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학이 어떤 역할을 할 수 있는지 보여준 위르겐 하버마스

위르겐 하버마스(Jürgen Habermas)의 죽음은 철학과 좌파 모두를 더욱 빈곤하게 만들었다그의 사상의 중심에는 모든 형태의 비이성에 대한 심오한 비판이 자리하고 있다그의 철학을 진지하게 받아들인다면그것은 억압에 맞선 투쟁에서 없어서는 안 될 지침을 제공한다.

14 별세한 철학자 위르겐 하버마스(Jürgen Habermas)는 생의 마지막까지 자신을 사회주의자로 이해했다그는 좌파가 좋은 사회에 대한 비전을 포기해서는 안 된다고 보았지만종종 자유주의의 한계를 간과하기도 했다

70년이 넘는 시간 동안 민주주의자본주의그리고 해방적 정치의 가능성에 대해 글을 쓰고 사유해 온 독일 철학자 위르겐 하버마스(Jürgen Habermas)가 3월 14일 토요일향년 96세로 세상을 떠났다한 세대의 정치이론가들과 철학자들에게 그의 작업은 중요한 기준점이었다. 30권이 넘는 저서를 남긴 그는 지배와 착취 없이 우리가 어떻게 함께 살아가야 하는지에 관한 근본적인 질문에 관심을 가졌다그러나 오늘날 그의 많은 저작은 충분히 읽히지 않거나 오해되고 있다.

나는 스무 살 무렵오타와의 칼턴대학교에서 정책 관리를 공부하던 학부생 시절에 하버마스를 읽기 시작했다정책 분석가로서 그다지 성실한 편은 아니었던 나는흔들리는 가톨릭 신앙이 불러온 끝없는 실존적 위기를 해결하는 데 더 많은 시간을 쏟았다고등학교를 막 졸업한 직후 나는 철학을 읽기 시작했지만그 정치적 내용에는 큰 주의를 기울이지 않았다처음부터 나는 가장 반동적인 사상가들에게 끌렸다나는 칼 슈미트(Carl Schmitt), 프리드리히 니체(Friedrich Nietzsche), 그리고 특히 마르틴 하이데거(Martin Heidegger)를 스펀지처럼 흡수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이들은 종교적 강렬함과 은밀한 엘리트주의를 결합하고 있었다이는 계산원으로 일하며 까다로운 고객들을 상대해 온 세월 속에서 키워진 나의 음울한 불안과 완벽하게 맞아떨어졌다하이데거 등은 나에게내 나라가 잘 알려져 있듯이 매우 공손하고 매우 캐나다적인 자유주의에 대놓고 손가락을 치켜드는 예언적 사상가들로 보였다다른 세계였다면 나는 아마 그들과 함께 남아 훨씬 더 음산한 길을 걸었을 것이다.

하버마스는 누군가를 극우 사상에 대한 매력에서 벗어나게 만들 철학자로는 어울리지 않아 보였다그의 글은 결코 예언적이거나 강렬하지 않다. “신은 죽었다!”나 존재의 의미는 무엇인가?” 같은 천둥과 번개 같은 아포리즘을 기대해서는 안 된다대신 프래그머티즘(pragmatism, 실용주의)과 일상언어철학으로의 전환을 통해 피어스적 전회(진리를 생각에서 실천과 소통의 과정으로 옮긴 철학적 전환)가 어떻게 탈형이상학적 사유로 이어지는지를 배우게 된다나는 언제나 그렇듯 자신의 능력을 제대로 가늠하지 못한 채모두가 그의 가장 중요하고도 어려운 책이라고 말하던 두 권짜리 ⟪의사소통 행위 이론⟫(The Theory of Communicative Action)에 곧바로 뛰어들었다그리고 즉시 그것이 내가 읽은 이론서 가운데 가장 지루한 책이라고 느꼈다도대체 누가 이런 글을 쓰는가막스 베버(Max Weber), 탈컷 파슨스(Talcott Parsons), 그리고 세상의 거의 모든 사회이론가와 사회학자들에 대한 끝없는 장황한 논의는 무엇을 위한 것이었는가이 책에는 편집자가 없었단 말인가왜 하버마스는 바로 요점으로 들어가 이상적 담화 상황과 왜곡되지 않은 의사소통이 좋은 사회의 토대가 되어야 하는지를 설명하지 못하는가그렇지 않았다면 나는 어떻게 그의 고루한 민주적 절차가 현대성의 강렬한 영적 위기 앞에서 얼마나 무력한지를 사려 깊은” 이유들로 열거할 수 있었겠는가?

