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완, "87년 경유하며 대중의 인식 ‘세상이 변했다’로..“
이상훈, “87년 체제는 신자유주의 체제”
박래군, “자유주의 세력들 기득권 세력에 투항해 가는 과정”
김태연, “패배와 함께 2007년 맞고 있다”
사회 : 유영주 87년 이후 20년, 96-97년 총파업투쟁 이후 10년, 사회운동과 노동운동은 무엇과 싸우며 어떤 길을 걸어왔나 최근 논의가 잦아지고 있는 이른바 ‘87년 헌법 체제’에 대한 평가와 그 후 20년 사회운동에 대한 총평을 해달라
김완 87년 체제 담론이 문화적으로 어떤 작용을 하고 있는가를 살펴볼 필요가 있다. 간단히 말해 ‘세상이 변했다’는 대중들의 인식이 87년을 경유하면서 생겨났고, 운동권들은 이제 ‘세상이 변했는데도 아직도 저러는 애들’이라는 평가를 받고 있다. 정치사회적 분석 이외에 문화적 효과를 보아야 한다. 87년, 97년 사회운동의 평가와 함께 문화적 측면에서의 평가도 중요할 것 같다.
이상훈 일단 ‘87년 체제’라는 말은 정체불명의 용어이다. 87년 체제는 신자유주의 체제로 보는 것이 타당하다. 87년 헌법체제를 약칭해서 87년 체제라고 쓰는 것 같은데, 87년 헌법체제라는 것이 87년 항쟁을 주도했었던 운동세력을 원천적으로 봉쇄하고, 당시 보수야당과 민정당이 87년 항쟁을 봉합하기 위해 87년에 분출했던 민중들의 요구를 대통령 직선제로 가둬버렸던 결과다. 그렇다면, 87년 민중항쟁과 87년 체제라는 것은 사실 대립적 관계에 있다고 볼 수 있다.
따라서 둘을 혼동하면 안 되고, 이른바 절차적 민주주의의 공고화를 자화자찬 하는 386들의 기만을 제거하는 것이 87년 민중항쟁의 정신을 오늘에 되살리는 핵심이다. 386들의 기만이란 민주주의를 절차적 민주주의와 실질적 민주주의로 나누고, 절차적 민주화는 이뤄졌으나, 사회경제적 민주화가 안 되었다고 주장하는 데 있다. 때문에 그들에게 있어 오늘날 제기하는 반신자유주의 운동은 절차적․정치적 민주화의 종속적이고 부차적인 운동과제가 된다.
박래군 이른바 절차적 민주주의와 관련해 시민․정치적 권리는 진전이 있었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절차적 민주주의 얘기를 하더라도 국가보안법이라는 법 앞에서 멈춘 정도이다. 극악무도했던 국가폭력이 사라진 정도의 민주주의가 아닌가 싶다. 시민정치적 권리에서 양적으로 개선된 부분이 있지만, 삶의 질과 사회경제적․문화적 권리는 여전히 지체된 상태거나 오히려 후퇴하고 있는 양상을 보이고 있다.
사회운동 전체를 놓고 보면, 87년 때 제기된 과제들과 6월 항쟁의 주도세력들이 7, 8월 노동자대투쟁의 세력들을 배제시키거나, 방치해버렸다. 이런 부분들이 87년 헌법 안에 대부분 담겨있다. 또 자유주의 개혁세력들의 경우 김영삼, 김대중 정권 이후에 기존 기득권 세력의 헤게모니에 투항해가는 과정들이었다. 그러나 이런 부분을 제어할 수 있는 사회운동의 힘은 약화되어 온 과정이었다.
