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성도 인간이다” 1366 여성상담노동자의 외침

여성노동자 건강권 우리가 지킨다 ①

[소개글] 공공운수노조는 2026년 3.8 세계여성의날을 맞아 고용·임금 등 구조적 성차별과 일터의 성희롱·괴롭힘 등 젠더기반폭력에 맞서 싸우는 여성노동자들의 삶과 투쟁을 사회적으로 알리고자 합니다. 학교 급식실에서 병들어 쓰러지는 동료들, AI 도입 이후 더 빠르고 더 많이 일하라는 압박에 시달리는 콜센터 노동자들, 젠더폭력 피해자를 지원하면서도 정작 자신의 안전은 보호받지 못하는 상담노동자들, 쉴 곳도 화장실도 없이 현장을 떠도는 돌봄노동자들, ‘단정함’이라는 이름으로 몸을 통제당하는 여성승무원들처럼, 여성노동자들은 일상 속 차별과 폭력의 현장에서 자신의 건강과 존엄을 지키기 위해 싸우고 있습니다. 이번 기획은 여성노동자 건강권을 단순한 산재 예방을 넘어 저임금·감정·꾸밈노동, 젠더폭력, 휴식이 배제된 노동조건 등 여성에게 구조적으로 전가되는 신체적·정신적 손상까지 포괄하는 개념으로 확장해 조명하며, 총 8회에 걸쳐 연재됩니다.

 

백 년 전, 화가 나혜석(1896~1948)은 자신을 아내나 어머니가 아닌 한 인간으로 살고 싶다고 말했다. 그 한마디는 여성에게 돌봄과 희생을 당연시하던 가부장적 질서에 균열을 내는 시작이었다. 여성의 몸과 시간, 노동과 욕망이 타인의 소유가 아니라는, 스스로 선택할 수 있는 존재임을 세상 앞에 외친 언어였다. 

그로부터 반세기 뒤, 1960~80년대 동일방직과 평화시장의 여성노동자들의 싸움은 그 요구를 노동현장으로 옮겨온 몸의 언어였다. 이들은 저임금, 장시간 노동과 차별에 맞서 파업과 농성을 이어갔다. “여성도 노동자며, 인간이다.” 그들의 외침은 단지 임금 인상을 요구하는 것이 아니었다. 여성의 노동을 값싼 부속품이 아닌, 인간의 삶으로 존중받아야 한다는 사회적 선언이었다.

2026년 오늘, 그 선언은 또 다른 현장에서 이어지고 있다. 나는 여성폭력 피해자를 지원하는 여성긴급전화 1366서울센터에서 일하고 있다. 이곳은 가정폭력·성폭력·스토킹·교제폭력·디지털성폭력 등 다양한 폭력 피해 여성을 24시간 지원하는 국가의 긴급 창구다. 하루 24시간, 365일, 언제든 전화벨이 울린다.

상담노동자들은 새벽 두 시에도 피해자의 절박한 목소리에 응답한다. 경찰·의료기관·보호시설과 연계하며, 단 한 번의 연결이 한 사람의 생사를 가를 수 있음을 알고 있다. 그러나 이 여성들의 노동은 역설적이게도, 자신의 존엄과 안전으로부터 보호받지 못하고 있다. 그래서 우리는 2025년 3월 민주노총 공공운수노조 서울지역공공서비스지부 1366서울센터분회를 만들었고, 지금도 투쟁 중이다.

“인간으로 존중받지 못하는, 여성상담노동자의 노동 현장”

1366서울센터의 상담노동자들은 감정노동의 극점에 서 있다. 폭력피해자의 불안과 공포를 품으며, 끊임없이 응급 대응을 이어간다. 하지만 상담노동자들의 노동환경은 인간의 존엄을 지탱하기엔 너무나 열악하다. 상담원을 보호하기 위한 CCTV는 오히려 감시의 수단이 되었고, 직장 내 괴롭힘 문제는 무시되거나 은폐된다. 야간근무 도중 쉴 침대조차 없어 교육실에서 간이침대 하나에 몸을 뉘인 채 불편한 밤을 견딘다.

그나마 있는 휴게공간은 법이 정한 최소 기준만 간신히 맞췄다. 그 공간마저 CCTV가 비추고 있다. 이러한 상황이 서울센터만의 문제일까? 전국 19개 1366센터가 정도의 차이만 있을 뿐, 유사한 노동조건을 겪고 있다. 피해자를 지키는 노동이 존중받지 않는다면, 폭력을 막아야 할 제도가 여성노동자의 몸 위에 또 다른 폭력을 반복하는 것에 불과하다.