그러다 어느 순간 무언가가 맞아떨어지기 시작했다책을 더 읽어갈수록 나는 마지못해 그 방대한 학문적 깊이에 감탄하게 되었다물론 이는 지적 허영심을 지닌 젊은이로서 쉽게 감탄할 수 있는 부분이기도 했다그러나 나를 진정으로 놀라게 한 것은 하버마스가 논쟁을 다룰 때 보여주는 세심함과 정교함이었다그는 막스 베버(Max Weber), 탈컷 파슨스(Talcott Parsons), 칼 마르크스(Karl Marx) 등 선행 사상가들을 정확히” 이해하는 것을 중요하게 여겼고그들과의 관계 속에서 자신의 입장을 위치시키려 했다그들은 위대한 스승들이었고그에 걸맞은 존중을 받아야 했기 때문이다또한 이론적 정직성은 그들에게 빚진 바를 인정하고지식을 정교화하려는 정신 속에서 그들의 성과를 계승하고 비판하는 것을 요구했다.

비슷한 시기에 나는 칼턴대학교에서 마르크스와 하버마스의 영향을 강하게 받은 두 교수의 수업을 듣기 시작했다두 사람 모두 나에게 지대한 영향을 끼쳤으며지금의 나를 형성하는 데 큰 몫을 했다그들은 이라크 전쟁에 강하게 반대했고하버마스가 이에 맞서 끈질기게 활동해 온 점을 강조했다이는 나에게 깊이 각인되었고새로운 스승들이 보여준 깊은 공감과 비엘리트주의적 태도 역시 마찬가지였다내가 인상 깊게 느낀 점은 그들이 내가 읽던 많은 우파 철학자들만큼이나 사상을 진지하게 다루면서도훨씬 덜 과장되고 자기과시에 빠지지 않는다는 것이었다하버마스의 영향을 받아 그들은 좋은 철학자란 자신의 주장을 가능한 한 명확하게 대중에게 제시하고논거의 설득력에 따라 무엇이 옳고 그른지를 사람들이 스스로 판단하게 하는 사람이라고 보았다물론 그들은 의사소통과 대화가 미디어수사비이성적 집착 등에 의해 왜곡되는 다양한 방식에 대해 순진하지 않았다그러나 그렇기 때문에 더욱 그러한 문제들에 대한 해결책을 모색해야 한다고 보았지단순히 비진정한 대중의 영원한 우매함 탓으로 돌려버리지는 않았다.

다양한 사유의 삶

하버마스는 1929년 독일에서 태어났다이는 세계사와 독일사 모두에서 격동의 시기였고그 시대의 충격은 그의 철학에 깊이 각인되었다. 1939년 제정된 법에 따라 하버마스는 히틀러 유겐트(Hitler Youth)에 강제로 가입되었고청소년 시절 나치 전쟁 수행에 동원되었다이후 그는 이러한 형성기 경험을 반복해서 언급했다그의 사유 전체는 사회를 모든 형태의 권위주의로부터 지켜내려는 강한 문제의식에 바탕을 두고 있다고 볼 수 있다하버마스는 1950년대에 철학을 공부했고, 1953년 하이데거와 하이데거 학파가 나치 정권과의 밀접한 관계를 인정하지 않는다고 비판하는 일련의 칼럼으로 일찍이 주목을 받았다이러한 반파시즘과 탈나치화에 대한 평생의 헌신은 독일 사회에 대한 그의 공적 개입에서 핵심적인 요소가 되었다. 1956년 하버마스는 프랑크푸르트학파로 알려지게 된 사회연구소(Institute for Social Research)에 합류했고테오도어 아도르노(Theodor Adorno), 막스 호르크하이머(Max Horkheimer) 등 비판이론의 주요 사상가들로부터 깊은 영향을 받았다그 이후로 하버마스는 좌파의 인물이었지만모든 형태의 극단주의에는 경계심을 유지했다.

