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노 법사위 점거로 사실상 처리 무산
비정규법안의 29일 처리가 민주노동당의 법사위 점거농성으로 사실상 무산된 것으로 보인다. 열린우리당과 한나라당이 29일 국회 법사위 전체회의를 열지 않기로 결정한 것이다. 이뿐 아니라 당초 합의했던 재논의도 더이상 이루어지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민주노동당은 전날 거대 양당의 비정규법안 처리 합의에 대한 사전 정보를 입수하고 대응 방침을 논의하기 위해 오후 8시부터 약 2시간 동안 의원단, 최고위원회 연석회의를 가졌다. 이 결과 새벽 1시부터 권영길, 단병호, 강기갑 의원 등 5명의 국회의원과 보좌진 등 당직자 40여 명이 합세해 법사위 회의실을 점거, 비정규법안 처리 '저지'를 위해 농성을 벌였다. 이로 인해 결국 29일 법사위 상정은 가까스로 막을 수 있게 됐다.
이에 회의장 바깥에는 10시에 예정된 회의를 진행하려다 회의장 진입이 가로막힌 안상수 위원장, 이상수 노동부 장관 등 여야 법사위원들이 법사위 위원장실에 모여 긴급히 대책을 논의하기도 했다. 이 자리에서 한나라당을 중심으로 일부 의원들이 30일 본회의를 앞둔 만큼, 이날 법사위 전체회의를 강행해 관련 법안을 처리해야 한다며 '경위권 발동' 등 강경책을 안상수 법사위원장에게 주문하기도 했다. 임종인 열린우리당 의원 등 다른 쪽에서는 법사위 회의를 진행해야 한다는 점은 동의하면서도 비정규법안 처리는 제외하고 나머지 법안만 처리하는 형태의 '조건'을 민주노동당 측에 제안하자는 의견도 있었다.
최순영 공보-김한길 원내대표 회동, 입씨름만 난무
한편 이런 상황이 진행되는 와중에 민주노동당 최순영 공보수석은 김한길 열린우리당 원내대표와 만나 비정규법안 관련 처리문제를 논의했다. 민주노동당 최순영, 이영순 공보수석과 현애자 의원은 법사위 회의장 점거가 계속되고 있는 상황에서 열린우리당 원내대표실을 찾아 김한길 원내대표, 최용규 원내부대표, 이목희 전략기획본부장, 김동철 법사위 여당측 간사, 선병렬 의원, 우원식 의원 등과 만나 비정규 3법 처리 문제에 대한 해법을 찾고자 논의를 시도했다. 그러나 여당 측은 회동 시작 전부터 민주노동당의 법사위 회의장 점거에 대해 강한 불쾌감을 나타내며 반발했던 것으로 전해졌다.
특히 선병렬 의원은 "안상수 법사위원장이 질서유지권을 발동해야 한다"며 "민노당에 (비정규직)법안 처리를 안 한다는 조건을 내거는 일은 절대 없을 것"이라고 발언하는 등 강경한 입장을 내보인 것으로 알려졌다. 또한 회동에 참석한 이목희 의원도 "큰 야당은 본회의장을 점거하고, 작은 야당은 상임위장을 점거하고 있다"며 "민주노동당은 점거노동당"이라는 수사까지 동원하며 이번 법사위 회의장을 점거한 민주노동당을 맹비난했다.
비정규법안 재논의 어려울 듯, 우리당 연내처리 방침
아직까지 여당과 민주노동당 사이의 회동결과가 알려지지 않고 있으나 이렇다 할 반등이 있지는 않을 것으로 보인다. 이는 여야 거대정당이 지난달부터 계속적으로 '처리 의사'를 시사해 온 데다, 지난 7일에도 여야가 밀실합의 후 기습상정을 시도했다가 민주노동당과 일부 열린우리당 의원들의 반발로 간신히 무산되었기 때문이다. 또한 여당이 재론의 의지가 있었다면 이날 이상수 노동부장관과 노회찬 의원 사이에 합의된 '15일간 재논의'를 적극 활용할 수도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이에 대해서는 민주노동당이 기자회견에서도 밝혔듯 "거대양당은 어떠한 의미있는 실천도 보여주지 않았"으며 "그나마도 길지 않은 시간을 한나라당은 전효숙 헌재소장 임명동의안 저지를 위해, 열린우리당은 당청간의 알력과 갈등으로 더 허비"했다.
민주노동당은 아직 "비정규직 법안에 대한 약속된 재논의에 임해줄 것"을 요구하면서 법사위 점거 농성을 계속하고 있다. 결국 여야가 민주노동당에 조건부 법사위 회의 진행을 제안하면서 일정 부분 타협 분위기가 형성돼야 민주노동당 측이 다시 한 번 재논의 카드를 사용할 수 있겠으나 이 같은 기대처럼 그림이 나오기는 어렵게됐다.
법사위 개의를 위한 권한을 가지고 있는 한나라당 이상수 법사위원장은 비정규직 법안 처리를 하고자 ‘경위권 발동’ 등을 통해 법사위 전체회의를 강행치 않겠다고 밝혔다. 또한 다른 의견이었던 비정규법안 처리제외의 ‘조건 제시’도 하지 않는 다는 방침이다. 한나라당 입장은 “이렇게 되면 비정규직 법안에 대해 민주노동당과 타협한다는 인상을 줄 수 있어” 아예 제안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열린우리당도 이에 크게 불만이 없는 분위기다. 29일 법사위 회의가 무산되면 30일 본회의에 영향이 있음에도 여당은 전날 한나라당과 29일 비정규법안 처리를 합의하면서 이미 다른 사안들도 사전에 준비를 마친 듯하다. 이와 관련해 김형오 한나라당 원내대표는 연합뉴스와의 전화 인터뷰를 통해 "30일 처리할 안건은 거의 다 합의가 돼서 지금 딱히 (여야 원내대표가) 볼 필요는 없다"고 밝히기도 했다.
결국 열린우리당은 29일 경위권 발동이 됐든 조건부 개의가 됐든 어떤 형태로도 법사위 전체회의 진행이 어려워진 만큼, 다음 주 중 다시 기습적으로 법사위 전체회의를 소집해 비정규직 법안을 처리할 것으로 보인다.
그렇지 않다면 최악의 경우 여당이 본회의에서 국회의장 직권상정을 통한 처리를 시도할 수도 있을 것이다. 이러한 의견은 이미 열린우리당 내에서 공공연히 흘러나오고 있는 상황이다. 어쨌든 여당 입장에서는 이번 정기국회 회기 내 비정규법안 처리 방침에는 변함이 없는 것 만은 분명해 보인다.
정치권 재논의가 이루어지지 않고 오히려 거대양당이 '연내 처리' 등 강하게 밀어붙이고 있는 상황에서 향후 민주노동당의 대응이 주목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