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럼프의 국제수지 전쟁 – 멕시코와 전 세계를 향한 공격
1940년대에는 빙 크로스비(Bing Crosby)와 밥 호프(Bob Hope)가 주연한 일련의 영화들이 나왔다. 그 시작은 1940년 ‘로드 투 싱가포르’(The Road to Singapore)였다. 줄거리는 항상 비슷했다. 말솜씨 좋은 사기꾼이거나 노래와 춤을 선보이는 콤비인 빙과 밥이 어떤 나라에서 곤경에 처하고, 빙이 밥을 노예로 팔아넘기거나(1942년 로드 투 모로코에서는 그를 사겠다고 약속하기도 한다), 이교도의 제물로 바치는 등의 방식으로 빠져나간다. 밥은 항상 이에 순순히 따르며, 영화는 언제나 해피엔딩으로 끝난다. 결국 두 사람은 함께 탈출하고, 빙은 항상 여주인공을 차지한다.
최근 몇 년 동안, 우리는 미국과 독일(유럽 전체를 대표하는 역할)이 벌이는 비슷한 외교적 연극을 목격했다. 이를 ‘혼돈으로 가는 길’(The Road to Chaos)이라고 부를 수 있을 것이다. 미국은 독일을 팔아넘기듯 노르트스트림(Nord Stream, 러시아에서 독일로 천연가스를 공급하는 해저 파이프라인 시스템)을 폭파했다. 독일 총리 올라프 숄츠는 영화 속 밥 호프처럼 순진하게 이 계획을 받아들였고, 유럽연합 집행위원회 위원장 우르줄라 폰 데어 라이엔은 마치 영화 속 도로시 라무어(Dorothy Lamour)처럼 미국의 ‘상품’이 되었다. 그는 유럽이 조 바이든이 요구한 GDP 대비 2%의 국방비 지출을 넘어, 트럼프가 요구한 5%로 확대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뿐만 아니라, 유럽은 러시아와 중국과의 무역을 제재하고, 주요 산업을 미국으로 이전해야 한다는 요구를 받고 있다.
그러나 영화와는 달리, 이번에는 미국이 순진한 독일을 구하러 오지 않을 것이다. 오히려 독일과 유럽 전체가 미국 제국을 구하려는 필사적인 시도 속에서 희생양이 될 것이다. 독일이 우크라이나처럼 인구 감소와 이민 행렬로 이어질지는 미지수지만, 산업 기반이 파괴되는 것은 이미 진행 중이다.
트럼프는 1월 23일 다보스 경제포럼에서 이렇게 말했다. “전 세계 모든 기업에 전하는 메시지는 간단하다. 미국에서 제품을 생산하라. 그러면 세계에서 가장 낮은 수준의 세금을 제공하겠다.” 반면, 자국이나 다른 국가에서 생산을 계속하려 한다면, 트럼프가 위협한 20%의 관세를 부과하겠다는 것이다.
독일에 대한 트럼프의 메시지를 요약하자면(내 식대로 풀어보자면) 이렇다. “네 에너지 가격이 네 배나 올랐다니 안타깝군. 미국으로 오면, 예전 러시아에서 지급하던 것만큼이나 저렴한 가격에 에너지를 공급받을 수 있을 거야. 물론, 네가 선출한 지도자들이 우리한테 노르트스트림을 끊을 기회를 준 덕분이지.”
중요한 질문은 트럼프가 ‘미국의 규칙기반 질서(America’s Rules-Based Order)’를 바꾸면서, 독일처럼 순순히 따를 나라가 얼마나 많을 것이냐는 점이다. 세계 질서를 전체적으로 뒤바꿀 비판적 전환점이 언제 올 것인가?
다가오는 혼돈 속에서 헐리우드식 해피엔딩이 가능할까? 그 답은 ‘아니오’다. 그리고 그 핵심은 트럼프가 위협하는 관세 및 무역 제재가 국제수지(balance of payments)에 미칠 영향에 있다. 트럼프와 그의 경제 참모들은 그들의 정책이 국제수지와 환율을 근본적으로 뒤흔들어, 결국 금융 붕괴를 불가피하게 만들 위험을 초래한다는 사실조차 이해하지 못하고 있다.
