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동자의힘, “계급적 변혁적 좌파진영과 좌파연합 구성하겠다”
올 대선과 내년 총선을 앞두고 정치권의 핵분열이 가속화되고 있다. 비단 제도정치권 뿐만 아니라 제 사회세력들은 정치사회적 ‘빅쇼’에 대응하기 위한 제 나름의 자기분열과 결집을 반복하고 있다.
이런 가운데 좌파정치조직인 ‘노동자의힘’이 진보진영 내 제 세력과 대선 공동대응을 위한 ‘좌파연합’ 구성을 추진키로 결정했다. 노동자의힘은 지난 12일 정기총회를 열어 이 같은 내용을 골자로 한 대선방침안을 통과시켰다.
이날 결정된 대선방침에서 노동자의힘은 “반신자유주의, 반제반전, 반자본의 기치 아래 이에 동의하는 계급적 변혁적 좌파진영과 함께 정치활동을 전개하겠다”며 “좌파진영의 정치활동 성과를 바탕으로 좌파연합을 구성하겠다”고 밝혔다.
민노당과는 선 그었으나, 독자-경선 후보 가능성 열어둬
노동자의힘은 좌파연합의 파트너를 ‘노동, 빈민, 장애, 여성, 문화, 인권, 학술 등 진보진영 내 제 세력’이라고 다소 포괄적으로 규정했으나, 민주노동당과 한국진보연대 등 민족.통일운동진영 제 세력과는 선을 그었다.
박성인 노동자의힘 중앙집행위원장은 연합의 대상과 관련해 “아직 구체적으로 밝힐 단계는 아니다”고 전제한 뒤 “반제반자본의 입장을 견지해 온 좌파정치단체, 좌파적 지식인들과 제 사회운동진영 그리고 노동현장 조직 및 활동가 등이 제안 대상 범위에 있다”고 말했다.
그는 민주노동당과 한국진보연대 등에 대해서는 “이번 대선은 반신자유주의, 반자본 전선을 어떤 식으로 구축할 것인가에서 중요한 의미를 갖는다”며 “그런데 민주노동당과 한국진보연대 등은 그간 반신자유주의 전선에 대해 분명한 태도를 보이지 않았었다”고 각을 세웠다.
이어 박성인 위원장은 “단순히 누가 대선후보가 되느냐의 문제가 아니고, 전체적인 전선과 세력 재편의 시기에 좌파진영이 향후 5년 내지 10년을 내다보며 독자적인 자기 전망을 세워야 한다”고 덧붙였다.
노동자의힘은 일단 좌파연합 구성 등 큰 틀에서의 대선방침만을 결정했고, 세부 일정과 구체적 사업계획은 차후 논의로 넘겼다. 그러나 노동자의힘은 대선방침안에 “좌파연합을 중심으로 좌파대선후보를 세운다. 단, 좌파후보가 민중경선제 후보인지, 독자출마 후보인지는 추후에 결정한다”고 명시해 선거연합을 비롯해 독자 후보 선출까지 모든 가능성을 열어뒀다.
향후 좌파연합의 숙성 정도에 따라 좌파진영의 독자적인 대선후보 선출까지 대선 개입 수위를 높이겠다는 의지를 분명히 한 셈이다.
이와 함께 노동자의 힘은 (가칭)'좌판을 열자! 내가 민중후보다’ 운동을 통해 아래로부터의 대중적 정치운동을 벌여나간다는 계획이다. 노동자의힘은 “정치선언과 정치실천에 기반한 ‘내가 민중후보다’ 운동이라는 좌파적 대중운동을 통해 대선공간의 좌파 연단을 창출해 나갈 것”이라며 “이 과정에서 부르주아 선거 틀을 뒤흔들고 이 틀 자체에 대한 문제제기도 동시에 이루어질 것”이라고 밝혔다.
한편, 박성인 위원장은 향후 일정과 관련해 “각 단체 및 조직에 공식 제안을 하고, 심도 있는 논의를 진행하겠다”며 “6월 안에는 좌파연합의 구체적 윤곽이 드러날 것”이라고 밝혔다.
향후 내부적 실행력 담보해낼 수 있어야
노동자의힘이 좌파연합을 구성하고 오는 대선에 적극 개입키로 방침을 정했으나, 향후 이들의 행보가 순탄치만은 않을 것으로 보인다.
노동자의힘은 내부적으로 그간 대선방침안을 둘러싸고 격론을 벌여온 것으로 알려졌다. 노동자의힘 내부에서는 “대선국면에 섣불리 결합할 경우 조직이 이를 감당하지 못하여 조직운동에 큰 손실을 끼치게 될 것”이라는 우려 섞인 목소리가 존재해왔다. 표결에서 부결됐지만, 총회 당일 “대선방침 없이 투쟁으로 돌파한다”는 수정동의안이 제출하기도 했다.
