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단학살(genocide)의 개념은 항상 문화적 집단학살(cultural genocide)을 포함해왔다.
이는 놀라운 일이 아니다. '집단학살'이라는 용어는 라파엘 렘킨(Raphael Lemkin)이 나치의 동유럽, 특히 폴란드에 대한 공격을 특징짓기 위해 만든 것이다. 폴란드 유대인들에 대한 살해 캠페인은 더 포괄적인 계획의 선봉에 있었다. 결국 제3제국의 기술관료들은 폴란드 민족성을 말살하는 것을 목표로 삼았고, 이는 인구의 상당 부분을 물리적으로 제거하고 나머지를 노예화하는 것이었다. 이런 계획은 문화적 삭제 없이, 즉 교육, 학습, 연구, 문화적 기념 활동을 끝장내지 않고서는 실행할 수 없다. 이러한 이유로, 교육과 학습을 유지하는 일은 폴란드에서 유대인과 비유대인 저항세력 모두에게 필수적인 과제였다.
문화적 집단학살은 어떤 상황에서도 발생할 수 있다. 모든 인간 사회는 고유한 문화를 가지고 있다.
교육과 학습 기관을 목표로 삼는 파괴 캠페인은 더 구체적인 역사적 조건 속에서 발생한다. 이러한 캠페인은 해당 기관들의 발전과 분화에 의존한다. 율리우스 카이사르는 알렉산드리아 도서관을 두고 위험을 감수했다. 유럽 역사 교과서식 서술에서는 로마 제국의 몰락이 문해력의 붕괴로 이어졌고, 이는 수도원들의 활동을 통해서만 가까스로 유지되었다고 한다. 노예제 사회에서는 문자 해독 능력을 억압하는 것이 노예제 유지의 필수적인 요소였다. 제국의 문화 정책은 원주민 언어를 체계적으로 탄압하고, 음악과 연극을 침묵시키며, 문학을 검열하고, 자신들의 문화를 지키려는 교사와 학생들을 박해하는 방식으로 이루어졌다.
'학살적 학문 탄압(scholasticide)'이라는 용어는 2009년 옥스퍼드 학자인 카르마 나불시(Karma Nabulsi)가 가자의 교육 기반시설에 대한 이스라엘의 공격을 특징짓기 위해 처음 사용했다. 그러나 이는 분명히 여러 정착민 식민주의 환경, 집단학살, 그리고 장기적인 반란과 토벌 작전 속에서 적용될 수 있는 개념이다.
집단학살과 학살적 학문 탄압은 포괄적인 '최종 해결책'의 상호 연결된 요소로 작동할 수 있다. 어떤 경우에는 학살적 학문 탄압이 단순히 전반적인 말살 계획의 일부가 된다. 즉, 다른 모든 사람들과 함께 교사와 학생들을 살해하는 것이다. 그러나 다른 경우에는 학살적 학문 탄압이 우선순위를 차지할 수도 있다. 교사와 학생을 살해하고 교육 및 문화 기관을 파괴하는 것이 독립적인 프로젝트가 되는 것이다.
학살적 학문 탄압은 다양한 형태를 취할 수 있다. 1941년 7월 나치 당국과 그들의 우크라이나 협력자들이 르비우에서 25명의 폴란드 학자를 체포하고 처형한 것처럼, 이는 중앙에서 지휘되고 표적이 명확한 형태일 수 있다. 하지만 이는 또한 '아래로부터의' 집단학살적 에너지에 의해 추진될 수도 있다. 대규모의 살해와 파괴는 사회적 과정이다. 이는 단순히 위에서 내려온 명령만으로 이루어지지 않는다. 개별 집단학살 실행자(génocidaires)의 정치적 동기, 소규모 단위의 사회적 압력, 개인적 원한이 '임무를 수행하는' 원동력이 된다. 이를 승인되지 않은 '독자 행동'으로 치부해서는 안 된다. 전반적인 조직적 성공은 개별적이고 지역적인 자율성과 자발적 행동에 의존한다. 탈중앙화된 행동은 결함이 아니라 본질적인 특징이다. 적대 세력의 문화 기관, 교사, 학생들은 상징적 목표로 적절하게 여겨진다.