트럼프의 관세 공세가 직면한 국제수지와 환율의 한계
트럼프가 가장 먼저 위협한 국가는 미국의 NAFTA(북미자유무역협정) 파트너인 멕시코와 캐나다였다. 그는 두 나라가 자신의 정책 요구를 따르지 않으면, 이들로부터 수입하는 제품에 25%의 관세를 부과하겠다고 위협했다.
멕시코에 대한 트럼프의 압박은 두 가지 방식으로 이루어졌다. 첫째는 이민 정책이다. 그는 불법 이민자들을 추방하고, 계절 노동자들이 농업과 가사 노동을 위해 단기 노동 허가를 받을 수 있도록 하는 방안을 제안했다. 또한, 중남미에서 미국으로 유입되는 이민자들을 모두 멕시코로 추방하겠다고 위협했다. 그는 이민자들이 대부분 멕시코와 접한 리우그란데(Rio Grande) 강을 통해 미국으로 들어왔다는 점을 근거로 들고 있다. 그러나 이는 자체적인 남쪽 국경에 장벽이 없는 멕시코에 막대한 사회복지 부담을 떠넘기는 결과를 초래할 것이다.
또한, 이는 국제수지 측면에서도 멕시코뿐만 아니라 미국 내에서 일자리를 찾았던 다른 국가들의 경제에도 심각한 타격을 줄 것이다. 이들 국가들이 달러를 확보하는 주요 경로 중 하나는 미국에서 일하는 노동자들이 본국의 가족들에게 보내는 송금이다. 이는 중남미, 아시아, 기타 여러 국가의 가족들에게 중요한 달러 수입원이다. 하지만 이민자들이 대거 추방되면, 그들의 송금이 끊기면서 해당 국가들의 통화가 달러 대비 환율을 유지하는 데 필요한 중요한 자금원이 사라지게 된다.
멕시코와 다른 국가들에 25%의 관세를 부과하거나 무역 장벽을 세우는 것은, 미국이 전통적으로 장려해 온 수출 무역을 축소함으로써 이들 국가의 환율에 치명적인 타격을 입힐 것이다. 이러한 흐름은 사실상 지미 카터 행정부 시절부터 시작되었으며, 당시 미국 노동력을 멕시코 노동력으로 대체함으로써 미국 내 임금 상승을 억제하려는 정책의 일환이었다. 이후 빌 클린턴 행정부가 NAFTA를 체결하면서, 미국-멕시코 국경 남쪽에는 마킬라도라(maquiladora)라 불리는 조립 공장이 줄지어 들어섰다. 이 공장들은 미국 기업들이 노동 비용을 절감하기 위해 멕시코의 저임금 노동자를 활용하는 방식으로 운영되었다.
그러나 트럼프의 관세 부과는 멕시코가 이 노동자들에게 지급할 페소화를 마련하기 위해 확보하던 달러 수입을 갑자기 차단할 것이다. 이는 멕시코 경제에 타격을 줄 뿐만 아니라, 미국 기업들에도 생산 비용 증가라는 부담을 안길 것이다.
이 두 가지 트럼프 정책의 결과는 멕시코의 달러 수입 급감으로 이어질 것이다. 이에 따라 멕시코는 선택을 해야 한다. 만약 트럼프의 조건을 수동적으로 받아들인다면, 페소화의 환율이 급락할 것이다. 이는 달러로 책정된 수입품 가격을 페소 기준으로 더 비싸게 만들어 국내 물가 상승을 초래할 것이다.
반면, 멕시코가 자국 경제를 우선시한다면, 트럼프의 관세 조치로 인한 무역 및 국제수지 혼란을 이유로 달러 표시 채권에 대한 지급을 중단할 수도 있다.
1982년, 멕시코는 달러 표시 테소보노(Tesobono) 채권의 디폴트를 선언했고, 이는 중남미 전역에서 연쇄적인 부채 위기를 촉발했다. 지금 트럼프의 행동은 마치 그 상황을 다시 불러오려는 듯하다. 만약 그렇게 된다면, 멕시코는 미국 달러 채권에 대한 지급을 유예하는 방식으로 대응할 가능성이 크다.
이러한 사태는 광범위한 영향을 미칠 것이다. 현재 많은 중남미 국가들과 글로벌 사우스 국가들이 국제 무역 및 국제수지에서 비슷한 압박을 받고 있다. 미국 연방준비제도가 금리를 인상하면서 유럽과 기타 국가들에서 투자 자금이 미국으로 유입되었고, 그 결과 달러 환율이 급등했다. 달러 가치가 상승하면, 달러로 가격이 책정된 석유 및 원자재의 수입 가격도 상승하게 된다.
