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무현 대통령이 4년 연임제를 제안하고 나왔다. 또 들썩한다. 연일 뉴스를 몰고 다닌다. 10% 지지받는 대통령이 나머지 90%를 수시로 들었다 놨다 한다. 대단하다. 노무현이라는 캐릭터가 대단하고, 무엇보다 대통령이라는 직책이 갖는 의제설정권이 대단하다. 대통령이 갖는 권한 중 가장 강력한 권한이 의제설정권이라는 말이 있는데 실감 팍팍 난다.
옛날에 땡전뉴스라고, 9시 땡 하면 "전두환 대통령은 오늘..."로 시작하는 뉴스가 있었다. 물론 지금은 절대권력에 바짝 웅크렸던 과거 미디어 환경과는 상황이 다르긴 하다. 사회 곳곳에서 민주화가 이루어진만큼 미디어 역시 땡전뉴스처럼은 아닌 환경에서 살고 있다. 그런데도 노무현 대통령은 특유의 방식으로 미디어를 쥐락펴락 한다. 작년 12월 민주평통자문회의 연설 이후부터는 아주 작심을 하고 나선 모양이다.
노무현 대통령은 이미 한 나라의 신망 받는 대통령으로서의 지위를 상실했다. 정확히 말하면 신자유주의 지배분파의 한 수장으로 존재할 뿐이다. 이처럼 지지 기반을 잃었음에도 불구하고 연일 뉴스메이커로 주목받는 건 역시 대통령이라는 막강한 권한이 있기 때문이다. 노무현 대통령은 행사할 수 있는 모든 권한을 발휘하며 정국을 주무른다. 알 만한 사람은 다 알지만 집권 마지막 해를 절묘하게 요리해서, 대선 이후 권력 재편 과정에서 일정한 입지를 마련하겠다는 노림수가 훤히 보인다.
4년 연임제 던지고, 중대선거구제 던지고, 남북정상회담 던지고, 대통령 조기 사퇴 던지고, 그리고... 앞으로도 예기치 못하는 이런저런 카드를 내던질 것으로 보인다. 이 모든 게 대통령이 의제설정권을 갖고 있기에 가능하다. 이번에도 그랬다. 대부분 별 생각 없이 자고 일어난 아침에 기자들을 불러다놓고 4년 연임제를 툭 던졌다. 기자들은 바빠지고, 별 생각 없던 오피니언들도 저마다 한마디씩 내뱉는다. 추이가 어떨까 여론기관도 바빠지고, 정치세력들도 입장 표명하느라 분주하다. 50% 지지를 받건, 10% 지지를 받건 그건 하나도 안 중요하다. 대통령이니까.
<민중언론참세상> 논평에서 주장한 것처럼 노무현 발 개헌 논의는 기만이다. 대통령 선출 방법을 거론하는 개헌 논의는 그 자체로 얼마든지 이야기할 수는 있다. 아닌 말로 5년 단임제보다는 4년 연(중)임제가 나쁠 이유가 없다. 민주주의의 형식적 측면만 놓고 보면 오히려 적극적으로 받고 볼 일이다. 그런데 노무현 대통령 발 개헌 논의는 신자유주의 지배질서 재편이 예고되는 시점에서 특정 지배분파가 정치적 주도권을 쥐기 위한 수단으로 제기하고 있다는 점에서 몹시 언짢은 일이다. 의제설정권을 갖는 지배분파가 의제설정의 주도권을 포기할 이유는 없겠지만, 단지 대통령 선출 방식 문제만 개헌 논의 대상으로 삼는 데 대해서는 호락호락 넘어갈 일이 아니라는 이야기다.
이럴 때 법 공부를 좀 한 사람들이나 베네주엘라 민중헌법 같은 선진헌법을 좀 아는 사람들이 이제 한국에서도 바야흐로 민중헌법 논의를 본격화 할 때가 시작되었다는 식의 주장도 해주고 그랬으면 좋겠다. 신자유주의 축적체제는 유지하되 지배분파와 지배자만 재생산하기 위한 형식적이고 정략적인 개헌 논의에 맞서, 노동자 민중이 사회화와 사회공공성에 기반한, 신자유주의를 넘는 민중헌법 개헌 논의를 시작하자.. 뭐 이런 주장들...