문화적 집단학살은 경제적 관점에서도 해석될 수 있다. 학살적 학문 탄압은 한 사회가 '인적 자본(human capital)'을 유지하고 증식하는 메커니즘을 선택적으로 제거하는 행위이다. 이런 방식으로 학살적 학문 탄압은 전략적이고 장기적인 목적을 수행한다. 제국의 지배자들은 피지배 민족들을 '헤일로트(helot, 노예 계급)' 상태로 종속시키기를 꿈꾼다. 하지만 문화 기관을 초토화하는 것은 즉각적인 영향도 미친다. 현대 '장소 기반' 경제학은 대학과 단과대학이 '거점 기관'으로서 지역 경제에 기여하는 역할을 정량화할 수 있도록 한다. 만약 어떤 세력이 특정 지역을 '해체'하려고 한다면, 해결책은 명백하다. 그 지역의 거점을 제거하면 된다.
대학과 학교는 단순한 경제적·사회적 공간이 아니다. 이들은 물리적 존재를 가진다. 대개 대형 건물과 넓은 강당을 갖추고 있다. 많은 대학들은 광대한 캠퍼스를 유지하고 있다. 이러한 공간들은 대중 정치의 무대가 될 수 있으며, 시위, 점거, 그리고 포위전과 공개적인 전투의 장이 될 수도 있다. 대학들은 또한 임시 군사 기지로 활용될 수 있다.
특히 수단이나 미국의 빈민 도시와 같은 가난한 사회와 공동체에서, 교육 기관은 상대적으로 부유하고 기술적으로 발전된 공간일 때가 많다. 대학과 학교에는 컴퓨터가 있으며, 이는 도난과 약탈의 매력적인 대상이 된다. 학교 기록, 책, 문서 보관소, 박물관 같은 문화적 유산은 취약한 존재이며, 쉽게 파괴할 수 있는 동시에 파괴 행위 자체가 만족감을 줄 수도 있다.
따라서 의도적으로 이루어지는 학살적 학문 탄압뿐만 아니라, 대학과 학교가 조직적 폭력과 무질서한 약탈의 표적이 되는 것은 흔한 일이다. 대학과 학교를 향한 폭력의 유형을 해석하는 방식은 전쟁터의 상황과 특정한 분쟁에 따라 달라질 것이다.
현재 진행 중인 주요 분쟁 중 하나인 수단 내전에 초점을 맞추어 보면, 교육 체계가 극심한 피해를 입고 있다.
지난 30년 동안 수단의 대학과 단과대학들은 인구가 거의 두 배로 증가한 한 세대 동안, 국민들의 재능과 열망을 수용하기 위해 극적으로 확장되었다. 1980년 이후 전체 학생 수는 10배 증가했으며, 현재 여성 학생들이 전체 등록 학생의 절반 이상을 차지하고 있다. 한 자료에 따르면, 현재의 분쟁이 발발하기 전 수단에는 “사하라 이남 아프리카 의과대학의 23%를 차지하는 70개 이상의 의과대학이 존재했으며, 매년 5,000명 이상의 학생을 배출하고 있었다.”
출처: 베시르, M. M., N. E. 아흐메드, M. E. 모하메드. "수단의 고등 교육과 과학 연구: 현재 상황과 미래 방향." 아프리카 농촌 개발 저널(African Journal of Rural Development) 5.1 (2020): 115-146.
2023년 4월 수단군과 신속지원군(RSF, Rapid Support Forces) 사이에 발발한 전쟁은 엄청난 파괴를 초래했다. 한 보고서에 따르면,
강제 이주된 수단인의 수가 1,040만 명을 넘어서면서, 그중에는 과학자들도 포함되어 있었고, 교육 시스템이 큰 타격을 입었다. 이용 가능한 자료에 따르면, 수단의 정치 및 교육 중심지인 하르툼주에서 정부 운영 대학의 39%와 비정부 운영 대학의 73%가 RSF에 의해 점거되었다. 이에 비해, 게지라주에서는 정부 운영 대학의 10%와 비정부 운영 대학의 8%가 점거되었으며, 남다르푸르주에서는 정부 운영 대학의 3%와 비정부 운영 대학의 5%가 점거되었다. 일부 대학과 단과대학은 부분적으로 또는 완전히 파괴되었으며, 일부 대학에서는 피해 규모를 파악하는 것조차 불가능했다. 이러한 상황은 대학의 완전한 폐쇄로 이어졌으며, 학생들은 교육을 계속하기 위해 값비싼 대안을 찾거나 아예 학업을 포기해야 하는 처지에 놓였다. 수단의 과학자들과 과학은 수많은 도전에 직면했으며, 이를 극복하기는 쉽지 않다.
