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발표된 구매관리자지수(PMI)라는 경제활동 지표에 따르면, 주요 국가들의 경제는 여전히 기어가듯 움직이고 있다. 경기 침체로 빠져들지도 않고, 그렇다고 회복세를 보이지도 않는다. 9월 기준 전 세계 PMI는 52.4를 기록했으며, 이는 50.0을 넘기면 확장을, 밑돌면 수축을 의미한다.
출처: JPM
실질적으로 주요 경제권은 2008~2009년 세계 금융위기 이후 시작된 '장기침체(Long Depression)' 속에 머물러 있다. 지난 17년 동안 실질 GDP, 투자, 생산성 증가율로 측정되는 경제 성장률은 2008년 이전 수준을 한참 밑돌았고, 뚜렷한 반등의 조짐도 없었다. 특히 2020년 팬데믹으로 인한 경기 침체 이후에는 이 모든 지표의 성장률이 더 둔화했다.
세계 실질 GDP 증가율은 2008~2009년 대침체 이전까지만 해도 연평균 4.4%였지만, 2010년대에는 3%에 그쳤고, 2020년 팬데믹 이후부터는 연평균 2.7%로 더 낮아졌다. 이 수치에는 중국과 인도처럼 고속 성장하는 경제들도 포함되어 있다는 점을 고려해야 한다. 게다가 미국, 캐나다, 영국과 같은 일부 주요 국가에서는 최근까지 실질 GDP 증가를 이끌어온 것이 순이민 증가를 통한 노동력 확대로, 1인당 GDP 성장률은 훨씬 더 낮았다.
출처: IMF, World Bank
무엇보다도, 주요 경제권의 자본 수익률은 여전히 역사적으로 낮은 수준에 머물러 있으며, 2008년 대침체 이전 수준을 한창 밑돌고 있다.
출처: EWPT 7.0 series, AMECO, author’s calculation
지난주 발표된 국제통화기금(IMF)의 최신 경제 전망에서도 세계 경제 성장률이 소폭 상향 조정되었지만, 여전히 둔화할 것으로 예상된다. IMF는 “올해 세계 성장률을 3.2%, 내년을 3.1%로 전망하며, 이는 1년 전 전망치보다 누적으로 0.2%포인트 하향 조정된 수치”라고 밝혔다. IMF는 미국의 실질 GDP가 올해 2.0% 성장할 것으로 내다봤고, 이는 2024년에 2.8%에서 감소한 것이다. 2026년에는 2.1%의 성장률이 예상된다. 이 수치는 G7 주요 자본주의 국가 중에서는 가장 나은 성과로, 독일, 프랑스, 이탈리아, 일본은 올해와 내년 모두 1% 미만의 성장률을 기록할 것으로 보인다. 캐나다 역시 2%를 크게 밑돌 것으로 예상되며, 유일하게 영국만이 올해와 내년에 각각 1.3%로 소폭 개선될 전망이다.
하지만 IMF는 이러한 전망조차도 “여전히 불안정하고, 하방 위험이 크다”고 경고했다. IMF가 우려하는 주요 위험 요인은 다음과 같다:
1. 인공지능(AI) 버블 붕괴 가능성,
2. 중국의 생산성 둔화,
3. 각국의 정부 부채 증가 및 이자 상환 부담.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또한 이와 비슷한 비관적 전망을 내놓고 있다. OECD는 9월에 발표한 세계경제 중간보고서에서 2025년 세계 경제성장률을 3.2%, 2026년에는 2.9%로 예상했으며, 이는 2024년에 3.3%보다 낮은 수치다. OECD는 미국과 중국의 실질 GDP 성장률이 팬데믹 이후 가장 낮은 수준으로 떨어질 것으로 봤다. 유로존, 일본, 영국의 성장률은 1% 이하로 예상된다.
미국은 2025년에 1.8%, 2026년에는 1.5% 성장에 그칠 것으로 전망된다. 중국은 2025년 4.9%, 2026년 4.4%로 둔화할 것으로 예상되며, 이 수치조차 미국의 약 3배, 유로존의 약 4배에 달한다. 유로존은 2025년에 1.2%, 2026년에 1.1% 성장할 것으로 보인다.