하나의 사례지만, 노동운동이 이런 거시적인 의제를 설정하고 현실에서 치열하게 논쟁을 벌이며 논박을 벌일 날은 언제쯤 올까. 그런 생각으로 노동운동의 의제설정권에 대한 단상을 써본다는 건데...
노동운동은 왜 사회 의제 설정에 나서지 못하나
세상의 중심이 노동자이고, 노동자계급이 이 세상을 변혁하는 주체라 하는데, 지금 세상을 바꿔보겠다는 노동운동이 갖는 의제설정능력, 의제대응능력은 어느 정도일까. 정확한 데이터를 통해 정리하긴 힘들겠다. 그런데 가령 근래 가판신문 지면 1면이나 9시 뉴스 첫뉴스에서 노동자, 노동자 삶, 노동자 투쟁 관련 새뜸이 하루를 들었다 놨다 한 적이 몇 번이나 있었던가. 근래 노동자, 노동조합, 노동운동의 무언가가 세상을 발칵 뒤집어놨다는 소식이 몇 번이나 있었던가.
한미FTA 저지투쟁, 사상 최대 무기한 총파업, 노동악법 분쇄투쟁, 산별노조시대 활짝, 공무원노조 민주노총 직가입 등 2006년 민주노총이 뽑은 10대뉴스도 1면 탑에, 9시뉴스 첫 소식에 나왔던 적이 있었던가? 음.. 민주노동당 의원들이 비정규악법 통과에 화를 내며 단상을 점거하던 장면도 떠오르는데 그것도 1면은 아니었던 것 같고...
조금 더 거슬러 올라가면, 정확히 기억나지는 않지만, 이수호, 이용득 양대 노총 위원장이 노사정대표자회의를 한다고 했을 때...? 기아자동차 노조 비리 사건이 나서 고개 숙이고, 강승규 수석부위원장이 비리로 물러나면서 고개 숙이고...? 안 좋은 그림만 생각나는군...
이런 배경에는 물론 미디어가 민주노총의 부정적 측면을 부풀린 데서 기인하는 요소가 크다. 시시때때 비리와 도덕성을 문제삼고, 때에 따라서는 이익집단으로, 때에 따라서는 폭력 과격 집단으로 몰아붙이는 저급한 미디어의 속류 관행이 이를 부추겨왔다. 그래서 노동자 당사자를 제외하면 노동운동은 우리 사회 부정적인 구성 집단이라는 이미지가 늘 따라다니는 지도 모른다.
지난 몇 년간 자본은 현장에서 치밀한 노동유연화 공세를 퍼부었고, 정부는 노동운동 전체를 놓고 현장에서부터 노조운동 지도부까지 효과적으로 관리해왔다. 20년 노동운동 과정에서 배출된 일부 관료들이 신자유주의정권의 노동정책을 좌지우지하면서부터 이미 승패는 예고된 것인지도 모른다. 현실 노동운동의 생리를 누구보다도 속속들이 꿰뚫고 있는 데다, 사회적 합의주의와 같은 매혹적인 전술을 운용하며 노동운동 안팎을 관리하는 이상, 노동운동이 자주성과 계급성을 견결히 지켜낸다는 것은 전노협 시절보다도 두 갑절, 세 갑절 더 어려운 일이 아닐 수 없다. 민주노조운동이 방어와 후퇴의 길을 걷게 된 건 객관적 환경이나 주체적 요인 모두를 볼 때 필연이었던 셈이다.
10년 전 96,97년 총파업투쟁과 이후 정리해고제와 신자유주의 구조조정 반대 투쟁하다 힘을 소진하고, 참여정부 등장하면서는 비정규법개악과 노사관계로드맵 대응하다 진이 빠지고 말았다. 이수호-조준호 집행부가 3년간 민주노조운동을 잘 못 이끈 측면도 많지만, 노동운동 전체가 무엇을 해야 하는지에 대한 돌파구를 찾지 못했다는 점에서 책임 공방만 할 일은 아닐 듯 하다.
