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자유주의와 지식인

출처: University of Calcutta

인도 같은 제3세계 국가에서 신자유주의 자본주의가 보이는 중요한 특징 가운데 하나는 노동 대중과 지식인 사이에 깊은 간극을 만들어낸다는 점이다. 식민지 시대 인도에서는 여러 지식인이 식민주의가 인도 국민에게 안긴 참상을 세상에 알리는 일을 스스로 맡았다. 물론 많은 지식인은 식민주의에 맞선 저항운동에도 적극 참여했고, 그 과정에서 투옥과 고난을 감수했다. 그 결과 그들은 국민의 존경을 받았으며, 이러한 존경은 독립 이후 국가 주도의 개발 전략이 추진되던 시기에도 이어졌다. 당시 지식인들은 개발 전략이 국민의 삶에 미치는 영향을 정직하고 비판적으로 관찰하는 역할을 수행했다.

자본주의 이전 사회는 평상시에도 일반 대중이 지식인을 어느 정도 존중하는 특징을 보였다. 인도와 같은 나라에서는 반식민지 투쟁과 독립 이후 국가 주도 개발 시기에 지식인들이 수행한 역할이 이러한 존중을 더 강화했다.

그러나 신자유주의는 이러한 상황을 바꾸었다. 신자유주의는 국내 독점자본과 국제 금융자본을 결합한 무제한적 자본주의 질서를 구축하려 한다. 그 목적은 사회를 전형적인 자본주의 방식으로 재편하는 데 있다. 이러한 변화는 지식인의 위치도 여러 측면에서 바꾸었다. 첫째, 자본주의의 본질은 공동체 의식을 해체하고 사회집단을 자기 이익만 추구하는 개인들의 집합으로 만드는 데 있다. 그 결과 지식인도 더 이상 국민의 대변자가 아니라, 각자 살아남기 위해 경쟁하는 개인들의 집단으로 전락했다. 국내외에서 개인의 성공 기회를 활용하려는 욕망과 경력 관리가 이제 지식인들에게도 가장 중요한 관심사가 됐다.

둘째, 신자유주의 이전 시대에 지식인이 수행한 사회적 역할은 반제국주의라는 이론적 관점에 의해 뒷받침됐다. 물론 지식인들 사이에는 다양한 이론적 차이가 존재했지만, 대부분은 제국주의가 여전히 현실로 존재한다는 점을 인정했다. 이러한 인식은 국민의 공감을 얻었고, 3세계 지식인을 서구의 지배적 이론 전통과 구별해 주었다. 그러나 신자유주의는 이러한 이론적 차이를 지우고 서구와 제3세계 모두에서 하나의 관점만을 중심으로 합의를 만들려 한다. 그 관점은 서구에서 지배적인 이론이며, 대체로 세계은행과 국제통화기금(IMF)의 지지를 받는다. 이 관점은 제3세계가 제국주의에 맞서 발전하는 것이 아니라, 제국주의를 받아들여야 발전할 수 있다고 주장한다.

이론 영역에서 반대 목소리가 곳곳에서 억눌리고, 서구의 지배적 담론과 새롭게 등장한 제3세계의 담론이 같은 언어를 사용하면서 제3세계 지식인들은 서구에서 더 많은 취업 기회를 얻었다. 그러나 동시에 그들은 제3세계 국민과 더욱 멀어졌다. 3세계 국민이 실제로 겪는 경험은 서구와 제3세계 지식인들이 함께 만들어낸 이론적 합의와 맞지 않기 때문이다.

수십 년 동안 많은 한계에도 불구하고 대안적이고 영감을 주는 모델을 제시했던 소련의 붕괴가 서구 지식인과 제3세계 지식인 사이의 이러한 합의 형성 과정에 결정적인 영향을 미쳤다는 사실도 결코 과소평가해서는 안 된다.

셋째, 신자유주의의 핵심 특징인 민영화와 상품화는 특히 교육 분야에서 비판적 학문 활동을 약화했다. 새로운 환경에서 급속히 늘어난 사립 교육기관의 목표는 학생을 시장에서 거래할 수 있는 상품으로 만드는 데 있다. 그 결과 탈식민 사회에서 교육이 수행해야 할 가장 중요한 역할, 즉 안토니오 그람시의 표현대로 탈식민화된 민중의 '유기적 지식인'을 길러내는 목적은 완전히 사라졌다. 실제로 이러한 사립 교육기관에서 일하는 교수들은 학생들에게 비판적 탐구 정신을 심어주면 불이익을 받는다. 학생회 활동과 학생운동도 이들 기관에서는 억압한다. 이 모든 과정은 지식인을 국민의 삶으로부터 더욱 멀어지게 만들고, 전문적인 지식 상품을 생산하는 별도의 세계 안으로 가둔다. 요컨대 신자유주의는 지식인을 국민의 삶으로부터 분리한다.

