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주노총이 25일 임시대의원대회에서 다룰 예정인 '조직혁신안'과 관련해 공개토론회가 열렸다. 21일 오후 7시 민주노총 1층에서 개최된 이 토론회는 <노동네트워크>와 <매일노동뉴스>, <민중언론 참세상>이 공동 주최했으며, 노중기 한신대 교수가 사회를 맡고 김명호 민주노총 조직실장, 이성우 공공연맹 사무처장, 고영주 과기노조 위원장, 이경수 전 충남본부장, 박유호 금속연맹 조직실장 등이 토론자로 나왔다.
공개토론회는 따로 발제문이나 토론문을 제출하지 않고, 민주노총이 낸 조직혁신안에 대해 의견을 발표하는 형식으로 이뤄졌다. 크게는 △조직혁신, 조직혁신안을 보는 시각에 대해 △재정혁신 방안에 대해 △직선제 등 선거제도에 대해 의견을 나눴다.
"'민주노총 조직혁신안'이 새로운 돌파구 되길"
▲ 김명호 민주노총 조직실장 |
김명호 기획실장은 "민주노총의 혁신 관련 문제제기는 타당하고 유의미하며 재정 등 우선 해결 과제에 기초해 사태를 풀어가는 게 맞겠다"면서 "임기가 짧은 조준호 집행부 동안 많은 과제를 해결할 순 없지만, 미진한 것이라도 해결함으로써 내년 3년 임기를 시작할 집행부가 최소한 조직 내적 과제는 해소하고 시작했으면 한다"고 재정문제나 선거제도 문제를 우선 푸는 것이 중요하다는 의견을 피력했다.
이에 대해 이성우 공공연맹 사무처장은 "예로 들 수 있는 작년의 사건들, 사회적 합의를 둘러싼 대의원대회 파행이나 노동조합 상층부의 비리, 현장에서는 IMF이후의 패배적 국면 속에 노사협조주의 흐름과 민주노조 이탈 움직임 등이 있었다"고 지적하고 "민주노총이 민주노조운동의 대표성을 상실할 위기에까지 있는 만큼 혁신은 대단히 중요한 문제고 성공적으로 완수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성우 사무처장은 "혁신을 재정이나 선거제도 등에 한정할 것이냐는 측면에서 머물지 말고 가령 투쟁의 혁신, 로드맵을 둘러싼 지지부진한 대치국면 돌파 등으로 더 나아가야 한다"고 주장하면서 "관성적으로 대응하고 있는 장기투쟁사업장 문제나 어정쩡한 상태의 비정규법안 대응을 볼 때, 초심을 지켜서 연대의 기풍을 살리고 이번 혁신이 사업, 제도의 혁신에서 더 나아가 투쟁의 혁신까지 이어지는 공감대의 계기가 되길 바란다"고 덧붙였다.
▲ 고영주 과기노조 위원장 |
그러나 "큰 틀 안에서 우선과제를 정해 제도개선을 먼저 한다던가 하는 조치를 취할 수 있다고 보지만, 핵심 골간을 건드리지 않고 부분적 내용만 건드렸을 때 자칫 위기가 심화될 수 있다"며 "민주노총 혁신안 초안은 조직운영의 편의를 위한, 관료적 방식으로 내용이 구성돼 있고 표피적, 편의적 방식이라 근본적 문제 해결은 어려울 것이다. 종합적이고 장기적인 처방을 먼저 고민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경수 전 충남본부장은 "혁신 관련 토론을 여러 차례 진행했지만 대중들이 피부에 와닿는 정도는 아니다"라며 "민주노총 혁신안을 혁신해야 한다고도 이야기들 한다. 기본적인 민주노총의 지향에 대해 혁신해서 어떻게 조직구조와 운동기풍을 맞춰나갈 것인가를 마련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더불어 "재정 문제만 놓고 보더라도 의무금을 더 많이 내야 한다는 걸 혁신과제로 올릴 수가 있나. 그에 걸맞는 사업을 지향에 따라 배치하고 필요한 비용을 부과해야지 거꾸로 가고 있다. 개인적으로 참담하고 동의가 안된다"고 말했다. 또 "수 년 동안 논의된 직선제는 처음에 선거인단 간선제 안을 냈다가 많은 동지들이 참석하지도 않은 순회토론 과정에서 원안을 변경한, 그런 정도의 허술한 정책이다"라고 비판했다.
박유호 금속연맹 조직실장은 "현재 민주노총 집행부가 제출한 안은 현 시기에서 합의 가능한, 공감할 수 있는 안이지만 한편으론 민주노총 혁신의 문제가 민주노총 중앙구조 혹은 운영으로 가능한 것인가"라고 반문하며 "현재 산별노조를 지향하는 금속연맹 입장에서 볼 때, 각 연맹단위나 하부지역 현장까지 총체적으로 노동운동의 심각한 위기성을 제대로 진단해야 하지 않나"라는 의견을 밝혔다.
