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처: Max Kukurudziak, Unsplash
도널드 트럼프의 외교 정책은 논평가들을 혼란에 빠뜨렸다. 그는 우크라이나와 가자지구에 대해 완전히 상반된 입장을 보였다. 우크라이나 문제에서는 평화를 추구하는 듯한 태도를 보인 반면, 가자에서는 전 국민을 대상으로 한 민족 청소를 지지하는 듯한 발언을 했다. 이에 따라 그의 세계 정치에 대한 영향력이 ‘긍정적인’ 것인지 아닌지를 두고 논쟁이 일고 있다. 하지만 이러한 혼란은 트럼프의 행보 때문이 아니라, 제국주의라는 현상을 제대로 인식하지 못한 데서 비롯된다.
미국을 중심으로 한 서방 제국주의는 스스로 궁지에 몰려 있었다. 우크라이나 전쟁을 핵 대결로까지 확대하는 파국적 선택을 하거나, 제국주의적 패권이 점진적으로 약화되는 것 사이에서 결정해야 하는 상황이었다. 트럼프는 바로 이 난관에서 제국주의를 구해내려 하고 있다. 핵심은 그가 ‘평화를 지향하는가’ 혹은 ‘전쟁을 원하는가’, 또는 ‘유럽의 이익을 고려하는가’가 아니라, 그가 기존의 정책에서 벗어나 새로운 제국주의 전략을 추진하고 있다는 점이다. 그는 기존 정책의 실패와 무관한 인물이기 때문에 이를 실행할 수 있는 위치에 있다.
그가 점차 약화되는 제국주의적 패권을 다시 확립하기 위해 사용하는 방법은 ‘당근과 채찍’ 전략이다. 우크라이나 전쟁을 일으킨 근본적인 전제는 러시아가 서방의 압박에 굴복할 것이라는 가정이었다. 하지만 이 가정은 완전히 잘못된 것으로 드러났다. 우크라이나는 전쟁에서 점점 밀리고 있을 뿐만 아니라, 러시아 경제를 붕괴시키려는 제재도 완전히 역효과를 낳았다. 루블화 가치는 일시적으로 하락했지만 곧 회복하여 제재 이전보다도 강한 수준이 되었으며, 나아가 이러한 서방의 제재는 달러 패권에 대한 도전을 불러오는 계기가 되었다.
BRICS 국가들이 모인 카잔(Kazan) 정상회의에서는 ‘탈달러화(de-dollarisation)’가 현실적인 가능성으로 논의되었다. 기존에는 소규모 국가들을 대상으로 한 일방적인 제국주의 제재가 효과를 발휘할 수 있었지만, 러시아처럼 거대하고 자원이 풍부한 국가들을 포함한 여러 나라를 대상으로 삼으면 그 효과는 사라질 뿐만 아니라, 오히려 기존의 제국주의적 국제 경제 질서에 반대하는 국가들의 연대를 촉진하는 결과를 낳는다. 더 나아가, 이런 흐름은 제재를 받지 않은 국가들까지 대안적 경제 블록으로 끌어들이는 효과를 가져왔다.
트럼프가 집권했을 때 마주한 현실이 바로 이러한 상황이었다. 그가 내세운 ‘채찍’ 전략은 이미 잘 알려져 있다. 그는 탈달러화를 추진하는 국가들에 대해 높은 관세를 부과하겠다고 위협했다. 이는 명백한 제국주의적 행위이며, 기존의 자본주의 규칙에도 어긋나는 조치다. 원칙적으로 어떤 국가든 자국의 무역 상대국이 동의하기만 하면 어떤 통화로든 거래할 수 있고, 자산도 원하는 통화로 보유할 수 있다. 하지만 트럼프는 이러한 자유를 억압하며 높은 관세를 부과하는 경제적 강압을 노골적으로 행사하는 데 거리낌이 없었다.
반면, 트럼프의 ‘당근’ 전략은 우크라이나 전쟁을 끝내려는 시도다. 미국과 서방 제국주의에 반대하는 새로운 세력이 형성되는 것을 막기 위해, 러시아에 불리하지 않은 조건으로 전쟁을 종결시키려는 것이다. 이를 통해 제국주의 패권에 대한 도전 자체를 무력화하려는 전략이다.
