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주노동당이 비상대책위원회(비대위) 운영 방식과 관련해 자주파와 평등파 간 이견을 좁히지 못하고 있어 29일 열리는 중앙위원회에서 진통이 예상된다. 이날 비대위 구성이 무산될 경우 민주노동당 내부 갈등은 극한 지점에 이르게 될 것으로 보인다.
문성현 대표로부터 비대위원장직을 공식 제안받은 심상정 의원은 27일 “비대위가 비상 체제로서의 역할을 할 수 있는 권한, 책임, 무기가 주어져야 한다”며 총선 비례대표 선출권을 포함한 전면적인 권한 위임을 요구했다. 이에 당내 다수파인 자주파는 “당헌당규 이상의 권한을 비대위에 달라는 것은 무리”라며 완강한 입장을 보이고 있다.
“당 혁신 하자는 데 비례대표 논하는 것 우습다”
자주파의 좌장 격인 김창현 전 사무총장은 개인 의견임을 전제로 “당 혁신에 대한 문제에서 총선 비례대표 선출을 논의하는 것 자체가 우습다고 생각한다”며 “당이 무엇을 반성해야 하고 혁신해야 할지 찾아내고 서로 힘을 합쳐 극복하는 게 우선이지, 향후 있어야 할 자리를 둘러싸고 왈가왈부하는 것은 맞지 않다”고 전했다.
김창현 전 사무총장은 “힘을 모으자는 것이 혁신, 쇄신 없이 미봉하자는 뜻이 아니라 반성과 책임을 분명히 하고 대안을 함께 만들자는 것”이라며 “분당, 분열이 아니라 단결의 관점에서 문제를 풀어내야 한다”고 역설했다.
이어 “심상정 의원이 당을 살리자면서 이런 저런 조건을 제시할 게 아닌데 보기에 안타깝다”면서 “지금 혼자 계신 권영길 의원을 찾아가 위로도 좀 하고 어려울 때 나서서 일해보겠다고 당당하게 나서면 기립박수를 쳐줄 것 같다. 당의 어려움을 극복하기 위해 먼저 정치력을 보이면 제도나 역할에 대해서는 사람들이 머리 맞대고 푸는 것 아니냐”고 전했다.
심상정 의원이 ‘비례대표 선출권’을 언급하며 사실상 자주파의 불출마 결단을 압박한 데 대해서는 “조건을 누가 충족시켜줄 수 있을지 애매하다. 현 지도부를 놓고 얘기하는 것인지 누구한테 얘기하는 것인지 모르겠다”고 피해갔다. 그는 “비례대표 선출권 위임과 관련된 문제는 중앙위원회나 대의원대회에서 결정될 사항으로 당원들이 판단할 문제”라고 밝혔다.
“비대위 무산되면 분당론 급류탈 것”
앞서 26일 자주파의 비공식 모임인 ‘전국회의’는 “비례대표 선출권 등 중앙위원회에 해당하는 권한을 비대위에 넘길 수 없다. 심상정 의원이 비대위원장직을 수락하지 않을 경우 조기 당직 선거를 치른다”는 입장으로 가닥을 잡은 것으로 알려졌다.
당내 평등파 계열 최대 정파인 ‘전진’은 크게 ‘재창당’과 ‘분당’으로 의견이 엇갈리고 있는 가운데 29일 중앙위원회 결과를 예의 주시하고 있다. 전진의 한 관계자는 “임시당대회를 열어 대선 평가와 당 쇄신안을 마련하지 않은 채 당직 선거 일정을 진행하는 것에 반대 입장”이라며 “우리 입장대로 선거 일정이 진행되지 않을 경우 보이콧도 염두에 두고 있다”고 전했다. 또 다른 관계자는 “비대위 구성이 무산될 경우 분당론이 급물살을 타게 될 가능성이 높다”고 전했다.
태풍의 눈에 서 있는 심상정 의원은 현재 장고(長考)를 거듭하고 있는 상태다. 당내 정파가 현재와 같은 대립 구도를 유지하며 합의에 이르지 못할 경우 심 의원이 끝내 비대위원장직을 고사할 가능성도 점쳐진다. 심 의원 측 손낙구 보좌관은 “28일 밝힌 내용 이상으로 할 이야기가 없다”며 더 이상의 언급을 회피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