직선제에 대해서는 "한편으론 고무적이지만 한편으론 민주노총이 통일하고 집중하고 단결 수준을 높이는 방안에 대해선 놓치고 있는 것 아닌가"라며 "대의체계의 문제 등이 있는 것을 동시에 짚어야 하고 현 시점에서 그런 문제들을 논의 혹은 합의할 수 있어야 한다"라고 말했다.
고질적인 재정 문제, 어떻게 풀까
▲ 이경수 전 민주노총 충남본부장 |
김명호 기획실장은 "모든 동지들이 공감할 것"이라며 "지난 10년간 민주노총이 사업을 해가는 데 심각한 재정적 장애요인이 있었다"고 말했다. "재정은 사업 능력을 받치는 물적 토대가 되며 현재 재정적 곤란함이 매우 크다, 저조한 납부율을 놓고 '실무적으로 책임져야지, 우리는 당면투쟁을 고민하자'고 말할 수 있으나, 10년 넘게 유지되는 관행을 놓고 혁신과제가 아니라고 하는 것은 추상적 담론이다"라는 설명이다.
박유호 조직실장은 "재정 문제는 구체적이고 실질적인 문제이므로 해결되어야 한다. 조직에 대한 신뢰 문제와 내부 형평성 문제가 있다"고 지적하면서 "2008년부터 500원을 인상자면 금속 대의원들은 문제제기할 것이다. 3년간 납부하지 않은 조직은 1년 만이라도 단계적인 납부방안을 제출해야 한다"고 말했다. 지방정부의 지원금에 대해선 "내부 운동의 기본 원칙인 자주성과 투쟁성이 있다면 예산을 갖고 이념적으로 접근할 필요는 없다. 현실로 받아들일 수 있다"는 입장을 보였다.
이경수 전 본부장은 "제출안이 천 원에서 500원 인상으로 바뀐 근거도 허술하고, 조합원들이 보기에 지나치게 편의적이라는 오해를 갖지 않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며 "80만 명의 의무금이 천억 원이 넘을 텐데 이 재정을 어떤 판단근거에서 집행하는지 논의해 나가고, 산별 시대를 맞아 어떻게 분배할 것인지 고민하자"고 말했다.
고영주 위원장은 "재정 문제의 중요성엔 누구도 이의를 달지 않을 것이고 의무금 인상, 정률제 실시 등은 진지하게 토론해야 하지만 대중의 동의를 얻으려면 낮은 조직률 등 근본 문제를 짚어야 한다"며 "민주노총이 사회로부터 어떻게 신뢰를 확보할 것인가도 중요하고 재정혁신안대로 됐을 때 두 배 가까이 재정이 늘어날 텐데 정부 보조금까지 받겠다는 것은 설득력을 갖기 어렵다"고 주장했다.
▲ 이성우 공공연맹 사무처장 |
'2천 원 선거기금 내야 선거권'안에 대체로 반대
당초 '선거인단제'를 제출했다가 18일 중집회의를 거치며 '2007년 임원 직선제 실시'로 안이 바뀐 것을 비롯해 선거제도에 대한 토론이 이어졌다.
이성우 사무처장은 "직선제에 대해선 늦었지만 환영한다. 하지만 그 방법으로 기금 2천 원을 내면 선거권을 준다는 것은 말도 안된다"며 "선거권은 누구에게나 주어야 하고 충분히 가능하며, 고의로 의무를 기피하는 경우 등 문제가 될 때는 자격정지나 각 가맹조직에서 징계하는 등 제도적으로 충분히 보완할 수 있다"고 말했다. 위원장-사무총장 직선제 안에 대해서는 "최소한 위원장-수석부위원장-사무총장을 직선으로 뽑아야 한다"는 의견을 밝혔다.
이경수 전 본부장은 "의무금을 인상해서 선거비용에도 쓰겠다고 하는데 굳이 TV홍보를 해야 하는지는 판단해 봐야 하고, 정부의 중앙선관위에 위임한다는 것은 삭제해야 한다. 지역본부를 통해 직선제 관리위원회를 구성하면 가능하다"고 주장하며 "최근 지역본부의 몇 차례 선거 파행사례를 들며 망설이는 경우가 있는데 구체적 실행 문제의 빈 지점을 지금부터 만들어가고, 발생 가능한 모든 사안들에 대한 해석을 미리 해 놓아 문제의 소지를 없애자"고 말했다.
고영주 위원장은 "직선제로 방향을 튼 것은 다행스런 일이지만 유념할 것은 직선제 과정에서 자본의 지배개입 가능성이 있고, 상층부 차원의 분열과 갈등이 현장 단위로까지 내려갈 수 있다"고 우려했다. 그러나 "자본의 지배개입 양상을 볼 때 현재 간선제 하의 장악이 더 유효하다는 것이 확인되는 만큼, 오히려 직선제를 통해 조합원에게 권리를 돌려주는 것이 자본의 개입을 막는 수단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투표권 유무를 의무금으로 갈라선 안되며 비정규영세사업장과 이주노동자들도 참여할 수 있도록 하자"는 제안도 덧붙였다.