1962년 하버마스는 그의 첫 주요 저작 ⟪공론장의 구조변동⟫(The Structural Transformation of the Public Sphere)을 출간했는데이때부터 제목은 지루하지만 내용은 흥미로운 두꺼운 책들을 내기 시작했다이후 그의 사상의 핵심은 분량이 더 방대한 후기 저작들에 비해 상대적으로 짧은 이 초기 저작에 이미 상당 부분 담겨 있다철학적으로 이끌어진 사회이론 연구라 할 수 있는 이 책은 부르주아 공론장이라는 개념을 자연스러운 것으로 보지 않고물질적 조건의 변화가 새로운 계층의 지식인철학자언론인을 등장하게 했음을 보여준다이들은 계몽주의와 그 혁명을 주도한 인물들이었다보수주의자 에드먼드 버크(Edmund Burke)는 이들을 가장 방종하고 경박한 커피하우스의 오염된 헛소리를 퍼뜨리는 존재로 두려워하고 경멸했다그러나 하버마스는 다르게 보았다그는 공론장에서 민주적으로 조직된 사회생활의 싹을 보았다정치적·종교적 권위가 위에서 아래로 이데올로기적 진리도덕법을 강요하는 대신이러한 것들은 아래로부터 합리적으로 토론되고 결정되어야 한다는 것이다이는 이후 자유주의와 사회주의 모두에서 정치적·경제적 민주주의를 향한 열망의 기초가 되었다.

1960년대 후반 이후에도 하버마스는 주요 저작들을 계속 발표했다⟪인식과 관심⟫(Knowledge and Human Interests)은 그의 지적 발전에서 중요한 전환점이었다그는 마르크스프로이트독일 관념론 전통을 바탕으로 우리가 무엇을 아는지(혹은 안다고 생각하는지)와 우리가 무엇을 원하는지 사이의 관계를 이해하려 했다스승 아도르노와 달리 하버마스는 우리가 스스로를 더 잘 이해하고그에 따라 우리의 이해관계를 더 합리적으로 재조정할 수 있을 가능성을 열어두었다⟪정당성 위기⟫(Legitimation Crisis)에서는 그의 정치이론의 기본 구상이 제시되었다그는 자본주의 사회에서 다양한 위기가 어떻게 발생하는지를 분석하고서로 다른 체계 영역이 시민사회와 더 긴밀히 통합되어그 체계를 구성하는 시민들에 의해 방향이 설정되어야 한다고 주장했다여기에는 경제와 국가가 포함된다.

1980년대와 1990년대는 하버마스 사상의 전성기였다이 시기에 그는 세 권의 방대한 저작을 발표했다그 가운데 가장 중요한 것은 두 권으로 이루어진 ⟪의사소통 행위 이론⟫(The Theory of Communicative Action)으로생활세계에 존재하던 합리적 담론의 원천이 지배 체계에 의해 식민화되는 과정을 탐구했다이는 사회를 모두의 이익에 맞게 조직할 수 있는 우리의 능력을 약화시켰다자신의 철학을 전개하는 한편하버마스는 철학사 자체를 재해석하려 했고그 결과로 ⟪현대성의 철학적 담론⟫(The Philosophical Discourse of Modernity)과 ⟪사실성과 타당성 사이⟫(Between Facts and Norms)를 집필했다전자는 게오르크 빌헬름 프리드리히 헤겔(Georg Wilhelm Friedrich Hegel)에서 니체미셸 푸코에 이르는 현대 철학자들에 대해 매우 비판적인 입장을 취한다초기에는 개인 주체가 어떻게 합리적 지식을 획득하는지에 대한 이론에 기반해 이성을 정초하려 했던 철학자들이 결국 이를 포기하고 좌우를 막론한 새로운 형태의 비이성주의를 받아들였으며이는 권위주의 정치에 기여했다고 하버마스는 보았다합리적으로 설득할 수 있는 길이 사라지면정치와 도덕 문제는 권위주의자가 자신의 뜻을 밀어붙이거나아예 함께 살아갈 사회를 만들려는 시도를 포기하는 방향으로 흘러갈 수밖에 없다.

⟪사실성과 타당성 사이⟫는 중요한 정치이론 저작이다여기서 하버마스는 합리적 의사소통에 대한 철학적 강조를 확장해 매우 민주적이고 평등주의적인 국가의 수립을 주장했다그는 존 롤스(John Rawls), 로널드 드워킨(Ronald Dworkin) 등 분석철학자들과의 대화를 통해 자신의 사상의 폭을 보여주었다많은 이들(나를 포함해)은 그의 정치철학이 비판이론과 마르크스주의의 날카로움에서 너무 멀어졌다고 비판해 왔다과장해 말하면 그의 사상에는 정치적 삶이 완벽한 대학원 세미나처럼 되어야 한다는 거의 과도하게 교수적인 성격이 있다합리적인 사람들이 서로를 설득하고 더 나은 논거가 승리한다는 믿음이다이러한 평가는 그의 사상의 풍부함을 충분히 반영하지 못하는 불공정한 것이지만일정 부분 사실을 담고 있기 때문에 반복해서 제기되는 비판이기도 하다.

