빅3, 통합신당, 당사수파, 친노, 반한나라, 개헌. 오는 12월 대통령 선거를 앞두고 제도정치권은 이미 핵분열을 시작했다. 각 정치세력들이 대권을 향해 각개약진하고 있다.
노동, 민중, 통일, 시민운동을 비롯한 사회운동진영 각 정치세력들에게 있어서도 대선은 놓칠 수 없는 ‘빅 이벤트’다. 민주노동당과 민족․통일운동단체들을 중심으로 한 한국진보연대가 10일 공식 출범했고, 시민운동단체들로 구성된 ‘창조한국미래구상’도 정치세력화를 선언하고 오는 12일 대토론회를 개최한다. 민주노동당과 한국사회당도 각각 대선 체제 구축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그야말로 대선을 앞두고 비/제도권 할 것 없이 각 사회․정치세력들이 소리 없이 꿈틀되며 격동의 2007년을 예고하고 있다.
이런 가운데 지난 9일 국가인권위원회에서는 연구자들 중심으로 이번 대선의 성격과 전망, 진보진영의 대응방향을 모색해 보는 토론회가 개최되었다. 민주사회정책연구원 주최로 열린 이날 토론회에서는 87년 민주항쟁 20돌을 지나는 현재 한국사회의 정치지형, 대선 국면에서의 진보진영의 대응 방향, 시민/민중운동의 연대, 진보/개혁세력의 정치적 연합 등의 쟁점을 중심으로 다양한 의견이 오갔다.
이날 토론회는 김윤자 한신대 교수가 사회를 맡았고, 정대화 상지대 교수와 김상곤 한신대 교수가 주발제를, 정해구․조희연 성공회대 교수, 김민영 참여연대 협동사무처장, 홍성태 상지대 교수, 이재영 인테넷신문 레디앙 기획이사, 고원 서울대 한국정치연구소 선임연구원 등이 토론자로 참석했다.
정대화, “민주주의 발전 상승에서 하강으로 기울어지는 ‘정치적 반동화기’”
첫 발제는 ‘창조한국미래구상’에 참여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진 정대화 상지대 교수가 맡았다. 정대화 교수는 12일 열릴 예정인 ‘창조한국미래구상’ 토론회에서도 주 발표를 할 예정이다.
우선 정대화 교수는 대선을 앞둔 현재의 정치지형의 특징을 “상승하던 민주주의와 정치발전이 상승에서 하강으로 기울어지는 변곡점 현상이 일어날 가능성이 있다고 생각한다”며 “‘민주적 공세기’의 지형과는 뚜렷하게 구별되는 ‘민주적 퇴조기’ 혹은 ‘정치적 반동화기’의 특성과 닮아 있다”고 요약했다.
정대화 교수는 이어 대선의 정치지형을 형성하는 요소를 분단구조, 민주화, 지역주의, 개혁 등으로 설정한 뒤 “분단구조의 약화와 지역주의적 경향의 약화에도 불구하고, 개혁을 둘러싼 대결구도에서 반개혁적 흐름의 강화가 분단구조와 지역주의에 의해 의연히 뒷받침되는 양상”이라고 분석했다.
“대선 국면에서 시민운동의 새로운 정치적 역할 중요”
▲ 정대화 상지대 교수 |
정대화 교수는 이어 “노동운동을 비롯한 민중운동이 97년 및 2002년 선거와 동일하게 진보후보의 출마를 추진하고 시민운동이 반정치적 감시운동을 선택할 경우 상황은 한나라당과 우파에 유리한 국면으로 전개될 것”이라며 “반대로 한나라당의 집권이 예상되는 상황에서 민주노동당과 민중진영이 정치적 선택의 폭을 유연하게 확장하거나 시민운동이 종래의 감시운동에서 벗어나 정치적 역할을 확대할 경우 과거와 대비되는 선거국면이 조성될 가능성이 있다”고 말했다.
이어 그는 “노동운동과 시민운동의 관계에서 볼 때 노동운동의 주도하에 전략적 선택이 현실화될 가능성은 매우 낮은 만큼 시민운동의 선택이 2007년 대선의 흐름에 매우 중요한 역할을 하게 될 것으로 예상된다”며 대선 국면에서의 시민운동 역할론을 상대적으로 강조했다.
“시민/노동운동 연대, 개혁/진보정치세력 연합해야”
정대화 교수는 구체적으로 시민운동의 정치적 개입 방식과 관련해 “2002년 대선에서 나타났던 노사모 방식과는 근본적으로 구별될 것”이라며 “노사모가 특정 후보에 주목하여 일부 시민사회를 정치적으로 동원하였다면 시민운동은 정책을 중심으로 시민사회의 전면적인 동원을 추구할 것”이라고 말했다.
끝으로 정대화 교수는 대통령 선거를 민주적 발전의 계기로 만들기 위한 전략적 관점으로 “2007년 대통령 선거에 대한 접근은 탈권력정치, 탈지역주의 관점에서 출발하여 다양하고 폭넓은 사회적 연대와 이를 바탕으로 한 정치사회적 연합을 바탕으로 시작되어야 한다”며 “그것의 권력적 표현은 연합권력 혹은 연립정부의 방식으로 현실화될 수 있다는 사실을 수용하여야 할 것"이라며 ‘시민/노동운동의 연대와 개혁/진보 정치세력의 연합’을 제시했다.
