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년 유예‘로 ’합의‘했다.
민주노총이 “야합안을 정부가 수용한다는 것은 노동자의 자주적 단결권을 무시하는 것”이라고 목소리 높였지만 11일, 민주노총을 제외하고 열린 노사정대표자회의에서는 일사천리로 합의가 이뤄졌다.
복수노조 허용 유예 ... 승리한 사람들
이로 복수노조 금지의 틀 속에 갇혀 노동조합조차 만들 수 없었던 수많은 노동자들은 또 다시 3년을 기다리게 되었다. 97년, 2002년에 5년 씩 연기된 것에 이은 것이다. 한국노총은 별다를 것 없이 정부와 손을 잡았다. 이용득 한국노총 위원장은 “노조가 아직 전임자의 임금을 책임질 수 없다”라며 전임자 임금 지급 금지 유예를 사수하기 위해 복수노조 금지를 조건으로 내걸고, 원하는 성과를 얻었다. 단식투쟁까지 결의했던 이용득 위원장의 승리다.
복수노조 금지 조항은 ILO가 13차례에 걸쳐 한국정부에 전면 허용을 권고해 올 정도로 노동자의 단결권을 침해한 대표적 악법이었다. 이에 대해 전국비정규직노조연대회의는 이에 대해 “삼성의 무노조 정책, 포스코의 20명 짜리 유령노조 정책으로 자유로운 노동탄압을 할 수 있도록 열어준 조항”이라고 강력히 비판한 바 있다. 실제 이번 복수노조 금지 조항의 유예를 삼성 측은 두 손 두 발 들고 환영했다고 한다. 노조 전임자 임금 문제도 해당 사항이 없는 삼성의 입장에서는 잃을 게 없는 게임이었던 것이다.
대기업 노조들도 분위기는 나쁘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어쩌면 이용득 위원장의 말이 가슴 사무치게 다가왔을지도 모른다. 노동운동은 망해가고, 조합원들은 점점 줄어드는데, 전임자 임금마저 없다면 당장 수많은 정규직 노조 전임자들은 생계 문제에 부딪힐 것이기 때문이다. 조합원 대중의 단결된 투쟁으로 전임자를 확보하길 포기한 무수한 노조 간부들은 잠시 한숨을 놓았을 것이다. 이에 대해 비정규직 노조들은 “5년 유예를 구걸해서라도 노조 상층 기득권자의 권리만을 지키려 하는가”라고 지적한 바 있다.
공공부문 노동자들의 단결권 가로 막는 필수공익사업장 확대와 대체근로 허용
이번 합의에는 필수공익사업장 확대와 대체근로허용도 포함되었다. 지난 3월 ILO는 기존의 필수공익사업 목록도 문제가 있다며 목록을 축소, 수정할 것을 ‘강력히 권고’한 바 있다. 그러나 한국정부는 이 권고를 이행하기는커녕 필수공익사업을 더욱 확대했다. 그리고 대체근로까지 허용했다.
대체근로 허용은 근로기준법 상 금지되어 있는 사항이다. 그러나 공공부문 노동자들에 한해서 정부는 공식적으로 대체근로를 인정하며 부당노동행위를 앞장서 저지를 수 있는 토대를 만든 것이다. 직권중재를 폐지하면 뭐하나, 공공부문 노동자들의 파업을 하면 공공기관과 정부는 노동자들과 교섭을 통해 그들의 요구를 듣고 조정하기 보다는 대체근로자를 투입해 마치 아무 일이 없는 것처럼 무시하면 되는 것이다.
직권중재 폐지라는 허울 좋은 말 속에는 이제 합법적인 대체근로 투입으로 노동자들의 입을 막겠다는, 노동자의 기본권인 단결권을 무시하겠다는 의미가 포함되어 있는 것이다.
부당해고 판결 받는 데 8년, 그래도 돈이면 끝?
또한 부당해고 시 형사처벌 조항을 삭제하고 부당해고 시 금전보상 허용하는 것도 합의되었다. ‘근로자가 요청할 시’라는 전제를 달았지만 이는 전제가 될 수 없다는 것을 누구나 알고 있다. 지금도 부당해고 판정을 받기 위해서는 생계를 포기한 채 몇 년씩 걸려 법원을 전전해야 상황이다. 얼마 전 부당해고 판정을 받은 김석진 현대미포조선 해고자의 경우 8년 3개월이라는 시간이 걸렸다.
부당해고 판정을 받기도 어려운데 이제 부당해고 판결을 받아도 근로자가 요청했다는 명분으로 사측은 형사처벌을 피할 수 있게 되었으며, 복직을 시키지 않아도 된다. 그저 돈으로 해결하면 되는 것이다.
중요한 것은 앞으로다
중요한 것은 앞으로다. 노동부는 합의안을 입법예고 할 것이며, 올해 내 국회에서 처리될 전망이다.
문제는 민주노총이 8대 요구로 내세웠던 △공무원, 교수, 교사의 노동3권 보장 △비정규 노동자 노동3권 보장 △산별 교섭 보장과 산별협약의 제도화 △복수 노조 하 자율교섭 보장 △긴급조정제도 요건 강화 △손배가압류 및 업무방해죄 적용금지 △고용안정 보장 등은 이번 노사정대표자회의에서 제대로 논의되지도 못한 것이다.
이에 민주노총은 지금의 노사관계로드맵 논의가 “정치적 흥정거리로 전락했다”라며 강력히 비판한 바 있다. 그리고 정부가 입법을 강행한다면 “전면 총파업으로 맞설 것”이라고 선언한 바 있다. 이제 남은 것은 개악안 만이 가득한 노사관계 ‘후진화’ 방안의 국회처리를 막는 것이다.
박대규 전비연 공동의장은 기자와의 전화통화를 통해 “민주노총이 전임자 임금 금지가 되더라도 복수노조 전면 허용을 받아내고, 노사관계로드맵 국회 통과를 막아내야 한다”라며 의미심장한 말을 남겼다.
“이번 투쟁에서 누가 앞에서는 이용득 한국노총 위원장을 비판하고, 뒤에서는 전임자 임금 금지 유예됐다고 좋아했는지 명명백백하게 드러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