김태연 노동운동은 90년 초반 신경영전략, YS의 세계화 그리고 외환위기 등 내용적으로 신자유주의 세계화와의 싸움이었다. 대체로 보면 방어하느라 정신이 없는 저지투쟁 중심이었다. 중간에 저지만 가지고는 안 되겠다 해 공세로 해보자했다. 그래서 일자리창출, 사회공공성 강화, 비정규직 정규직화 등을 제기했지만, 거꾸로 밀려서 개악되는 결과를 낳았다. 노동운동은 싸움에서 패배한 것뿐만 아니라, 내부적으로 자본의 공세에 비해 운동노선도 지그재그로 걸어왔다. 악순환 고리에 빠져 있는 것 같다. 20년의 기간 동안 한편으로는 신자유주의에 투항한 운동노선이 투쟁을 등치고, 다른 한편으로는 투쟁이 실패함으로써 투항주의가 확대되어 왔다. 노동운동은 크게는 신자유주의 세계화가 저항과 투쟁의 상대였는데, 투쟁의 결과로 놓고 보면 패배와 함께 2007년을 맞고 있다.
김태연, “총파업 안 되면 아무것도 안되었다”
김완, “민주노총이 영등포에 있는 절이냐”
박래군, “신자유주의 공세는 총제적, 운동은 분절적”
유영주 2006년 한해, 사회운동과 노동운동은 한미FTA 저지 투쟁, 평택 미군기지 이전 반대 투쟁, 노사관계로드맵 저지 투쟁 등 힘든 싸움을 함께 해왔다. 사회운동과 노동운동은 이 투쟁을 어떻게 평가하고 있나. 사회운동의 실천적 측면에서 평가해달라
김태연 FTA의 경우 노동운동 내부만 보면 노조 간부들이 자기문제로 바라보는 수준까지는 일정하게 진전이 있었다. 그러나 노동대중들의 경우에서는 큰 진전을 보지 못 했다. 또 한미FTA저지범국민운동본부(범국본)으로 묶여있지만, 내용적으로 따로 떨어져 있었다. 민주노총이 하면 비정규직 투쟁, 범국본이 하면 FTA투쟁이었다. 투쟁주체를 묶어세워내는 데는 한계가 있었다.
또 비정규직 문제를 놓고 보면 명백하게 패배다. FTA가 남아있는데, 급격하게 투쟁 동력이 떨어지고 있고, 반전의 분위기는 없는 것 같다. 민주노총의 총파업이 앙상하다는 느낌이 든다. 민주노총 ‘왜 총파업 못 했는가’ 따질 수 있지만, 총파업은 못 할 수도 있다. 그런데 못하면 못하는 대로의 대응이 있어야 하는데, ‘모 아니면 도’식이었다. 총파업이 되면 되는 것이고, 안되면 아무것도 안된 면이 없지 않다. 투쟁역량이 조직되지 못했기 때문에 패배했다고 결론내리는 것으로만 치부할 수 없다.
김완 FTA 투쟁의 경우 초반에 정태인의 발언과 후반에 광우병이 떠올라 그나마 운동사회의 실력 이상으로 끌고 온 측면이 없지 않다. 작년 한해 전반적으로 다 실패했는데, 중요한 것은 사회운동의 실력을 확인했다는 점이다. ‘잘했다, 못 했다’를 떠나 우리 실력과 운동이 각개격파 될 수밖에 없는 조건이라는 것을 확인할 수 있었다. 운동이 그간 보여 온 관성적 운동방식에 대한 평가도 있을 수 있겠다. 민주노총에 대해 ‘영등포에 있는 절이냐’는 비아냥도 있었다. 매일 삭발만 하지, 아무것도 하지 않는다는 얘기다. 실력을 다 발휘하지도 않고, 실제로 실력을 발휘할 의지가 있느냐는 의구심까지 들게 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안된 조건에 대한 객관적인 평가가 필요하다고 본다.
박래군 평택, FTA 등의 투쟁이 하나의 투쟁으로 바로 서지 못했다. FTA 투쟁이 경제투쟁화 된 측면도 없지 않다. 예를 들어 농민들이 빠져버리면, 투쟁 동력들을 보장할 수 없는 상황에 놓여있었다. ‘해야한다. 해야한다’ 했지만, 우리 실력을 여실히 보여준 투쟁이었다. 다른 한편으로 신자유주의가 총제적 공격을 가하는 반면, 운동은 분절적으로 대응을 하고 있다. 운동이 구조적이고, 총체적 차원에서 대응해야 하는데, 사안별 대응에 멈춰져 있다. FTA에 대한 대중들의 반대여론이 높은데, 운동 주체들이 그것을 투쟁의 장으로 모아놓지 못했다. 현재 한국에서의 진보운동의 상황이 바닥에 떨어져 있다.
