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TX여승무원들의 점거투쟁이 40일 여일이 넘어가고 있는 철도공사 서울본부사무실 옥상에서는 김정민 철도노조 서울지방본부장이 작은 천막을 치고 농성을 진행하고 있다. 그를 만나기 위해 황사가 가득한 하늘로 가까이 올라갔다. 김정민 본부장은 지난 6일 ‘징계철회, KTX여승무원 직접고용, 구조조정 중단’을 요구하며 철도공사 서울본부사무소 옥상에 올라갔다.
▲ 철도공사 측은 옥상으로 올라가는 모든 문에 밖에서 용접해 자물쇠를 달았다. |
김정민 본부장을 만나러 가는 길은 그리 쉽지 않았다. 철도공사는 옥상으로 통하는 모든 문을 밖에서 용접을 해 커다란 자물쇠를 달아 잠가 놓았다. 그리고 문마다 “농성이 종료되는 시기까지 출입문을 잠정 폐쇄합니다”라는 종이를 붙여 놓았다. 자물쇠를 하나 하나 열고, 사다리를 타고 올라 간 옥상에는 황사 모래가 가득 덮힌 작은 텐트 하나가 있었다. 그 곳이 김정민 본부장이 농성을 진행하는 곳이었다. 기자가 온다는 소식에 김정민 본부장은 옥상 끝에 있는 수돗가에서 양치질을 하고 있었다. 입 안 가득 비누거품을 머금은 김정민 본부장은 잘 씻지 못해 조금은 꾀죄죄한 모습이었지만 얼굴 가득 환한 미소로 기자를 반겨줬다.
"4월 1일 합의안, 냉정하게 봐야 한다“
인터뷰는 황사가 가득한 하늘과 맞닿은 조그만 텐트에서 진행되었다. 기자의 질문에 김정민 본부장은 처음부터 끝까지 말 한 마디 한 마디에 힘을 실으며 신중하게 답을 했다. 이는 지난 4월 1일 합의안에 대한 현 철도노조 내부의 모습을 그대로 보여주는 듯 했다.
▲ 김정민 본부장과 텐트 |
4월 1일 철도 노사의 합의안에 대해 김정민 본부장은 “냉정하게 봐야 한다”며 이번 합의안이 이후 철도 노동자에게 미칠 영향에 대해 치밀한 분석과 냉정한 판단이 필요함을 강조했다. 김정민 본부장은 “철도 노사가 합의한 것에 대해 조합원 스스로 자신에게 어떤 의미로 다가올 것인가에 대해 진지하게 고민할 수 있는 시간이 필요할 것 같다”며 “그동안 오랜 투쟁으로 조합원들이 피로하겠지만, 고민없이 지나치지 말고 합의안이 어떤 영향을 미칠 것인가에 대해 곰곰이 생각해야 할 의무가 우리에게 있다”고 말했다.
철도노조 서울지방본부는 3월 31일 잠정합의안이 나오자 이에 대해 “잠정합의안과 3월 2일 교섭에서 사측이 제시한 안이 상당부분에서 구체적 문구까지 일치한다”고 비판하며 설명 자료를 내기도 했었다. 김정민 본부장은 “이번 합의안이 철도공사의 구조조정안을 사실상 용인한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이 합의안으로 모든 것이 끝났다고 보는 것이 아니라 필연적으로 다시 투쟁이 필요하며, 더 큰 투쟁을 현장에서부터 조직해야함을 결의해야 할 것이다”며 이후 투쟁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정말 열심히 싸웠다. 그러나 승리적이었는가“
만족스러운 합의안을 만들지는 못했지만 김정민 본부장은 이번 철도파업에 대해 “조합원들은 지도부의 지침대로 정말 열심히 싸웠다”며 그간 진행된 철도파업 중 최대 인원이 참여한 이번 파업을 긍정적으로 평가했다. 그러나 이 싸움이 승리적이었는가에 대해서는 좀 더 신중한 판단이 필요함을 지적했다. 김정민 본부장은 “평가의 기준이 되어야 할 것은 조합원들 마음 속에서 승리감과 다시 일어나겠다는 의지여야 할 것이다. 하지만 합의안에 대해 현장에서 어떤 영향이 있을지 조합원들이 아직 정확하게 판단하지 못하고 있는 것 같다”고 지적했다.
이어 김정민 본부장은 언제까지 농성을 지속할 것인가에 대한 기자의 질문에 “KTX여승무원 동지들의 투쟁이 마무리 되면 함께 이곳에서 나가겠다”고 말했다. KTX여승무원들의 투쟁에 대해 김정민 본부장은 “KTX여승무원 동지들은 구조조정 최전선에서 구조조정 반대투쟁을 하고 있는 것이다. 정규직에게 밀려오는 구조조정의 날카로운 공격을 KTX여승무원 동지들이 막아서고 있는 것이다”고 그녀들의 투쟁에 끝까지 함께 할 것을 밝혔다.
"정당하다! 외롭지 않다! 끝까지 함께 한다“
김정민 본부장은 정규직 철도조합원들의 연대 투쟁에 대해 “지금은 시작이며 과정이다”고 평가했다. 김정민 본부장은 “이전에 진행된 새마을호 여승무원의 투쟁에서는 쳐다보지도 않았다”며 “그러나 이번 투쟁을 통해 철도 현장 곳곳에서 벌어졌던 비정규직 문제들이 정규직과 동떨어진 일이 아니라는 의식이 강해지고 있다”며 “많은 부분 함께 하지 못하고 있는 것은 단순히 정규직 노동자들의 잘못이 아니다. 사실 비정규직이 없는 곳에서 생활해왔고, 사측이 끊임없이 정규직과 비정규직을 분열시키는 과정이 정규직과 비정규직의 연대를 어렵게 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작고 큰 투쟁들이 계속 진행된다면 연대의 의지와 힘은 이후 더욱 강해질 것이다”고 말했다.
흔들림 없이 싸움을 전개하고 있는 KTX여승무원들에게 김정민 본부장은 “그녀들의 투쟁은 너무나 정당하다는 것, 결코 외로운 투쟁이 아니라는 것”을 자신의 행동 속에서 볼 수 있기를 바랬다. 또한 “어려울 때만 비정규직을 바라보는 것이 아니라 항상 동지들의 아픔을 함께 하고 있다는 것을 알아줬으면 좋겠다”고 전했다.
더 큰 싸움을 만들기 위해
김정민 본부장은 자신의 옥상농성으로 이번 투쟁을 제대로 정리하는 모습을 보여주고 싶어 했다. 김정민 본부장은 “지금은 방향 감각을 잃어버린 혼란스러운 국면이다”며 “투쟁의 마지막은 동지들에 대한 의리와 신뢰로 함께 정리되어야 한다”고 지적하고, “사측의 더 큰 구조조정의 칼날에 맞서 싸울 것을 준비해야 한다”며 새로운 싸움을 만들어가기 위해 자신의 투쟁이 작은 보탬이 되길 바랬다.
그는 오늘도 옥상 위 작은 텐트에서 외롭지 않기 위해, 동지들과의 의리를 끝까지 지키기 위해, 제대로 투쟁을 정리하기 위해, 더 큰 싸움을 만들기 위해 농성 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