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논평] 노사관계로드맵 대타협 어찌할 것인가

민주노총 집행부는 무사안일인지 회피인지를 고백하라

노사정 대표자들이 노사관계법제도선진화방안(노사관계로드맵)에 합의했다. 노사정 대표자들은 대타협 선언문을 통해 "노사간의 대화와 타협을 통한 자율적 합의 정신을 존중하고, 보편적 국제노동기준과 우리 노사관계 현실을 고려해 노사관계 안정을 도모하는 내용으로 합의했다"고 밝혔다.

11일 노사정대표자회의에서 '복수노조 허용', '노조 전임자 임금지급 금지' 조항의 시행을 2009년 12월 말까지 3년 유예하고, 직권중재 제도를 폐지하되 필수공익 사업장 범위 확대와 대체근로 허용 등 모두 32개 항에 합의했다. 이제 노사관계로드맵이 합의안 대로 입법 절차를 밟으면 복수노조는 3년간 유예된다. 직권중재가 폐지된다 하지만 필수공익사업장 합법 파업에 대체근로가 허용됨으로써 노동기본권이 심각하게 침해당하게 된다. 부당해고로 판정나더라도 금전 보상으로 처리하게 되고, 정리해고 요건도 크게 완화된다.

노사관계로드맵은 2003년 가을 처음 등장한 이후 3년 만에 노사정 대타협의 결실을 맺었고, 곧 입법 절차를 밟게 된다.

민주노총은 특수고용 노동3권 문제를 쟁점화하고 노사관계로드맵에 대한 구체적 대응이 미흡하므로 교섭과 투쟁을 병행하겠다는 집행부의 의지에 따라 노사정대표자회의에 결합했다. 8가지 요구로 △공무원, 교수, 교사의 노동3권 보장 △비정규 노동자 노동3권 보장 △산별 교섭 보장과 산별협약의 제도화 △복수 노조 하 자율교섭 보장 △긴급조정제도 요건 강화 △손배가압류 및 업무방해죄 적용금지 △고용안정 보장 등을 들고 나섰다. 그러나 '역사적인' 노사정 대타협이 이루어지던 날 민주노총 위원장은 자리에 없었고, 민주노총의 요구안들은 휴지조각이 되어버렸다.

조준호 민주노총 위원장은 미국 의회 면담 투쟁차 10일 워싱턴을 향했고, 노사정대표자회의는 이 틈을 타 대타협을 성사시켰다. 조준호 위원장의 출국은 워낙 예정에 있던 것으로 확인되었다. 그러나 9월 8일 열린 중집 보고 등을 종합할 때 한국노총이 5년 또는 3년 유예안을 받는다는 입장이 민주노총에 전달된 것으로 확인되었다. 3년유예안을 노동부장관이 받을 수밖에 없을 것이라는 위원장의 보고도 확인되었다. 민주노총이 노사정대표자회의 합의 가능성을 사전에 인지하고 있었다는 이야기다. 그러나 대타협을 지척에 둔 시점에서조차 '사회적 교섭' 전술은 아무 것도 없었다. 결국 민주노총은 무사안일 했다는 지적에서부터 노사정 대타협에 대한 회피 의혹까지 피하기 어렵게 되었다.

민주노총은 지난 6월 주요 연맹 등 내부의 반대와 절차적 과정조차 무시한 채 강행한 노사정대표자회의 참가했다. 노사정대표자회의가 진행되는 동안 논의 과정과 내용은 공개하지 않았다. 더군다나 민주노총의 불참 사실이 뒤통수를 맞은 것이든 회피한 결과이든, 결과적으로 노사관계로드맵 대타협이라는 통지서를 쥐어들게 되었다. 자본은 일제히 환영 의사와 함께 아쉬움을 토로하며 표정 관리에 들어갔다. 한 보수 일간지는 노사정은 3년을 벌었다고 해서 또 허송세월하지 말라고 주문했다. 아울러 민주노총도 속으로는 전임자 임금 지급 금지 유예를 반기면서도 복수노조 허용을 외치며 파업 운운하지 말라며 일침을 가했다.

이건 간단한 문제가 아니다. 노사관계로드맵은 노무현정권의 신자유주의 세계화 정책의 근간을 이룬다. 비정규법 개악안과 노사관계로드맵에는 이른바 글로벌스탠다드와 기업하기 좋은 나라를 만들어야 한다는 자본의 욕구가 고스란히 담겨있다. 비정규법 개악안이 노동자의 노동력을 직접 공격하는 것이라면, 노사관계로드맵은 노동유연화의 법제도적 완성을 의미한다. 이처럼 노사관계로드맵은 자본의 자유로운 이동을 추동하기 위한 절대 선결과제였고, 3년 동안 밀고당기는 게임 끝에 완성의 발판을 마련한 것이다.

지난 3년간 노동자를 공격하는 법제도는 비단 개악 비정규법안과 노사관계로드맵만이 아니었다. 경제자유구역법, 제주특자도법, 자본시장통합법 등 노사관계에 직간접적으로 영향을 미치는 법안들이 제개정되어왔고, 한미FTA 협상으로 자본의 이윤 축적 논리를 관철하고 있다. 노사관계로드맵 출현 딱 3년, 노사관계로드맵 대타협은 자본과 참여정부가 그토록 고대하던 선진노사관계, 노사평화체제의 서막을 알리는 사건이다. 3년 동안 숱한 저항을 펼쳐왔음에도 불구하고, 이제 노사정 대타협으로 이땅의 노동자가 받게 될 모멸과 치욕은 가늠하기조차 어렵게 되었다. 내일모래면 입법 절차가 갈 텐데 이제 정말 어찌 한단 말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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