상담원을 보호하기 위한 CCTV는 오히려 감시의 수단이 되었고, 직장 내 괴롭힘 문제는 무시되거나 은폐된다. 노조는 센터장에 의한 cctv 감시와 통제에 대해 각도 조절을 요구하고 있다.

“건강권을 침해하는 교대 근무표와 고용불안”

1366서울센터의 상담노동자는 데이–이브닝–나이트–오프(아침 퇴근)–데이의 순환 속에서 쉼 없는 교대근무를 이어간다. 몸이 회복될 여유를 거의 허락하지 않는다. 365일 실질적 휴식이 없는 근무 중, 한 달 7~8회의 야간근무는 만성 피로와 수면 박탈을 넘어 장기적인 건강에도 부담을 준다. 야간노동이 생체리듬을 깨뜨려 각종 질환의 위험을 높인다는 지적은 여러 차례 제기됐지만, 실제 근무표에는 이런 우려가 반영되지 않았다. 

게다가 고용 구조 역시 이 일을 하는 사람들의 삶을 불안정하게 만든다. 수탁 기간과 분리된 1년 단위 계약은 언제든 교체 가능한 인력이라는 감각을 만드는 방향으로 작동한다. 부당한 대우나 괴롭힘을 경험해도 계약 만료에 대한 두려움 때문에 문제 제기를 주저하게 되는 경우가 많다. 책임 있게 일할 것을 요구받으면서도, 안정적으로 버틸 수 있는 기반은 쉽게 보장되지 않는 구조다.

“책임을 미루는 구조, 권한에 갇힌 현장”

이 구조적 폭력은 한 기관의 문제가 아니다. 성평등가족부, 서울시, 대한불교조계종사회복지재단으로 이어지는 위탁 구조 속에서 각 주체는 “예산과 인사는 저쪽 소관”이라며 책임을 미룬다. 그 사이에서 실제로 몸을 내어 일하는 사람은 상담노동자들이다. 누구도 책임지지 않는 노동환경은 방치되고, 그 틈을 채우는 것은 CCTV, 실적 통제, 인사권에 대한 두려움뿐이다.

센터의 대표는 인사권을 쥔 채 사실상 모든 통제의 중심에 서 있다. 견제 장치가 없는 구조에서 과도하게 집중된 권한은 관리자 개인의 성향과 이해관계에 따라 조직문화를 좌우한다. ‘폭력피해자 지원’이라는 이름으로 운영되는 기관이 내부에서는 노동자의 목소리를 막고 문제 제기를 차단할 때, 그 제도는 스스로의 목적을 배신한다.

우리는 “누가 잘못했는가”가 아니라 “누가 책임질 것인가”를 묻고 있다. 이제 책임 미루기를 멈추고, 1366을 운영하는 모든 주체가 각자의 권한을 나누고 책임을 공유해야 한다. 그리고 상담노동자의 인권과 건강을 제도의 중심에 세워야 한다.

“여성도 인간이다 — 선언에서 현실로”

나혜석이 백 년 전 던진 말, “여성도 인간이다.” 그 문장은 오늘도 상담실의 전화기 위에서 불빛처럼 깜빡인다. 폭력 피해 여성을 지키는 일이, 그 일을 하는 여성노동자의 건강과 권리를 파괴하지 않을 때, 그때 비로소 이 제도는 완성된다.

여성의 몸으로, 여성의 노동으로, 누군가의 생존을 붙드는 이 현장에서 우리는 다시 외친다.

“여성도 인간이다.” 그 단순하고 오래된 진실이 선언이 아니라 현실이 되는 날, 우리 사회는 비로소 폭력이 아닌 존엄으로 여성이 사는 시대에 들어설 것이다.

“여성도 인간이다.” 이 문장이 우리의 보통의 일상이 되는 그날을 위해 우리는 침묵하지 않고 시작했으니, 두려움 없이 현장에서 싸워나갈 것이다.

지난 2월 12일 오후 전국1366센터장 회의가 열리는 한국여성인권진흥원 4층 회의실 앞에서 집중선전전을 진행하는 모습.
덧붙이는 말

박은영은 공공운수노조 서울지역공공서비스지부 1366서울센터분회 분회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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