상황과 경우가 어떠하든 지금 민주노총은 우리 사회 제법 몸집 큰 구성 집단임에도 불구하고 사회의제설정능력 뿐 아니라 의제대응능력에서도 기대에 못 미친다. 가령 정부가 교원평가제를 한다 하면, 그 대안의 목소리를 내고, 정부가 연금을 뜯어고친다 하면 마찬가지로 대안적 실천을 보여주고, 정부가 부동산 정책을 내놓으면 노동자의 주거 문제를 놓고 한판 논쟁을 펼치는 장면을 연출해야 한다는 거다. 때에 따라 공세적인 대응이 없지 않으나 전반적으로는 수세적이고 방어적으로 대처할 수밖에 없는 형편이다. 의제대응이라는 측면에서는 불가피한 측면도 없지 않다. 의제를 먼저 던지는 쪽은 대부분 지배계급 쪽이고, 이는 대체로 노동자를 공격하는 내용을 담고 있어, 우선은 즉각적인 반대 목소리부터 내놓고 봐야 하기 때문이다. 설정은커녕 대응만 하기에도 힘이 부친다는 말이다. 그러다 보니 어느 시점에선가부터 노동운동이 우리 사회 진보를 위해 의제를 던지고 사회적 이슈로 만들어내는 일에 엄두를 내지 못한 채 험한 길을 걸어오게 된 것이다.
국민파, 중앙파, 현장파
민주노총은 합법화 이후 '국민과 함께하는 노동운동'을 제기했다. 민주노총이 제기한 사회개혁투쟁은 이른바 국민파의 발흥과 함께 상당한 사회적 영향력을 끼쳤다. 개혁과 민주주의 의제가 세상을 호령하던 시기, 민주노총이 던진 사회개혁 이슈는 사회적 의제 설정의 맥락에서 큰 의미를 갖는 일이었다. 말도 좋았다. 국민과 함께하는... 그러나 거기까지였다. 민주노총은 사회개혁투쟁 이후 사회 진보를 향한 의제를 설정하는 다음 모습을 보이지 않았다. 노동운동도 그랬다. 개혁과 민주주의 의제가 시효 만료되는 과정에서 다음 의제를 찾지 못한 채 머뭇머뭇하고 말았다. 신자유주의 노동정책은 개혁의 이름으로 노동자의 가슴에 칼날이 되어 돌아왔다. 노동운동은 방어 모드에 돌입했다. 현장을 향한 개혁의 반동성은 신자유주의 세계화 흐름과 맞물려 가속도를 냈고, 노동자를 분할했고, 비정규직을 양산했으며, 노동유연화를 강화했다. 노동운동은 신자유주의 반대라는 방어 진지를 구축하기조차 힘겹게 되었다.
사회적 교섭 전술은 방어의 미화된 표현에 불과했다. 그나마 효과적인 방어였는가 평가하자면 그렇지도 않다. 자본과 정권은 떡 하나 주면 안 잡아먹지 전술로 만날 때마다 뜯어먹었고, 하나씩 내주던 민주노총은 결국 작년 9월 11일 모든 걸 다 내주고 말았다. 미련퉁이들, 혹은 나쁜 사람들...
노동운동이 사회개혁투쟁 의제 이후 진보적인 의제설정에 나서지 못한 배경에는 민주노동당도 한 자리를 한다. 익히 알고 있듯이 민주노동당은 96,97년 노동자총파업이라는 계급투쟁의 산물이다. 노동운동의 지체를 짚는 한 민주노동당과의 함수관계를 거론하지 않을 수 없다. 노동운동의 다수는 민주노동당이 그것을 해주기를 바랬다. 민주노동당은 그것을 하겠다고 자임했다. 사회개혁투쟁 의제를 주도적으로 만들고 이끌었던 이른바 국민파 노동운동도, 노동자 정치세력화는 민주노동당이 해야 한다는 신념을 갖고 있던 이른바 중앙파 노동운동도 모두 민주노동당에 대한 절대 지지를 선언했다. 민주노총의 민주노동당에 대한 절대 지지, 배타적 지지는 국민파와 중앙파의 공모였다. 이런 노력으로 민주노동당은 진보운동의 정치적 대표체로 인식되기에 이르렀고, 국회의원 10명을 배출한 지난 총선 때, 구동파 이후 노동운동 20년이 낳은 정치적 결실이라며 자축한 바 있다.
