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론 엇갈린 반응
이에 대한 언론의 반응은 엇갈렸다. 노사관계를 한 단계 끌어올리는 합의였다는 한 축에서 절차상 문제를 지적하는가 하면 노동개혁을 후퇴시켰다거나, 노사정 야합이라는 맹비난이 쏟아지기도 했다.
노사관계로드맵 합의에 대하여 조선일보 및 동아일보가 침묵하는 가운데, 중앙일보는 13일자 사설 <노사 분란보다는 차라리 3년 연기가 차선>에서 “여건이 성숙하지 않아 노사가 분란이 일어날 소지가 있었다면 차라리 연기한 게 잘된 일”이라며 “협상 과정에서 드러난 노동부의 무원칙한 자세는 비난받아 마땅하다. 민주노총도 속으로는 전임자 임금 지급 금지 유예를 반기면서도 복수노조 허용을 외치며 파업 운운해서는 안 된다”고 주장했다.
한편 합의 다음날인 12일 언론사들은 각각 사설을 실었다.
서울신문-반쪽 합의에 그친 노사로드맵
파이낸셜뉴스-정부는 과연 노동개혁 의지 있는가
문화일보-차기 정권에 핵심 현안 넘긴 노사 로드맵
세계일보-노동개혁 후퇴시킨 로드맵 합의
한겨레-노·사·정 대표자의 ‘야합’
경향신문-노사관계 로드맵 협상 타결은 됐다지만
한국일보-노사 선진화안 불완전 합의의 파장
세계일보는 “노사정이 ‘노조전임자 임금지급 금지 및 복수노조 도입의 3년 유예’ 등을 주내용으로 합의한 노사로드맵이 결과적으로 노동개혁의 후퇴를 초래한 점은 유감이 아닐 수 없다”며 “필수 공익사업장을 대상으로 한 직권중재제도의 폐지에 합의함으로써 국가기간사업장에서의 무분별한 파업으로 인한 사회·경제적 손실이 우려되는 점은 큰 문제”라고 지적했다.
경제지인 파이낸셜뉴스도 세계일보와 비슷한 입장을 내놓았다. 파이낸셜뉴스는 “로드맵의 미봉적 합의는 노사의 이해가 정부의 개혁 의지를 밀어낸 것에 지나지 않는다”며 “특히 전임자 임금 금지와 복수노조를 3년간 유예한 이유로 노사정이 ‘국내 노동여건 미숙’을 꼽은 것은 설득력이 전혀 없다”고 주장했다. 덧붙여 파이낸셜뉴스는 ‘국내 노동여건 미숙’에 대한 노사정의 해결노력에 회의적 입장을 표하며 “불법파업에 대해 법대로 엄격하게 대응하지 못하고 있는 현실에서 과연 ‘노동여건 미숙’을 거론할 수 있는지도 문제가 된다”고 밝혔다.
문화일보는 “국가경쟁력 평가에서 한국의 노사관계는 61위로 4년째 최하위였다. 그런 노사관계를 선진화하겠다고 해온 노무현 정권 3년 장담은 시종 원점 맴 돌기였다”며 “무분별한 파업의 악순환을 막는 것이 노사 경쟁력의 관건”이라고 주장했다.
한겨레는 이번 합의가 '야합'이라고 강하게 비판했다. 한겨레는 사설에서 “이번 합의에 참여한 사람들은 노동삼권이 점차 축소돼 가는 것이 역사의 순리라고 착각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묻고 싶다”며 “민주노총한테는 회의 시간과 장소조차 알려주지 않았다는데, 그렇다면 이번 합의는 ‘야합’이라는 비난을 피할 수 없다”고 주장했다.
합의에 대한 평가는 같아도 방향은 달라
이에 반해 한국일보, 경향신문는 이번 합의에 대해 일단 긍정적인 평가를 내렸으나, 평가 방향은 엇갈린다. 경향신문은 “노사관계의 후진적 관행을 극복하고 산업평화의 기틀을 다지기 위한 법과 제도가 마련됐다는 점에서 그동안 협상에 참여했던 노·사·정 3자간의 노력이 결실을 맺은 셈”이라면서 “로드맵의 핵심쟁점인 노조 전임자 임금 지급 금지와 복수노조 허용이 ‘시행 3년 유예’라는 어정쩡한 봉합상태로 합의된 것은 ‘야합’이라고 하지 않을 수 없다”고 지적, 합의과정에서 민주노총이 배제된 것에 대해서는 절차적 정당성이 무시되었다고 주장했다.
한국일보는 “민노총의 반발에도 불구하고 합의된 내용은 노사관계를 한 단계 끌어올리는 바탕이 될 것으로 보인다”며 긍정적으로 평가하고 “직권중재를 폐지하는 대신, 필수공익사업장의 범위를 확대하여 파업이 발생했을 때 대체근로를 허용함으로써 정부의 개입보다는 노사 관계의 자율성을 높이는 사안”이라고 지적했다. 또한 “합의에 대한 민노총의 대응방식은 걱정스럽다”고 덧붙였다.
어느 누구도 완승할 수 없는 게임의 법칙
‘어느 하나 속 시원할 것’ 없는 합의였던 것은 분명해 보인다. 어느 쪽도 완승할 수 없는 협상테이블의 조건을 고려한다 해도 이번 합의에 대해 언론사들의 반응이 미지근한 것은 이색적이다. 결과적으로 노사의 실리에 의한 ‘나누어 먹기 식’ 합의였다는 판단에 따른 반응으로 보인다.
그러나 문제는 이번 합의가 노사 양쪽의 양보에 따른 결과로 보기 어렵다는 점이다. 노동계는 노조 전임자 임금 지급 금지 3년 유예, 해고 사유 서면 명시, 부당해고에 대한 금전보상제 등을 성과로 꼽았으나, 복수노조 허용 3년 유예 및 필수공익사업장의 범위 확대, 파업시 대체근로 허용 등과 맞바꾼 대가로 보기에 터무니없는 내용이다.
필수공익사업장 범위 확대 및 파업 시 대체근로 허용 등의 조항은 노동자들의 자주적 단결권과 파업권을 훼손하는 것으로 노동기본권 자체를 심각하게 위협하는 것이다. 뿐만 아니라 서면을 통한 해고통지나 부당해고시 금전보상제 조항은 실효성이 없거나 관행화된 것을 현실화한 것에 불과해 사실상 하나마나한 내용이라고 보아도 무방하다.
노사정위의 구조적 한계를 도외시
그런 까닭에 이번 합의에 대해 절차상 정당성 운운하며 ‘야합’이라고 한정짓거나 서로의 양보에 의한 합의였다는 식의 주장은 노사정위의 구조적 한계를 도외시한 결과다.
이미 지난 시기 노사정위에서 ‘정리해고제와 파견법적용에 동의한다’는 등 노동자들의 권리를 침해하는 합의를 도출하기도 했다. 노동자들에게 불공정한 구조일 수밖에 없는 노사정위 체제가 노동문제를 해결하기 부적절한 구조임이 이번 911합의 혹은 그 이전 시기의 노사정위를 통해 증명된 바, 합의에 대한 평가를 넘어 노사정위 체제 자체에 대한 근본적 검토가 필요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