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주노총은 비정규법을 인정하나?

[김혜진의 누리하제] 비정규법 개악 폐기투쟁이어야 한다

시행령은 노동법 개악안의 전제 위에 놓여있다.

노동부가 노동법 개악안의 시행령을 내놓았다. 시행령이란 ‘법이 제정되면 그것을 뒷받침하기 위해서 만들어지는 세부항목’ 들이다. 모법을 벗어난 시행령이란 존재하지 않는데, 비정규노동법 개악안의 시행령도 예외가 될 수 없다. 노동부에서는 비정규노동법 개악안을 통과시킨 후 노동계도 여기에 동의한 것처럼 위장하기 위해서 시행령에 노동계의 의견을 듣겠다고 했다. 그런데 그 내용은 기간제 법안의 예외조항에 대한 것, 파견과 도급의 구분 기준, 그리고 파견법의 허용범위에 대한 것이었다. 이 모든 것은 전부 철저하게 정부의 노동법 개악안을 수용할 때에야 논의 가능한 것들이다.

민주노총은 비정규 노동법을 ‘악법’이라고 주장했고 전면 재개정 투쟁을 해야 한다고 했다. 그리고 재개정 투쟁이란 노동법 개악 폐기투쟁의 다른 이름일 뿐이라고 주장했다. 그러나 민주노총 자료 어디를 찾아봐도 노동법 개악을 폐기하기 위한 올해의 사업계획은 전혀 나타나있지 않았다. 몇 가지가 있었는데, 그것은 노동부의 시행령 대응, 산별 단협을 통해서 현장에서부터 노동법 개악의 효과를 막아내는 것, 비정규직 집단가입 운동 등이었다. 산별 단협이 올해 어느 수준에서 성사될 지도 모르는데 그것을 갖고 현장에서 노동법 개악을 막아내야 한다는 것은 ‘선언’ 이상도 이하도 아니고, 비정규직 집단가입 운동은 노동법 개악 폐기 내용이라고 할 수 없으므로, 사실상 노동법 개악 폐기를 위한 올해의 사업계획은 ‘시행령 대응’ 하나라고 봐야 한다.

민주노총에서 시행령 대응계획을 내놓았을 때 많은 이들이 반대를 했다. 시행령 대응이란 결국 모법을 인정할 때에만 가능한 것 아니냐는 것이 핵심이었다. 그런데 민주노총은 ‘우리가 시행령에 대응하는 것은 우리의 요구를 알리기 위해서이며, 그것은 노정협의만을 의미한다’고 주장했다. 절대로 기간제법이나 파견법 개정안을 인정하는 것이 아니라고 주장한 것이다. 하지만 민주노총은 노동부의 부름에 즉각 응답하여 경총까지 참여하는 노사정협의 테이블에 들어갔다. 물론 그 안에서 시행령의 문제점에 대해서 강력하게 이야기를 했다고 하지만 시행령이 예고된 지금에도 여전히 노동부와의 논의 가능성을 남겨두고 있다.

기간제법과 파견법 폐기 없는 시행령 대응은 해프닝이다.

이번 시행령은 정말로 사람들에게 충격적이다. 비정규법안의 실체를 사실상 구체적인 직종을 거명함으로써 아주 적나라하게 보여주었기 때문이다. 추상적인 문구로 가득한 법률에서는 느끼지 못하다가 그것이 구체적으로 나타나니까 충격을 받는 것이다. 이 시행령에 대한 대응은 당연히 모법인 기간제와 파견법을 폐기하는 투쟁이어야 한다. 그리고 이 따위로 시행령을 만듦으로써 자신의 본질을 만천하게 폭로한 노동부에 대한 규탄과 타격투쟁이어야 한다. 왜 그래야 하는지는 내용을 자세하게 보면 확실하게 알 수 있다.

이번에 시행령에 기간제 예외조항을 들여다보자. 내용을 보면 전문적 지식·기술의 활용이 필요한 경우, 정부의 복지정책, 실업대책 등에 의해 일자리를 제공하는 경우를 2년으로 사용기간 제한을 하고 있는 기간제의 예외조항으로 제시하고 있다. 이 시행령이 발효되면 박사학위 소지자, 기술사 등급의 국가기술자격을 가진 자, 교수 및 전임강사, 시간강사, 평생교육시설 교원, 방과 후 교사, 공인노무사, 공인중개사, 공인회계사, 의사, 항공기관사, 항공교통관제사 등 전문자격 31개 부문 소지자 등과 소득 수준 상위 25% 이상의 노동자는 사용자가 기간제한 없이 기간제 노동자를 사용할 수 있다.

예외조항이라는 말의 뜻은 이런 것이다. 자본가들은 기간제 노동자를 제한 없이 마음대로 사용할 수 있는데, 현행 법에 의하면 2년에 한번씩 해고를 해야만 한다. 법에는 2년이 지나면 기간의 정함이 없는 노동자로 간주한다고 되어 있지만 그것은 말장난이고 실제로는 2년에 한 번씩 해고하는 것이다. 그런데 이런 각종 자격증 소지자들은 평생을 계약직으로 써도 된다. 왜냐? 예외조항에 의해서 2년으로 제한이 되어 있지 않기 때문이다.