2000년대 들어 하버마스의 작업은 국제법을 옹호하고 다양한 종교 전통과 대화하는 데 점점 더 집중되었다유고슬라비아 내전과 9·11은 민족주의와 종교적 근본주의의 지속적인 힘과 위험을 그에게 각인시켰고그는 이러한 경향이 조지 W. 부시 행정부가 이라크에서 메시아적 국가 건설을 단독으로 추진하는 과정에서 응축되어 나타난다고 보았다필리프 펠슈(Philipp Felsch)는 최근 저서 ⟪철학자하버마스와 우리⟫(The Philosopher: Habermas and Us)에서 하버마스가 결코 자신을 사회주의자로 보는 입장을 버리지 않았음을 상기시킨다그러나 그의 사회주의는 2000년대에 이르면 급진좌파로부터 배울 의지를 유지하면서도분명히 개혁주의적인 성격을 띠게 된다⟪분열된 서구⟫(Divided West)와 같은 에세이집에서 하버마스는 유럽 통합 프로젝트가 더 민주적인 방향으로 나아가고 더 가난한 국가들을 끌어올리는 데 기여한다면 많은 긍정적 효과를 낳을 수 있다고 보았다.

2010년대에 이르러 많은 사람들은 80대에 접어든 하버마스가 마땅히 누려야 할 은퇴를 맞이할 것이라고 생각했다그러나 이는 틀린 판단으로 드러났다. 1990년대의 하버마스가 가장 무해하고 온건한 모습이었다면, 2020년대의 그는 예상치 못한 논쟁 속에 깊이 휘말렸다많은 좌파들이 그에게 품고 있던 최악의 인상을 확인시켜주듯하버마스는 가자 분쟁 동안 이스라엘에 대한 비판을 완화하는 태도를 보였고당시 상황을 집단학살로 규정하는 표현 사용에 대해 우려를 표했다이는 그가 미국과 같은 국가들에는 적용하지 않았던 온건한 태도를 이스라엘에는 취하고 있다는 점에서 옹호와 비판이 뒤섞인 광범위한 논쟁을 불러일으켰다이러한 태도는 적어도 부분적으로는 그가 나치 체제 아래에서 살아가며 강제로 그 체제에 참여했던 경험에서 비롯된 책임 의식과 관련이 있는 것으로 해석되었다.

이러한 말년의 정치적 개입은하버마스가 프랑크푸르트학파의 비판적 유산을 버리고 현상 유지의 옹호자로 변했다고 보았던 비판자들의 주장을 강화했다흥미롭게도 이는 그의 철학이 다시 급진성을 회복하고 있던 시기와 겹친다. 2019년 하버마스는 사실상 두 번째 대표작이라 할 수 있는 세 권짜리 ⟪또 하나의 철학사⟫(Also a History of Philosophy)를 발표했다나는 이 책들을 별도로 검토한 바 있는데말할 필요도 없이 이는 압도적인 학문적 깊이와 지적 관대함을 보여주는 작업이다⟪또 하나의 철학사⟫는 너무나 방대하고 밀도 높으며 다층적인 저작이어서개별적인 비판을 사실상 압도해 버린다그러나 이는 단순한 철학사가 아니다이 책 전반을 통해 분명해지는 것은과거의 낙관적인 하버마스는 더 이상 존재하지 않는다는 점이다그는 현재의 사건들을 직접적으로 많이 언급하지는 않지만자신의 마지막 대작이 합리적이고 진보적이며 포용적인 근대성의 기획을 점점 더 강력해지는 반동적 세력에 맞서 회복하고 방어하기 위한 최후의 최대 노력임을 분명히 한다.

[출처Jürgen Habermas Showed What Philosophy Could Be

[번역이꽃맘 

덧붙이는 말

매트 맥마누스(Matt McManus)는 스펠먼 칼리지(Spelman College)의 조교수다. 그는 ⟪우파 정치와 평등⟫(The Political Right and Equality), ⟪자유주의적 사회주의의 정치이론⟫(The Political Theory of Liberal Socialism) 등 여러 저서를 쓴 저자다. 참세상은 이 글을 공동 게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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