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란이 질문 자체를 바꾸었다

출처: 위키디어스1–맥용 넘버스와 https://portwatch.imf.org/의 데이터를 이용해 직접 제작 – CC0

미국은 30년 넘게 중동 외교에서 다른 국가들이 따라야 할 조건을 자신이 정하는 방식을 고수해왔다. 그러나 이란이 새롭게 추진하는 지역 전략은 미국이 누려온 이러한 특권에 도전하고 있다. 그 움직임은 현재 호르무즈 해협에서 가장 뚜렷하게 나타나고 있다. 이란과 오만은 이란이 걸프만으로 들어오는 선박을 관리하고 오만이 나가는 선박의 통행을 관리하는 방안을 협상하고 있다. 아직 합의가 이뤄진 것은 아니지만, 이 제안은 단순한 해상 교통 협정보다 더 큰 의미를 지닌다. 이란은 외교 의제를 자국의 핵 문제 준수 여부라는 좁은 쟁점에서 벗어나 걸프 지역 안보의 더 넓은 구조로 옮기려 하고 있다.

냉전 종식 이후 미국의 중동 외교는 흔히 결론을 미리 정해놓고 시작했다. 미국이 무엇이 위기인지 규정하고, 협상에 참여할 수 있는 당사자를 가려내며, 최종 합의가 허용할 수 있는 범위까지 정했다. 그러면 협상은 정치 질서를 놓고 논의하는 과정이라기보다 약소국에 그 질서를 받아들이라고 요구하는 과정이 되었다. 이러한 체제에서 나온 합의문이 문자 그대로 항복문서는 아니었다. 하지만 흔히 항복과 같은 정치적 논리를 담고 있었다. 한쪽은 무엇을 합의 준수로 인정할지 결정할 권한을 계속 쥐었고, 다른 쪽은 경제 제재 완화나 정치적 승인, 제한적인 자치권을 얻을 자격이 있음을 입증해야 했다.

이라크와 팔레스타인

이라크는 이를 가장 극명하게 보여준 사례였다. 1991년 걸프전이 끝난 뒤 전면적인 제재가 이미 큰 타격을 입은 이라크 사회를 황폐화했다. 유엔 안전보장이사회가 1995년 결의 986호에 따라 마련한 석유-식량 프로그램은 이라크가 제한된 양의 석유를 판매하도록 허용하는 대신, 판매 대금을 유엔이 관리하는 에스크로 계좌를 거쳐 인도주의 물품 구입에 사용하도록 했다. 이를 구호 조치라고 내세웠지만 그 이면의 메시지는 분명했다. 이라크는 외부에서 설계하고 감독하는 체제 안에서만 자국의 핵심 자원에 접근할 수 있었다. 주권에는 조건이 붙었고, 미국이 수시로 벌이는 폭격을 비롯한 징벌 조치가 일상화되었다.

오슬로 평화협상은 다른 방식으로 진행되었지만 비슷한 힘의 불균형을 드러냈다.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은 노르웨이의 중재 통로를 통해 1993년 원칙선언을 직접 협상한 뒤 워싱턴에서 서명했다. 양측은 서로를 인정하고 팔레스타인 임시 자치기구를 만들었지만, 국가 수립과 국경, 예루살렘, 난민, 정착촌 같은 결정적인 문제는 뒤로 미뤘다. 그동안 점령한 쪽은 영토와 현지 상황을 계속 통제했다. 워싱턴은 평화협상을 후원하면서도 정의로운 평화를 그토록 어렵게 만든 힘의 비대칭을 바로잡지 않았다. 이스라엘의 동예루살렘과 가자지구, 서안지구 점령은 구조적으로 영구화되었다.

두 사례 모두에서 미국과 미국이 지배적인 영향력을 행사하는 국제기구들은 막강한 특권을 행사했다. 다른 모든 당사자가 답해야 할 질문을 이들이 정했다.