그런데 언론에서는 ‘이 노동자들은 기간제 법안의 보호’를 받을 수 없이 평생을 계약직으로 일하게 된다면서 안타까워한다. 심지어는 이 법안에 반대하는 개별 노동자들마저도 “우리들을 예외조항으로가 아니라 기간제 법안에 넣어달라”고 요구하는 사태까지 일고 있다.

그런데 기간제 법안의 예외조항이 아니라 기간제 법안의 적용대상으로 넣어달라는 뜻은 ‘앞으로 우리를 2년마다 한 번씩 해고해달라’는 말이다. 기간제 법안의 예외대상이 되면 평생 계약직이고, 기간제 법안 대상이면 2년에 한 번 짤리는 계약직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자본과 정권은 말장난을 한다. “이들은 전문가들이라서 보호가 필요없다”고 말이다. 정확하게 말하자면 “이들은 전문직이어서 2년마다 짜르는 계약직을 하려면 불편하므로 평생계약직으로 사용하는 것이 좋겠다”는 뜻이다.

이쯤되면 도대체 기간제 대상이 좋은 것인지, 기간제 예외조항이 좋은 것인지 알 수가 없게 된다. 당연하다. 둘 다 나쁜 것이기 때문이다. 원래 기간제 법안이 그런 것이다. 노동자들을 2년에 한 번 짜를 것인가, 아니면 평생 계약직으로만 살게 할 것인가를 자유롭게 결정하도록 하는 것이 법안이고, 시행령이다. 그러므로 시행령에 어떤 노동자들이 포함되는가 아닌가는 전혀 중요한 문제가 아니다. 핵심은 그 모법인 기간제법이 모든 노동자들을 계약직으로 사용하도록 만들어놓았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모법인 기간제법 폐기 없는 기간제법 시행령 대응이란 해프닝에 불과하다. 물론 이 말이 시행령에 대응하지 말자는 말은 아니다. 우리가 시행령에 대응하는 목적을 분명하게 하자는 것이다. 우리가 기간제법 시행령에 대응하는 이유는 이것이 기간제법의 성격을 분명하게 드러내고 있기 때문이다. 그들이 기간제법을 만들었을 때 ‘보호’라는 명분으로 2년의 기간을 두었지만 그렇게 두면 자신들도 2년에 한 번씩 노동자들을 짜르고 고용하는 비용이 많이 드니까 예외조항을 많이 만들어서 평생계약직을 쓰려고 한다는 것을 너무나 적나라하게 보여주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우리가 기간제 예외조항에 맞서 싸워야 하는 우리의 방향은 그 시행령의 예외조항 중 몇가지를 빼는 것이 아니라, 기간제를 자유롭게 쓰도록 만들어놓은 그 모법을 폐기하는 투쟁이어야만 하는 것이다.

더 웃긴 것이 파견과 도급의 구분 기준이다. 노동부의 시행령에 보면 이 기준을 엄격하게 구분해서 웬만하면 불법파견에 걸리지 않도록 만들어놓았다. 그런데 우리가 열심히 대응을 해서 불법파견을 인정받을 수 있는 범위를 넓게 만들어놓았다고 해보자. 지금 불법파견 인정을 받은 노동자들이 모두 집단적으로 해고되어 길거리를 떠돈다. 진성도급이라는 미명 아래 전환배치 등 구조조정을 자행한다. 그리고 예전에 불법파견의 지표로 인정되었던 내용을 현장에서 몇 가지 변화를 줌으로써 완전히 변화시켰으므로 이제는 진성도급이라고 주장하고 그것을 검찰과 노동부가 인정해주고 있다. 즉 파견과 도급의 구분기준을 아무리 우리 입맛에 맞게 만들어낸들, 그것은 자본가들에게 현장을 이렇게 바꾸라는 학습 교본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 그런데 우리가 열심히 들어가서 자본가들에게 학습 교본을 만들어주어야 한다는 말인가.

비정규법안을 인정하는 논리

민주노총은 빨리 ‘시행령 그 자체’에 대한 대응의 미련을 털고 노동부를 타격하고 기간제법과 파견법 폐기를 위한 투쟁을 조직해야 한다. 그런데도 여전히 민주노총이 시행령 그 자체에 개입하면서 아마 몇가지 조항에서 예외조항을 빼거나 파견허용업종의 일부를 빼거나 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런데 그것은 노동자들에게 전혀 의미가 없을 뿐만 아니라 정부가 만들어낸 법안을 인정하는 효과 이상도 이하도 아닐 것이다.