캐나다도 비슷한 국제수지 압박을 받고 있다. 멕시코의 마킬라도라 공장과 비슷한 역할을 하는 것이 캐나다 온타리오주 윈저(Windsor)에 위치한 자동차 부품 공장들이다. 이곳은 디트로이트와 강 하나를 사이에 두고 마주하고 있다. 1970년대, 미국과 캐나다는 자동차 조립 공장의 생산 분담을 규정하는 ‘자동차 협정’(Auto Pact)을 체결했다.
그러나 ‘합의했다(agreed)’는 표현이 적절하지 않을 수도 있다. 당시 오타와(Ottawa)에 있던 필자는 캐나다 정부 관리들이 이 협정에서 불리한 입장을 강요받은 것에 대해 크게 불만을 품고 있었던 것을 목격했다. 하지만 이 협정은 50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유지되고 있으며, 캐나다의 무역수지와 환율에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다. 현재 캐나다 달러는 미국 달러 대비 계속해서 하락하고 있다.
물론, 캐나다는 멕시코가 아니다. 금융 자본과 은행이 지배하는 캐나다에서 달러 표시 채권의 지급을 중단한다는 것은 상상하기 어렵다. 그러나 트럼프의 정책은 캐나다 정치 전반에 파장을 일으킬 것이다. 캐나다에서는 반미 정서가 언제나 수면 아래에서 존재해 왔다. 이번 사태는 트럼프가 꿈꾸는 ‘캐나다를 미국의 51번째 주로 만드는’ 망상을 종식할 것이다.
국제 경제 질서의 암묵적 도덕적 기반
트럼프의 관세 및 무역 위협에는 기본적으로 하나의 허구적인 도덕적 원칙이 작동하고 있으며, 이는 미국이 세계 경제를 단극적으로 지배하려는 서사를 정당화하는 데 활용되고 있다. 그 원칙은 ‘호혜성(reciprocity)’이라는 환상으로, 이는 상호 이익과 경제 성장을 약속하는 듯하지만, 사실상 미국식 단어들—민주적 가치, 자유시장, 그리고 미국이 주도하는 국제 시스템 아래 자동 안전장치(automatic stabilizers) 등의 표현—속에 포장되어 있다.
호혜성과 안정성의 원칙은 1920년대 후반, 미국이 유럽의 전쟁 동맹국들에게 1차 세계대전 참전 전 미국에서 구입한 무기 대금을 막대한 채무로 갚으라고 요구했을 때 케인스가 펼쳤던 경제적 논쟁의 핵심이었다. 당시 동맹국들은 이 채무를 갚기 위해 패전국인 독일에 전쟁 배상금을 부과하기로 했다. 그러나 미국이 유럽 동맹국들에게 요구한 금액, 그리고 이들이 독일에 요구한 금액은 현실적으로 감당할 수 없는 수준이었다.
케인스는 당시의 근본적인 문제를 이렇게 설명했다. 미국이 독일 화폐 가치 하락에 대응해 독일에 대한 관세를 인상했으며, 이어서 전 세계를 대상으로 ‘스무트-홀리 관세법’(Smoot-Hawley Tariff Act, 1930년 미국 의회에서 통과된 법으로, 수입품에 대한 관세율을 대폭 인상한 보호무역 정책)을 시행했다. 그 결과 독일은 연합국에 배상금을 지급하기 위한 외화를 벌어들일 수 없었고, 연합국 역시 미국에 채무를 갚을 수 없었다.
국제 금융 시스템에서 부채 상환이 원활하게 이루어지려면, 채권국은 채무국에게 수출을 통해 부채를 갚을 기회를 제공해야 한다고 케인스는 지적했다. 그렇지 않으면, 채무국들은 통화 가치 붕괴와 심각한 긴축(austerity)에 직면할 수밖에 없다. 이러한 원칙은 국제 경제가 붕괴하지 않도록 하는 견제와 균형 시스템의 중심이 되어야 한다.