민주노동당의 의제설정능력과 의제대응능력은 몇 %쯤 될까. 민주노동당 지지 여론이 보통 8-9% 정도 나온다고 본다면 그 정도쯤에서부터 소수당이긴 하지만 선명정당, 정책정당, 진보정당이라는 인센티브를 적용한다고 보면 15-20%까지 쳐줄 수도 있겠다. 문제는 언론발이 아니라 사회 진보를 위해 던지는 의제가 계급적 진정성을 담는가에 있다. 부유세, 무상의료, 무상교육, 사회연대적 성장, 사회연대적 복지, 증세 정책 등으로 표상되는 민주노동당의 정책과 의제 설정이 개혁과 민주주의 의제 다음을 대체하고 있는가 라는 점이다. 많은 평가가 필요한 대목이다. 또 많은 평가를 해야 할 시기이기도 하다.
96,97년 이후 노동운동이 방어와 후퇴의 길을 걸어왔다고 단정하면 항변도 없지 않을 듯 하다. 이른바 현장파의 의제설정과 실천은 국민파나 중앙파의 그것과 큰 맥락에서 결이 달랐다. 현장파는 사회개혁투쟁이 갖는 계급적 안일함을 지적하고, 신자유주의 세계화와 노동정책에 맞서는 직접적인 방어전략에 힘을 쏟았다. 대우자동차 해외매각반대투쟁, 2003년 열사투쟁, 비정규직노동법개악 저지투쟁, 한미FTA 저지투쟁 등에 몸으로 맞서며 버팀목을 자임해왔다. 노사정이 한 번씩 만날 때마다 떡 하나씩 빼앗기고 만신창이가 되는 모습을 보며 분노했고, 민주노동당이 그 역할을 하게 하면 된다며 무기력하게 방치하는 모습을 비판했다. 그러나, 현장파 역시 노동운동과 우리 사회 진보를 위한 대안적 의제를 제시하는 당당한 주체인가 라는 질문에는 당장 후한 점수를 주기 어렵다. 냉소적으로 이야기하자면 현장파는 현장을 지키겠다고만 했지 그 다음을 보여주지 않았다. 정치적 전망을 제시하는 데도 여간 힘들어하지 않았다. 그 치열한 저항과 헌신성의 표출에도 불구하고.
그러나 현장파, 그 약간의 가능성에 주목한다. 신자유주의 세계화에 맞서, 특히 한미FTA 저지 싸움을 통해 노동운동의 대응전략을 고민하기 시작했고, 산별 논의 과정에서 지역에 주목하고 노동운동 발전전략과 반자본 운동의 거시적 그림을 그려야 한다는 과제 인식에 한 걸음 성큼 다가서고 있기 때문이다. 노동운동 발전전략 논의의 성과에 따라, 지역과 현장에 기반한 정치기획의 구체성에 따라, 새로운 정치적 전망을 여는 실마리가 마련될 수 있을 것이다.
계급투쟁의 시대정신은 용기 있는 정파를 기다린다
07년 한국의 노동자는 비정규법 개악, 노사관계로드맵이 관철된 이후의 현장에서 살아가야 한다. 이건 누차 강조하지만 개혁과 민주화 의제의 소멸과 함께 만들어졌다. 즉 반동적 신자유주의 개혁을 놓고 정면승부를 펼칠 수밖에 없는 현실을 맞게 되었고, 노동운동은 이 현실 위에서 대안적 의제를 던지고 또 정치실천을 기획해야 한다.