김완, “기존 운동방식, 더 이상 감동 없다”
이상훈, “실내용 갖춘 학습, 선전, 조직을”
김태연, “해답은 싸움을 싸움답게 제대로 하는 것”
박래군, “운동을 활동가들 중심으로 하다보니 대중을 못 모아내는 것”
유영주 저항의 양상 봐야 하는데, FTA는 통상 정책과 관련된 것이고, 노사관계로드맵은 노동법제화, 평택미군기지는 국방 관련 정책의 문제이다. 투쟁의 대상 자체가 국가 정책을 놓고 대립해왔던 공통점 있다. 과거에는 민주적 절차, 개혁과제에 대해 시민공분을 모아 동원되었던 것에 비해 지금은 신자유주의적 정책에 대해 각개 동원되는 방식이다. 운동방식에 있어서는 여전히 동원중심적이고, 저항의 맥락과 성격을 볼 때는 반신자유주의, 반자본의 성격을 가지는 흐름이 있지 않나? 운동의 방식과 저항의 성격에 대한 평가를 한다면
김완 FTA 투쟁의 경우 2차 협상을 기점으로 대중 집회 중심으로 판이 정리되기 시작했고, 지역에서 지역공대위가 뜨면서 판이 정리되었다. 운동권들이 늘 하던 투쟁의 방식이었다. 집회를 통해 돌파한다는 방식이었다. 이는 사실 더 이상 감동도 없고, 와 닿지도 않는다. 그러나 저항의 방식이 다양해진 면도 있다. 저항의 방식과 그 주체들이 다양해진 것은 기존 운동의 방식으로 볼 때는 미비하지만, 앞으로 이런 기획들을 살려내야 한다.
이상훈 청원식 운동, 국회일정에 종속된 운동 등은 모두가 동의하는 현재 운동방식의 문제점이다. 재미없고, 동원위주라는 얘기다. 이에 대한 해법이 집회문화를 바꾸자, 말투를 바꿔보자, 소규모 실천 등을 얘기하지만, 보다 근본적인 문제에 대해서는 얘기를 하지 않고 있다. 좀 더 근본적 성찰이 필요한데 ‘거짓말 총파업’ 얘기하지만, 거짓말 안하기 운동해서 문제가 해결될 건 아니다.
우리가 투쟁 또는 운동이라고 했을 때 이는 학습하고, 선전하고, 조직해야 하는데, 지금의 운동은 카메라 앞에서 포즈잡기, 국회 앞에서 함성 지르는 운동이다. 이를 위해서 한번에 2-3천 명이 동원된다. 이렇게 하면 협상장 밖에 있는 사람들은 대상화되는 것이고, 재미가 없고, 이 사람들이 현장으로 돌아가 사람들을 역동적으로 조직하기를 기대하기는 어렵다. 그렇다면 근본적인 문제로 돌아와야 한다. 선전은 사진 찍기 선전이 아닌 실내용을 갖추어야 할 것이고, 줄 서기로 전락한 조직을 복구해야 하고, 학습이라는 것을 표피적인 것이 아닌 운동의 근본적인 문제로 다시금 고려해봐야 한다.
김태연 ‘다 문제’라는 식으로 나열하는 게 아니라 현재 운동 구도에서 가장 핵심적인 게 뭐냐를 진단하지 못하면, 이것저것 전부 건들이다가 넘어가게 될 것이다. 그렇다면 작년뿐만 아니라 과거 10-20년의 투쟁이 왜 안 되었는가? 해답은 싸움을 싸움답게 하는 것 외에는 답이 없다고 본다. 어차피 동원이란, 조직이 가동되고, 교육하고, 선전해야 동원되는 것이다. 농민들은 당장 자기 생존의 문제가 있으니까 바로 붙는다. 그런데 노동자의 경우 자기 문제가 아니지만, 조직이라는 게 있기 때문에 동참하는 거다. 그렇다면, 싸움판이 만들어져 하는데 그 싸움판은 누가 만드나? 조직의 집행부가 투쟁을 어떻게 하냐에 따라서 투쟁이 좌지우지 되는 것이다.