며칠 전 서벵골 주정부의 인도인민당(BJP) 소속 고위 장관은 과거 인도를 대표하는 지성의 중심지였던 프레지던시 칼리지와 캘커타대학교가 이제는 빛을 잃은 교육기관이 됐다고 한탄했다. 이어 그는 민간 부문의 도움을 받아서 서벵골의 잃어버린 학문적 영광을 되찾을 수 있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그의 분석은 매우 피상적이다. 그는 공교육 예산을 지속적으로 삭감한 결과 교육 수준이 평범한 수준으로 추락했다는 사실을 전혀 연결하지 못한다. 그는 신파시즘 성향의 정부를 대표하는 인사라는 점에서도 아이러니하지만, 국가 예산을 거의 투입하지 않으면서도 서벵골의 고등교육을 되살리겠다고 주장했다.

신자유주의 아래에서 지식인과 민중 사이에 형성되는 간극은 중요한 결과를 낳는다. 그것은 바로 신파시즘이 부상할 토양을 만든다는 점이다. 물론 신파시즘의 등장을 이끄는 근본 요인은 여러 가지가 있다. 무엇보다 신자유주의의 위기 속에서 자신의 지배력을 유지하려는 독점자본이 신파시스트와 동맹을 맺고 이를 지원하는 것이 핵심 요인이다. 그러나 다수의 국민 안에서 무력한 소수집단에 대한 증오를 조장하고, 이를 통해 민중을 분열시키며 관심을 다른 곳으로 돌리려는 신파시즘의 선전은 신자유주의 이전처럼 지식인의 말이 여전히 국민에게 큰 신뢰를 받았다면 지금만큼 효과를 거두지 못했을 것이다.

실제로 신파시즘 사상은 지식인 사회에서 폭넓은 지지를 얻지 못한다. 그럼에도 이러한 사상이 민중 사이에서 일정한 영향력을 갖는 이유는 지식인 사회의 반파시즘 목소리가 여전히 다수임에도 협박을 통해 침묵을 강요받고 있기 때문이다. 여기에 더해 신자유주의 자본주의가 지식인과 민중 사이에 만든 간극 때문에 이러한 목소리는 상대적으로 영향력을 잃었다. 민중이 지식인을 더 이상 신뢰하지 않게 된 것은 신파시즘이 부상하는 중요한 조건 가운데 하나다.

이처럼 신자유주의는 여러 방식으로 신파시즘의 토대를 마련한다. 물론 가장 중요한 요인은 신자유주의가 필연적으로 만들어내는 경제위기다. 신자유주의 체제에서는 노동력 전체에서 잉여노동력이 차지하는 비중이 줄어들지 않는다. 오히려 국내총생산(GDP) 성장률이 높아지는 것처럼 보여도 그 비중은 증가한다. 따라서 노동생산성은 높아져도 실질임금은 오르지 않는다. 참고로 노동생산성이 높아지는 것이 바로 잉여노동력 비중이 줄지 않는 이유이기도 하다. 그 결과 경제잉여가 생산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커지고, 소비 수요가 생산 증가를 따라가지 못하면서 과잉생산 위기가 발생한다. 바로 이러한 위기가 기업과 힌두트바(Hindutva, 인도를 힌두교 중심의 국가로 재편하려는 정치 이념) 세력의 동맹을 가능하게 하고, 독점자본이 신파시즘을 지원하는 배경이 된다. 그러나 신자유주의는 이 과정에 다른 방식으로도 기여한다. 그 가운데 가장 두드러진 것은 민중이 지식인에 대해 전반적으로 신뢰를 잃게 만든다는 점이다.

마르크스주의는 신자유주의가 신파시즘을 부상할 수 있게 한다는 점을 거의 유일하게 인식하는 이론이다. 자유주의적 분석은 신파시즘의 등장을 사회적·역사적 요인만으로 설명할 뿐, 이 현상의 정치경제학적 뿌리는 거의 언급하지 않는다. 그러나 이러한 접근은 반()신파시즘 투쟁을 약화시킨다. 설령 신파시즘 세력이 권력을 유지하려는 책략을 무너뜨리고 선거를 통해 권좌에서 물러나게 한다고 해도, 경제가 계속 신자유주의 체제를 유지하고 그 체제가 만든 위기가 지속되는 한 신파시즘은 언제든 다시 권력을 잡을 것이다. 도널드 트럼프가 미국에서 재선에 성공한 사례가 이를 보여준다.

따라서 신파시즘에 맞서 싸우려면 그것을 낳는 현재의 조건 자체를 넘어야 하며, 이를 위해서는 신자유주의 자본주의를 극복해야 한다. 지식인은 이 사실을 자각해야 한다. 또한 민중과의 관계를 다시 구축해야 할 역사적 책임이 있다. 단지 신파시즘의 위험성을 경고하는 것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 신자유주의가 민중을 몰아넣은 침체와 실업의 위기에서 벗어날 수 있도록 새로운 경제정책의 대안을 제시해야 한다. 신파시즘은 신자유주의를 동시에 극복할 때만 이겨낼 수 있다.

[출처] Neo-Liberalism and The Intelligentsia | Peoples Democracy

[번역] 하주영 

덧붙이는 말

프라바트 파트나익(Prabhat Patnaik)은 인도의 마르크스주의 경제학자이자 정치 평론가다. 그는 1974년부터 2010년 은퇴할 때까지 뉴델리의 자와할랄 네루대학교 사회과학대학 경제 연구 및 계획 센터에 몸담았다. 참세상은 이 글을 공동 게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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