김상곤, "사회운동, 정략적 ‘노무현 때리기’ 정확히 바라봐야“
▲ 김상곤 한신대 교수 |
이어 김상곤 교수는 사회운동이 대선에 임하는 전략으로 “정치사회적 실천의 고양기로서의 대선 국면에서 무엇보다도 사회개혁 담론의 국민적 공론화와 업그레이드가 필요하다”고 밝혔다.
그는 사회개혁 담론의 공론화를 위한 전제로 “현재 비난의 대상이 되어 있는 '노무현 현상'은 긍정적인 측면에서든 부정적인 측면에서든 개인 노무현의 독특한 통치리더십 스타일과 캐릭터 외에 한국 현대사의 과도기에 복합적으로 조성된 사회현상에서 비롯된 측면도 있다”며 “이러한 인식하에 사회운동은 수구보수의 정략적인 '노무현 때리기'를 정확히 바라볼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정해구, “아래로부터의 운동의 힘 미약, 정당의 역할 중요”
발제자들의 발제 후 이어진 토론에서 87년 이후 민주화를 버텨 온 두 가지 전선을 ‘개혁전선’과 ‘진보적 전선’으로 요약한 정해구 성공회대 교수는 “제1전선인 개혁전선과 제2전선인 진보전선이 현재는 갈등적이지만, 보완적인 관계고 사회가 진보 쪽으로 더욱 이동하면 더 이상 개혁전선은 필요 없을 수도 있다”고 지적한 뒤 “그러나 거기까지 도달하는 데는 시간이 걸리고, 그것을 버티지 못하고 제1전선이 무너져 내리고 있다”고 분석했다.
이어 정해구 교수는 대선국면에서 사회운동세력의 역할 보다 정당의 역할에 강조점을 뒀다. 그는 “87년 체제는 몇 십 년 동안의 민주개혁운동의 힘이 있었기 때문에 아래로부터 밀어붙일 힘이 있었지만 지금은 그렇지 않다”며 “아래로부터의 운동의 힘이 이미 미약해져 있기 때문에 오히려 중요한 것은 정당의 역할”이라고 강조했다.
민주노동당의 역할과 관련해 그는 “제1전선인 개혁전선이 무너지면, 제2전선이 늘어날 것이라 생각할지 모르겠으나, 전혀 그렇지 않다”며 “개혁전선이 약화되면, 진보전선에도 영향을 미칠 것”이라고 내다봤다.
조희연, “민중진영, 섣불리 시민사회 중심의 국민적 정치운동에 결합할 필요 없다”
▲ 조희연 성공회대 교수 |
또 조희연 교수는 정대화 교수가 제시한 ‘진보/개혁정치세력 연합, 노동/시민운동 연대’론에 대해 “민주노동당을 포함하는 연합정권은 불가피하게 어려운 점이 있다”며 회의적인 입장을 밝혔다. 그는 “민주노동당이나 민중운동은 시민사회 중심의 국민적 정치운동 보다 외부에서 보다 더 급진적인 역할이 있을 것이라고 판단한다”며 “섣불리 시민사회 중심의 국민적 정치운동에 결합할 필요가 없다는 생각이 든다”고 말했다.
“민주세력 집권 10년, 진보의 사회적 기반 오히려 무너뜨렸다”
조희연 교수는 “이제는 정치적 개혁주의에서 사회경제적 개혁주의로의 전환이 필요한 시점”이라며 강조한 뒤 “따지고 보면 현재의 집권세력은 권력을 10년이나 가져놓고도, 진보의 사회적 기반을 오히려 무너뜨려버린 역설이 있다”고 지적했다.
그는 이어 “박정희와는 다른 방식으로 대중들이 살만하다고 느끼게 해주어야 하는데 전혀 그렇지 못했다”며 “민주정부 10년 동안 진보적 민중주의는 없었고, 대중들은 개혁정권의 혜택을 전혀 맛볼 수 없었다”고 덧붙였다.
“보다 급진적인 담론 형성 필요한 시기”
조희연 교수는 “진보 또는 개혁 정권이 앞으로 10-15년 더 연장될 수 있을 정도로 한국사회에서 진보개혁적인 공간이 있을까라는 생각이 많이 든다”며 “지금 대선국면에서는 진보개혁세력의 새로운 시대정신을 대중들에게 제출해야 설득력이 있을 것인데, 그렇지 못하다”고 지적했다.
그는 이어 “시대정신을 진보적으로 재구성하는 데 필요한 컨셉이 뭘까라는 고민이 많이 든다”며 “지금보다 훨씬 더 급진화 될 필요가 있는 것 같다”고 주장했다. 그는 “대중들의 삶이 신자유주의적 세계화의 결과로 고통 받고 있고, 이 고통 때문에 지푸라기라도 잡고 싶은 것”이라며 “보수세력들은 신개발주의 담론들로 이들을 끌어가고 있는 상황에서 이를테면 민주노동당의 부유세와 같은 급진적 생활방식의 담론 형성이 필요한 시기”라고 말했다.