대중들이 모인 것은 그것대로 의미가 크다. 근데 그 의미들을 왜 다 파투내어 버리냐? 싸움을 제대로 못한 거다. 앞에서 선동하고, 주체들이 붙어야 한다. 운동노선에서 ‘우리가 그렇게 하면 우리 운동이 고립될 것 이다’라고 말한다. 그러나 오히려 그런 태도가 운동을 고립시키고, 약화시키고 있다고 생각한다. 핵심을 짚고 나가야지, 여기도 건드리고, 저기도 건드려 해결될 문제가 아니라고 본다.
이상훈 단순히 전투적 투쟁이냐, 타협적 투쟁이냐를 넘어서 지금의 투쟁구도를 사회운동적 노동자운동으로 복원해 실행할 수 있느냐, 없느냐가 핵심이다. 현실 노동운동에 대한 우익적 비판은 존재하지만, 좌익적 비판은 존재하지 않는다. 현 상황에 대해 ‘타협안하고, 투쟁만 해서 그렇다’는 우익적 비판이 있다. 좌익적 비판이란 이 현실이 ‘투쟁을 제대로 하지 못해서 그렇다, 제대로 잘 싸워보자’는 것이 핵심일 텐데, 민주노총 외각에 존재하는 좌파운동은 근본적 비판과 혁신을 얘기하면서, 위기 자체를 부인하고, 이 문제를 지도부의 문제, 노선상의 대립문제로만 이야기를 한다.
유영주 작년에는 인권활동가들의 투쟁이 두드러졌다. 예를 들어 평택투쟁의 최전선에서 인권활동가들은 비폭력 불복종운동을 전개해왔는데, 이에 대한 평가는 어떠한가
박래군 인권활동가들은 비폭력 불복종운동을 계속 주장하고, 실천해왔다. 인권운동이 결합하면서 평택운동이 달라진 점이 있는데, 단순히 미국반대 투쟁에서 보편적 투쟁으로 확장되는 경향이 있었다. 이런 점에서 인권운동이 아직 먹고 들어가는 게 있다. 인권운동의 경우 아직 침식되지 않은 지위 같은 게 있다는 얘기다. 평화적 생존권 등을 중심으로 평택 문제를 보편의제로 만들어가는 과정이 있었다. 우리 운동이 평택투쟁의 과정에서 새로운 기획이 가능하다는 것을 보여준 것 아닌가라는 생각도 한다. 작년 ‘평화야 걷자’ 운동은 3-4일 동안 1천여 명 참여했다. 우리가 기획을 잘하게 되면 대중들도 참여할 수 있다. 운동을 활동가들 중심으로 하다보니까 대중들을 못 모아내는 것이지, 세상의 변화를 원하는 대중들의 열망은 이미 밑에 깔려 있는 것이다.
김완 여전히 전투적 투쟁이 필요하다고 생각하는데, 실제로 집회에 오는 사람들이 그렇게 싸우지 않는다. 전투적으로 투쟁하지 않는다고 비판하면 시원하고 좋은데, 왜 그들이 전투적인 투쟁을 하지 않는지에 대한 환경과 조건에 대한 판단과 새로운 기획 필요하다. ‘다시 그런 방식으로 돌아가자’라고 하는 것만으로는 답이 되지 않는다.
김태연 '투쟁을 어떻게 할 것인가'라는 문제에서 ‘전투’ 얘기를 해버리면, 문제제기를 협소하게 받아들이는 것이다. 내가 말하는 투쟁은 ‘고강도 투쟁을 하냐, 아니냐’가 아니다. 투쟁의 방식 문제가 아니다. 우리 운동에서는 ‘투쟁을 적극적으로 하자’고 하면 모두 ‘전투’로 폄하한다. 이게 문제다. 투쟁을 전술적으로 어떻게 하냐의 문제가 아니라는 얘기다.