의제설정이란 무릇 정치적, 정책적 기획을 동반한다. 다시 말해 의식적으로, 목적하는 바를 이루기 위해 사회 이슈를 만들고, 정치적, 사회적 실천으로 이어질 수 있도록 하는 문제이다. 그런 점에서 노동운동의 의제설정은 노동운동을 이끌어가는 '의식적인' 주체가 '의식적으로' 만드는 문제이다. 의제 형성 측면에서 주요 연맹의 지도부나 내셔널센터로서의 민주노총의 지도부가 그런 역할을 하는 경우가 많지만, 들여다보면 연맹이나 민주노총이 우리 사회 진보를 위해 무엇을 해야 하는 지를 기획하는 주체는 따로 있다. 노동운동의 정파 주체들이다.
정파에 대한 부정적 인식은 장난이 아니다. 자본이나 정부나 미디어는 걸핏하면 개똥이파는 과격하고, 소똥이파는 온건하고 식으로 줄세우듯 노동운동의 정파를 취급한다. 이번 민주노총 5기 임원 선거 후보에 대해서도 그렇다. 한 유력한 언론이 후보 등록 보도를 한답시고, 카피 뽑아 놓은 거 한 번 보자. "양경규 씨, 商議노조 출신 투쟁파 / 이석행 씨, 대화ㆍ투쟁 병행한 활동 / 조희주 씨, 강경파 조직 핵심 인물" 대부분의 미디어에서 민주노총 선거 후보를 다루는 이같은 방식이 퍽 익숙하긴 하다. 오죽하면 그러려니 하고 실소하고 넘기기도 한다. 미디어의 저질스럽고 못된 습성은 앞으로도 쉬 고쳐질 것 같지는 않다. 각설하고.
한편 문제는 노동운동 내부에서도 정파에 대한 여론이 그리 좋아보이지 않는다는 거다. 폐해.. 패미리.. 파벌.. 줄세우기.. 패권주의.. 야합.. 분열.. 이런 이미지들이 떠돌아다닌다. 들여다보면 그런 걸 조장하는 수준 떨어지는 정파들도 없지는 않아 보인다. 그러나 노동운동의 정파가 자신의 고유한 노동운동전략 노선을 갖고 이를 실현하기 위해 벌이는 모든 노력은 정당하다. 그 자체를 부정하는 일은 없어야 한다. 정말 문제는 정파가 민주노조운동을 넘어 노동운동전략과 한국 사회 진보를 위한 의제설정능력을 얼마나 갖추는가, 갖출 수 있는가 하는 점이다.
07년은 대통령 선거가, 08년에는 총선이 있다. 대선과 총선을 거치는 동안 우리 사회가 어떤 양질적 변화를 거칠지를 지금 단정하기는 어렵다. 어떤 성격의 지배체제가 들어서고, 어떤 정책과 노선 기조가 주류담론을 형성할지를 예측하는 것도 쉬운 일은 아니다. 한국 사회를 지배하는 지배분파들의 지배담론도 변화하기 마련이고, 어떤 정파가 어떤 기획으로 지배담론을 다루느냐에 따라 지배이데올로기나 지배질서도 영향 받기 마련일 테니까.
대체로 예상 가능한 건 특히 총선을 경과하며 신자유주의 지배분파간 연합 질서가 형성될 것이라는 점이다. 이건 패배적인 전망이 아니라 현실 정치세력간 힘 관계를 고려할 때 변수가 없다면 그렇게 될 거라는 판단이다. 지배적인 담론, 또는 의제설정도 자본분파 내지 신자유주의 정치분파들이 주도하게 될 텐데, 이들의 담론과 의제 역시 민주화와 개혁 차원을 비약적으로 뛰어넘는다고 봐야 한다.
대안 의제설정, 사회체제 논쟁 불가피
거듭 지적하지만 민주화와 개혁 담론은 시효가 다 됐다. 물론 앞으로도 보수세력과 개혁세력간 크고작은 논란은 계속 될 것이다. 그럼에도 시효가 다됐다는 이야기는 과제가 완결되었다는 의미가 아니라 더 이상 지배분파간 차별성이나 폭발적인 정치 쟁점이나 사회적 이슈로 발전할 가능성이 희박하다는 걸 뜻한다. 4대 개혁 의제 이후 보수세력과 개혁세력간 가장 큰 쟁점이 되었던 전시작전권 반환 문제도 성격이나 범위로 볼 때 분단문제 내지 한반도 평화 문제와 연동된다. 일각에서 시민운동이 나서서 개혁과 진보가 만나는 모양을 한번 만들어보자는 시도가 본격화되는 모양이다. 의지는 가상하나 담론이나 의제 설정에서 고전을 면치 못할 것이고, 미래를구상하고 실행하는데 부침이 만만치 않을 것이다.
