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용철 없었으면 이용철도 없었을 것

이용철 기자간담회, "삼성은 품위있는 해명 해라"

오늘(20일) 민변 사무실에서 가진 이용철 변호사의 기자간담회. 이용철 변호사는 삼성의 해명에 대해 수위의 기업인만큼 품위에 맞는 해명을 했으면 좋겠다고 일침을 놓았다. 그래서인지는 몰라도 삼성은 이용철 변호사의 기자간담회 이후 해가 떨어질 때까지 이렇다할 공식 입장을 내놓지 않았다.

  공식 기자간담회가 끝난 후에도 기자들의 질문에 일일이 답하고 있는 이용철 전 청와대 비서관

진실은 세 가지 경우 중 하나

이용철 변호사에게 전해졌다가 반환된 삼성의 돈다발. 이용철 변호사는 이 사태의 진실이 다음 세 가지 경우 중 하나라고 말했다.

첫째, 삼성의 해명처럼 삼성과 관계없이 이경훈 변호사가 독자적으로 한 것, 둘째, 이용철 변호사가 있지도 않는 것을 증거를 조작해 만들었을 가능성, 셋째, 삼성에서 이경훈 변호사를 통해 보냈을 경우.

우선, 이경훈 변호사가 독자적으로 했을 가능성에 대해. 500만 원이면 개인적인 차원에서는 큰 돈인데, 이경훈 변호사가 그런 큰 돈을 이용철 번호사에게 전해줄 동기가 있었겠는가. 돈다발을 묶은 띠지가 서울은행 분당지점으로 되어 있는데, 서울은행은 2002년 9월에 하나은행과 M&A, 하나은행으로 통합되었는데, 그렇다면 돈다발은 2002년 12월 이전에 준비해놨다는 이야기. 당시에는 공직자도 아닌 이용철 변호사에게 돈다발을 전해주려고 1년 이상식이나 보관했다는 걸 납득하기 어렵다는 것. 또 이경훈 변호사가 직접도 아니고 택배로 보낸 점이나, 숫자5가 쓰인 포스트잇이 붙어있는데, 개인적으로 준 거라면 포스트잇을 붙여놓을 이유가 없었을 것. 작업이 황급했던지 실수로 붙어있는 채로 온 건지 모르지만, 개인한테 뇌물을 줬을 가능성은 없을 것.

조작했을 가능성에 대해. 이걸 조작할려면 2004년 사진 찍을 때부터 준비하거나, 지금 찍어서 2004년에 찍은 것처럼 하는 기술적 능력을 갖추거나 해야 하는데. 서울은행 분당지점 띠지, 이경훈 변호사 명함 같은 것... 역시 설득력이 없고.

그렇다면 가능성은 세 번째. 이용철 변호사가 지금 행동하고 있는 것처럼 삼성이 이경훈 변호사를 통해 전달했다는 것이 분명해 보이는데.

  이용철 변호사가 공개한 증거자료. 돈다발이 서울은행 분당지점이라고 쓰여진 띠로 묶여있다.

고립무원의 김용철이 없었으면 이용철도 없었을 것

이용철 변호사는 19일 참여연대 강당에서 '삼성 뇌물 전달 및 반환 경위 진술내용'과 물증 자료를 제시한 후 오늘(20일) 민변에서 기자회견을 하기까지 기자들에게 시달리다, 한꺼번에 이야기하겠다며 기자간담회를 자청했다.

이용철 변호사는 김용철 변호사가 처음 양심고백을 했을 때만 해도 유심히 보지 않았다고 했다. 그러다가 'PD수첩'을 꼼꼼히 보면서 자신이 겪었던 팩트와 일치점이 많아 저(김용철 변호사) 이야기는 신빙성이 있을 것으로 느꼈다고 했다.

이용철 변호사는 이후 노래방 불법 영업 이야기도 나오고, 인격적으로 이상한 사람으로 폄하하며 사안의 본질이 아닌 이야기가 나오는 걸 보고 저거 옳은 것인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고. 그래서 자신이 갖고 있는 팩트를 알리면 신빙성을 보완할 수 있을 것이고 유익하겠다고.. 마음 속으로 조금씩 조금씩 그렇게 생각했다고 말했다.

그러던 중 지난 목요일(15일) 민변의 한 모임 자리에서 누군가 "받은 거 있으면 내놔" 라는 농담에 대해 턱도 없는 소리 하지 말라고 하지 않고 마음 속으로 공개를 망설였다고. 민변 총장이 좀 다그쳤고, 그래서 자료를 갖고 있다고 정황 설명을 했다 한다.