10명이 하는 투쟁보다는 가능하면, 100명이 투쟁해야 하고, 참가한 대중의 상황과 조건을 다 고려해야 한다. 어떨 때는 국회 앞에서 이를테면 파이프를 들고 투쟁해야할 때도 있고, 어떨 때는 드러눕는 투쟁이 가장 적극적인 투쟁일 수 있다. 그런데 지금 우리의 운동은 이런 것들이 고려되지 않고 있고, 형식화되고 관성화 된 투쟁으로 끝난다. 투쟁이 확대되고, 그 투쟁에 참가한 대중들이 다음 투쟁으로 이어지는 것을 얘기하는 것이다.
이상훈 활동가의 사회운동적 노동운동 관련한 문제제기에서 지난 10년을 돌아보면, 노동운동이 노동자적 의제 말고, 다른 의제들에 대해서 무지하거나, 접근하지 않았나? 내가 보기에는 나름대로 하려고 했다. 그런데 실패했다는 것이다. 새로운 대안을 제시하고자 했던 노력들이 있었는데, 실패했다는 것이다. ‘왜 실패했는가’에 대해서 진단해야 한다는 것이다. 단순히 의제를 확보하고, 대안을 제출하면 문제가 해결될 것인가? 고려해야 되고 중요하지만 그것이 모든 문제의 해결책이 아니다. 지난 3년간 민주노총도 의제를 확대해 온 과정이 있었다. 그런데 안됐다. 왜 안 되었는지에 대한 명확한 분석이 필요하다.
박래군, "운동이 사회가 변화되어야 할 상 제시 못하고 있어“
김태연, “노동운동 향후 3-4년, 주체와 산별노조가 핵심”
유영주 박래군 활동가는 100대 진보과제, 합의회의, 전국네트워크 등의 제안을 한 바 있고, 전국현장활동가조직은 노동운동발전전략을, 문화연대는 문화적 실천에 남다른 안목을 갖고 있고, 사회진보연대는 금융세계화, 군사세계화에 맞서는 사회운동전략에 많은 관심을 갖고 있다. 사회운동과 노동운동이 앞으로 3-4년 중기적 전망을 잡아본다면 어떤 그림을 그릴 수 있겠는가
박래군 자본은 중장기적 기획들을 가지고 간다. 설사 이런 것들이 중간에 수정된다고 하더라도, 운동진영은 이런 방향을 못 잡고 있는 것 아닌가? 사회가 변화되어야 할 상을 제시하지 못하고 있다. 우리의 기획이 없다는 점이 치명적이라고 생각한다. 우리가 대중들에게 희망의 상을 제시하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앞으로 3-4년, 올해 대선과 내년 총선으로 이어지는 시기에 지배세력은 재편될 것이다. 진보진영도 지금의 위기를 극복해내는 그림을 그려내야 하는데, 현재 상황으로서 희망적인 그림을 그리지 못하고 있다. 운동이 대중들의 절망을 희망적인 투쟁으로 옮겨가도록 만들어줘야 하는데, 그림이 안 그려지고 있다. 그런 부분에서 노동부문에서 산별 전환이 어떤 그림으로 갈 것인가가 중요한 부분일 것 같다.
김태연 노동운동은 향후 3-4년의 전망과 관련해 주체의 문제와 산별노조가 핵심일 것 같다. 작년까지 자본의 공격은 굵직굵직한 사안들에 있어서 이미 다 진행됐다. 금년 노동운동은 소강상태일 것이고, 각자를 돌아보는 시기가 될 것인데, 이 속에서 주체를 어떻게 만드냐의 문제가 중요하다. 87년 이후 민주화운동 이후 왔던 활동가들이 제자리걸음 또는 후퇴하고 있다. 87년 투쟁 1세대, 그 밑에는 비어있다. 노동운동판에는 30대도 잘 없다. 이 주체의 문제가 해결되지 않으면, 3-4년에 대한 전망을 그리기는 어려울 것이다.
한편으로 노동운동 수준에서 75% 정도가 형식적으로 산별노조 조합원이다. 형식적 전환이 별 의미가 없는 것은 아니지만, 3-4년 안에 산별노조가 반신자유주의 운동과 결부되어 가닥을 잡을 것인가, 아니면 그냥 그런 길로 갈 것인가가 결정이 날 듯하다. 기존 공장 중심이 아니라 지역으로 확대되어야 하는데, 이는 산별노조 재편기인 지금이 가장 가능성이 있고 3-4년 안에 그런 전망들이 세워져야 할 것이다.
