JTBC드라마 〈설강화: snowdrop〉의 ‘민주화 운동 폄훼’, ‘역사 왜곡’ 논란 이야기를 해보려 한다. ‘드라마가 이미 종영(1월 30일)한 지도 한참 지났는데…’라고 생각할지 모르겠다. 그러나 아직 끝나지 않은 이야기들이 남았다. 어쩌면 이제야말로 본격적으로 시작해야 할 이야기.
JTBC 〈설강화〉를 둘러싼 논란은 방영 이전, 캐릭터 소개가 담긴 시놉시스가 유출되면서 시작됐다. 드라마는 1987년 서울을 배경으로 ‘어느 날 갑자기 여자 기숙사에 피투성이로 뛰어든 명문대생 수호(정해인 분)와 서슬 퍼런 감시와 위기 속에서도 그를 감추고 치료해 준 여대생 영초(지수 분)의 사랑 이야기’로 설정돼 있었다. 이 가운데, ‘영초’라는 이름은 박정희 유신정권부터 동일방직 똥물 투척 사건, 5.18광주민주화운동, 6월항쟁 등의 사건에서 민주화운동에 헌신한 실존 인물 ‘천영초(고려대 신문방송학과 72학번)’와 같다는 지적도 있었다. 실존 인물을 차용한 창작물이 만들어지기도 한다는 점에서 이는 전혀 문제 될 게 없었다. (물론, 드라마상 여성 주인공은 민주화 운동과 전혀 상관없이 등장해 또 다른 논란을 야기하긴 했다.)
드라마 상영금지 가처분 소송 제기는 ‘악수’
이 드라마의 문제는 남성 주인공 수호가 남파간첩으로 설정됐을 뿐 아니라, 운동권에 섞여 들어간다는 점에서 가중됐다. 이는 과거 독재정권에서 일반인을 ‘간첩’으로 만들어 정권 유지에 활용했던 수법과 맥을 같이 했기 때문이다. ‘민주화 운동을 폄훼하는 게 아니냐’라는 비판이 제기된 이유다. JTBC 측은 논란이 커지자 “민주화 운동을 폄훼하고 안기부와 간첩을 미화하는 드라마가 결코 아니다”라며 “미완성 시놉시스가 유출된 것”, “‘영초’가 천영초 선생님을 연상케 한다는 지적이 나온 만큼 여성 주인공 이름을 수정(추후 ‘영로’로 교체)하겠다”라고 진화에 나섰다.
그런데도 JTBC 〈설강화〉를 둘러싼 논란은 가라앉지 않았다. 민주화 운동에 앞장선 실존 인물들이 드라마의 배경과 캐릭터 설정 등 여러 방면에 대해 견해를 밝혔고, 문화평론가들의 비판도 이어졌다. 드라마 주연을 맡은 배우 정해인과 블랙핑크 지수 그리고 OST를 담당한 가수 성시경을 향해 공식적인 입장을 요구하는 움직임도 일어났다. 이 같은 일련의 흐름을 지켜보면서 그런 생각을 했던 것 같다. ‘그렇지, 이제 창작자들도 바뀌어야 해’라고 말이다. ‘창작’이라는 이름으로 특정한 역사적 배경을 고민 없이 가져오거나, 캐릭터를 설정하며 사회적 소수자를 향한 차별을 그대로 차용하는 문제들을 지켜봤기 때문이다. 또한 배우와 가수 역시 본업‘만’ 잘하면 다 용서되는 시대는 지났다고 생각했다. 특히, 책임의 파이가 큰 주연을 맡았거나 연차가 어느 정도 쌓인 이들이라면 더욱더 말이다. 이런 비판 여론이 창작 활동에도 도움이 될 것이라고 기대했다. 그때까지는 그랬다.
그런데, 이런 기대가 무참히 깨지는 사건이 발생했다. 세계시민선언이라는 단체에서 JTBC 〈설강화〉 방영을 앞두고 상영금지 가처분 신청을 제기한 것이다. 개인적으로 관련 기사를 접하고 든 생각은 하나였다. “앗, 망했다.”
법원이 JTBC 〈설강화〉 상영금지 가처분 신청을 받아들일 가능성은 매우 낮다고 봤기 때문이다. 실제 서울서부지법 민사합의21부(수석부장판사 박병태)는 “설령 드라마 내용이 왜곡된 역사관을 바탕으로 하고 있다 하더라도, 이를 접하는 국민들이 그 내용을 맹목적으로 수용할 것이라고 보기 어렵다”라고 판단했다. 예상한 결과였다.