당시 찍어둔 사진을 본격적으로 찾아봐야겠다 마음 먹은 건 금요일(16일)이었고, 자료를 찾아낸 게 일요일(18일)이었다 한다. 막상 사진을 찾은 건 아내이고, 아내는 집에 있는 컴퓨터 두 대에서가 아니라 CD에서 찾아냈다는 것.

이용철 변호사는 김용철 변호사의 고백이 없었다면 자신도 이걸 폭로하는 게 엄두를 못 냈을 거라고 했다. 당시 폭로를 했더라도 빙산의 일각, 깃털의 깃털, 개인 일로 치부되었을 것이고, 차떼기 문제로 전 국민이 분노하는 상황에서도 뇌물을 주는 자신감을 갖는 조직을 상대로 최전선에서 싸울 용기가 안 났었다고. 당시에도 그랬는데 3년이나 지난 지금 꺼낸다면 얼마나 뜬금 없겠냐고 반문했다.

2005년 X파일이 공개되었을 때도 기회였을 텐데, 그때는 내부자가 소상하게 이야기하면서 부합된 형태는 아니었고, 결정적으로 이야기를 해야겠다는 동기를 잘 못느꼈었다고 했다. 그리 예민하지 않았다는 것. 그런데 이번에는 이야기 과정이 리얼하게 일치하는 게 있고, 지금 시점에서 김용철 변호사는 자신을 잡아넣어서라도 삼성의 불법행위의 고리를 끊으러고 하는데, 굉장히 고립무원에 처해있는 상황으로 보였고, 모른 채 눈 감을 수 없었다고.

포장상태 정교, 삼성물산의 비자금?

처음에 이거 명절에 웬 책 했단다. 보통의 책을 포장하면 정성을 들이나마나 한 면은 막혀있고 한 면은 접어서 테잎을 붙여서 포장되는지라 응당 책이려니 생각하고 뜯었는데, 열어보니 박스가 있고 돈다발이 있었다고. 마분지로 된 상자는 돈이 들어가면 딱 맞게 제작된 것이었고, 아구가 정확히 맞았다고 기억했다.

삼성물산의 비자금일 가능성을 묻자 이용철 변호사는 자신이 삼성 내부 사람이 아니라 정보에 접근할 단서가 없고, 따라서 자신의 추측이 여러분(기자)의 추측과 같을 것이라고 답했다. 말하자면 서울은행 분당지점이 지금은 하나은행 분당지점인데, 분당지점 근처에 삼성물산이 있으니 무릇 추측이 무리는 아니라는 이야기다. 김용철 변호사는 일전에 삼성물산이 삼성 구조본의 비자금의 주요 출처였다고 주장한 바 있다.

  기자간담회 중인 이용철 변호사

이경훈 돈다발, 삼성의 민감한 사안과의 연관성은?

이용철 변호사는 어제 기자회견에서 김상조 한성대 교수가 한 이야기에 대해서는 특정하지 않았다. 무슨 이야기냐면, 김상조 한성대 교수가 이용철 변호사의 진술에 대해 "뇌물이 제공된 2003년 말부터 2004년은 삼성에 매우 민감한 사안이 발생했다는 걸 기억하는 게 좋겠다"고 말한 대목과 관련된다. 그 시기는 에버랜드 전환사채 사건에 대해 업무상 배임죄가 적용되면 공소시효가 7년으로 2003년 12월 3일 만료돼, 시민단체들이 기소를 강력히 제기하는 시점이었고, 당시 청와대 민정2비서관으로 있던 이용철 변호사가 김상조 교수 등 시민단체와 자리를 같이 한 적이 있어서다.

이점에 대해 이용철 변호사는 에버랜드 전환사채 문제에 대해 청와대가 뭘 정하기 위해 김상조 교수를 만나거나 묻는 형식은 아니었다고 말했다. 이용철 변호사가 한 일은 제도개혁이 주임무로, 공직 부패에 대한 수사의뢰 등의 일은 사정비서관의 일인지라 자신의 소관 업무도 아니었다는 것. 또 당시는 대선자금을 수사하는 시기였고, 시국 관련 최대 관심사항이 탄핵이었고, 이용철 변호사의 당시 업무와 관련해서는 사면 이야기가 나올 때였고... 박범계 변호사(전 청와대 법무비서관)가 사직 인사차 송광수 검찰총장을 만나러 갔는데 마침 이광재 씨가 소환되던 날이라 '청와대와 검찰이 사전 조율하는 것 아니냐'고 언론에 된통 깨지던 상황도 벌어지기도 해, 뭘 주거니 받거니 할 상황이 아니었다는 설명이다.

