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합위기와 잃어버린 미래를 향한 향수

잃어버린 미래만큼 강한 향수를 불러일으키는 것도 드물다.

* * *

생각은 뜻밖의 장소에서 싹트곤 한다. 이번에는 20248, 싱가포르 총리실 전략그룹 산하 전략미래센터가 주최한 며칠간의 워크숍이 그 무대였다. 이 행사는 세계 각지에서 모인 참가자들이 함께한, 놀라울 만큼 국제적이면서도 기존의 틀을 벗어난 매우 흥미로운 모임으로 이어졌다.

행사의 문을 열며 나는 '복합위기(polycrisis), 과거, 현재, 그리고 미래'를 주제로 짧은 발제를 맡았다.

주최 측이 제시한 질문은 다음과 같았다.

* 복합위기에 대해 오랫동안 연구하고 글을 써왔다. 오늘날의 복합위기 국면은 우리가 과거를 이해하는 방식을 어떻게 바꾸어야 하는가?

* 기억은 현재를 이해하는 방식, 그리고 누가 친구이고 누가 적인지에 대한 우리의 인식을 형성하는 데 어떤 역할을 하는가?

* 미래는 어떻게 생각해야 하는가? 현재를 이해하고 미래로 나아가기 위해 어떤 개념, , 또는 태도를 취하는 것이 가장 적절하고 생산적인가?

나는 '잃어버린 미래'라는 주제를 발전시키며, 1990년대와 2000년대 사람들이 가졌던 상대적인 확신의 분위기를 이야기했다. 이어 20059월 노동당 전당대회에서 토니 블레어가 남긴 유명한 발언을 인용했다.

"세계화를 멈추고 토론해야 한다는 말을 하는 사람들이 있다. 그런 논쟁을 벌이느니 차라리 가을이 여름 다음에 와야 하는지를 토론하는 편이 나을 것이다. 중국과 인도는 그런 논쟁을 하지 않는다. 그들은 세계화가 제공하는 가능성을 붙잡고 있으며, 그것은 그들 자신의 삶뿐 아니라 우리의 삶까지 바꾸어 놓을 것이다."

이어서 라인하르트 코젤렉(Reinhart Koselleck)'과거의 미래(futures past)'라는 개념을 꺼냈다. 블레어가 2005년에 자신 있게 그려낼 수 있었던 세계화의 미래는 분명 오늘날 우리가 잃어버린 미래 가운데 하나가 되었다.

물론 코젤렉이라면 기대의 지평이 끊임없이 무너지고 새롭게 형성되는 일은 근대성에서 반복적으로 나타나는 경험이라고 주장할 것이다. 그렇다면 '복합위기' 역시 근대사가 맞이한 가장 최근의 국면에 불과하다고 볼 수도 있다.

하지만 이렇게 모든 것을 상대화하고 평준화하는 접근에는 함정이 있다.

변화를 하나의 상수로 전제하면 정작 변화를 진지하게 받아들이지 못할 위험이 있다. 우리가 주목해야 할 것은 2차 미분, 다시 말해 '변화의 변화'. 근대성은 오랫동안 "늑대가 온다"는 경고를 반복해 왔다. 그러나 오늘날 우리의 과제는 이제 정말로 근본적이고 급진적인 변화라는 늑대가 새로운 차원에서, 그리고 전면적인 형태로 우리 앞에 도착하고 있다는 사실을 이해하는 데 있다.

마크 블라이스(Mark Blyth)는 코로나19 팬데믹 시기에 <가디언>에 기고한 글에서, 내가 특히 좋아하는 문장을 남겼다. "기후 붕괴는 거대한 비선형적 결과를 만들어내는 장치이며, 매우 다루기 어려운 볼록성을 지닌다. 쉽게 말하면 평균도 없고, 정상 상태도 없으며, '평범한 일상'으로 돌아가는 일도 없다. 우리는 미지의 세계를 향해 일방통행로를 따라 나아갈 뿐이다."

이런 상황에서 우리는 어떻게 방향을 잡아야 할까?

정책 담당자들이 모인 자리였던 만큼, 나는 마지막에 몇 가지 제언을 간단한 항목으로 정리해 제시했다.

* 잃어버린 미래에 대한 향수에 빠지지 말 것.

* '변화의 변화'를 진지하게 받아들일 것.

* 전례 없는 상황에 익숙해질 것.

* 정치적으로 사고할 것. 여기서 '우리'는 과연 누구인가를 끊임없이 물을 것.

* 방어적인 태도에 갇히지 말 것.

* 우리의 선택이 위기를 더욱 증폭시킬 수 있다는 점을 항상 염두에 둘 것.