IMF와는 달리, OECD는 영국이 2026년에 성장률이 둔화해 연 1%에 머무를 것으로 예상했으며, 일본은 같은 해 1.1%, 2026년에는 0.5%에 그칠 것으로 내다봤다.

유엔무역개발회의(UNCTAD)도 최근 『2025년 무역과 개발 보고서(Trade and Development Report 2025)』의 선공개본을 발표했으며, 세계 경제 성장과 무역의 전망에 대해 매우 냉소적인 시각을 드러냈다. UNCTAD 경제학자들은 “세계 경제 성장세가 흔들리고 있으며, 가까운 시일 내에 반등 조짐은 보이지 않는다”고 지적했다. 보고서는 “세계 생산 증가율이 팬데믹 이전의 추세를 여전히 따라잡지 못하고 있고, 전체적인 흐름이 불안정하며 불확실성에 가려 있다”고 분석했다. 투자자들의 불안감은 금융시장을 자극했지만, 생산적 투자로 이어지지 않고 있다는 평가도 덧붙였다.
그런데도, 주요 경제권은 2008~2009년 금융위기나 2020년 팬데믹 당시처럼 본격적인 침체 국면에 빠지지는 않았다. 대신 다시 ‘기어가는 성장(crawl)’ 상태로 복귀했다. 하지만 자본주의가 앞으로 나아갈 조짐도 보이지 않고 있다. 주요 경제는 점점 더 '스태그플레이션(stagflation)'—즉, 성장 정체와 인플레이션이 동시에 나타나는 상태—에 빠져들고 있다.
왜 이런 일이 벌어지고 있는가? 마르크스주의 위기 이론에 따르면, 장기적인 경기 확장은 자본 가치의 대규모 파괴—물리적 파괴이든, 가격 평가절하에 의한 것이든—없이는 불가능하다. 오스트리아 출신 경제학자 조지프 슘페터(Joseph Schumpeter)는 마르크스의 이론에서 영감받아 이 과정을 ‘창조적 파괴(creative destruction)’라고 불렀다. 슘페터는 낡은 기술과 비효율적이고 수익성 없는 자본을 정리함으로써 새로운 혁신 기업들이 성장하고 노동 생산성이 높아지며 더 많은 가치를 창출하게 된다고 보았다. 그는 이러한 과정이 정체된 독점 기업들을 해체하고, 그 자리를 더 작고 혁신적인 기업들이 대신 차지하게 된다고 보았다.
반면, 마르크스는 ‘창조적 파괴’를 수익성 회복의 관점에서 보았다. 그에 따르면, 약하고 작은 기업들이 강하고 큰 자본에 흡수되거나 파산함으로써 수익성이 상승하고, 이에 따라 자본 축적이 다시 가능해진다.
마르크스는 ‘창조적 파괴’가 두 가지 방식으로 일어난다고 설명했다.
첫 번째는 실물 자본의 파괴이다. 기존의 생산 조건이 더 이상 작동하지 않으면 생산 재생산 과정이 중단되고, 노동 과정도 제한되거나 완전히 정지되면서 실제 자본이 파괴된다. 즉, 기업들이 공장과 설비를 멈추고 노동자를 해고하거나 파산함에 따라 노동력과 설비가 사용되지 않게 되고, 자본 가치는 ‘소각(written off)’된다.
두 번째는 자본 가치의 파괴이다. 이 경우 실질적인 사용가치가 파괴되지는 않지만, 사회 전체의 명목 자본, 즉 기존 자본의 교환가치가 대거 증발한다. 국채와 같은 ‘허구 자본(fictitious capital)’의 가치가 하락하면서 부의 단순한 이전, 즉 손해 보는 자들로부터 이익을 보는 자들로의 자산 이전이 발생한다.
