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기 여자 없는데요? 직원만 있습니다” 부산지하철 여성노동자의 이야기를 듣다

여성노동자 건강권 우리가 지킨다 ⑧

[소개글] 공공운수노조는 2026년 3.8 세계여성의날을 맞아 고용·임금 등 구조적 성차별과 일터의 성희롱·괴롭힘 등 젠더기반폭력에 맞서 싸우는 여성노동자들의 삶과 투쟁을 사회적으로 알리고자 합니다학교 급식실에서 병들어 쓰러지는 동료들, AI 도입 이후 더 빠르고 더 많이 일하라는 압박에 시달리는 콜센터 노동자들젠더폭력 피해자를 지원하면서도 정작 자신의 안전은 보호받지 못하는 상담노동자들쉴 곳도 화장실도 없이 현장을 떠도는 돌봄노동자들, ‘단정함이라는 이름으로 몸을 통제당하는 여성승무원들처럼여성노동자들은 일상 속 차별과 폭력의 현장에서 자신의 건강과 존엄을 지키기 위해 싸우고 있습니다이번 기획은 여성노동자 건강권을 단순한 산재 예방을 넘어 저임금·감정·꾸밈노동젠더폭력휴식이 배제된 노동조건 등 여성에게 구조적으로 전가되는 신체적·정신적 손상까지 포괄하는 개념으로 확장해 조명하며총 8회에 걸쳐 연재됩니다.

철도·지하철은 공공부문 내 대표적인 남초 사업장이다. 부산지하철노동조합 조합원 4,283명 중 여성은 565명(13%. 2025년 공사 소속 기준)이다. 이중 여성이 상대적으로 많은 역무(30%)를 제외하면 승무(7%)·기술(9%)·차량(7%) 등에서 여성은 여전히 소수다. 철도·지하철은 24시간 운영되는 특성상 일터에 머무는 시간이 길고, 야간근무로 식사뿐 아니라 샤워, 수면 등도 사업장 내에서 해결해야 한다. 이곳에서 여성들은 어떻게 일하고 있을까. 3.8 세계여성의 날을 맞아 부산지하철노동조합이 여성조합원 7명에게 묻고 들었다.

어디에나 있는 여성노동자

이날 간담회에 참석한 여성조합원들은 기관사, 전동차 검수, 통신 및 신호기기 관리 등 다양한 업무를 하고 있었다. 기관사 A씨는 “운전만 한다고 생각하기 쉬운데, 시민과 가장 가까이 있는 업무다. 비상 상황에 초기대응을 해야 해서 집중력과 판단력이 필요하다”고 했다. 신호 업무를 하는 B씨는 “열차가 운행할 때 경합하지 않거나 안전거리를 유지할 수 있도록 신호설비를 유지, 보수하는 일”을 하고, 차량 검수부에서 일하는 C씨는 “열차가 매일 안전하게 운행되도록 정기적으로 검수업무”를 한다. “차량이 나가기 전에 점검하고, 고장이 발생하면 원인을 조사”하는 것도 그의 일이다.

같은 차량이라도 업무는 조금씩 다르다. D씨는 전동차 부품을 다 떼서 정비하는 중수선 업무를 하고, E씨는 그 중에서도 전압 변환하는 기계를 정비한다. 통신직렬에서 일하는 F씨는 기관사와 관제가 통화하는 열차설비, 안전감시 폐쇄회로와 역무실 인터폰 등을 관리한다. 부산지하철이 달리는 곳 어디나 여성노동자의 손길이 묻어있다.

부산지하철에서 일하는 여성노동자 모습. 출처: 부산지하철노동조합

가장 어려운 점은 부족한 시설 문제

참여자들은 일하는 데 어려운 점으로 여성노동자에게 부족한 시설 문제를 꼽았다. 40년 전 개통 당시 부산지하철은 남성만 있던 사업장이었고, 모든 시설이 남성을 기준으로 설계됐다. 여성이 입사하기 시작한 건 20여 년 전이고, 본격적으로 늘어난 건 10여 년 새 일이다.

참여자 중 근속연수가 가장 긴 G씨는 “20년 전 입사했을 때는 여직원이 너무 적어서 (여성 전용) 시설 자체가 없었어요. 휴게실도, 침실도 없었고, 일하던 건물에 화장실이 없어 옆 건물에 가야했어요. 지금은 정말 많이 좋아졌죠”라고 회상했다. 그러나 지금도 여성들은 시설 부족으로 여러 불편을 겪고 있었다.