이란

이란의 경우 지난 20여 년 동안 그 질문은 핵무기 문제였다. 우려가 2005년에 처음 생긴 것은 아니다. 국제원자력기구(IAEA)의 연혁을 보면 집중적인 논의는 2002년과 2003년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그러나 2005년 이후 이란이 핵에너지와 관련한 우라늄 전환 활동을 재개하고 분쟁이 유엔 안전보장이사회로 넘어가면서 대립이 격화되었다. 이란 지도부는 핵무기에 관심이 없다고 밝혔지만 아무도 귀를 기울이지 않았다. 이후 이란에 관한 거의 모든 논의는 우라늄 농축 수준, 원심분리기, 사찰, 핵무기 제조에 필요한 시간, 제재 완화를 중심으로 이루어졌다. 워싱턴 입장에서는 이란의 핵에너지 프로그램을 핵확산 문제로 규정하는 것이 정치적으로 편리했다. 이스라엘의 핵무기 프로그램과 미군 기지, 제재, 해상 통제를 둘러싼 광범위한 갈등을 이란이 요구 사항을 준수하느냐는 문제로 축소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미국은 걸프 전역에 막대한 군사력을 유지하면서도 이란의 군사 역량만을 불안정의 유일한 원인인 것처럼 제시할 수 있었다.

이제 이란은 이러한 논의의 구도를 뒤집으려 하고 있다. 테헤란은 오만과 파키스탄을 비롯한 지역 내 국가들과 외교를 펼치면서 핵 문제를 지역 안보 체제와 분리해서 다룰 수 없다는 입장을 내세우고 있다. 이제 질문은 이란이 어떤 제한을 받아들일 것인지에 그치지 않는다. 미국과 그 동맹국의 군사적 주둔과 강압적 힘에도 어떤 제한을 적용해야 하는지를 함께 묻고 있다. 바로 이 때문에 걸프 지역의 미군 기지가 중요한 쟁점이 된다. 워싱턴은 이 시설을 동맹국과 에너지 공급, 항행을 보호하는 기반시설로 본다. 반면 이란은 미국 본토가 보복 공격을 당할 위험에서는 벗어난 채 이란을 공격할 수 있도록 해주는 전진기지로 본다. 이란은 서아시아에서 미국이 취하는 군사적 태도는 협상 대상에서 제외하면서 테헤란에만 영구적인 자제를 요구해서는 지속 가능한 합의를 이룰 수 없다고 주장한다.

호르무즈 해협을 둘러싸고 새롭게 진행되는 논의는 이러한 역전을 구체적으로 보여준다. 이란과 오만은 이 해협을 통과하는 선박의 통행을 관리하는 새로운 방안에서 진전을 이뤘다고 밝혔다. 알려진 제안에 따르면 이란은 걸프만으로 들어가는 항로를 관리하고 오만은 밖으로 나가는 항로를 관리하며, 안보 또는 환경 관련 서비스의 대가로 일정한 비용을 부과하는 문제는 아직 합의하지 못했다. 이 계획은 아직 확정되지 않았으며, 워싱턴은 자유로운 통항을 저해하거나 테헤란이 자국 영해를 통제하도록 하는 어떠한 방안에도 반대하고 있다. 그렇더라도 현재 논의 중인 이 방안이 지닌 정치적 의미는 상당하다.

미국은 수십 년 동안 걸프 지역의 항행을 궁극적으로 보장하는 국가를 자처해왔다. 그러나 이란과 오만의 협상은 또 다른 원칙이 가능하다는 점을 보여준다. 전략적 수로에 접한 국가들이 스스로 그 수로의 운영 질서를 구축할 수 있다는 것이다. 이러한 가능성은 제재 정책의 모순도 드러낸다. 상선이 이란이 관리하는 항로를 통해 걸프만으로 들어가야 한다면 선주와 보험사, 은행은 이란이 의무적으로 제공하는 서비스나 데이터 시스템을 이용하거나 수수료를 지급할 경우 미국의 제재에 걸리는지 확인해야 한다. 단순히 이란 영해를 통과한다고 해서 미국의 모든 제재를 자동으로 위반하는 것은 아니다. 법적 문제는 통항 자체가 아니라 이란 기관에 대한 대금 지급, 제재 대상 서비스 제공업체의 이용, 보험과 관련한 제재 위험, 이란이 관리하는 체계를 통한 선박 데이터 처리 등에서 발생할 것이다. 그러나 이란이 관리하는 체계가 실제로 가동된다면 미국은 관련 거래에 허가를 내주거나 엄격히 제한된 범위의 거래를 용인해야 할 수도 있다. 그렇지 않으면 미국이 보호한다고 주장하는 상업 활동을 스스로 방해할 위험이 있다. 그렇게 되면 제재는 더 이상 정치적 진공 상태에서 행사하는 수단으로 남을 수 없다. 해상 통항에 필요한 현실적인 요건과 충돌하게 된다. 이것이 미국의 전반적인 제재 정책에 어떤 영향을 미칠지는 향후 보험사와 해운회사들이 실제 상황에 대응하는 과정에서 더욱 분명해질 것이다.