그러나 케인스의 반대편에는 프랑스의 반독일 통화주의자 자크 뤼프(Jacques Rueff)와 신고전파 무역 이론가 베르틸 올린(Bertil Ohlin)이 있었다. 이들은 데이비드 리카도(David Ricardo)가 1809~1810년 영국의 ‘금은위원회’에서 주장한 논리를 반복했다. 리카도는 해외 부채를 상환하는 과정에서 국제수지가 자동으로 균형을 이루게 된다고 주장했다. 이러한 이론은 이후 국제통화기금의 긴축 정책의 기본 논리가 되었다.
이 이론의 허구적 논리는 다음과 같다. 채무국이 부채를 상환하는 과정에서 가격과 임금이 하락하면, 수출품 가격이 낮아지면서 해외 수출이 증가한다는 것이다. 동시에 채권국이 부채 상환금을 받으면, ‘화폐 수량설’(Quantity Theory of Money)에 따라 인플레이션이 발생해 해당 국가의 수출이 감소할 것이라고 가정한다. 이 가격 변동은 채무국이 충분한 수출을 통해 부채를 상환할 수 있을 때까지 지속된다고 한다.
그러나 현실에서 미국은 외국산 제품이 자국 생산품과 경쟁하는 것을 허용하지 않았다. 또한, 채무국들은 통화 긴축의 대가로 더 경쟁력 있는 수출 산업을 육성한 것이 아니라 경제적 붕괴와 혼란을 겪었다. 리카도의 모델과 미국의 신고전파 이론은 단순히 강경한 채권자 정책을 정당화하기 위한 핑계에 불과했다. ‘구조조정(structural adjustment)’과 ‘긴축 정책’은 이를 강요당한 국가들의 경제와 정부를 심각하게 파괴했다. 긴축은 생산성과 경제 성장 자체를 감소시킨다.
1944년 브레튼우즈(Bretton Woods) 회의에서 케인스는 미국이 외국 무역과 통화 정책을 지배하려는 시도를 견제하기 위해 ‘방코르(bancor)’라는 국제 결제 통화 시스템을 제안했다. 방코르는 만성적 채권국(예: 미국)이 채무국(예: 전후 영국)으로부터 축적한 금융 자산을 일정 부분 포기하도록 하는 메커니즘이었다. 즉, 국제 금융 질서가 채권국과 채무국 간의 불균형을 심화시키는 대신, 채권국이 채무국의 부채 상환을 도울 수 있도록 유도하는 것이었다.
케인스는 앞서 언급한 바와 같이, 채권국이 상환을 원한다면, 채무국이 부채를 갚을 수 있도록 해당 국가로부터 수입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것은 단순한 경제 정책이 아니라, 깊은 도덕적 의미를 지닌 정책이었다. 이는 채권국과 채무국 모두가 번영할 수 있도록 하며, 한 나라가 부유해지는 동안 다른 나라가 긴축으로 인해 경제 발전과 사회복지 투자를 포기해야 하는 상황을 막는 것이었다.
그러나 트럼프 하에서 미국은 이 원칙을 정면으로 위반하고 있다. 지금은 케인스가 제안한 ‘방코르’ 같은 해결책이 존재하지 않으며, 미국의 단극 외교(unipolar diplomacy) 속에서 ‘미국 우선주의(America First)’의 강경한 현실만이 남아 있다. 멕시코가 자국 경제를 붕괴로부터 구하려면, 긴축, 물가 상승, 실업, 사회적 혼란을 피하고자 달러 표시 부채 상환을 중단해야 할 것이다.
이 원칙은 글로벌 사우스의 다른 국가들에도 동일하게 적용된다. 이들이 집단으로 대응한다면, 국제 경제 질서가 안정적으로 운영되기 위해 필요한 최소한의 전제 조건을 제시하는 정당한 도덕적 기반을 확보할 수 있다.
현재 상황은 세계가 미국 중심의 금융 질서를 벗어나도록 만들고 있다. 트럼프가 수입품을 차단하고 관세 및 무역 제재를 강화하면서, 단기적으로 달러 환율은 급등할 것이다. 이는 멕시코와 캐나다가 겪을 위기와 마찬가지로, 달러 부채를 지닌 외국 국가들에게 심각한 압박을 가할 것이다. 이러한 국가들은 스스로를 보호하기 위해 달러 부채 상환을 중단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이러한 대응은 단순히 ‘불법 채무(Odious Debt)’ 개념에 기반한 것이 아니다. 이는 특정 국가들이 처음부터 자국의 이익에 반하는 채무 조건을 강요당했다는 기존 비판을 넘어서며, 채권자들이 채무국의 상환 능력을 고려해야 한다는 원칙조차도 초월한다.