* 막다른 길에 들어섰다면 미련 없이 되돌아 나와 다른 길을 찾는 것을 두려워하지 말 것.

* 변화는 사회의 모든 층위에서 일어나며, 가장 사적인 삶의 영역에서도 만들어진다는 사실을 기억할 것.

* 거대한 총합적 지표라는 블랙박스를 열어 그 내부를 들여다볼 것.

마지막 항목을 설명하기 위해 한 가지를 생각해 보자. 세계화는 결코 하나의 단일한 현상이 아니었다. '세계화'라는 담론은 극도로 복잡한 현실 위를 얇게 덮는 표피에 불과했다. 당시 나는 한치우(Han Qiu), 신현송(Hyun Song Shin), 장리앤스잉(Leanne Si Ying Zhang) 등의 2023년 연구에 큰 영향을 받았다. 이 연구는 섬유, 자동차, 정보기술(IT)이라는 세 핵심 산업을 분석하면서, 세계화가 산업마다 서로 다른 양상과 경로를 보였음을 설득력 있게 보여주었다.

A: 섬유·의류·명품 산업(Textiles, Apparel & Luxury Goods) B: 자동차 및 부품 산업(Automobiles & Components) C: 정보기술(Information Technology)
도표 6. 섬유, 자동차, 정보기술 산업의 국가·지역별 네트워크 구성.
주: IT 부문에는 전통적으로 소비재 분야로 분류되는 '소비자 전자제품(Consumer Electronics)' 하위 산업이 포함된다. 표본 수가 너무 적은 국가는 제외했기 때문에, 각 산업군에 포함된 기업 수에 따라 네트워크의 간선 수가 달라진다. 색상 범례에 대한 자세한 설명은 논문의 웹 버전을 참조하기 바란다.
5.1 공급망 재편의 네트워크 구조와 어려움

어쨌든 싱가포르에서 이어진 토론은 매우 흥미로웠다. 그리고 올해 여름, 그 토론의 결실로 전략미래센터(Centre for Strategic Futures, CSF) 팀이 『다른 세계를 위한 용어집(Glossary for Other Worlds)』을 펴냈다는 소식을 듣고 무척 기뻤다. 이 자료는 여기에서 내려받을 수 있다

목차만 봐도 호기심을 자극한다.

서문은 20248월 내가 했던 모두발언을 바탕으로 새롭게 풀어 쓴 글이다. 아래에 그 짧은 글을 먼저 소개한다. 이 글은 용어집에 실린 다른 흥미로운 글들을 맛보기로 보여주는 예고편이라 할 만하다.

로스탤지어(Lostalgia) — 도착하지 않은 미래를 향한 그리움

우리는 유난히 시간의 무게를 짊어진 시대를 살아가고 있다. 한때 우리의 미래 상상을 떠받쳤던 기술, 생활양식, 정치적 전망은 이제 이상할 만큼 생기를 잃은 채 남아 있다. 이번 회의 참가자들은 이러한 감정을 가리킬 새로운 말을 만들어냈다. '로스탤지어'(Lostalgia). 이는 과거를 그리워하는 향수가 아니라 잃어버린 미래를 향한 향수를 뜻한다. 우리에게 약속되었지만 끝내 오지 않은 미래, 혹은 마침내 현실이 되었지만 약속했던 만병통치약과는 거리가 멀었던 미래를 향한 그리움이다.

우리는 어떻게 이런 지점에 이르게 되었을까?

20세기 내내 사람들은 라인하르트 코젤렉이 말한 '확장되는 기대의 지평(horizon of expectation)' 속에서 살아왔다. 미래는 과거와 근본적으로 다른 모습일 것이라는 믿음이 사회를 지탱했다. 하늘을 나는 자동차, 기적 같은 신약, 달 식민지, 과학과 공학이 질서를 세운 세계 같은 익숙한 진보의 이미지가 그 믿음을 떠받쳤다. 이런 비전 대부분은 끝내 현실이 되지 않았지만, 지금도 마치 곧 실현될 것처럼 우리의 의식 속에 머물러 있다. 코젤렉은 이를 '과거의 미래(futures past)'라고 불렀다. 한때는 사람들의 희망을 조직할 만큼 현실성을 지녔지만, 역사의 흐름 속에서 좌초했음에도 여전히 우리의 상상력을 규정하는 미래다.

