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개글] 공공운수노조는 2026년 3.8 세계여성의날을 맞아 고용·임금 등 구조적 성차별과 일터의 성희롱·괴롭힘 등 젠더기반폭력에 맞서 싸우는 여성노동자들의 삶과 투쟁을 사회적으로 알리고자 합니다. 학교 급식실에서 병들어 쓰러지는 동료들, AI 도입 이후 더 빠르고 더 많이 일하라는 압박에 시달리는 콜센터 노동자들, 젠더폭력 피해자를 지원하면서도 정작 자신의 안전은 보호받지 못하는 상담노동자들, 쉴 곳도 화장실도 없이 현장을 떠도는 돌봄노동자들, ‘단정함’이라는 이름으로 몸을 통제당하는 여성승무원들처럼, 여성노동자들은 일상 속 차별과 폭력의 현장에서 자신의 건강과 존엄을 지키기 위해 싸우고 있습니다. 이번 기획은 여성노동자 건강권을 단순한 산재 예방을 넘어 저임금·감정·꾸밈노동, 젠더폭력, 휴식이 배제된 노동조건 등 여성에게 구조적으로 전가되는 신체적·정신적 손상까지 포괄하는 개념으로 확장해 조명하며, 총 8회에 걸쳐 연재됩니다.
최항도 이사장의 “콜센터는 소멸될 직종” 발언에 항의해 조합원들이 지난해 11월 27일 기자회견을 열었다.
“콜센터는 소멸될 직종이다. 따라서 소멸되는 업종을 놓고 정규직화를 논의하는 것 자체가 근본적인 대책은 아니라고 본다.”
지난해 말 서울시의회 행정사무감사 자리에서 서울시 투자출연기관 콜센터노동자 정규직화 불이행에 대한 기관장의 생각을 묻는 시의원의 질문에 최항도 서울신용보증재단 이사장은 이렇게 답변했다. 현장에서 영상으로 지켜보던 서울신용보증재단(이하 서울신보) 콜센터 상담사들뿐만 아니라, 전국의 약 40만 명의 콜센터 노동자들을 향한 사형선고 같은 말에 우리는 분노하지 않을 수 없었다.
항의 공문과 기자회견 후 3개월 만에 마주한 최항도 서울신보 이사장은 진심 어린 사과와 정규직화 이행에 대한 책임 있는 답변 대신 “미안하다. 다만, 속상하겠지만 소멸될 거라는 사실이 변하지는 않는다. 우리 직원들(서울신보 정규직)도 AI 시대를 대비하여 직무개발을 하게 했다. 그러니 콜센터 노동자들도 각자 살 길을 준비해야 하지 않겠냐”며 10년 이상 서울신보 콜센터에서 한 몸처럼 일해 온 나와 나의 동료 상담사들을 부정했다.
AI 시대는 서울신보 정규직 노동자들에게는 직무개발의 기회를 주지만 비정규직 콜센터 노동자들에게는 고용불안의 또 다른 이름이 된다. 기술의 변화를 피할 수는 없겠지만, 그 책임을 가장 취약한 위치의 노동자에게 전가하는 것이 공공기관의 역할이어서는 안 된다.
콜센터 노동은 오랫동안 여성노동, 저임금 노동, 단순노동으로 폄하돼왔다. 친절과 공감은 여성의 ‘타고난 성향’으로 소비되고, 욕설을 들어도 웃으며 응대해야 하는 감정노동은 가벼운 일로 치부된다. 이러한 인식이 콜센터를 대표적인 저임금 여성 사업장으로 고착시켰다. 기본급은 최저임금 수준이고, 실적 경쟁 속에서 충분한 휴식조차 보장받기 어렵다. 여성의 노동은 주변적이라는 오래된 편견이 임금과 처우의 차별로 이어지고 있다.
감정노동자 보호법도 현장에서는 충분히 작동하지 않는다. 욕설을 퍼붓는 고객을 응대한 뒤 병원 진료를 위해 조퇴했던 동료는 무급 처리를 당했고, 소송까지 갔지만 결과는 패소였다. 법은 존재하지만 실질적인 보호는 체감되지 않는다. 악성 민원에 대한 대응 역시 외주화된 콜센터에서는 노동자 개인의 몫으로 남겨지는 경우가 많다.