오늘날 세계가 직면한 정치적 문제는 미국이 채무국들이 달러 부채를 상환할 수 있는 외화를 벌어들이는 것을 방해하고 있다는 점이다. 미국의 정책은 사실상 모든 달러 채권자들에게 위협이 되고 있으며, 이로 인해 채무국들은 자국 경제를 희생하지 않고는 부채를 상환할 수 없는 상황에 내몰리고 있다.
출처 : Unsplash, Abhinav Bhardwaj
미국의 경제적 공세에 대해 다른 국가들이 대응하지 않을 것이라는 정책적 가정
트럼프는 자신이 무엇을 하고 있는지 정말 알고 있을까? 아니면 그의 통제되지 않는 정책이 단순히 다른 나라들에 부수적인 피해를 초래하고 있는 것일까? 내가 생각하기에 현재 작동하고 있는 것은 1920년대 미국 외교 정책과 유사한, 미국 정책의 깊고 근본적인 내부 모순이다. 트럼프가 유권자들에게 미국이 모든 국제 무역 또는 금융 협정에서 “승자”가 되어야 한다고 약속할 때, 그는 전 세계를 상대로 경제 전쟁을 선언하는 것이다.
트럼프는 세계 나머지 국가들에 그들이 패자가 되어야 하며, 러시아가 유럽을 침공하거나 중국이 대만, 일본 또는 다른 국가들에 군대를 보낼 경우 미국이 제공하는 군사적 보호에 대한 대가로 이를 기꺼이 받아들여야 한다고 말하고 있다. 이 환상은 러시아가 붕괴하는 유럽 경제를 지탱함으로써 얻을 것이 있다고 가정하는 것과 같으며, 중국이 경제적으로 경쟁하는 대신 군사적으로 경쟁하기로 결정할 것이라는 가정과 같다.
이 디스토피아적 환상 속에서 오만이 작용하고 있다. 세계 패권국으로서, 미국 외교는 외국 정부들이 어떻게 대응할 것인지 거의 고려하지 않는다. 그 오만의 본질은 다른 나라들이 미국의 행동에 수동적으로 따를 것이며, 반발은 없을 것이라고 단순하게 가정하는 것이다. 독일이나, 유사한 미국의 고객 정치인들이 집권하고 있는 국가들의 경우, 이는 현실적인 가정이었다.
그러나 오늘날 벌어지고 있는 일은 시스템 전체에 걸쳐 있다. 1931년, 연합국 간 부채와 독일의 배상금에 대해 결국 모라토리엄이 선언되었다. 하지만 그것은 1929년 주식시장 붕괴 이후 2년이 지난 시점이었으며, 그 이전에 독일과 프랑스에서 초인플레이션이 발생한 바 있었다. 비슷한 맥락에서, 1980년대 라틴아메리카 국가들의 부채는 브래디 채권을 통해 조정되었다. 두 경우 모두, 국제 금융이 전체 시스템의 정치적·군사적 붕괴를 초래하는 핵심 요인이었으며, 세계 경제가 자멸적으로 금융화되었기 때문이었다. 오늘날에도 비슷한 일이 불가피해 보인다. 실행 가능한 대안이 있다면, 그것은 새로운 세계 경제 시스템을 구축하는 것이다.
미국 국내 정치도 마찬가지로 불안정하다. 트럼프의 아메리카 퍼스트 정치극장은 그를 대통령으로 만들었지만, 그의 철학이 가진 모순과 그 결과가 드러나면, 그의 집권 세력은 축출될 수도 있다. 그의 관세 정책은 미국 내 물가 상승을 가속할 것이며, 더욱 치명적으로는 미국과 외국 금융 시장을 혼란에 빠뜨릴 것이다. 공급망이 붕괴면서, 항공기에서 정보기술에 이르기까지 미국의 수출이 중단될 것이다. 그리고 다른 나라들은 미국의 수출품이나 달러 신용에 의존하지 않는 경제 시스템을 구축할 수밖에 없게 될 것이다.