물론 협상을 통한 우크라이나 전쟁 종식은 모두가 환영할 일이지만, 이를 단순히 ‘평화를 위한 노력’으로 해석하는 것은 완전히 잘못된 시각이다. 트럼프가 평화를 원한다면, 가자 지구에 대한 극단적인 발언을 하지 않았을 것이다. 사실, 자본주의 자체가 본질적으로 평화와 양립할 수 없다. 프랑스 사회주의자 장 조레스(Jean Jaurès)가 말했듯이, “자본주의는 구름이 비를 머금고 있는 것처럼 전쟁을 품고 있다.” 트럼프의 동기는 평화가 아니라, 제국주의 패권을 더 견고히 다지려는 욕망이다.
마찬가지로, 유럽의 ‘안보’가 우려된다는 주장도 완전히 거짓이다. 러시아는 애초에 유럽 안보를 위협한 적이 없으며, ‘러시아 제국주의’가 유럽을 침공할 것이라는 담론은 NATO 확장을 정당화하기 위한 핑계에 불과했다. 따라서 트럼프의 평화 전략이 유럽 안보를 위협한다는 주장은 성립하지 않는다.
트럼프와 유럽 지배층의 차이는 현재 제국주의가 취할 수 있는 두 가지 전략에서 비롯된다. 첫 번째는 바이든 행정부가 추진한 대러시아 공격 노선으로, 이 전략은 이미 막다른 골목에 다다랐다. 두 번째는 우크라이나 전쟁을 끝내고 러시아가 서방 제국주의에 대항하는 블록에서 이탈하도록 유도하는 전략이다. 유럽의 지도자들은 기존의 바이든식 전략을 고수하고 있지만, 트럼프는 새로운 전략을 시도하고 있다.
독일 극우 정당인 ‘독일을 위한 대안(AfD)’이 우크라이나 전쟁에 반대하는 태도를 보이는 것도 같은 맥락에서 이해할 수 있다. 이들은 팔레스타인 문제에서는 극단적 공격성을 보이면서도, 우크라이나 전쟁 종식을 원한다. 이것은 평화에 대한 일반적인 열망 때문도 아니고, 유럽 안보에 대한 고려 때문도 아니다. 오직 특정한 전략적 입장에서 비롯된 태도일 뿐이다.
트럼프의 목표는 궁극적으로 제국주의를 위기에서 구출하는 동시에, 미국이 제국주의 블록 전체를 지배하는 패권국으로 군림하도록 만드는 것이다. 그의 슬로건 ‘미국을 다시 위대하게(Make America Great Again)’는 결국 미국이 서방 제국주의의 절대적 리더가 되는 세계 질서를 재구축하겠다는 의미다. 이는 노르드 스트림 2(Nord Stream II) 가스관이 폭파된 사건(미국 ‘딥 스테이트’의 소행으로 추정되는)과도 연결된다. 유럽을 미국의 에너지 공급에 의존하게 만드는 전략의 연장선에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트럼프의 전략에는 근본적인 모순이 있다. 자본주의 세계에서 ‘리더십’을 행사하는 데는 대가가 따르는데, 트럼프는 그 대가를 치르지 않으면서 리더가 되려 하고 있다. ‘리더’가 되려면 다른 주요 자본주의 국가들의 야망을 수용하기 위해 무역 적자를 감수해야 한다. 과거 영국이 그랬고, 이후 미국도 그 역할을 수행해 왔다.
그러나 트럼프는 미국의 무역 적자를 줄이기 위해 모든 무역 상대국에 관세를 부과하려 하고 있다. 이는 ‘근린궁핍화(Beggar-thy-neighbour)’ 경제 정책으로, 자국의 성장을 위해 타국의 시장을 빼앗겠다는 전략이다. 하지만 이런 방식은 제국주의 패권을 재확립하려는 전략과 근본적으로 모순된다.
결국, 바이든이 제국주의를 궁지에 몰아넣었다면, 트럼프가 이를 구하려는 시도는 또 다른 궁지로 몰아넣는 결과를 초래할 것이다.
[출처] Imperialism’s Revival Strategy | Peoples Democracy
[번역] 하주영
- 덧붙이는 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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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라바트 파트나익(Prabhat Patnaik)은 인도의 마르크스주의 경제학자이자 정치 평론가다. 그는 1974년부터 2010년 은퇴할 때까지 뉴델리의 자와할랄 네루대학교 사회과학대학 경제 연구 및 계획 센터에 몸담았다. 참세상은 이 글을 공동 게재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