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착취는 체제의 문제다!

22만 명. 딥페이크 성착취물을 제작하고 공유하는 수많은 텔레그램 방 중 하나에 들어있는 이용자 수다. 딥페이크 성폭력이 발생한 것으로 의심되는 학교를 표시한 지도 사이트는 인구밀도가 높은 지역일수록 마커가 촘촘했다. 여성들은 SNS에 올리는 일상 사진을 내려야 하나 불안해하기도 했지만, 동시에 혜화역 거리에서 “너희는 우리를 능욕할 수 없다”고 외쳤다. 디지털 성폭력 가해자들에 대한 엄벌과 불법촬영 공정수사를 요구한 지 6년 만이었다.

출처: 딥페이크 성폭력 긴급행동 집회(2024.9.6.) 필자 제공

법만이 능사가 아니다

정치인들은 부랴부랴 30건이 넘는 법안을 발의하였고 9월 26일, 딥페이크 처벌법이 국회 본회의를 통과했다. 이제 딥페이크 성착취물을 제작, 소지, 구입, 저장, 시청하기만 해도 처벌할 수 있게 되었다. 그런데 어딘가 찝찝하다. 예전부터 성폭력처벌법에 포함시켜야 한다고 주장한 내용을 사건이 크게 공론화되고 나서야 뒤늦게 추가한 것 때문만은 아니다. 국회 법제사법위원회가 법조항에 갑자기 “(딥페이크 합성물인 것을)알면서”라는 조건을 추가했다가 거센 항의를 받고 삭제한 것 때문만도 아니다. 이 찝찝함은 기시감이다. 2020년, 텔레그램 N번방 사건이 세상을 떠들썩하게 했다. N번방 가해자들은 여성을 유인하고 협박해 성착취물을 제작하고 유포했다. 지인을 대상으로 하는 딥페이크 이미지 제작은 텔레그램 방에서 공유되던 여러 성착취물 유형 가운데 하나였다. 국회와 정부와 경찰은 당시에도 황급히 법을 개정하고 실무 TF를 만들고 가해자들을 기소했다. 그런데 4년이 지난 지금, N번방 사건 때와 닮은 수십 개의 딥페이크 성폭력 방이 버젓이 존재한다. 이것은 무슨 말이겠는가? 이번에도 N번방 때와 마찬가지로 몇 개의 법조항만 개정하고 일부 가해자만 처벌한다면, 사이버 성폭력은 또 다른 모습으로 반복될 수 있다는 것이다. 가해자가 몇 명인지, 피해 학교가 몇 개인지보다 더 중요한 것은 딥페이크 성폭력과 같은 사이버 성폭력/성착취의 근본적인 해결을 고민하는 것이다.

디지털 자본과 성착취 

권김현영은 <늘 그랬듯이 길을 찾아낼 것이다>에서 인터넷이 이제 막 보급되던 1990년대 중반 시기부터 현재까지 디지털 성착취의 연대기를 훑으며 “한국의 인터넷 역사와 디지털 성범죄는 긴밀하게 연결되어 왔다”고 말한다. 2000년대 초반, 인터넷 가입자 수가 폭발적으로 증가하던 시기 새로운 수익 모델이 필요했던 기업들은 포르노사이트를 운영하며 돈을 벌었다. 이미 그 이전 시대 경험으로부터 여성의 섹슈얼리티가 돈이 된다는 것을 학습한 뒤였다. 그중 하나가 소라넷 사이트였고 이때부터 음란물을 대량 유통하는 헤비 업로더가 등장했다. 불법촬영물이 끊임없이 업로드되고 강간 모의까지 공공연하게 이루어지던 소라넷 사이트는 여성들의 집단행동 끝에 2016년 폐지되었다. 이 시기부터 음란물과 불법촬영물의 구분은 흐릿해졌고 성착취는 디지털 공간의 수익 모델이 되었다. 

