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은 사람들의 것이지 정부의 것이 아님에도

[김한울의 표본실] (1) 복원의 탈을 쓴 새로운 개발주의


  [김한울 사무국장]
김한울노동당 종로중구당원협의회 사무국장의 칼럼 [표본실]을 새로 연재합니다.

표본실에는 표본들이 있습니다. 하지만 모두 자연에서 떼어온 것들, 죽어있는 것들 뿐입니다. 지금 우리의 삶을 둘러싼 여러 모습들도 혹시나 죽어있는 것은 아닐까요. 표본실 선반을 찬찬히 훑어보듯 삶의 공간을 꿈틀대는 시선으로 살피노라면 세상은 생동하는 표본실이 될 수 있지 않을까요. 그렇게 시선이 닿는 대로 살아있는 세상의 면면을 살펴보려 합니다. [편집자주]


종묘사직. 종묘는 왕실의 사당이요, 사직은 땅의 신과 곡식의 신의 제단이다. 각각 조선의 정치사상과 경제에 대응하는 상징적 공간이다. 조선만이 이 둘을 나라의 근간이라 한 것은 아니다. 고려도 개경에 종묘와 사직을 두었다. 거슬러 가자면 삼국사기에 7세기 고구려에서 사직단을 세운 기록이 남아있다. 한 번 더 거슬러 오르면 기원전에 쓰여진 《주례(周禮)》〈고공기(考工記)〉에 ‘좌묘우사(左廟右社)’라는 문구가 있다. 도읍의 동쪽에 종묘를, 서쪽에 사직을 두는 것을 도읍의 기본으로 제시한 가장 오래된 문헌이다.

이렇게 살피고 보면 조선 500년 동안 사직단은 가장 후한 대접이라도 받았으리라 생각되지만, 실록의 기록을 찾아보면 반드시 그렇지만도 않다.

태종은 사직단 일대의 관리에 필요 이상의 재원이 쓰이는 것을 지적하며 ‘무명지역(無名之役)에 자량(貲糧, 재정과 곡식)을 낭비해서 되겠는가’라고 꾸짖기도 했다. 그 ‘필요’라는 게 어느 선이었을까. 어쨌든 왕의 물음 앞에 별 문제 없다고 답했던 황희는 임금의 단호함 앞에서 더 이상 아무 말도 더할 수 없었다. 사직단에 국고를 사용하는 것을 낭비라고 하다니. 제 아무리 사직단이라도 그에 대한 사안의 경중을 가늠했음을 보여주는 일화다.

세종 때에는 사직단을 관리하는 사직서(社稷署)가 설치됐다. 그 전에는 창고와 관사, 이를 담당하는 관리가 있었으나 그 직급이나 복식 조차 제대로 정해지지 않았던 것이 세종에 이르러 정비된 것이다. 그 후로도 사직단의 외형에도 때때로 변화가 있었는데, 필요에 따라 배치가 달라지거나 건물이 철거되기도 했다. 격은 갖추되 낭비가 없도록 경계한 흔적은 곳곳에서 역력하다.

  사직단 남문. 직(稷)단과 사(社)단 너머로 최초의 어린이 도서관인 서울시립어린이도서관(1979년 설립)이 보인다.

조선 왕실은 1911년, 사직단 부지와 건물을 모두 조선총독부에 인계한다. 총독부는 사직단을 인계받음과 동시에 사직대제를 중단하고 그에 필요한 제기창고, 악기창고 등의 건물을 철거하여 사직공원(1922)을 조성한다. 하지만 사직단과 사직단 정문은 유지하고 사직서의 중심 건물이던 안향청 역시 관리사무소 용도로 남겨둔다.

사직단의 본격적인 훼손은 일반적인 생각과 다르게 해방 이후에 급격하게 일어났다. 일제가 조성한 사직공원이 제례 거행을 위해 필요한 부속 건물을 철거한 자리에 정원과 산책로를 두는 정도가 전부였다면, 군사 정권은 그야말로 그 터를 마음껏 파헤쳐 댔다. 현재의 사직터널로 이어지는 사직로가 개설되며 사직단 정문은 두 차례 뒷걸음질을 쳐야 했으며, 사직로 개통으로 잘려나간 사직단 부지의 일부는 대로 건너편으로 뚝 떨어져버리고 말았다. 이 곳에선 몇 해 전, 아파트 재개발 과정에서 부속건물의 흔적이 출토됐다. 대로를 사이에 두고 사직단의 흔적이 흩어져 버린 셈이다. 이미 뚫려버린 도로 아래의 유적은 말 할 것도 없다. 제사를 준비하는 건물이 있던 자리에는 땅을 파서 야외 수영장을 개장했다. 일제도 훼손하지 않은 사직의 권역까지 근본적으로 훼손하고, 송두리째 유원지화한 것은 일제가 아닌 셈이다.

  사직단 동문. 사직단 북쪽에 자리잡은 종로도서관(1920년 설립, 1968년 이전)과 매동초등학교를 마주보고 있는 유아교육진흥원이 보인다.