더 넓은 지역 정세도 이란의 주장을 뒷받침한다. 이라크와 오만이 앞서 협상을 주선한 데 이어 중국이 중재해 성사시킨 2023년 이란과 사우디아라비아의 화해로 걸프 지역의 양대 경쟁국은 외교관계를 복원했다. 그렇다고 양국의 경쟁이 끝나거나 갈등이 사라진 것은 아니다. 하지만 미국의 폭격 작전이 아니라 역내 국가들의 협상과 서방이 아닌 국가의 중재, 이 경우에는 상당 부분 중국의 중재를 통해 긴장을 완화할 수 있음을 보여주었다.

파키스탄의 중재와 사우디아라비아, 튀르키예, 파키스탄 사이에서 확대되는 안보 대화도 같은 방향을 가리킨다. 그렇다고 이를 이란이 주도하는 진영으로 오해해서는 안 된다. 이 국가들은 저마다 이해관계가 있으며 때로는 이란을 강하게 의심하기도 한다. 중요한 의미는 다른 데 있다. 지역 내 각국 정부가 서로 중첩되는 여러 협력 방식을 실험하면서 워싱턴이 더 이상 유일한 소집자이자 보증자, 설계자로 군림하지 않는 질서를 모색하고 있다는 점이다. 미국은 군사행동을 할 때마다 억지력을 확보하겠다고 약속했지만, 그 결과는 반복해서 긴장 고조와 주민들의 강제 이주, 새로운 원한으로 이어졌다. 폭격으로 시설을 파괴하고 지휘관을 제거할 수는 있지만 정당성을 갖춘 지역 질서를 만들 수는 없다. 또한 한 국가인 이스라엘이 공식적으로 밝히지 않은 핵무기를 보유하고, 한 민족인 팔레스타인인(을 계속 점령하고 이들을 상대로 집단학살을 자행하며, 원할 때마다 이웃 국가인 레바논, 이란, 시리아를 공격해도 된다는 자신감을 갖는 상황에서는 안정적인 체제를 구축할 수도 없다.

출처: Unsplash, mana5280

진짜 질문

따라서 이란이 워싱턴에 던진 진정한 과제는 개념적인 것이다. 누가 의제를 정하는가? 어떤 무기와 군사기지, 동맹이 지역을 불안정하게 만드는지 누가 판단하는가? 역내의 부가 오가는 수로를 누가 통제하는가? 그리고 모든 합의를 반드시 외부 세력이 보장해야 하는가, 아니면 온갖 경쟁 관계에도 지역 내 강국들이 스스로 이행 가능한 합의를 구축할 수 있는가?

앞으로 중동에서 이루어질 합의가 항복문서와 같은 모습을 띤다면 오래 지속될 수 없다. 핵무기 제한과 외국 군대의 배치, 해상 통행권, 제재, 미사일, 상호 불가침을 하나의 안보 문제를 구성하는 요소로 함께 다뤄야 한다. 이란이 이 문제를 해결했다는 것이 이란의 성과는 아니다. 수십 년 동안 워싱턴이 정한 질문에 답하도록 강요받았던 이란이 이제 역내 국가들로 하여금 다른 질문을 생각하게 만들었다는 것이 성과다. 이제 쟁점은 이란이 무엇을 포기해야 하느냐에만 있지 않다. 미국을 포함한 모든 강대국이 무엇을 협상할 준비를 해야 하는가가 쟁점이다.

[출처Iran Has Changed the Question

[번역] 이꽃맘

덧붙이는 말

비자이 프라샤드(Vijay Prashad)는 트라이컨티넨털 사회연구소 소장이다. 최근 그리브 첼와(Grieve Chelwa)와 함께 《국제통화기금은 어떻게 아프리카를 질식시키는가》(How the International Monetary Fund Suffocates Africa)를 출간했다. 참세상은 이 글을 공동 게재한다.



맨위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