그런데 왜 민주노총은 계속 시행령 개입을 이야기하고, 시행령에 대한 노사정협의틀에 미련을 갖고 있는가? 말로는 ‘노동법 개악 무효, 전면 재개정’이라고 주장했지만 실은 노동법 개악안을 인정하고 그 위에서 차별을 최소화하고 싶은 생각 아닌가? 그렇지 않다면 노동법 개악안이 통과된 이후에는 투쟁을 조직하지도 않다가 시행령에 대한 노동부의 부름에 쪼르르 달려가고, 이미 시행령을 통해서 법안의 성격이 만천하게 폭로되었는데도 여전히 협의틀에 미련을 갖고 있는 것을 어떻게 해명할 수 있을 것인가? 게다가 민주노총 기자회견의 제목이 “비정규남용을 억제하는 시행령을 제정하라”라니. 어떻게 민주노총의 진심이 ‘노동법 폐기를 담은 노동법 전면 재개정’이라고 할 수 있겠는가.

그래서 시행령을 통해 노동법 개악 폐기투쟁을 하는 것이 아니라 시행령 그 자체에 대응하자는 말은 결국 “비정규 법안을 인정하고 나중에 몇가지 나쁜 것을 고쳐나가자”는 입장에 서 있다고 나는 확신한다. 이것을 “유연안전성 논리”라고 한다. 이 말은 노무현정권이 이 법안을 통과시키면서 외친 말이지만 동시에 노동운동 내부에서도 심심치 않게 들리고 있는 소리이기도 하다. 이제 법안은 통과되었고 비정규직은 대세이니 그냥 받아들이고 차별을 최소화하자는 논리이다. 이 말은 결국 자본의 논리이고, 그 법안에 의해 피해를 당하는 노동자들의 투쟁을 꺾는 논리이다.

한 노동자는 출근하여 외투도 벗지 못한 상태에서 면담을 하러 가서 재계약되지 않을 것이라는 소식을 들었다고 했다. 아직 계약기간이 며칠 남았기에 일하러 현장으로 내려가려고 하니까 괜히 분위기 망치지 말고 그냥 그대로 집으로 가라고 했단다. 그래서 동료들과 인사도 못한 채 쫓기듯이 회사에서 나왔다고 했다. 집으로 가는 내내 눈물이 펑펑 쏟았다고 했다. 너무 분하고 너무 괴로워서, 너무 억울해서 그래서 노동자들은 투쟁한다. 지금 학교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투쟁하고, 병원사업장 노동자들이 투쟁하고, 전국평생교육노조 동지들이 투쟁하고, 이랜드와 뉴코아 노동자들이 투쟁하고, 철도 노동자들이 투쟁한다. 또 기륭전자 노동자들이 투쟁하고, 하이닉스 노동자들이 투쟁한다. 말도 안 되는 기간제와 불법파견의 굴레에서 벗어나 당당한 노동의 권리를 찾기 위해서 투쟁하고 있다. 그런데 이 노동자들에게, 이 법안의 피해를 고스란히 당하면서도 맞서 싸우는 노동자들에게 그만 투쟁하고, 비정규직이라는 고용형태를 인정하고 차별이나 최소화하자고 이야기하는 논리이다. 그리고 앞으로 비정규직이 될 노동자들에게도 스스로가 비정규직이라는 고용형태를 감수하라는 논리이다.

누가 도대체 이런 말을 하는가? 자본가나 정권이 아니고 도대체 누가 이런 논리를 감히 들이대는가?

노예가 되지 않기 위하여

우리는 투쟁하다 패배할 수도 있다. 그런데 진짜 패배는 패배한 순간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다. 우리는 무기력하다는 것을 각인하여 스스로가 자발적으로 굴종하는 순간 그 때 우리는 완전히 패배하는 것이다. 기간제법과 파견법에 대해서, 비정규직화에 대해서 이것이 일반적인 고용형태라고 승인하는 순간 우리는 패배하는 것이고, 바로 이제부터는 이러한 고용형태에 의해서 우리의 노동권이 파괴되는 것에 순응하면서 노예의 삶을 살게 되는 것이다. 그 때 비록 몇 가지 차별 조치들을 개선한다고 하더라도 노예가 아닌 것은 아니다.

그러므로 동일하게 시행령에 대해 투쟁하는 목소리가 들린다고 해서 이것이 동일한 목소리라고 생각하지 말자. 어떤 이들은 노동법 개악 폐기를 위해서 시행령에 대해 폭로하면서 투쟁하고, 어떤 이들은 노동법 개악을 수용하려고 시행령에 대응한다. 시행령 대응이 노동법 개악 폐기투쟁인 것처럼 왜곡하는 목소리에 속지 말자. 솔직하지 않은 자들이 계속 투쟁을 주춤거리게 하고, 성격에 대해 명확하게 구분하지 않은 투쟁이 우리의 전선을 흔들리게 한다. 상황의 성격을 명확하게 하고, 패배하더라도 패배하지 않기 위해서 우리를 추스르고 투쟁할 수 있을 때 그 때부터 우리의 승리는 시작되는 것이다. 영혼이 패배하지 않는 자를 영원히 패배시킬 수는 없는 법이다.
덧붙이는 말

김혜진 님은 전국불안정노동철폐연대 집행위원장으로 일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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