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중을 살리는 것은 정책이냐, 담론이냐
1부 사회, 경제 정세에 대한 토론에서, 참가자들은 객관적 정세는 크게 달라지지 않을 것이라는 데 의견을 모았다. 문제는 누가 주체로 나설 것이냐는 점. 토론자들은 진보진영이 거대 담론보다 민중 생활에 밀착한 대안들을 제시할 수 있어야 한다는 데 대체로 동의했다.
이종구 성공회대 사회학과 교수는 보수 세력의 재집권을 저지하기 위한 선거 대책에만 몰두하다보면 시민에게 진보진영의 정체성을 설명하기 어렵게 될 수 있다고 지적했다. 진보진영이 시민의 지지를 받기 위해 이종구 교수는 “복지, 의료, 교육, 주택과 같은 ‘생활세계의 쟁점’을 발굴하고 제기함으로써 실질적인 제도적 개혁을 추진할 수 있는 역량을 입증해야 할 과제가 있다”고 말했다.
강남훈 한신대 경제학과 교수는 한나라당의 대선 독주가 전국민의 보수화 때문이라는 일부 시각에 대해 반박했다. 국민들이 보수정당 지지로 돌아선 것은 현 정부를 비판하는 방법의 하나이며, 개혁 진영에 대한 신뢰도 추락을 반영한다는 것이 강남훈 교수의 주장. 이어 “보수정당의 보수적인 정책 자체를 지지하는 것이 아니라 현재의 고통에서 벗어나기를 원하는 상태라고 판단하는 것이 정확할 것”이라고 전했다.
강남훈 교수는 “민중들이 요구하는 것은 현실성 있는 정책이며, 급진적이냐 개혁적이냐 거시적이냐 미시적이냐 하는 것은 전혀 중요하지 않다”면서 “정치적 현실성이 아닌 경제적 현실성이 관건”이라고 강조했다. 이 자리에서 강남훈 교수는 진보진영의 정책적 대안으로 택지 국유화를 제시하기도 했다.
오건호 민주노동당 전문위원은 “원인은 우리에게 원칙주의가 너무 강하기 때문”이라며 “지금 시점에서 원칙을 강조하는 것은 무능하고, 계급운동을 한다는 것은 현안을 회피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오건호 전문위원은 거시담론에 대한 관성적인 틀을 해방시켜 생활 세계에 초점을 맞춰 대안세력화에 대한 적극적인 노력을 해야 한다고 역설했다.
“축구경기에서 실점 없이 완벽 방어한다고 경기에서 이기지 않듯이, 승패를 판가름하는 것은 실점이 아니라 승점”이라고 비유하며 오건호 전문위원은 진보진영의 대선 집권을 위해 사회공공성에 대한 거대 담론을 벗어나 사회연대전략을 추진해야 한다고 밝혔다.
그러나 ‘미시적, 생활적 접근’에 대한 반대 의견도 나왔다. 장화식 사무금융노련 부위원장은 “거대담론의 과잉이 문제가 아니라 거대 담론이 없었던 것이 문제”라며 “신자유주의 세계화 반대만 이야기했지 우리가 추구하는 것이 무엇인지 국민들에게 알리지 못했다”고 말했다. 장화식 부위원장은 “한미FTA도 한미간 문제가 아니라 계급 문제가 본질이며, 본질에 대한 폭로 없이 국민들의 지지를 얻기 힘들다”며 거대 담론의 차원에서 의제 설정에 과감하게 나설 필요가 있음을 역설했다.
‘진보’ 깃발 아래 가리키는 곳은 제각각
2부에서는 올해 정치 정세 전망과 대선 전략에 대한 본격적인 토론이 열렸다. 최규엽 민주노동당 집권전략위원회 위원장은 “한미FTA 저지 투쟁에서 승리하고 남북정상회담을 성사시켜 수구세력을 몰아내면 민주노동당이 집권하거나 약진할 수 있다”고 자신했다. 이어 “대대적인 혁신을 통해 총선에서 20석을 마련하겠다”고 포부를 밝혔다.
최규엽 위원장이 공개한 민주노동당의 대선기획 전략에 따르면, 민주노동당의 정치활동 목표 중 하나는 사회갈등 의제에 대한 실천적 능력을 드러낸다는 것이다. 최규엽 위원장은 “중소기업 활성화 정책 없이 비정규직 철폐는 현실성이 없으며, 따라서 중소기업 활성화 대책을 만드는 중”이라며 민주노동당과 한국진보연대가 장기적 계획으로 결집해 민중운동의 취약성을 극복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에 대해 김명호 민주노총 기획실장은 명확한 반대 입장을 드러냈다. 민주노동당이 지나치게 당 구조 안에 갇혀 있다고 비판한 김명호 기획실장은 진보진영과 진보정당의 새로운 희망은 정책이 아니라 대중 투쟁에서 비롯된다고 강조했다.
이어 김명호 기획실장은 “대선과 총선으로 이어지는 정치적 격변기를 돌파하기 위해 한반도 평화질서 구축과 신자유주의로 인한 사회양극화 문제에 대한 진단과 투쟁 전망을 제시해야 한다”며 민주노동당에 대한 지지는 전술적 차원에서 고려될 수 있다고 전했다.
손석춘 새로운사회를여는연구원(새사연) 원장은 “현재 국면에서 중요한 것은 고통받고 있는 민중들에게 대선 정국에서 진보 세력이 어떠한 희망을 줄 수 있는가에 있다”고 강조했다. 이어 “그러한 바탕 위에서 욕심을 낸다면 민주노동당 후보보다는 진보의 가치를 대변하는 후보가 당선될 수도 있겠다”고 말해, 미래구상(가)의 대선 전략에 대한 결합을 넌지시 제안하기도 했다.
김정훈 성공회대 연구교수는 민주노동당을 포함한 진보세력이 사회 운동적 이슈에만 몰두해 국가 경영 전략을 세우는 데 무능하다며, 제도정치 역량 강화에 초점을 맞출 필요가 있음을 지적했다. “남미 좌파바람의 사례에서 보이듯 제도정치를 못 뚫으면 절대 진보진영의 위기를 돌파할 수 없다”는 것이 김정훈 연구교수의 주장.
이어 “장기적으로 한국사회의 구조 자체를 정책적으로 변화시켜야 사회양극화, 한반도 평화위기 등 당면한 문제에서 벗어날 수 있다”며 미래구상(가)을 통한 진보진영의 독자후보 선출에 나설 것을 촉구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