다행이라 할 수 있을까. 땅과 곡식의 신에 비를 빌던 제단은 그 주변으로 조선 이후를 잇는 역사를 얻었다. 역시나 일제시대와 군사 정권 시절에 들어선 시설들임에도 매동초등학교와 종로도서관, 서울시립어린이도서관은 그 의미를 되새겨봄직하다. 매동초등학교는 ‘교육은 개화의 근본’이라 했던 고종의 소학교령에 따라 1895년에 세워져 1933년 현재의 위치로 옮겨왔다. 1920년 조선인이 세운 최초의 공공도서관인 경성도서관에서 기원한 종로도서관은 1968년 지금의 자리로 옮겨졌다. 국내 최초의 어린이도서관인 서울시립어린이도서관은 1979년 지금의 자리에 세워졌다. 땅과 곡식의 신에 제사를 올리며 국가의 경제적 근본을 걱정했던 조선시대를 지나온 과거라 했을 때, 근대 교육의 역사를 되짚어 볼 수 있는 살아있는 증거들은 오늘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2014년의 현실은 만만치 않다. 과거의 제단에 살아있는 오늘의 역사를 바치게 될 위기에 처한 것이다. 문화재청의 사직단 복원 추진 탓이다. 문화재청은 앞으로 약 20년 간 사직단을 조선시대 기준으로 돌려놓는 대대적인 복원사업을 진행할 계획이라 한다. 옛 사직서 경내에 소재하고 있는 사직동주민센터, 사직동치안센터는 물론, 서울시립어린도서관, 서울시립 종로도서관, 매동초등학교 등을 모두 철거하기 위한 용역사업이 진행 중이다.

지역 주민들은 단단히 화가 났다. 뜬금없이 사직단을 복원한다는 명분을 앞세워서 동네에 있는 도서관과 학교를 대책도 없이 몰아내겠다고 나선 문화재청의 복원지상주의가 반발에 맞딱뜨린 것이다. 시기도 맞춤했다. 안그래도 900년 고도를 거대한 관광지로 만들어버린 문화 관광 정책 탓에 동네 골목에서 대형 관광버스를 마주쳐야 하고, 곳곳에 넘쳐나는 무분별한 관광객으로 몸살을 앓고 있는 와중이다. 더구나 외국인 관광객은 유유히 지나는 골목길에서도 청와대 경호를 명목으로 주민들의 앞은 아무 거리낌 없이 막아서는 경찰들 때문에 한 바탕 몸살도 앓고 있다. 경복궁 반대편 이웃동네에서는 동네 입구 송현동에 특급호텔을 짓겠는다는 재벌의 꿈을 이뤄주기 위해 법 개정 마저 주저않는 국회의원들 때문에 속앓이가 심하다. 송현동 호텔은 한 술 더 떠서 동네 중고등학교까지 다 몰아낼 기세다.

우리 사회는 경제성장만을 외치던 야만한 시대를 지나 이제 문화유산도 보존할 줄 아는 여유가 생겼다고 어깨에 힘이 들어가려던 참이다. 하지만 어쩐 일인지 그 야만은 탈만 바꾼 채 여전히 남아있는 듯 하다. 세련된 포장만 두르고 더한 일도 서심치 않는 것을 보면 오히려 퇴보한 듯도 하다. 사직단 바로 옆에 야외 풀장을 파던 군사정권 시절이나, 그 제단을 복원한다며 도서관과 학교를 죄다 몰아낼 궁리를 하는 지금이나 서글프기는 마찬가지인 이유다.

  보물 177호 사직단 정문. 사직로 개통으로 인해 (1962년과 1973년) 두 차례나 뒤로 물러섰다. 원래의 자리는 사진의 안전지대 자리 정도로 추정된다.

문화재 복원은 많은 시간과 비용을 필요로 하는 일이다. 게다가 복원을 명분으로 살아있는 숨을 쉬는 것들을 밀어버리고 사라진 것을 되살리겠다고 제 멋대로 설계도를 그려대는 즈음에 이르면 문화재 복원은 어느샌가 수 십 년 동안 우리에게 익숙했던 개발지상주의의 얼굴을 드러낸다. 산 자들을 밀어내버린 후에 콘크리트를 붓느냐 기와지붕을 올리느냐만 다를 뿐 무엇이 다른 걸까. 지난 역사에서 우리는 무엇을 배워온 걸까. 지난 해에는 백석동천 정자를 복원하겠다고 하는 통에 자하문 주면 부암동이 들썩댔더랬다. 추사 김정희의 별서라던 경솔한 발표는 결국 사실이 아님이 밝혀졌고, 적당히 그럴 듯한 모양을 따서 그려낸 복원 설계도는 결국 실제와 판이하게 다른 것임이 드러나면서 복원 사업은 개발 사업에 다름 아니었음을 감추지 못한 채 좌초되고 말았다.

是天下之天下, 非政府之天下, 而乃反認作自己之天下, 遽爾調印, 毫無顧忌, 豈不痛哉!

“세상은 사람들의 것이지 정부의 것이 아님에도, 세상을 자기 것인 듯 조약을 맺고도 아무 거리낌이 없으니 어찌 비통하지 않겠습니까”

1905년 을사늑약 직후에 사직서의 박봉주가 올린 상소문은 문화재 복원이라는 전가의 보도를 휘두르는 문화재청이 반드시 기억해야 할 가치, 사직단 복원을 둘러싼 논란에서 우리가 놓치지 말아야 할 핵심을 100년이라는 시간을 건너와 다시 말해주고 있는 듯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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