그리고 아마도 장기적인 관점에서 이는 나쁜 일이 아닐 수도 있다. 문제는 단기적으로 공급망, 무역 구조 및 경제적 의존성이 새로운 지정학적 경제 질서 속에서 대체되는 과정에 있다는 것이다. 사실, 미국이 이 정책을 더욱 강화하려는 시도는 다른 국가들이 대안을 개발하도록 강요하고 있다.
트럼프는 국제 무역과 금융의 기존 연결성과 호혜성을 파괴하려는 시도를 혼란스러운 약탈적 환경 속에서 미국이 승리할 것이라는 가정 위에서 추진하고 있다. 이러한 자신감이 바로 그가 오늘날의 지정학적 상호 연결성을 단절하려는 의지를 지탱하는 기반이다.
“그는 미국 경제가 마치 우주적 블랙홀과 같다고 생각한다. 즉, 전 세계의 자금과 경제적 잉여를 스스로 끌어들이는 중력의 중심이라는 것이다.”
이것이 바로 미국 우선주의의 명시적 목표다. 이것이 트럼프의 정책이 전 세계를 향한 경제 전쟁 선언이 되는 이유다. 이제 미국 외교가 주도하는 경제 질서가 다른 국가들을 번영하게 만들 것이라는 약속은 더 이상 존재하지 않는다. 무역과 해외 투자에서 얻는 이익은 미국으로 보내지고 미국에 집중되어야 한다.
문제는 트럼프 개인을 넘어선다. 그는 단순히 1945년 이후 미국 정책에 이미 내재해 있던 것을 따르고 있을 뿐이다. 미국의 자기 인식은 그것이 세계에서 유일하게 경제적으로 완전한 자급자족이 가능한 경제라는 것이다. 그것은 자체적으로 에너지를 생산하고, 또한 자체적으로 식량을 생산하며, 이 기본적인 필요를 다른 국가들에 공급하거나 혹은 공급을 차단할 능력을 갖추고 있다.
가장 중요한 점은, 미국은 다른 국가들을 제약하는 금융적 제약이 없는 유일한 경제체제라는 것이다. 미국의 부채는 자국 통화로 되어 있으며, 세계에 과잉 달러를 유통해 무제한으로 지출할 수 있는 능력에 제한이 없었다. 다른 국가들은 여전히 달러가 금과 마찬가지로 안정적이라는 듯이 그것을 화폐 준비금으로 받아들인다. 그리고 그 모든 것 아래에는, 마치 스위치를 켜기만 하면, 미국이 1945년과 같이 산업적으로 완전한 자급자족을 할 수 있을 것이라는 가정이 깔려 있다. 미국은 테네시 윌리엄스(Tennessee Williams)의 ‘욕망이라는 이름의 전차’(Streetcar Named Desire)에 등장하는 블랑슈 뒤부아(Blanche DuBois)처럼, 과거에 살고 있지만 시간이 흐르며 쇠락하고 있다.
미국 제국의 자기 합리적 신자유주의 서사
제국을 받아들이고 그 안에서 평화롭게 살아가도록 외국의 동의를 얻으려면, 제국이 모든 이들을 이끌어 간다는 서사가 필요하다. 그 목표는, 사실상 착취적인 시스템에 대한 저항을 무디게 만드는 것이다. 처음에는 영국이, 그다음에는 미국이, 중상주의 및 보호주의 정책을 통해 다른 국가들보다 비용 면에서 우위를 확보한 후, 이들 국가를 상업 및 금융 위성국으로 만들며 자유무역 제국주의의 이데올로기를 홍보했다.
트럼프는 이 이데올로기적 가면을 벗겨버렸다. 이는 부분적으로, 이제 더 이상 미국/NATO의 외교 정책과 러시아에 대한 군사 및 경제 전쟁, 그리고 중국, 러시아, 이란 및 다른 BRICS 회원국들과의 무역 제재 앞에서 유지될 수 없다는 인식 때문이다. 이제 그 기만적 서사가 거짓이라는 것이 모두에게 드러난 이상, 다른 나라들이 이 시스템을 거부하지 않는 것이 오히려 비이성적인 일일 것이다.
질문은, 이들 국가가 어떻게 자신을 대안적 세계 질서를 창출할 수 있는 위치로 놓을 수 있을 것인가 하는 것이다. 가능한 경로는 무엇인가?