2024년 9월 기준, 수단 내 주요 기관들의 상황은 다음과 같다.
출처: 알라민, N. K., 이드리스, A. A., 쿠갈리, E. E. A., 칼콘, G. O., & SS, M. (2024). "전쟁 시기의 과학: 수단에서의 성찰." ASFI 연구 저널(ASFI Research Journal), 1(1), e13267.
수단의 고등 교육 기관들이 점령되고 기능이 마비되는 과정에는 혼란과 저수준의 파괴 행위가 포함되어 있다. 그러나 이것이 단순한 무차별적 파괴 그 이상이라는 점에는 의심의 여지가 없다. 다르푸르와 기타 지역 주민들에 대한 RSF의 집단학살 전력이 확고하게 입증되어 있다. 그들은 대량 학살에서 강제 징집, 집단 성폭력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방법을 사용했다. 이러한 RSF의 집단학살적 성향을 고려할 때, 대학들에 대한 공격이 RSF의 캠페인에서 어떤 특정한 역할을 하는지 입증하기 위해서는 추가적인 증거가 필요하다.
한 보고서에 따르면, 수단 대학의 행정 담당자, 교직원, 학생들은 이 도전에 창의적으로 대응했다.
2019년 이후, 수단 대학들은 정치적 불안정과 COVID-19 팬데믹으로 인해 학문적 무질서를 경험해왔다. 그럼에도 이러한 상황은 대학들이 전자 학습 시스템을 도입하도록 하는 계기가 되었다. 그 결과, 전쟁이 시작되었을 때 대학들은 이미 이 분야에서 일정한 전문성을 갖추고 있었으며, 대부분의 대학들은 전자 학습 플랫폼을 구축했다. 전쟁이 진행되는 현실 속에서, 대학 행정 당국은 기존의 전자 학습 시스템을 활용하여 학부 과정의 지속에 집중하고 있다. 대학들은 일부 문제들에 대한 해결책을 마련하는 데 성공했으며, 많은 대학들이 온라인, 안전한 지역, 혹은 해외에서 학술 프로그램을 개설하기 시작했다. 일부 수단 대학들은 이미 몇몇 강의(특히 의과대학 고학년 과정)를 다른 국가로 이전했으며, 이는 비용이 매우 큰 대안이다. 더욱이, 다수의 대학들이 비교적 안전한 지역에 있는 자매 대학들과 양해각서를 체결했다. 이러한 조치는 많은 대학들이 교육과정의 실습 부분을 이수하는 데 기여했다. 또한, 일부 수단 대학들은 해외에 지부를 설립하기도 했다.
그러나 파괴된 교육기관, 손실된 연구, 중단된 교육, 그리고 전쟁이 초래한 심리적 외상으로 인한 피해는 깊고 지속적일 것이라는 점은 의심할 여지가 없다.
수단 학생들과 교수진을 대상으로 한 한 연구 조사에서 후삼 엘딘 E. 아부가브 엘하그(Husam Eldin E. Abugabr Elhag)와 라니아 M. H. 발릴라(Rania M. H. Baleela)는 다음과 같은 사실을 밝혀냈다.
학생들의 38%는 가족과 함께이든 아니든 수단 내에서 강제 이주를 당했으며, 32%는 다른 국가로 피난을 갔다. 피난민이 된 학생들(32%)은 총 여섯 개 국가를 거론했으며, 그중 가장 많은 16%가 이집트로 갔다. 다른 학생들은 남수단, 리비아, 우간다 등 인접국으로 이동했다. 반면, 일부는 사우디아라비아와 북아일랜드로 이동했다.
학생들에게 학업 상황과 학습 방법을 설명해달라고 요청했을 때, 가장 큰 비율인 35.14%의 학생들이 여전히 등록된 상태에서 PDF 문서 또는 음성 녹음을 활용하고 있으며, 교육자들과는 왓츠앱 또는 텔레그램을 통해 소통하고 있음이 밝혀졌다. 등록된 상태이지만 학사 일정이 중단된 학생은 21.62%였으며, 18.92%는 피난을 갔으나 학업을 지속할 수 없었다. 안전한 지역에 있는 학생들 8.11%는 여전히 대학에 출석하고 있었으며, 다른 일부는 학업을 포기하거나 수단 외부의 대체 대학 허브에 등록했으며, 원래 다니던 대학 또는 다른 대학으로 편입했다. 또한, 35%의 학생들은 가족과 함께 살지 않는 것으로 나타났으며, 대다수(62%)는 생계를 위해 일할 수밖에 없었다. 이들 중 수단 내 강제 이주를 당한 학생이 27%, 수단 외부에서 생활하는 학생이 27%였다. 반면, 강제 노동을 하지 않은 학생 비율은 38%였으며, 그중 22%는 강제 이주를 겪지 않았다.
