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적으로 정치는 민주주의를 먹고 살았다. 보수세력이든 진보세력이든 모두가 합창하는 민주주의였다. 정치에서는 언제든지 최고의 가치를 지니는 화두였다. 비록 형식과 내용에서 너와 나의 민주주의가 서로 다르다 할지라도, 어떤 이는 자유민주주의를 전면에 내세우면서 정치를 했고 또 어떤 이는 사회민주주의나 노동자 민중의 민주주의를 내세우면서 정치를 했다. 민주주의는 역사 속에서 누구나가 희구했던 희망이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누구든지 1987년 6월항쟁은 한국사회 민주화의 대전환기였다는 점에 대해서는 인정하고 있다. 그 논지는 역사적으로 존재했던 다양한 민주항쟁을 계승하는 측면과 군부세력 중심의 권위주의 체제를 종식시켰다는 측면에서 제시되어 왔다. 대부분의 논자들이 민주주의 이행의 역사적 과정이나 과제를 제시할 때 6월항쟁을 빼놓지 않고 말하는 이유이다.
문제는 민주주의의 ‘지체’ 혹은 ‘퇴행’이라는 화두 속에 담긴 민주주의의 상은 잘 잡히지 않는다. 각종의 정책과 법으로 판단해야 한다는 것인지? 정당이라는 이름 그 자체로 판단해야 한다는 것인지? 아니면 정치인이나 대통령의 개별적인 품성으로 판단해야 한다는 것인지? 이러한 의문은 정권교체 그 자체를 민주주의로 오해하는 역사적 현상과 굴레에서 벗어나고자 하는 시도이다. 대표적인 굴레는 바로 “1987년 헌정체제”가 그것이다.
소위 “1987년 헌정체제”는 지난 세월 한국사회를 규제하는 힘으로 작용하였다. 지배계급은 지배와 통치의 정당성을 “1987년 헌정체제”에서 찾았다. 그들은 과거의 잘못에 대한 용서를 구하지도 않았다. 그들은 자신의 얼굴에 민주라는 가면으로 가리면 그만이었다. 자본가가 그랬고 관료들이 그랬다. 그들 스스로 “1987년 헌정체제”를 수용한 것 자체가 민주화의 디딤돌이었다는 착각의 늪에 빠져 살았다. 노동자민중도 “1987년 헌정체제”의 소용돌이에 빨려들어 갔다. 노동자민중은 “1987년 헌정체제”야말로 자신의 일상적인 저항과 투쟁의 자유로움을 보장한다고 하면서 ‘민주주의의 질’에 대한 상실의 늪에 빠져 살았다. 1987년 6월항쟁 당시, 군부세력과 관료를 중심으로 한 권위주의 체제를 무너뜨리는 것 자체가 그 시대를 대표하는 ‘민주주의의 질’이었음에 틀림없다. “1987년 헌정체제”는 탈권위주의 체제를 바라는 노동자민중들의 희망의 산물이었고 투쟁의 성과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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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1987년 6월항쟁 당시, “1987년 헌정체제”가 노동자민중에게 실질적인 ‘민주주의의 질’이 보장되어야 한다고 하면서 투쟁하는 노동자들이 있었다. 그들은 1987년 7월 6일에 결성된 ‘민주헌법쟁취노동자공동위원회’(이하 민헌노위)였다. 민헌노위는 당시 전국에 존재했던 노동자 정치운동의 주체들이 총망라되었던 통일전선적인 노동자투쟁조직이었다. 그들은 노동운동을 반정부 민주화운동으로 전화시켜 ‘실질적인 민주주의 쟁취투쟁’을 지속하려 하였다. ‘민주헌법쟁취를 위한 국민운동본부’ 내에서 투쟁했던 노동운동의 주체들이 ‘실질적인 민주헌법 쟁취투쟁의 역량 강화 및 노동자 계급의 기본권 쟁취’를 위해 또 다른 투쟁의 전선을 만들었던 것이다. 노동자들에게 다가가는 민주주의는 해고노동자들의 즉각 복직, 노동3권의 완전보장, 8시간 노동제와 실질생계비 보장하는 최저임금제 실시, 노동운동 탄압하는 국가보안법의 즉각 철폐, 노동조합의 자유로운 정치활동의 보장 등이 실현되는 체제라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민헌노위는 1987년 7월 19일 오후 6시 흥사단 대강당과 대학로에서 약 1,500여 명의 노동자들이 참석한 가운데 노동기본권쟁취대회를 개최하였다. 민헌노위는 이 자리에서 소위 “1987년 헌정체제”의 본질을 꿰뚫는 주장을 하였다. “정치세력을 중심으로 진행하고 있는 제반 민주화조치는 형식적이고, 국민을 기만하기 위한 조치일 뿐, 노동자민중의 생존권과 실질적이고 민주적인 제권리와는 무관한 것이다.” 그런데 민주헌법쟁취 국민운동본부는 1987년 6.29선언과 함께 그 명을 다했다. 민주헌법을 쟁취하기 위한 투쟁의 구심력이 사라졌다. 민주헌법쟁취 국민운동본부는 민주적인 헌법을 쟁취하는 것 대신에 1987년 12월 대통령선거에 주력하기로 하였고, 11월 5일 민주쟁취 국민운동본부로 개칭되었다. 이것은 6.29선언이 민주적인 헌법으로 대체되어 버린 꼴이었다. 정치권력의 달콤한 유혹을 고려하면, 민중민주세력이 대통령선거를 둘러싸고서 자연스럽게 분화하는 것은 당연했다.
물론 민헌노위에 참여한 주체들도 대통령선거의 전략과 전술에서 다양한 차이를 가지고 있었다. 노동자 계급정당에 대한 인식의 차이도 있었다. 하지만 민헌노위만 실질적인 민주헌법을 쟁취하기 위한 투쟁을 전개하였다. 민헌노위는 노동자계급을 중심으로 하는 민중의 힘이 투영되지 않는 헌법의 한계를 꿰뚫어 보면서, 노동자들의 실질적인 권리를 보장할 수 있는 ‘노동자민중의 헌정체제’를 투쟁으로 쟁취하려 했다. 많은 사람들은 노동자민중의 의식이나 행동보다 너무나 앞서 나가는 투쟁의 전략과 전술을 무모하거나 편향적이라고 폄하한다. 그런데 많은 사람들은 앞서 나가는 투쟁의 전략과 전술이 노동자민중에게 새로운 희망의 모태라는 점을 애써 눈 감으려 하거나 못 본 척 한다. 민주주의의 지체나 퇴행은 정치권력의 교체에 있는 것이 아니라 노동자민중의 희망이 사라진 그 지점에서 시작되었던 것이다. (2013.7.12.)
- 덧붙이는 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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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영수는 노동자역사 한내 연구원이다. 참세상은 이 글을 공동 게재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