지로 향하고 있다는 외신이 보도되면서 잠시나마 가슴을 쓸어내렸던 피랍자 가족은 남성 1명이 살해되었다는 보도로 다시 절망의 나락으로 빠졌다.
25일 밤부터 오늘 오전 정부가 살해된 남성이 배형규 목사라는 사실을 정부에서 확인해 주기까지 상황은 급박했다. 가족들은 시시각각 전해오는 외신을 보며 가슴에서는 낙관과 비관이 요동을 쳤다.
배형규 목사의 사망 소식을 정부가 공식 확인하자, 피랍자들의 무사귀환을 바라는 사람들은 엄청난 충격과 비탄에 빠졌다. 게다가 석방되어 미군기지로 향하고 있었다고 외신을 통해 보도되었던 8명마저도 다시 억류된 것 같다는 외신을 접하며 가족들은 다시 근심에 빠져있다.
다행히 피랍된 나머지 22명의 신병은 안전한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오늘 청와대는 사태가 이 지경에 이르자 브리핑을 통해 "상황의 엄중성을 감안해 아프간 정부와 보다 긴밀한 협의를 위해 특사를 아프간에 파견하기로 했고, 사안의 성격과 중요성을 고려해 백종천 청와대 안보실장을 특사로 파견하기로 했다"고 밝혔다. 백종천 안보실장은 직접 아프간 대통령을 만나 대책을 논의할 예정이다.
그러나 피랍자들의 무사귀환은 한국 정부의 대 아프간 협상에 있기보다는 한국 정부의 대 미국 협상력에 있다고 보는 것이 맞을 것 같다.
공은 미국으로
미국 눈치보는 카르자이 대통령
현재까지 탈레반 정부는 탈레반의 요구에 대해 "아프간의 법과 이익에 반하는 인질-수감자 맞교환은 받아들일 수 없다"는 강경한 입장을 보이고 있다. 아프간 정부의 이런 입장은 “테러범과 교섭 없다”는 부시 행정부의 입장과도 일치한다.
전문가들은 아프간 정부가 피랍자 석방 협상과 관련해 미국 눈치를 볼 수밖에 없는 위치에 있다고 분석하고 있다.
3월 이태리 기자 피랍 사건 당시 5명의 탈레반 수감자들을 석방하는 조건을 카르자이 아프간 대통령이 수용했을 때에도 미국을 비롯한 국제사회는 맹비난을 퍼부은 바 있다. 이런 비난을 모면하기 위해 카르자이 대통령은 ‘이번 한 번만’이라는 단서를 붙인 바 있다.
따라서 이번에 한국인 피랍자들을 석방하기 위해서 탈레반의 요구를 다시 수용하게 된다면 다시금 국제사회의 비난에 휩싸일 것을 우려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탈레반 측에 수감자 석방대신 거액의 현금을 제시한 것도, 최대한 수감자 석방을 우회하며 사태를 해결하려는 시도로 해석된다.
미국이 카르자이 대통령에 대해 절대적 영향력을 가지고 있다는 점은 2001년 말 미국이 아프가니스탄을 침략하고 탈레반이 권좌에서 축출된 후, 사실상 미국의 지명을 통해 대통령이 되었다는 점에서도 잘 드러나고 있다.
미국의 딜레마
미국, 아프간 현지에서는 탈레반 소탕 중
그러나 미국은 오늘까지도 별 다른 입장을 내 놓지 않고 있다. 부시 행정부는 "인질 석방을 위한 한국 정부의 노력을 지지하며, 탈레반은 인질들을 즉각 무사히 석방해야 한다"는 말만 되풀이 하고 있다. 기자들의 질문에는 탈레반을 자극하지 않기 위해 답을 회피하고 있다고 설명을 덧붙이기도 했다.
왜 미국은 침묵을 지키고 있는 것일까? 요즘 아프간에서는 탈레반 무장 세력과 미 주도 연합군, 나토군(NATO), 아프간 정부군들 사이에서 교전이 한창이다.
미국은 현재의 국면을 “부시행정부 2기 들어 그 어느 때보다도 알 카에다의 세력이 강하다”고 판단하고 있다. 따라서 테러와의 전쟁을 하고 있다는 미국의 입장에서는 수감자 석방을 통해 적을 이롭게 할 수 있는 선택을 하기에는 무리수다.
올해 들어 남부 아프가니스탄에서는 파슈툰 탈레반이 아프간 정부, 미 주도 연합군 및 나토(NATO)가 주도하고 있는 국제안보지원군(ISAF)을 공격하면서 재규합되고 있다. 아프간 정부는 교전과정에서 직접적으로 올해만 300명의 민간인이 사망했다고 밝히고 있다.
다음달 8월 5일과 6일에는 아프간 안보문제 및 미 주도의 테러와의 전쟁을 논의하기 위해 카르자이 아프간 대통령과 미 부시 대통령의 캠프 데이비드 회동이 예정되어 있다.
24일 하루 동안에도 미군과 나토군의 공습, 아프간 정부군의 소탕작전으로 탈레반 무장 세력이 75명 숨진 것으로 알려졌다. 또, 같은 날 탈레반의 폭탄매설 지역에서 나토군이 6명 사망하기도 했다.
침묵하는 미국, 아프간 정부를 움직여야
결국 탈레반 측에서 수감자 석방을 요구하고 있는 한 현재 진행되고 있는 탈레반 소탕작전에서 후퇴하지 않으면서도 한국인 피랍자들을 무사히 석방시킬 수 있는 묘안은 보이지 않는다.
청와대는 오늘 브리핑을 통해 “미국과 필요한 조치를 취하고 있다”고 밝힌 바 있다. 그러나 미국과 필요한 조치가 아프간 정부를 움직일 수 없다면 필요한 조치를 다 취한 것인지에 대해 뒤이은 평가가 제기될 것은 당연한 수순이다.
한국은 한미 동맹을 이유로 미국 주도의 대 테러전쟁에 파병한 국가가 되었다. 그리고 그 파병을 이유로 한국인들이 23명이나 피랍되었고, 심지어 1명은 사망한 것으로 확인된 상황에서 “필요한 조치” 또는 “한국정부를 지지한다”는 말 이외에 어떤 조치가 취해질 것인지는 이번 피랍사건이 끝난 후 확인될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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