07년 이후 한국 사회 계급투쟁 담론이나 사회 의제는 남북 관계와 한반도 평화 문제, 사회적 빈곤 해결 문제, 경제성장과 부의 분배를 둘러싼 문제를 놓고 본격화될 것이다. 때문에 사회체제 문제를 직접 거론하는 것도 피하기 어려운 형국이다. 이 세 가지 담론 내지 사회 의제는 강령 차원이나, 미래 쟁점 차원이 아니다. 이미 현실에서 펄펄 살아있는 쟁점이다. 한나라당이나 열린우리당 대선 후보들이 예고하는 대선 전략 정책이나 기조에도 구체적으로 반영되고 있다. 흥미로운 건 현재까지는 큰 차별점이 보이지 않는다는 거다. 대체로 지배화된 내용과 방식으로, 즉 신자유주의 축적체제를 유지 강화하는 맥락 위에서 이들 의제가 다루어지고 있다. 그런 수준에서는 공모 시스템이 작동한다고 봐도 틀리지 않을 것이다.
노동운동의 정파들이 이를 얼마만큼 정확하게 읽어내느냐, 그리고 이 의제에 있어 어떤 저항담론, 대안담론을 제기하고, 사회적 의제설정을 할 수 있느냐에 따라 노동운동의 의제설정 능력이나 의제대응 능력의 척도도 판가름 날 것이다. 아울러 이 능력을 어느만큼 키우고 확장하느냐에 따라 노동운동 발전전략 뿐 아니라 우리 사회 대안 주체로서의 성장 가능성도 점쳐질 수 있는 거다.
이런 맥락에서 제5기 임원 선거 홍보물에 반영된 각 후보들의 공약을 살펴보면 아쉬운 점이 많다. 물론 대중조직으로서의 민주노총이 이들 담론들을 모두 소화해야 하는 건 아니다. 그리고 민주노총 임원 후보 정책자료에 이런 내용이 모두 담겨야 하는 것도 아니다. 그러나 정파라면 이야기가 달라진다. 앞으로 정파는 이 의제설정능력을 갖출 때 비로소 정파다운 구실을 할 수 있을 것이다. 최소한 이걸 갖추어야 자본 분파와 신자유주의 지배분파들의 권력 재편과 노사관계로드맵 이후에 펼쳐질 노동유연화 공세에 맞서는 대안적 싸움의 근거를 가질 수 있을 테니까.
지금 계급투쟁의 시대정신이 노동운동에게 요구하는 것, 그것은 급진적 발언이다. 남북 관계와 한반도 평화 문제, 사회적 빈곤 해결 문제, 경제성장과 부의 분배를 둘러싼 문제에 대한 급진적인 발언을 쏟아내야 할 때이다. 시대정신은 신자유주의 축적체제를 거부하고, 지배분파의 반동적 작태를 고발하며, 급진적, 진보적 의제설정권을 행사하는 용기있는 정파가 출현하길 목놓아 기다린다. 07년 새해 벽두에.
[기획] "노동운동, 어깨를 펴고"
1회차(1월10일) 시론 : 노동운동의 의제설정 과제
2회차(1월10일) 산별과 지역(1)
3회차(1월11일) 비정규법안과 로드맵 이후 대응
4회차(1월12일) 산별과 지역(2)
5회차(1월15일) 민주노총 연대운동 짚어보기
6회차(1월16일) 사회연대전략 어떻게 할까
7회차(1월17일) 연금 개악 대응은
8회차(1월18일) 노사정위원회와 사회적 교섭 전술이 남긴 것
9회차(1월19일) 민주노조운동의 혁신
10회차(1월22일) 현장에서 지역으로, 지역에서 현장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