반면, 이번 대선과 총선 과정에서 노동자의힘이 “구체적인 정치적 실천을 담보해내지 못할 경우 정치조직으로서의 운동동력을 상실할 것”이라는 정반대의 위기의식도 존재해왔다.
이번 총회 결과만 놓고 봤을 때는 후자의 위기감이 노동자의힘 내부에 더 강하게 작용한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이 같은 내부의 위기의식이 대선과 총선 국면에서 결집력과 실행력을 띤 형태로 전화될 수 있을지는 아직 장담하기 이르다.
박성인 위원장은 “이번 대선방침의 목표와 관련해 내부 견해 차이가 있었지만, 좌파진영이 공동의 정치전선을 형성해야 한다는 큰 틀의 합의를 이뤘다는 의미가 있다”며 “향후 논의를 통해 이번 결정을 더욱 구체화시킬 수 있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연합파트너들, “열어놓고 논의하겠다”
노동자의힘의 내부적 역량과 결집력도 문제지만, 좌파연합의 외부적 조건 역시 만만치만은 않다. 박성인 위원장이 언급한 좌파적 지향을 가지는 정치조직, 사회운동세력, 노동현장조직들은 그간 산개된 형태로 각자의 운동을 진행해왔다. 이들이 대선국면에서 공동의 정치전선 형성이라는 큰 합의를 도출해낼 수 있을지는 여전히 물음표다.
특히 민주노총이 민주노동당에 대한 배타적 지지 방침을 고수하고 있는 상황에서 노동현장조직들의 경우 민주노동당 이외의 정치세력과 연합 내지 연대를 도모하기가 쉽지 않은 조건이다.
반면, 민주노동당 외곽에 있는 정치조직 및 사회운동세력들은 신중한 반응을 보이면서도, 일단 논의의 여지는 열려있다는 분위기다.
최광은 한국사회당 대변인은 “아직 공식 결과를 받지 못했지만, 대선 공동대응에 대해 열어놓고 논의를 진행하겠다”고 말했다. 이어 최광은 대변인은 개인의견임을 전제한 뒤 “대선 대응은 사실상 후보전술이 핵심”이라며 “이 문제를 우회해서 대선 과제와 강령 중심으로만 얘기가 진행되면, 논의가 지지부진해질 수 있다”는 우려를 밝히기도 했다.
조대환 이윤보다인간을 활동가도 개인의견임을 밝힌 뒤 “추상적 수준이 아니라 보다 구체적 수준에서 좌파연합의 상이 제시되지 않으면, 자기 생명력이 약할 수 있다”며 “향후 공식 제안을 받고 논의하겠다”고 말했다. 그는 “민주노동당과 대당적 전선을 구축하기 위한 것이라면 우려스러운 지점이 있다”며 “연합을 한다고 하더라도, 그것은 좌파진영의 자기전망을 모색하기 위한 것이어야 한다”고 덧붙였다.
양효식 노동해방당건설투쟁단 활동가는 대선 대응과 관련해 “민주노동당에 대당해서 후보전술을 포함해 노동자계급의 독자적 선거전술을 전개해야 한다는 입장을 가지고 있다”며 “노동자계급정당 건설을 위한 논의가 진행 중에 있다”고 밝혔다.
김완 문화연대 활동가는 “구체적 제안을 확인해야겠지만, 개인적으로 그 방향과 취지에는 동의한다”고 밝힌 뒤 “그러나 선언적인 연합의 구상이 아니라 실제로 그 구상을 실행할 수 있는 실력과 동력에 대한 치밀한 현실적 검토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운동-정치공학적 원리 사이의 딜레마?
비제도정치 혹은 운동정치 영역의 연합과 연대의 원리는 제도정치권의 그것과 다른 결을 가진다. 당장 좌파진영이 제 아무리 견고하고, 광범위한 정치연합을 구성한다손 치더라도 직접적 정권창출과는 거리가 먼 게 현실이다. 때문에 제도정치권에 비해 특정 정파 또는 인물을 중심으로 한 구심력의 중요성이 덜 하고, 대신 운동노선과 원칙이 보다 강조된다. 그렇다고 현실 정치공학적 원리가 아예 작동하지 않는 것은 아니다. 운동정치 영역의 ‘연합’이 어려운 지점이 여기에 있다.
큰 틀에서 좌파연합의 성사 여부는 이러한 운동적 원리와 정치공학적 원리 사이의 긴장을 어떻게 조율해가냐에 달려있다고 볼 수 있다. 향후 좌파진영이 ‘연합’을 성사시키고, 정치적 격동기에 자기 목소리를 내며 의미 있는 행보를 이어갈 수 있을지 지켜볼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