“침실 문제가 커요. 여성 기관사는 매년 들어오는데, 침실이 부족하거든요. 침실이 안 늘어나면 근무시간을 바꾸거나 갑자기 조 이동을 해야 하는 일이 생길 수도 있어요.”
“저희는 팀으로 일하거든요. 그런데 팀별로 여성용 시설이나 장비가 부족하다고 여성은 몇 명까지만 받는다 정해놓기도 해요. 여직원끼리 1:1로 자리를 맞바꿔야 움직일 수가 있는 경우가 많아요.”
“갈 수 있는 자리가 한정되어 있어서 원하지 않는 곳으로 발령받거나, 여직원끼리 눈치를 봐야하는 일도 종종 생겨요. 반면 일근(주 5일, 1일 8시간 노동) 사무직은 여성에게 제약이 적잖아요. 여직원들은 입사하고 5년 안에 일근 한번은 한다는 생각도 하죠.”
“개선도 많이 됐지만, 화장실이 여전히 부족해요. 1층에 근무하는데, 1층에 여자화장실이 없어요.”

“모든 직렬 여직원 침실이 한곳에 있는 데도 있어요. 저희는 직렬마다 근무시간이 다르잖아요. 누구는 일어나서 일하러 가야 하는 시간인데, 누구는 들어와서 자야 하는 시간이고요. 나는 자고 있는데 옆 사람은 일 끝나고 와서 샤워하고 그런 거죠. 그럼 수면에 방해되고, 서로 미안한 상황이되는 거예요.”

시설이 부족하면 오히려 갈등이 커진다는 이야기도 나왔다.

“지금은 대부분 시설에 여성 침실이 있지만, 처음 만들기 시작했을 때는 남성 직원들 불만도 있었어요. 여성 침실 있는 곳에만 여직원이 배치받을 수 있는데, 침실 있는 곳은 지상역처럼 상대적으로 시설이 괜찮은 곳들이었거든요. 그럼 여직원들은 편한 데서만 일한다는 얘기가 나오는 거죠. 지금은 많이 개선돼서 그런 말이 안 나오는데, 과도기에 오히려 불만이 있었던 것 같아요.”

좋은 점과 힘든 점

여성이라서 좋은 점은 무엇이냐는 질문에, 참여자들은 수가 적어서 여성들이 잘 뭉칠 수 있다는 점을 꼽았다. 이곳이 아니면 여성이 쉽게 경험할 수 없는 일을 하는 것도 장점이라고 했다.

“옛날에는 수가 워낙 적어서 그랬는지 여성 선배들이 일을 굉장히 잘하세요. 여자 후배들에게 일도 잘 알려주고, 이것저것 챙겨주셔서 그게 좋아요.”
“여기 들어와서 지게차도 운전해보고 공구 사용도 많이 하게 됐어요. 이런 거 해보는 건 재밌어요.”

반면 힘든 점은 야간근무로 인한 건강 문제였다.

“교대근무 자체가 건강에 안 좋죠. 저도 교대근무를 10년 했는데, 교대근무 하면 수면장애는 기본이고 여성은 생리불순도 많아요.”
“교대근무가 여성의 몸에 더 취약하다고 하더라고요. 난임이나 유산 문제로 교대근무를 더 이상 못하는 분들도 꽤 있다고 들었어요.”

부산지하철에서 일하는 여성노동자 모습. 출처: 부산지하철노동조합

바라는 건 “여직원 아닌 그냥 직원으로 인정받는 것”

참여자들이 바라는 건 여성이라고 더 대우받거나 특별해지는 것이 아니라, ‘여직원 아닌 그냥 직원’으로 존중받는 것이었다.

“처음 입사해서 근무지에 갔는데, 거기 분소장님이 저를 보고 ‘여기는 여자가 할 일 없는디’ 하시더라고요. 전라도 분이라 구수한 사투리 쓰시면서요. 그래서 제가 그랬어요. ‘여기 여자 없어요. 그냥 직원입니다’라고요. 그 말 한마디에 무서운 사람이라고 소문나서 저한테는 아무도 함부로 못했죠.”
“오늘 나눈 이야기들도 특별하게 들리지 않았으면 좋겠어요. 직원 중 한 명으로 일했으면 좋겠어요. 여직원 말고 그냥 직원, 그 자체로요.”

지난 2월, 부산교통공사 이병진 사장은 “여성 직원 비율이 증가하는 등 인력구조가 변화”하고 있다며 “여성 직원 증가에 따른 침실 확보 등 근무여건을 선제적으로 개선”하라고 했다.

노동조합은 매년 단체교섭에서 여성노동자 시설 개선을 꾸준히 요구하고 있다. 올해 교섭장에서 사장의 당부가 지켜지길 바란다.

덧붙이는 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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