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애해방 투사 최옥란 열사 끝내 동지들 곁을 떠나

생전의 최옥란 열사. 수급권을 반납하기위한 집회장에서의 모습이다.

뇌성마비 1급 장애인 수급자 최옥란열사 3월 26일 새벽 4시에 심장마비로 끝내 사망하였다. 최옥란 열사는 약 보름전 과산화수소 한 통과 수면제 20알을 먹고 자살을 시도하여 긴급히 병원에 후송되었으나 보름만에 한 많은 세상을 떠났다.

열사가 죽음을 택해야 했던 이유는 하나 뿐인 아들의 양육권을 되찾기 위해서는 어느 정도의 경제력을 인정받아야 하는데 그럴 경우 국민기초생활 보장법의 재산기준 때문에 수급권을 박탈 당할 수 밖에 없는 상황이었기 때문이다.

이런 상황에서 수급권 재선정을 위해 소득 및 재산신고를 하라는 동사무소의 편지를 받던 날 최옥란씨는 과산화수소 한통과 수면제 20알을 먹고 자살을 시도하기에 이르렀다.
'생산적 복지' 정책으로 생존의 벼랑 끝에 몰린 최옥란씨의 힘겨운 농성투쟁 동영상보기[클릭]


열사가 작년 12월 명동성당 앞에서 생산적 복지의 허구성과 기초 생활보장이 되지 않는 현실에 맞서 투쟁하면서 "국민기초생활보장법이 시행되면서 정부는 저에게 노점과 수급권 둘 중에 한가지를 선택하도록 강요하였습니다......그런데 노점조차도 포기한 저에게 정부는 월26만원을 지급했습니다. 처음에는 무엇이 잘못되었다고 생각하고, 시청과 구청을 찾아다녔습니다. 제가 지불해야 하는 약값만 해도 26만원이 넘는데....아파트 관리비만도 16만원인데....도대체 나보고 어떻게 살라는 거지? 그러면서도 최저생계를 보장한다는 것인지?..." 라는 말을 했던 것은 김대중 정부의 생산적 복지가 얼마나 허구적인 것이었는지 철저히 보여 준다.

불안정 노동 철폐 공대위는 국민 기초생활 보장법에 대해 "수급자 선정기준의 강화, 낮은 생계급여, 형식적인 자활사업 등으로 인하여 최저생계 보장은 찾아볼 수도 없고, 하나 둘씩 수급자를 자살로 몰아가게 하고 빈곤계층을 더욱 빈곤하게 하고 있다."며 "수급권으로 지급되는 생계비에 의존하여 살아가고 있던 빈민들에게 최소한의 생존마저도 위협하는 위기로 내몰았다."고 밝혔다.

또한 열사는 장애인 이동권 투쟁의 최선두에서도 싸워왔다. 장애인들의 기자회견 및 버스타기 행사를 무조건 불법으로 규정하던 경찰들이 막아서면 열사는 경찰의 방패 앞에 나가 항상 투쟁의 최선두에 서 있었다. 그런 열사의 죽음은 더욱 안타깝다.

최옥란 열사의 발인은 28일 한강 성심병원 오전 6시에 있으며 명동성당 들머리에서 오전 7시에 노제를 지내고 8시 30분에 열사가 투쟁해 왔던 현장인 세종문화회관 앞에서 민중복지 장이 치러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