마르크스는, 노동자 계급이 정치 권력을 장악해 체제를 교체하지 않는 한, 자본주의 안에서 침체는 궁극적으로 자본에 의해 극복된다고 주장했다. 반복되는 불황을 통해 자본 수익률이 충분히 회복되면, 새로운 기술 발전과 혁신이 본격적으로 활용되기 시작한다는 것이다. 이는 제2차 세계대전 이후 현실이 되었다. 당시 자본 수익률은 매우 높았고, 기업들은 1930년대 대공황과 전쟁 기간 중 개발된 신기술에 자신 있게 투자할 수 있었다. 만약 지금 2025년에 자본 수익률을 급격히 끌어올릴 수 있다면, 현재의 장기침체 속에서 클러스터를 이루고 있는 인공지능(AI) 등의 신기술이 확산하고, 주요 국가들의 노동 생산성에서 획기적인 전환이 가능해질지도 모른다.
이러한 ‘창조적 파괴’ 이론은 주류 경제학자들 사이에서도 받아들여지고 있다. 최근 노벨 경제학상(정식 명칭은 스웨덴 국립은행 경제학상)을 수상한 필리프 아기옹(Philippe Aghion)과 피터 하윗(Peter Howitt)은, 새로운 기술을 가진 신생 기업이 빠르게 성장하고 낡은 기술을 가진 기존 기업이 쇠퇴하는 속도와 노동 생산성 증가 사이에 정(+)의 상관관계가 있다고 설명했다.
“이런 관계는 창조적 파괴의 직접적인 기여를 반영할 수 있고, 동시에 기존 기업들이 제품을 개선하려는 동기를 자극하는 간접 효과도 있을 수 있다”고 그들은 주장했다.
그러나 이들 주류 이론에서는 ‘수익성’이 전혀 고려되지 않는다. 아기옹과 하윗은 슘페터의 소기업 중심 혁신 모델에 충실하지만, 마르크스가 중심에 둔 자본 수익률 문제는 다루지 않는다. 그럼에도 이들은 지난 수십 년 동안 미국 내에서 산업 진입과 퇴출 비율이 모두 하락했다는 점을 지적한다. 5년 이하의 신생 기업이 차지하는 고용 비중은 24%에서 15%로 줄어들었다. 다시 말해, 자본주의 투자와 생산을 회복시키는 핵심 수단이 사라지고 있다는 뜻이다. ‘창조적 파괴’는 성장의 핵심 요소인데, 이러한 ‘사업 역동성(business dynamism)’의 감소가 미국의 실망스러운 생산성 성장의 주요 원인으로 작용했다는 것이다.
AI와 다른 신기술들이 설령 효과가 있다고 하더라도, 그것들이 지속적이고 높은 성장을 끌어내지는 못할 것이다. 왜냐하면 2008년 이후 ‘창조적 파괴’가 전혀 일어나지 않았기 때문이다. 대신 전례 없는 저금리 신용 자금이 공급되면서, 대기업과 중소기업 할 것 없이 경기 침체를 피하려고 지탱됐다. 주식이나 채권 가격의 붕괴도, 대규모 기업 파산도 발생하지 않았고, 오히려 금융 자산과 부동산 자산은 계속해서 사상 최고치를 경신하고 있다.
청산 대신 등장한 것은 바로 ‘좀비 자본(zombie capital)’이다. 이들은 부채를 감당할 만큼의 수익도 내지 못하면서, 계속해서 부채만 늘려가며 연명하는 기업들이다. 여기에 ‘추락한 천사(fallen angels)’라 불리는, 조만간 좀비가 될 수도 있는 높은 부채의 기업들까지 더해지고 있다.

1930년대 대공황 초기로 돌아가 보면, 자본의 전략가들 사이에서는 어떤 대응을 할지를 두고 의견이 갈렸다.
당시 재무장관이었던 앤드루 멜런(Andrew Mellon)은 허버트 후버(Herbert Hoover) 대통령에게 이렇게 조언했다.
“노동을 청산하라, 주식을 청산하라, 농민을 청산하라, 부동산을 청산하라.”
그는 “이렇게 해야 시스템에 쌓인 부패가 정화될 것이다. 비싼 생활비와 사치스러운 삶은 줄어들고, 사람들은 더 열심히 일하며 더 도덕적인 삶을 살게 될 것이다. 자산 가치는 조정될 것이고, 유능한 사람들이 무능한 자들의 파산 잔해를 거두어 갈 것이다”라고 주장했다.