N번방 사건 이전에는 웹하드 카르텔이 있었다. 넷플릭스와 같은 OTT가 있기 전, 네티즌들이 영상을 다운로드 받기 위해 자주 이용했던 웹하드 사이트는 사실상 대부분의 수익을 음란물, ‘국산야동’이라는 이름이 붙은 불법촬영물로 내고 있었다. 그런데 여기에 웹하드 운영자, ‘음란물’을 대량으로 올려 수익을 내는 헤비업로더, ‘음란물’을 걸러내는 필터링 업체, 불법촬영물 등 데이터를 삭제하는 디지털 장의 업체가 적극적으로 공모하고 유착했다는 것이 밝혀졌다. 여성의 몸을 착취하며 유지되는 산업 구조였다. N번방은 가상화폐를 이용하여 여성을 착취하는 또 다른 수익모델을 만들었다. N번방에 들어가려면 가상화폐 입장료를 지불해야 했고, 채널 별로 금액이 달랐다. 방 운영, 홍보, 자금 세탁을 조직적으로 분담했다. N번방에 주요하게 가담한 가해자들은 범죄단체조직죄가 적용되어 처벌을 받았지만, 성착취 산업은 없어지지 않았다. 현재의 딥페이크 성폭력 사태에 이르러서는 사진만 있으면, 누구나 손쉽게 ‘딥페이크 포르노’를 제작할 수 있게 되었다. 이제 제작을 포함한 생산, 유포, 소비를 명확하게 구분하는 것은 의미가 없어지고 있다. 

여성을 대상화하고 하나의 인격체로 존중하지 않는 여성혐오와 자본의 만남, 그리고 기술의 발달 속에서 여성의 신체 이미지는 거래와 교환의 대상이 되고 성착취는 하나의 산업이 되었다. 이러한 구조 속에서 플랫폼은 공간만 제공했을 뿐이라며 책임을 회피한다. 과연 그럴까? 구독자 1,000명 이상인 공개 채널에 광고 수익화 기능을 도입한 텔레그램은 무수히 양산되는 딥페이크봇을 방조했다. 시청자들이 오래 머물수록 이득인 유튜브의 입장에서는 사이버렉카가 여성을 모욕하고 사이버불링을 하는 영상은 사람들의 ‘주목’을 이끄는 컨텐츠다. 그러나 표현의 자유 논리와 시장 경제 시스템에 촘촘히 숨어든 플랫폼의 책임은 충분히 짚어지지 않는다. 웹하드 운영자가 성착취물 유통과 관련한 범죄행위로 5년, 아동 성착취물이 대량 유통되던 다크웹 웰컴투비디오의 운영자가 1년 6개월을 선고받은 사실만 봐도 그렇다. ‘우울증 갤러리’ 등의 온라인 커뮤니티에서 정신적으로 취약한 청소년 여성들에 대한 성착취가 끊임없이 발생하는데도 방송통신심의위원회의 조치는 ‘자율 규제’ 권고에 그칠 뿐이다.

출처: 딥페이크 성폭력 긴급행동 집회(2024.9.6.) 필자 제공

성차별 사회와 성착취

여성의 몸을 상품화해서 이익을 얻는 산업은 이미 한국 사회 전반에 만연해 있다. 한국의 성산업 규모는 최대 37조 원까지 추산된다고 한다. 유흥업소 업주에게 신용대출이 이루어지는 과정은 대출금이 여성의 성매매를 통해 미래에 상환될 수 있다는 믿음을 바탕으로 하고 있으며, 이때 여성의 몸은 교환 가능한 ‘담보물’이 된다.(김주희) 합법적인 저축은행부터 불법적인 영역에 걸쳐있는 행위자들까지 교묘한 방식으로 여성을 수탈하는 금융 이해관계 속에서 금융 자본은 증식한다. 딥페이크 성폭력을 포함하여 여성의 신체 이미지를 상품화하는 디지털 성착취 산업이 과연 이러한 사회와 관련이 없다고 할 수 있을까? 성차별적인 사회에서 성산업과 성착취는 구분되지 않는다. 그러나 성매매처벌법은 성매매 여성을 처벌하며 ‘음란’한 여성과 보호해야 하는 여성을 선별한다. 국가는 이러한 대규모의 성산업을 방조하고 있다.