이상훈, "‘당적 실천’ 대안 아니다, ‘초당/초노조’적 사회운동체 형성해야"
김완, “운동권 내부 아닌 대사회적 논쟁 제기해야”
김태연, “‘당적인 관계’ 형성 없으면 무기력과 무능력을 반복할 것”
유영주 관리적 산별이 아니라 노동운동이 정치적 전망을 어떻게 갖느냐의 문제에서 민주노동당을 제외하고는 비어있는 것 같다. 정치세력화의 연장에서 민주노동당의 지지 이상의 전망을 어떻게 그릴 것인가에 대한 상이 3-4년 안에 나와야 하지 않는가
이상훈 민주노동당 파, 혹은 또 다른 합법 진보정당 또는 민주노동당 식 당적 실천, 아니면 이와는 또 다른 방식의 당적 실천은 대안이 아니다. 민주노동당을 넘어서는 실천과 그 조직을 넘어서는 조직적 대안이 필요하다. 당, 노조 외곽에 ‘대안세계화 사회운동체’가 실질적으로 형성되어야 한다. 당은 의회 벽을 넘고, 노조는 공장 벽을 넘는 것을 고민해야 한다. 당, 노조를 뛰어넘는 초정파적인 시민교육운동이 필요하다. 두 가지 축의 거점을 3-4년 안에 만들어내는 것이 방어적 투쟁에서 공세적 투쟁으로의 전환에서의 핵심 교두보가 되지 않을까 한다.
민주노동당과 민주노총은 우경화라는 선로 위를 달리는 열차다. 그 안에서의 노선투쟁은 우경화로 가는 속도를 제어하는 투쟁일 뿐이지만, 한국사회 20년 운동의 자산이 여기에 타고 있으므로 그 의미는 중요하다. 문제는 근본적 변화는 안 된다. 따라서 새로운 선로를 깔아야 한다. 새로운 선로는 앞에 두 가지 과제를 3-4년간의 정치적 격변기에 만들어내는 것이 최우선의 과제이고, 그 다음에 운동의 배치와 속도조절이 필요하다. 또 고립․분산되어 있는 운동의 연대를 어떻게 복원할 것인가? 여기에 대해 한국진보연대 식으로 위로부터 강제된 통합은 대안이 될 수 없다. 문제는 아래로부터의 민주적이고 열린 연대가 실현되어야 하고, 능력에 따른 연대가 실현되어야 한다. 그래야만 서로가 서로의 발전의 조건이 되는 관계 만들 수 있다. 사회운동의 연대와 연합의 틀을 만들자는 것이다.
김완 하나는 사회구성체 논쟁과 같은 형태의 논쟁을 제기할 필요가 있다. 운동권 내부가 아닌 대사회적인 정치적 논쟁을 제기할 필요가 있다. 두 번째는 사회운동이 정치과잉에서 벗어날 필요 있다. 현재의 지배이데올로기와 체제에 대한 파악에서 이것을 넘어서는 대안은 구체적인 증거를 잡아내는 과정이라고 하겠다. 사회적으로는 사회운영에 대한 전반적인 전망과 뿌리 깊은 신자유주의 일상화를 벗어나는 것이 어떻게 가능하냐에 대한 답이 없는 상황인데, 이에 대한 논쟁이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유영주 쟁취해야한다는 맥락에서 사회공공성 사수와 일정한 사회화 조치에 대한 정치, 정책적인 대안들을 가지고 그것을 실천해내기 위한 주체의 결집 내지 집단의 형성이 어떤 식으로든지 그려져야 하지 않는가? 이런 측면에서 구체적으로 ‘사회운동체’ 혹은 전술적으로 정당 등의 그림을 그려볼 수 있지 않나
이상훈 내 얘기 중에 비당/비노조가 아니라, 초당/초노조이다. 민주노동당, 사회당, 노동자의힘 등의 차이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사회운동이 중요하다는 것이다. 품어 안는 식으로 가야만 한다. 현재 민주노동당을 사회운동적으로 개조하는 것이 관건이다.