현재 수단에서 벌어지고 있는 폭력은 그 심각성에 비해 훨씬 더 많은 주목을 받아야 한다. 이 폭력은 전 세계적으로 과소평가되고 있는 광범위한 지역적 다중위기(polycrisis)의 일부다.
그러나 수단의 교육 시스템에서 벌어지는 상황을 면밀히 살펴보는 것은 2023년 10월 이후 가자에서 이스라엘 군대가 벌이고 있는 파괴 캠페인의 진정한 특성을 강조하는 데 도움을 준다.
가자에 대한 이스라엘의 공격이 다른 사례들과 근본적으로 다른 점은 그 급진적인 강도(radical intensity)다.
공격이 시작되기 전, 가자는 인구 밀도가 높은 도시 밀집 지역으로 이루어진 좁은 공간이었다. 가자의 인구 및 면적 규모는 수단의 수도인 하르툼이 아니라, 그 인접 도시인 옴두르만에 더 가깝다. 옴두르만은 230제곱마일의 면적에 230만 명이 거주하는 반면, 가자에는 139제곱마일의 면적에 210만 명이 거주한다.
이스라엘 군대는 가자의 가장 인구 밀집 지역에 엄청난 화력을 퍼부었다. 2023년 12월, <파이낸셜 타임스>의 국방·안보 담당 기자 존 폴 라스본(John Paul Rathbone)은 이스라엘이 가자에 가한 폭격이 군사 역사상 가장 집중적이고 강력한 폭격 중 하나라고 결론지었다. 2024년 4월, ‘유로-지중해 인권 감시 기구’(Euro-Med Human Rights Monitor)는 이스라엘이 7만 톤의 폭탄을 투하했다고 발표했다. 비교를 위해 말하자면, 이는 1945년 2월 독일 드레스덴에 대한 악명 높은 폭격에서 사용된 폭탄량 보다 10배 많다. 또한, 이는 1945년 8월 히로시마에 투하된 원자폭탄의 폭발력보다 4.5배 강력하다.
2024년 11월, 팔레스타인 자치정부 환경 품질청은 이스라엘의 가자 폭격이 불과 1년 사이에 8만 5천 톤 이상의 폭발물을 사용했다고 추정했다.
그 결과 가자에서 벌어진 파괴는 전쟁 역사에서 거의 유례를 찾아볼 수 없는 수준에 도달했다. 수단 내전처럼 비교적 적은 군사 장비로 벌어지는 전쟁에서는 상상할 수도 없는 규모다. 수단의 어느 지역도 가자에서 벌어진 것과 같은 집중적 파괴를 겪지는 않았다. 이러한 대규모 화력 집중을 가능하게 만든 것은 단순히 이스라엘 자체의 군사 자원뿐만 아니라, 미국의 전폭적인 지원이었다. 바이든 행정부가 적극적으로 추진하고, 미 의회에서 압도적인 지지를 받은 미국의 군사 지원이 이스라엘의 폭격에서 상당한 비율을 차지했다.
가자 전역에서 모든 건물의 절반 이상이 피해를 입었다. 가자에서는 그 비율이 80%를 넘는다. 놀랄 것도 없이, 이 파괴는 가자의 12개 대학 전체에도 영향을 미쳐, 모든 대학이 완전히 또는 부분적으로 파괴되었다. 동시에, 강도 높은 포격과 이스라엘군의 명령으로 인해 사실상 모든 주민들이 강제로 쫓겨나면서 정상적인 생활이 지속될 수 없게 되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교육과 학문이 지속될 수 있었던 것은 오직 팔레스타인 교수진과 학생들의 굳건한 의지와 용기 덕분이었다.