또 다른 실패도 있다. 새로운 미래를 상상하는 능력이 약해졌다는 점이다. 마크 피셔(Mark Fisher)는 이를 '미래의 느린 취소(slow cancellation of the future)'라고 불렀다. 지난 수십 년 동안 문화는 끊임없이 과거의 양식을 되풀이해 왔다. 그는 "21세기를 산다는 것은 고해상도 화면으로 20세기 문화를 소비하는 일"이라고 말했다. 시간이 멈춰 선 듯하다. 마치 전향성 기억상실증에 걸린 사람처럼 우리는 잃어버린 과거의 미래만 기억할 뿐, 앞으로 만들어갈 새로운 미래를 기억 속에 새겨 넣는 데는 어려움을 겪는다. 니클라스 루만(Niklas Luhmann)의 표현을 빌리면, "미래는 시작되지 못한다."

이런 마비 상태는 미래를 예측하는 기술 때문에 더욱 심해진다. 선하 홍(Sun-Ha Hong)이 지적했듯이, 데이터 분석에서 AI에 이르는 오늘날의 예측 시스템은 미래의 실질적 내용을 보여주기보다 미래라는 형식만 제공하는 경우가 많다. 미래 없는 예측을 끝없이 쏟아내면서 우리는 확률과 대시보드에 둘러싸이게 되었고, 정작 무엇이 가능할지 상상할 수 있는 범위는 점점 좁아졌다. 최적화가 상상력을 밀어냈다. 우리는 수많은 프레임워크와 모델에 둘러싸여 있지만, 정작 미래를 향한 의미 있는 지평은 갈수록 빈곤해지고 있다.

한편 현실이 된 미래는 그 이면의 대가도 함께 드러냈다. 아폴로 달 탐사는 전 세계인의 상상력을 사로잡았지만, 그와 동시에 베트남 전쟁은 계속 타오르고 있었다. 아스완, 후버, 싼샤 같은 거대한 수력발전 댐은 인류의 공학적 성취를 과시했지만, 수많은 마을과 생태계를 물속에 잠기게 했다. 의학의 눈부신 발전 역시 동의하지 않은 사람들의 몸 위에서 이루어진 경우가 있었다. 미국 터스키기에서는 흑인 남성들이 기만당한 채 연구 대상이 되었고, 푸에르토리코에서는 가난한 여성들이 피임약 임상시험에 동원되었다. 18세기 사람들의 상상력을 사로잡았던 체스 자동기계 '메커니컬 터크(Mechanical Turk)'도 떠올려 볼 만하다. 그것은 사실 기계가 아니었다. 톱니바퀴와 지렛대 아래 비좁은 공간에 숨어 있던 사람이 실제로 체스를 두고 있었다. 이 이야기는 오늘날 다시금 불편할 정도로 현실적인 의미를 갖게 되었다.

이런 모순은 미래란 결코 하나가 아니라는 사실을 일깨운다. 어떤 사람에게는 이익이었던 일이 다른 사람에게는 피해가 되었다. 인류를 구원할 기술이라고 홍보된 것들도 실제로는 그 기술을 만들어낸 대가를 감추는 경우가 적지 않았다. 그래서 우리가 공동의 미래, 다시 말해 '우리'의 미래를 이야기할 때마다, '우리' 안에 누가 포함되고 누가 배제되는지, 그리고 그 환상을 떠받치기 위해 누가 식탁 아래로 밀려나는지를 반드시 물어야 한다.

이러한 감정에 '로스탤지어'라는 이름을 붙인다고 해서 더 나은 세계를 향한 노력을 포기하자는 뜻은 아니다. 오히려 이제는 더 이상 우리에게 도움이 되지 않는 과거의 미래를 놓아주고, 그것이 남긴 잔해를 직시하자는 제안이다. 동시에 오늘의 현실과 오늘의 필요 속에서 여전히 실현할 수 있는 좋은 미래와 좋은 실천을 찾아 나서자는 요청이기도 하다. 그것들은 한때 약속되었던 거대한 유토피아와는 닮지 않았을지 모른다. 하지만 앞으로 나아갈 수 있는 길은 이미 우리 발밑에 놓여 있음을 보여준다.

이 책은 세상을 새롭게 사고하기 위한 다양한 언어와 개념, 틀과 관점을 모았다. 로스탤지어에 저항하고, 우리가 시간을 다시 살아갈 수 있도록 돕는 사고의 도구들이다. 이제 다른 가능성을 위한 자리를 만들어 보자.

그 새로운 가능성을 위하여!

[출처Chartbook 461: Polycrisis & nostalgia for lost futures.

[번역] 이꽃맘

덧붙이는 말

애덤 투즈(Adam Tooze)는 컬럼비아대학 교수이며 경제, 지정학 및 역사에 관한 차트북을 발행하고 있다. ⟪붕괴(Crashed)⟫, ⟪대격변(The Deluge)⟫, ⟪셧다운(Shutdown)⟫의 저자이다. 참세상은 이 글을 공동 게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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