김민영, “시민/민중운동 직접적 정치적 연대 보다 현실의 과제 함께 풀어가야”
▲ 김민영 참여연대 협동사무처장 |
그는 우선 “시민운동은 단일한 전선이 아니고, 이미 여러 갈래의 스펙트럼으로 분화되어 있어 시민운동의 정치적 역할을 하나로 규정하기란 어려운 점이 있다”며 “지난 10년간 정치개혁운동을 전개해왔지만, 이제 그 유의미성이 많이 퇴색되었고, 사회구조개혁을 어떻게 해갈 것인가를 막 고민하는 모색기”라고 말했다.
정대화 교수가 직접적으로 화두로 던진 시민운동과 민중운동의 정치적 연대와 관련해 김민영 협동사무처장은 “정치적 연대 이전에 현실의 과제를 함께 해결해나가는 것이 바람직한 연대라고 생각 한다”고 부정적인 의견을 피력했다.
이어 그는 앞서 언급된 시민운동의 ‘국민적 정치운동’과 관련해 “과거부터 있어왔던 흐름이지만, 대선국면에서 정치공학적으로 흘러버리는 것은 잘못된 방향이 아닌가라는 생각도 든다”며 “지금 상황에서는 정당다운 정당을 제대로 건설하는 것이 더 유의미한 것 아닌가라는 생각이 든다”고 말했다.
홍성태, “민중/시민운동 총체적, 전선적 접근 비현실적”
▲ 홍성태 상지대 교수 |
이어 홍성태 교수는 정당, 시민사회 그리고 시민사회에서 민중운동과 시민운동 등의 주체 설정에 있어 “내적 분화가 상당부분 이뤄진 상황이기 때문에 이를 묶어서 분석하는 것이 현실과 맞지 않다”며 “지금 상황에서 총체적이고, 전선적 접근은 비현실적 부분이 있다”고 지적했다.
또 앞서 토론자들 사이에 회자된 각 운동진영의 연대 문제와 관련해서도 “노동운동 내부만 보더라도 이제는 단일한 노동운동으로 볼 수 없다”며 “노동, 시민, 민중운동 등의 결합을 총체적 결합을 상정하고 얘기하는 것은 문제가 있다”고 덧붙였다.
이어 홍성태 교수는 현재의 정치지형에서 대응에 있어 앞선 정해구 교수와 마찬가지로 ‘정당’에 강조점을 뒀다. 그는 “민주화의 핵심 결과는 사실상 정치의 정상화"라고 지적한 뒤 ”그 점에서 정당은 여전히 중요하다“고 밝혔다.
이재영, “한나라당 집권 민주화 퇴조라고만 할 수 없다”
이재영 인터넷신문 레디앙 기획이사는 우선 정대화 교수가 입론으로 제기한 ‘한나라당, 뉴라이트 등의 보수대연합에 따른 정치적 반동화기’ 분석에 대해 “한나라당이 집권하는 것을 87년 체제로 구축된 민주화의 퇴조라고만 볼 수 없다”며 “개혁정부 입장에서는 반동화라고 볼 수 있지만, 87년 체제만 놓고 보면 그렇지 않다”고 정면으로 받아쳤다.
이재영 기획이사는 “87년 체제는 절차적 민주주의가 진전된 것이고, 경제사회적 권리는 정체되어 있는 체제”라고 규정했다. 이어 그는 “한나라당의 집권이 절차적 민주주의의 퇴조를 가져오거나, 열린우리당의 집권보다 민중생존권의 퇴조를 가져 올 것인가”라고 반문하며 “그렇지 않다. 열린우리당이 집권하더라도 한나라당의 집권과 질적 차이가 나타나지 않을 것”이라고 잘라 말했다.
“정치연합, 이래저래 불러들이고 싶어 하는 열린우리당만이 유일한 파트너”
이재영 기획이사는 또 정대화 교수가 제기한 ‘진보/개혁정치세력 연대’ 문제에 대해서도 “‘정치적 수혈론’에 지나지 않는다”고 일축했다. 그는 “대선국면의 정치상황에서의 힘은 득표력인데, 한나라당과 열린우리당이 볼 때 시민사회는 득표력이 없다”며 “그런 힘의 측면에서 연합권력 내지 연립정부의 측면보다는 수혈론에 가까운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이재영 기획이사는 “시민사회가 연합을 한다고 하더라도 누구와 연합을 할까의 문제인데, 한나라당의 경우 다른 곳에서 수혈을 안받더라도 집권할 가능성 크고, 민주노동당의 경우는 수혈을 받더라도 집권가능성이 없기 때문에 이 둘은 연합에 있어서 상수”라고 말했다.
또 그는 “현재 대선 국면에서 유일한 변수는 실제 집권 가능성은 거의 없는데, 이래저래 불러들이고 싶어 하는 열린우리당만이 현실적으로 가능한 유일한 연합 파트너”라며 “그렇다면 과연 열린우리당과 연합할 수 있는 정책적, 이념적 동질성이 있는가를 판단해야 한다”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