수단에서, 혹은 세계 어느 곳에서도 발생한 피해와 비교해 보더라도, 가자의 교육 시스템이 입은 피해는 훨씬 더 포괄적이며 압도적이다. 더욱이, 수단에서는 교육 연구자들이 피해 규모를 상대적으로 정확하게 평가할 수 있도록 돕는 통신망이 여전히 존재하지만, 가자에서는 그러한 네트워크조차 사라졌다. 그곳은 완전한 폐허의 장면이다.
가자의 교육 기관과 그 직원들이 특정한 표적이 되었다는 증거가 있다. 제네바에 본부를 둔 독립적 비영리 인권 감시 단체인 ‘유로-지중해 인권 감시 기구’(Euro-Med Human Rights Monitor)는 이미 지난 1월부터 이스라엘군이 학자, 과학자, 지식인들을 목표로 삼고 있으며, 사전 경고 없이 그들의 집을 폭격하고 있다고 보고했다. 그 시점까지 95명 이상의 학자들과 수백 명의 교사들, 그리고 수천 명의 학생들이 살해되었다.
대학 건물들의 철거는 체계적으로 이루어졌으며, 가해자들에 의해 여러 차례 의기양양하게 기록되었다. 다른 학살적 학문 탄압 사례들과 마찬가지로, 이는 단순한 전쟁 속 약탈이나 난폭한 파괴가 아니라, 적의 서적과 도서관을 불태우는 행위에서 기쁨을 느끼는 모습을 통해 그 정치적·문화적 가치를 인식하고 있음을 확인할 수 있다. 한 소셜미디어 영상에서, 한 이스라엘군 병사는 알아즈하르 대학교의 폐허 속에서 서서 이렇게 말한다. "왜 가자에서 교육이 없는지 묻는 사람들에게 말한다. 우리가 폭격했다. 아, 유감이네. 이제 너희는 더 이상 엔지니어가 될 수 없겠군." 이스라엘군은 2024년 1월, 가자시 근처에 위치한 대형 알이스라 대학교를 파괴하기 위해 300개 이상의 지뢰를 사용했다. 이 건물은 전쟁 첫 몇 달 동안 이스라엘군이 군사 기지로 사용했던 곳이었다.
알이스라 대학교의 부총장인 아흐메드 알후사이나(Ahmed Alhussaina) 박사는 인터뷰에서 유물과 문서 보관소의 파괴에 대해 다음과 같이 설명했다.
"우리 박물관에는 가자 전역의 많은 수집가들과 일반 시민들이 기증한 유물들이 있었다. 우리는 3,000점 이상의 유물을 보유하고 있었으며, 대중에게 공개하기 위해 건물을 거의 완성한 상태였다. 본관 옆에 있던 작은 건물도 파괴되고 약탈당했다. 모두 사라졌다. 3,000점 이상의 유물, 이슬람 이전 시대의 것, 로마 제국 시대의 것, 팔레스타인의 전체 역사를 아우르는 유물들이 포함되어 있었다. 우리는 1905년부터 1920년대까지 팔레스타인의 모든 화폐를 보관하고 있었다. 말 그대로, 우리는 고대사부터 근현대사까지 보유하고 있었다. 그러나 이제는 모두 사라졌다. 그들은 그것을 약탈한 뒤 파괴했다. 그리고 건물에 폭탄을 설치했다. 선전(propaganda)은 '땅 없는 사람들이 땅 없는 곳으로 왔다'고 말한다. 즉, 그들은 팔레스타인에는 아무도 없었으며, 팔레스타인은 존재하지 않았다고 주장한다. 하지만 우리의 유물들은 그 주장에 정면으로 반박한다. 나는 이것이 그들이 이러한 유적들을 공격하는 주된 이유 중 하나라고 생각한다.
그들은 나무를 뿌리째 뽑아버린다. 심지어 묘지도 파괴한다. 교회도 파괴한다. 팔레스타인에서 세 번째로 오래된 교회가 폭격당했다. 수백 개의 모스크가 폭격당했다. 수백 개의 학교가 파괴되었다. 모든 대학이 피해를 입었다. 일부는 부분적으로 파괴되었고, 일부는 완전히 무너졌다. 학교 대부분이 사라졌다. 모스크, 병원, 의료 센터도 마찬가지다. 그리고, 가자에서 가장 오래된 도서관이었던 가자시립도서관도 파괴되었다. 더 이상 무슨 말을 할 수 있겠는가? 이것은 단순한 파괴가 아니라, 팔레스타인의 모든 것을 말살하는 것이다. 그들은 가자를 살 수 없는 곳으로 만들고, 그 역사를 지우려 하고 있다.“
전쟁 지역 바깥에서 대학과 교육 기관과 전문적인 연대를 맺고 있는 모든 사람들은 이 상황을 경악하며 항의할 이유가 충분하다.