이용철 변호사는 이경훈 변호사가 뭔가 해결할 문제에 대한 조건을 염두에 두고 청탁한 것 같지는 않다고 당시 기억을 더듬었다. 추측이지만 삼성이 그냥 명절 때마다 관리 차원에서 우호적인 관계를 맺고 꼭 필요할 때 활용하는 걸 염두에 두고 한 사례가 아닐까 짐작된다고 했다. 물론 모를 일이다.

"김용철 변호사의 명단 공개 의식한 것 아닌가?" "천만의 말씀"

이용철 변호사는 2004년 1월 26일 전달받았고, 배송 의뢰서에는 16일로 찍혀있었다고 했다. 구정과 주말 끼고 다음 월요일이 26일이라 제때 정확히 전달되었다고 볼 수 있는데, 이용철 변호사는 다음날 바로 돌려주지 않고 며칠 후에 돌려줬다고 말했다.

짖궂은 기자들은 이용철 변호사에게 뇌물을 받은 것인데, 김용철 변호사가 명단을 폭로하기 전에 일말의 감정이 있어서 지금처럼 행동하는 것 아니냐고 물었다. 이용철 변호사는 일언지하 손사래를 쳤다. 증거자료인 사진에 1월 26일이라고 날짜가 박혀있는데 그걸 뇌물로 챙길 요량이었으면 사진은 왜 찍어두었겠냐고 되물었다. 지금은 이 문제가 최우선 현안이지만 당시에는 자신의 업무상 이 건은 최우선 현안이 아니었다는 설명이다. 얼마간이 지나고 쫓기는 일정 속에 이경훈 변호사를 프라자호텔 일식집에서 만나 점심을 먹으며 돌려줬다고. 이날 이용철 변호사는 자신이 5백만원 짜리 인격인가 싶은 모멸감 같은 걸 느꼈다고 이경훈 변호사에게 설명했고, 이경훈 변호사는 미안하다고 이야기를 했다고 한다.

유사한 질문이 거듭되자 자신은 돈다발을 반환한 사람인데 뭐가 캥겨 그러겠는가. 그것을 꿀꺽 삼켰으면 정말 이런 행위 자체가 고해성사고, 나 잡아가라 그랬겠지.

이용철 변호사는 자신이 민변 회원이니까 민변에서 서명하라면 할 건데, 서명운동을 하기 위해 자신이 서명지를 들고 돌아다니라는 요청은 아직 없었다고 너스레를 했다. 요청이 오면 생각해보겠다고. 청와대의 썰렁한 분위기로 미루어 이미 물 건너간 것처럼 보이지만, 특검을 통해 수사해야 한다는 점도 강조했다.

이용철 변호사는 대학에서 학생운동을 했고, 사시에 합격하던 해부터 10년 동안 경실련 상임집행위원과 YMCA에서 소비자운동을 함께 했으며, 민변 집행위원 활동을 해왔다고. 우리 사회 경제문제에 관심을 많이 가진 편이었는데, 그런 점에서 이번 삼성 비자금 문제는 경제민주화 진전에 상당히 중요한 계기이고 전환점이 될 거라고 말했다. 대한민국의 국가 투명성 지수가 좋아지는 계기가 되었으면 좋겠다는 주관을 피력했다.

김용철 변호사와 만날 용의는.. 안 할 이유도 없지만 꼭 할 이유도 없다고.

말미에 누군가 이용철 변호사 외에도 청와대를 상대로 한 삼성의 로비는 얼마든지 가능하지 않느냐고 물었다. 이용철 변호사의 답, 여러분의 상상력이나 저의 상상력이나 같은 것이니 내 입을 통해 상상력을 펼칠 생각 하지 마시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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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성 , 비자금 , 김용철 , 이용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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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풀무질

    비리의 근원 청와대 노무현을 끌어 내려야 합니다!
    개혁하라고 오년전 대통령 시켜 주었는데 오히려 재계와 검은 거래 하는 청와대 주인이라뇨?
    그런 비리가 있기에 검찰공직자들에게 생선가게를 맡기기 보다 삼성재벌특검을 통해 검은 커넥션을 낱낱히 밝혀내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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