‘가처분’ 기각 이후, 모든 것들이 뒤집어지기 시작했다
JTBC 〈설강화〉가 1987년을 그리는 방식은 위험했다. JTBC는 “가상”임을 강조했지만 ‘그 가상’을 온전히 시대상과 떼놓고 설명할 수 있을까? 그렇지 않다. JTBC는 “드라마가 시작되면 우려는 불식될 것”이라고 주장했다. 하지만 시대 배경이라는 건 그런 성질의 것이 아니다. 1987년 민주화 요구가 분출됐던 시대가 있고 등장인물 역시 ‘북한 공작원’, ‘안기부’ 등이 주요하게 배치됐는데, 그 모든 것을 가상이라고 치부할 수 없다는 말이다.
그러나 법원의 가처분 신청이 ‘기각’되면서 우려했던 일들이 하나둘 벌어지기 시작됐다. 모든 상황은 ‘제발 그렇게 되지 않았으면’ 하는 쪽으로 흘러갔다. 〈설강화〉 속 안기부는 간첩을 조작하는 등 나쁘게 나오는 데 뭐가 문제냐는 주장이 힘을 얻었다. 남파간첩인 남성 주인공이 운동권 행세를 한 건 아니지 않느냐는 점도 대두됐다. 이런 이야기들이 커뮤니티를 점령하기 시작했다. 여기에 〈설강화〉에 출연하는 배우들의 팬덤이 가세했다. 결국, 법원의 가처분 기각은 JTBC 〈설강화〉와 관련한 여러 각도의 우려를 덮어버리는 계기가 됐다. 마치 ‘가처분 신청 기각=드라마 민주화 운동 폄훼 없었다’라고 공식화된 것처럼 말이다. JTBC 또한 드라마와 관련한 모든 정당성을 부여받은 것처럼 행동하고 있다.
여기에 뒤늦게 방송통신심의위원회가 JTBC 〈설강화〉와 관련한 민원에 ‘각하’ 결정을 내렸다는 사실이 알려졌다. 방송통신심의위원회는 “심의 규정을 적용하기에 무리가 있다”, “드라마는 표현의 자유가 최대한 보장돼야 하는 창작물로, 역사에 대해 공신력을 가진 저작물로 보기는 어려운바, 당시 시대 상황을 배경으로 극화한 내용이 역사적 사실에 완전히 부합하지 않는다 하더라도 이를 문제 삼기는 어렵다”(미디어오늘)라고 밝혔다. 매우 상식적인 판단이다. 개인적으로는 방송통신심의위원회가 과거 SBS드라마 〈조선구마사〉의 ‘역사 왜곡’ 논란을 두고 제재(권고)를 내린 것이 마뜩잖았었다.
중요한 건, 법원의 상영금지 가처분 ‘기각’과 방송통신심의위원회의 민원 ‘각하’ 결정이 드라마에 전혀 문제가 없다는 걸 인증해주는 건 아니라는 점이다.
JTBC 〈설강화〉의 끝나지 않은 이야기
JTBC 〈설강화〉는 그렇게 종영했다. 그것으로 끝났으면 좋았을 것을…. 지난 1월, JTBC는 서울 마포경찰서에 〈설강화〉에 비판 댓글을 단 네티즌들을 「정보통신망법」상 명예훼손, 업무방해 등으로 처벌해 달라며 고소장을 접수했다. 그리고 실제 JTBC로부터 고소당했다는 네티즌들의 증언이 이어졌다. 얼마나 악의적인 댓글인지 모르겠지만, 방송사가 일반 시민을 대상으로 소송을 제기한 것은 어떠한 이유라도 쉽게 납득하기 어려운 행보다.
이렇듯, JTBC 〈설강화〉를 둘러싼 논란은 최악의 상황으로 흘렀다. 개인적으로 ‘상영금지 가처분’이라는 법적인 판단을 받으며 모든 것이 어긋났다고 생각하는 편이다. 심의를 통한 각하까지 이어졌다. 그 결과물은 어떤가. 일반 시민들에 대한 고소·고발만 남았다. 다행히 민주사회를위한변호사모임에서 관련 사건을 맡게 됐다는 소식을 전해 들었다. 다시 사회적 논의를 시작해야 할 이유이기도 하다. 그리고 그 이야기는 한국 사회에서 ‘비평’의 영역을 넓히는 방향으로 이어졌으면 한다. 한국 사회는 너무나도 쉽게 모든 것을 ‘법’으로 판단하려고 한다. 그러나 묻고 싶다. 그것이 진정 건강한 사회인지 말이다. 법은 민주주의 수호를 위한 최후의 보루라고 한다. 그런데, 그 강조점은 ‘최후’라는 명사에 있는 건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