하지만 지금과 마찬가지로, 멜런의 ‘청산(liquidation)’ 정책은 행정부 내 다른 인사들에 의해 거부되었다. 이는 경제적으로 틀려서가 아니라, 정치적으로 불러올 파장을 우려했기 때문이었다. 후버 대통령 자신도 경기 침체를 완화하기 위한 계획 수립이나 정부 지출에는 반대했다. 그는 이렇게 말했다.
“나는 정부가 사업에 뛰어들어 국민과 경쟁하게 만드는 국가 계획을 거부했다. 그것은 칼 마르크스의 발상이다. 펌프에 물을 붓듯 정부 지출로 회복을 유도하자는 아이디어도 거부했다. 그것은 영국 교수의 생각이다. 구호를 중앙정부가 워싱턴에서 통제해 정치적·사회적 실험에 활용하려는 시도도 폐기했다.”
최근 들어 ‘청산 정책’에 가까운 사례는 아르헨티나 대통령 하비에르 밀레이(Javier Milei)의 시도 정도뿐이다.
그는 공공부문을 대폭 축소하고 고금리를 유지하면서 통화 공급을 제한하는 방식으로 재정을 정리하려 했다. 그러나 이런 강경한 긴축 조치는 ‘창조적’ 결과를 전혀 낳지 못했다. 오히려 밀레이는 '불필요한 지출, 비생산적인 노동자, 부실 기업들'을 도려내고 경제를 ‘더 날렵하고 강인하게’ 만들겠다며 개혁에 나섰지만, 결과적으로는 아르헨티나 페소화의 가치가 붕괴 직전까지 떨어지고, 외화보유액은 고갈되었으며, 조만간 막대한 외화 부채를 상환해야 할 위기에 처했다.
이 상황에서 트럼프 전 대통령과 그의 재무장관인 베센트(Bessent)는 2008년 미국 은행들이 그랬던 것처럼, 밀레이를 구제하기 위해 구제금융에 나섰다. 다시 말해, 밀레이 정권이 무너질지 모른다는 두려움이 결국 '청산'이 아닌, 그 정반대의 정책으로 이어지게 된 것이다.

경기 침체를 피하려는 과정에서 각국 정부와 중앙은행은 막대한 자금을 투입했고, 그 결과 기업과 정부 모두 부채를 쌓아 올렸다. 현재 전 세계 부채는 거의 340조 달러에 달하며, 올해에만 21조 달러가 증가했다. 이는 팬데믹 시기의 부채 증가 폭과 맞먹는 수준이다. 신흥국들은 2025년 2분기에만 3.4조 달러의 부채를 추가했고, 이로써 총부채는 109조 달러로 역대 최고치를 기록했다. 전 세계 총부채 대비 GDP 비율은 현재 324%로, 팬데믹 당시의 정점보다는 낮지만, 여전히 팬데믹 이전보다 높은 상태다.

성장 정체와 부채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IMF는 공공 지출 삭감을 촉구하고 있다.
“정부는 더 이상 지체해서는 안 된다. 공공 지출의 효율성을 높이는 것은 민간 투자를 촉진하는 중요한 방법이다.”
즉, 파괴(destruction)를 요구하는 것이다. 동시에 IMF는 자본주의 부문에 대한 지원 확대도 요구하고 있다.
“정부는 민간 기업가들이 혁신하고 성장할 수 있도록 힘을 실어줘야 한다.”
즉, 창조(creation)의 논리다.
여기서 말하는 ‘파괴’는 공공서비스와 복지에만 해당하고, ‘창조’는 낮은 금리, 감세, 보조금 같은 기존 정책을 그대로 유지해 민간 기업가들을 ‘지원’하는 방식으로 추진된다. 다시 말해, 공공은 희생하고, 민간은 보상받는 구조가 반복되고 있다.
[출처] Depression and creative destruction – Michael Roberts Blog
[번역] 하주영
- 덧붙이는 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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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이클 로버츠(Michael Roberts)는 런던 시에서 40년 넘게 마르크스 경제학자로 일하며, 세계 자본주의를 면밀히 관찰해 왔다. 참세상은 이 글을 공동 게재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