여성의 몸이 돈이 될 수 있는 이유는 또한, 수요가 있기 때문이다. 여성을 성적 대상화하고 멸시하고 통제함으로써 남자들 간의 연대를 다지고 남성성을 과시하며 ‘진짜 남자’가 되어가는 ‘남자들의 방’(황유나)은 유흥업소뿐 아니라 N번방, 딥페이크 성폭력 텔레그램 방에서도 발견할 수 있다. 딥페이크 성폭력 방에는 서로 알고 있는 지인을 대조해서 확인한 후, 함께 여성을 가해하는 겹지인방도 있었다. ‘남자들의 방’에서는 신체 노출이 없는 일상 사진과 신상 정보만 가지고도 여성을 비하하고 모욕하는 성폭력이 발생한다. 그러나 여전히 법 조항은 “성적 욕망 또는 수치심을 유발하는 사람의 신체”를 명시하고 있어서 이러한 사례는 삭제 지원이 되지 않고 성폭력 법으로 처벌할 수도 없다. 남성성은 약자, 소수자를 타자화하고 혐오함으로써 구성된다. 이미 ‘일베’ 등 남초 온라인 커뮤니티를 기반으로 여성과 소수자를 대상화하며 폭력 자체를 자원으로 삼는 ‘디지털 고어 남성성’(손희정)이 포착된 지 오래다. 이러한 남성문화를 변화시키기 위해서 상대를 존중하고 평등한 관계를 만들어나가는 시민성을 기를 수 있는 사회 기반이 마련되어야 한다. 또한, 학교 현장에서 포괄적 성교육, 성평등 교육이 이루어져야 한다. 하지만 정부는 청소년성문화센터 예산을 틈만 나면 삭감하고 있다. 그리고 지자체는 공공도서관의 성평등·성교육 도서를 열람제한 및 폐기하라는 혐오세력의 민원에 동조하는 차별 행정을 보이고 있다.

딥페이크 성폭력은 새롭게 등장한 범죄가 아니다. 여성의 몸을 상품화하고 성착취까지 수익 모델로 만드는 체제와 남성문화 속에서 태어난 것이다. 그런데 이준석 개혁신당 의원은 남초 온라인 커뮤니티에 나온 주장을 그대로 인용하며 가해자는 소수고 “위협이 과대평가” 되었다고 사건을 납작하게 축소시켰다. 한덕수 국무총리는 현 딥페이크 성폭력 사태를 일으킨 구조적인 문제, 젠더권력과 여성혐오의 문제를 무시한 채 “정부 잘못이 아니다”라며 오직 기술 발달만 탓했다. 여성혐오와 성차별적인 사회가 바뀌지 않는다면, 기술이 발달할 때마다 현재 법 조항에 포함되지 않는 새로운 성폭력, 성착취가 등장할 것이다. 그것은 새로워 보이지만, 포장만 달라졌을 뿐 현재의 사회에서 비롯되었다는 점에서 새롭지 않을 것이다. 언제까지 많은 피해자가 발생한 다음에 뒤늦게 졸속 개정만 할 것인가? “구조적 성차별은 없다”는 기조 아래 윤석열 정부는 8개월 가까이 여성가족부 장관을 임명하지 않고 있다. 구조적 성차별은 있다. 이러한 구조가 현 딥페이크 성폭력 사태의 전조였음을 심각하게 인지하고 접근해야 할 때다.

출처: 텔레그램 성착취공동대책위원회 기자회견(2020.3.26.) 필자 제공

[참고자료]

권김현영(2020), 『늘 그랬듯이 길을 찾아낼 것이다』, 휴머니스트

김주희(2020), 『레이디 크레딧』, 현실문화

손희정, 「기이한 열정: 디지털 시대의 고어 남성성」, 『횡단인문학』 제 12호, 2022

황유나(2022), 『남자들의 방』, 오월의봄

<텔레그램 딥페이크 성폭력 관련 긴급 집담회: 일상을 위협하는 사이버 생태계의 여성주의적 전환을 위하여> 자료집 (2024)

덧붙이는 말

유랑은 한국성폭력상담소 활동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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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1
  • 글이 맥락이 없다. 즉 남녀 구별짓기식 차별구조 애매하다. 심지어 성착취가 남성문화에서 온것이다. 둥
    이런 맥락은 성별 구별짓기다. 따라서 젠더와 색스리스트 간의 차별구조 분석이 필요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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