멕시코 같은 국가들은 사실상 독자적인 길을 가는 것 외에 선택지가 거의 없다. 캐나다는 굴복할 수도 있으며, 달러로 가격이 책정된 경화(hard currency) 수입품으로 인해 환율이 하락하고 국내 물가가 상승하는 것을 감내할 수도 있다. 그러나 많은 글로벌 사우스 국가들은 멕시코와 동일한 국제수지 압박을 받고 있다. 그리고 만약 그들이 아르헨티나처럼 미국에 의존하는 엘리트 계층—즉, 자국의 엘리트들이 아르헨티나의 달러 채권을 대량 보유하고 있는 경우—을 두고 있지 않다면, 그들의 정치 지도자들은 달러 부채 상환을 중단하거나, 아니면 미국 달러 상승으로 인해 자국 통화의 환율이 무너지는 가운데 수입 물가 상승과 경제 침체(국내 경제의 디플레이션)를 동반한 긴축 정책을 감수해야 할 것이다. 그들은 부채 상환을 중단할 수밖에 없거나, 그렇지 않으면 선거에서 패배할 것이다.
독일 배어복 외무장관처럼, "자신의 녹색당은 독일 유권자들이 원하는 것을 반드시 들을 필요가 없다"고 말할 수 있는 정치적 여유를 가진 주요 정치인은 많지 않다. 글로벌 사우스의 올리가르히들은 미국의 지원에 의존할 수도 있지만, 독일처럼 미국의 외교 정책에 대한 충성심 때문에 경제적 자살을 감행할 의향이 있는 국가는 거의 없다.
부채 상환을 중단하는 것은, 트럼프 기반의 미국 우선주의 질서에 굴복하는 것보다 덜 파괴적이다. 그러나 이를 막고 있는 것은 정치적 요인이며, 동시에 경제적 양극화와 긴축을 피하기 위해 필요한 대대적인 정책 변화를 감행하는 것에 대한 중도파들의 두려움이다.
유럽은 트럼프의 공허한 위협을 단순히 허세라고 부를 선택지를 가졌음에도 불구하고, 이를 사용하는 것을 두려워하는 것으로 보인다. 그 위협은 결국 미국 내 기득권층의 이해관계에 의해 스스로 차단될 것이기 때문이다.
트럼프는 각국이 국내총생산(GDP)의 5%를 군사 무기(대부분 미국산)에 지출하고, 더 많은 미국산 액화천연가스(LNG)를 구매하는 것에 동의하지 않는다면, 그 나라에 20%의 관세를 부과하겠다고 위협했다. 그러나 유럽 지도자들이 이에 저항하지 않는다면, 유로화는 10~20%가량 하락할 가능성이 크다. 환율 하락은 수입품 가격 상승으로 이어지고, 국가 예산은 사회복지 지출을 삭감해야 하며, 가정용 가스나 전기를 구입하기 위한 지원금을 줄여야 할 것이다.
미국의 신자유주의 지도부는 이러한 계급 전쟁 국면을 반기고 있다. 미국 외교는 이미 유럽과 기타 국가들의 노동당 및 사회민주당 지도부를 철저히 약화시켜, 이제는 유권자들이 무엇을 원하든 그것이 중요하지 않은 상태로 만들었다. ‘전미 민주주의 기금’(National Endowment for Democracy)과 주류 언론이 이 역할을 하고 있다. 그러나 지금 흔들리고 있는 것은 단순히 ‘미국의 서방 지배 및 그 영향권’(unipolar dominance of the West and its sphere of influence)이 아니다. 전 세계의 국제 무역과 금융 질서, 그리고 필연적으로 군사 관계와 동맹 체계까지도 근본적으로 재편될 가능성이 커지고 있다.
[출처] The Road to Chaos – A Global Balance of Payments War
[번역] 이꽃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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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이클 허드슨(Michael Hudson)은 월스트리트 금융 분석가, 캔자스시티 미주리대학교 경제학 석좌 연구 교수, 장기경제동향연구소(ISLET) 대표다. 주요 저서로 ⟪미국 제국의 경제 전략⟫, ⟪그리고 그들의 빚을 용서하라⟫, ⟪호스트 죽이기⟫, ⟪버블과 그 이후⟫ 등이 있다. 참세상은 이 글을 공동 게재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