지난달 열린 ‘미국 역사학회’(American Historical Association, AHA) 연례 회의에서 "가자에서의 학살적 학문 탄압에 반대하는 결의안(Resolution to Oppose Scholasticide in Gaza)"이 압도적인 찬성(428표 대 88표)으로 승인되었다. 이 결의안은 평화와 민주주의를 위한 역사학자들(Historians for Peace and Democracy)이 초안을 작성했으며, 2,000명 이상의 AHA 회원을 대표하는 단체였다. 결의안은 유엔 보고서를 인용하며 이스라엘군이 가자의 학교 80%, 모든 12개 대학을 파괴했으며, "문서 보관소, 도서관, 문화 센터, 박물관, 서점뿐만 아니라 195개의 문화유산 유적지, 227개의 모스크, 3개의 교회, 그리고 가자의 역사와 문화와 관련된 중요한 문서를 보존하고 있던 알아크사 대학교 도서관도 파괴되었다"고 지적했다.
이 명백한 현실에도 AHA 지도부는 이 결의안을 거부하기로 결정했다. AHA 지도부가 "이 문제는 협회의 임무와 목적의 범위를 벗어난다"고 주장한 것은, 과거 협회의 입장과 정면으로 배치된다. <중동 모니터>는 다음과 같이 보도했다.
뉴욕대학교 역사학 명예교수이며 결의안을 제안한 지도위원회 위원인 메리 놀란(Mary Nolan)은 AHA가 2007년 이라크 전쟁을 규탄하고 최근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을 비판했던 점을 지적하며, "협회의 이번 결정은 비민주적이며, 팔레스타인 문제에 대한 예외적인 침묵을 드러낸다"고 말했다. 존스 홉킨스 대학교 역사학 부교수 크리스티 손턴(Christy Thornton)은 이 결정을 "단순히 실망스러운 것이 아니라, 믿을 수 없을 정도로 근시안적인 결정"이라고 비판하며, 이번 결정이 회원들을 소외시키고 조직을 약화시킬 것이라고 경고했다.
나는 AHA 회원이 아니다. 그리고 이제 미국의 학술 기관 지도부가 팔레스타인의 삶이 파괴되는 현실에 항의하는 데 있어 일관성, 지적 정직성, 또는 최소한의 용기를 기대할 시점은 이미 오래전에 지났다. AHA 지도부의 이번 결정은 그러한 우울한 결론을 다시 한번 확인시켜 주었다.
분명한 사실은, 역사적 자료의 파괴와 가자의 교육 기관들이 폐허로 변한 것은 단순히 역사학계만이 아니라, 전 세계 학자 전체가 심각하게 우려해야 할 문제라는 점이다. 그러나 가자에서의 학살적 학문 탄압은 단독적으로 존재하는 것이 아니다.
이 경우 대학을 파괴하는 것은 다가올 더 큰 탄압의 서막이 아니다. 이스라엘은 무언가를 준비하기 위해 문화적 집단학살을 저지르는 것이 아니다. 이미 가자 지구에서 진행 중인 팔레스타인의 모든 정상적인 삶을 완전히 말살하는 전면적인 공격의 일부로서 학살적 학문 탄압이 이루어지고 있는 것이다.
개별적인 기관과 개별적인 희생자를 식별하는 작업도 중요하지만, 이번 공격에서 더욱 두드러지는 점은, 이스라엘이 가자에서 감행한 공격의 극단적인 강도와 광범위한 전면성이다. 그리고 그러한 파괴 캠페인이 세계에서 가장 부유하고 강력한 국가인 미국의 전폭적인 지원을 받으며 진행되고 있다는 사실 또한 주목할 만하다.
[출처] Chartbook 349 Scholasticides
[번역] 이꽃맘
- 덧붙이는 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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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덤 투즈(Adam Tooze)는 컬럼비아대학 교수이며 경제, 지정학 및 역사에 관한 차트북을 발행하고 있다. ⟪붕괴(Crashed)⟫, ⟪대격변(The Deluge)⟫, ⟪셧다운(Shutdown)⟫의 저자이다. 참세상은 이 글을 공동 게재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