콜센터 노동은 전화기를 매개로 기업과 기관의 손발이 되어 고객과 마주한다. 그러나 콜센터 노동의 시작은 과거 정규직이 수행하던 업무의 일부를 업무 효율화란 이름으로 외주화한 것으로 권한은 없고 책임만 주어져 각종 민원의 총알받이로 사용될 뿐이다. 업무효율화란 이름의 외주화는 40만에 달하는 여성 콜센터 노동자들을 집어삼킨 거대한 인간시장 같은 컨택산업의 중간착취 구조를 가능하게 했다. 원청은 직접고용 대비 비용을 절감하면서 책임을 지지 않고, 하청은 도급비에서 이윤을 챙기기만 급급할 뿐 권한이 없다는 이유로 콜센터 노동자의 노동권을 외면한다. 이런 구조는 공공부문도 마찬가지이다.
다만, 정부와 서울시는 공공부문의 모범적 사용자로 역할을 하고자 상시지속업무의 정규직화를 추진하고 있다. 그동안 저임금과 고용불안에 내몰렸던 공공부문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고용안정과 처우개선을 통해 장기적으로 대국민 공공서비스의 질적 개선을 도모하고자 함이다. 서울시 투자출연기관인 서울신보의 콜센터 노동자들도 그 대상으로 정규직 전환이 됐어야 했지만 여전히 간접고용 비정규직으로 정규직화를 위해 5년째 투쟁 중이다.
정규직화 방침에도 5년간 책임을 미뤄온 서울신용보증재단에 항의하는 선전전이 지금도 이어지고 있다.
코로나 시기에 닭장 같은 업무환경에서 감염의 온상이라는 오해까지 받아 가며 폭주하는 민원 업무를 해 왔다. 그러나 코로나19는 비대면, 디지털화를 가속시키는 또 다른 세상을 열었다. 서울신보는 보이는 ARS 도입으로 콜센터로의 연결을 어렵게 만들었는데, 이로 인해 콜량이 줄자 상담사 인력감축을 시도했다. 고객센터 재계약 시점을 노렸다. 이를 알게 된 서울신보 콜센터 상담사들은 노숙농성, 고공농성, 단식투쟁을 통해 구조조정을 힘들게 막아냈다. 이후 2년마다 진행된 하청업체 변경 과정에서 인원 감축을 막고자 상담사들이 업무확대 제안까지 했음에도 인원이 줄어 30명이었던 인원은 현재 17명까지 줄었다. 재단의 무책임한 태도로 비정규직 노동자 10여 명은 일자리를 잃고 거리로 내몰려야 했고 남은 상담사들은 ‘디지털 뺑뺑이’로 인해 불만이 증폭된 고객의 분노까지 받아야 한다. “디지털화를 따라가지 못하는 사람들은 어찌해야 하는 것이냐”라는 고객의 항의성 질문에 대한 답을 우리도 알지 못한다. 도대체 누구를 위한 디지털화인지 알 수 없다. 쓰다 버리기 쉬운 용역의 부품이니 이대로 소멸의 길로 향해도 되는 것인가.
‘그래도 되는 것은 없다.’ 콜센터 노동이 여성노동이어야 한다거나, 간접고용 비정규직이어야 한다거나, 최저임금만 받아도 된다거나, 고객과 관리자에게 무시와 경멸의 언어들을 들어도 된다거나 하는 콜센터 노동에 대한 평가 절하는 더 이상 ‘그래도 되는’ 것이 아니다. 과도한 스트레스와 건강을 해치는 환경, 무분별한 AI 도입 역시 당연히 ‘그래도 되는 것’이 아니다. 우리가 서 있는 땅이 단단해야 그 위에 집도 정원도 만들 수 있듯이 용역의 부품이 아닌 노동의 한 축으로 목소리 내기 위해서는 고용안정이 우선되어야 한다. 그래야만 여성 콜센터 노동자들의 저임금 구조, 건강권, 노동권을 보호받을 수 있는 법적, 제도적 개선에도 더 큰 힘이 실릴 수 있을 것이다.
고용구조 개선으로 책임 있는 실제 사용자로 하여금 콜센터 업무를 그 조직의 다른 직무처럼 하나의 직무로 바라보고 정규직 노동자의 직무개발 시 콜센터 노동자의 직무는 어떻게 재구성할지를 같이 고민하게 해야 한다.
이미 상시지속업무로 규정되어 정규직화가 마땅하다고 선언된 서울신보 콜센터 노동자들의 정규직화를 AI라는 기술발전을 또 하나의 핑계거리로 삼아 책임을 회피해서는 안 된다. 5년간 미루어온 정규직화를 제대로 이행하여 AI 등의 기술발전 도입과정에서 인간을 대체하는 방식이 아닌 인간과 동행하는 방향으로 나아갈 수 있도록 현장 노동자가 목소리 낼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야 한다.
- 덧붙이는 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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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민정은 공공운수노조 더불어사는희망연대본부 본부장이다. 서울신용보증재단콜센터지부 전 지부장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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