▲ 박유호 금속연맹 조직실장 |
정부보조금 문제, 대의원 직선제 등 제기돼
이후 플로어 토론과 문답, 의견들이 이어지면서 재정혁신안과 선거제도에 대한 여러 가지 견해들이 드러났다.
재정혁신안에 대해서는 모든 토론자들이 재정 문제의 중요성에 대해 공감했으나 주로 '일률적 맹비 인상 근거와 집행, 운영의 문제', '형평성 고려와 낮은 조직률 등 근본적 문제 우선'등의 문제제기가 있었다. 정부 보조금과 관련해서도 '자주성 훼손 우려가 있다'는 의견과 '현실적인 문제이므로 합리적인 운용이 필요하다'는 의견이 엇갈렸다.
김명호 기획실장은 정부보조금과 관련해 "건물 임차비용만 받고 있는 상태에서 유비보수비용도 정부 지원을 받고자 했으나 지난해 국정감사에서 한나라당 지적에 따라 건물비 지원도 거부됐다"면서 "중요한 사업인 교육원 건립 관련해서도 우리 집행력으론 당분간 힘들고, 한정된 범위에서 정부보조금 제한을 풀 수도 있지 않느냐고 말해야 한다. 음성적으로 행사비까지 지원받는 지역본부도 있다"고 지적하기도 했다.
선거제도에 대해서도 임원 직선제 안에는 모두 환영의 뜻을 밝혔으나 '선거기금을 이유로 투표권을 제한해선 안된다', '비정규, 영세사업장 노동자들이 참여할 수 있게 해야 한다'는 지적들이 있었다. 김명호 기획실장은 "모두에게 선거권을 주자는 주장에는 동의할 수 없다"며 "가능한 공정하게 해결하고 선거인명부 문제를 해결하자는 취지에서 고육지책으로 선거기금 2천 원을 내놓은 것"이라 설명했다.
한편으론 "대의원 직선제가 임원 직선제와 함께 가지 않으면 안 하는 편이 낫다"는 주장도 제기됐다. 토론회에 참석한 정은교 전교조 조합원은 "대단히 큰 혁신의 그림을 그린다면 김명호 실장의 현실론에 타협하고 손을 들어주고 싶은 심정이지만, 막힌 언로를 다소 뚫어보자는 대강의 취지로 직선제를 하자는 것이라면 안해도 된다"고 주장했다. "가까운 곳에서 관심을 갖는 대의원 선거가 차라리 더 중요하며, 한 대표자를 뽑을 때 나오는 다소의 문제점, 가령 인기투표나 외부개입 등의 문제는 대의원 직선으로 보완, 해소될 것"이라는 인식이었다.
2시간 30여 분에 걸친 공개토론회에서 각 토론자들의 마무리발언은 다음과 같다.
김명호 "혁신의 문제를 선악의 문제로 얘기하는 경향도 있어 어렵다. 정파 소속이란 것을 감출 순 없지만 현재 과제를 모두 민주노조운동의 어려움이라 여기고 부실한 혁신안이라 여겨지시더라도 힘있게 잘 합의해서 부실한 것은 메꾸고 모자라는 것은 충족시켜 나가자"
고영주 "직선제가 이번 대의원대회에서 가장 뜨거운 이슈가 될 것이다. 정파에 의해 되는 것을 막아야 한다. 임원 직선제로는 모든 것이 해결되지 않는다. 정파의견을 발언하는 게 아니라 현장 조합원들 의견을 모으고 원칙과 기준 만들 때 직선제 상승효과가 있을 것이다"
이경수 "정파적 문제의 고착을 어떻게 푸느냐는 왕도가 없다. 다만 기본적으로 조합원들이 자기가 주인으로서 어떻게 역할하게 만들거냐에서 출발하면 된다"
이성우 "혁신을 말할 때 얼마나 많은 기대와 희망을 줘왔나 자문해야 한다. 중앙위와 대의원대회가 충분히 토론하는 구조가 되고 민주노조 정신 훼손되지 않게 해야 한다. 이번 혁신안을 비판할 지점도 있지만 잘못되면 집행부 뿐 아니라 모두 책임져야 한다"
박유호 "정부예산 사용문제, 중선관위 개입, 선거특별기금 문제 등 논란 있을 수 있다. 중앙위와 수련회, 대의원대회 통해 걸려져서 혁신안에 뜻을 모으면 한다. 임원과 대의원 직선제도도 한 세트로 가는게 맞다고 본다"
많은 의견과 문제제기들이 있었고 엇갈리는 의견들 사이에선 만만치 않은 비판도 있었으나, 이날 공개토론회는 뚜렷한 합의와 날선 토론을 끌어냈다기보다 민주노총의 조직혁신안에 대해 의견을 제시하고 타진하는 수준이었다. 민주노총 조직혁신안이 공개된 이래 일각에서 신랄한 비판들이 있었던 것에 비하면 큰 논쟁없이 순조롭게(?) 진행된 셈이다. 이후 대의원대회 등을 거치며 진행될 토론과 실제 추진 과정에서의 조합원들의 관심 여부가 주목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