박래군 사회운동적 개조가 어떤 의미인가?
이상훈 의회 밖을 넘는 당을 만든다는 것인데, ‘사회운동 노조’는 공장 문을 넘는 것이고, ‘사회운동 당’은 의회 담을 넘는 것이다. 핵심은 대중정치 활동인데, 자기 대중과 자기운동계획을 가지고 운영되는 정당. 원내 정당이 아니라 원외 조직에 중심을 두고, 입법 활동이 아니라 사회운동의 흐름에 중심을 놓는 정당. 지도하는 정당이 아니라 연대하는 정당이라고 요약할 수 있겠다.
박래군 김완 활동가의 지적대로 대 사회적 논쟁이 필요하다고 본다. 민주주의 비판하는데, 우리가 가야 할 민주주의란 무엇인가에 대한 논쟁이 필요하다. 우리의 총체적 지향점이 없기 때문에 ‘어디로 가자’라는 그림을 제시하지 못하고 있다. 진보담론을 만들기 위한 논쟁이 활발히 일어나야 하는데, 이런 논쟁 자체가 사라져 버렸다. 투쟁 전술 가지고 하는 논쟁은 있는데, 진보담론과 관련된 사상투쟁은 아예 없어졌다. 상상력과 기획들이 이 안에서 나와 줘야 하는데, 그렇지 못하고 있다. 이것은 학자가 만드는 것이 아니라 현장을 뛰는 활동가들 안에서 나와야 한다고 생각한다. 이런 논의들을 진행해야 한다.
김태연 전망에 대한 논쟁이 활발히 되기 위해서는 ‘조직’에 대한 논의도 함께 되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앞으로 ‘이러이러한 것을 만들어 나가자’라고 하는 것에 긴장이 걸리지 않는다. 어떻게 담보할 것인가, 어떻게 해낼 것인가와 함께 얘기되지 않으면, 진도가 나아가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또 한국 변혁운동에서 민주노동당이 어렵다고 한다면, 계급정당 등의 논의를 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관점은 다양할 수 있으나, 그 수준에서 얘기가 나오지 않으면 무망한 얘기가 될 수 있다. 민주노동당의 한계를 극복하기 위해 뭔가 할 것인가에 대한 얘기는 만만한 얘기가 아니다. 민주노동당과 사회당이 있는데 좌파운동이 뭔가 해보자라는 데 있어서는 충분히 동의한다. 그렇다면, 민주노동당을 어떻게 규정할 것인가? 민주노동당이 무엇이 문제인지, 또 어떻게 개조할 것인지 등에 대해서 논의가 진행되어야 한다. 이게 안 되고, 올 대선과 내년 총선 보고 당을 하나 만들자고 하는 것은 어려운 얘기다.
김완 ‘사회운동연대연합’ 좋은 얘기인데, ‘누가, 언제, 어디서, 어떻게, 무엇을 할 것인가’에 대한 비판에 직면하게 될 것이다. 3-4년 동안 전망을 놓고도 그렇다면, 없는 것과 마찬가지이다.
김태연 공격이 다변화되는 환경 속에서 형식은 열어놓는다고 하더라도 관계에 있어서 일종의 ‘당적인 관계’가 형성이 안 되면 무기력과 무능력을 반복할 것이라고 본다. 좌파운동은 지난 10년 동안 사실 그 무기력과 무능력을 반복해 온 것이라고 본다. 단순히 공세가 강하고, 전반적으로 우경화 경향이 강하기 때문에 그랬던 것만은 아니다. 얘기가 안 되면 끝이었다. 아무런 관계없이 ‘같이 해보자’라는 것은 모아낼 하나의 구조도 없는 것이고, 설사 얘기된 부분을 같이 실천해 볼 그릇도 없게 된다.
대중성․다양성 안에서 느슨한 형태를 연장시킬 수 있는 우려도 있다. 그런 점에서 계급정당의 문제이든, ‘21세기에 계급정당은 아니다’라면 다른 대안을 내놓고라도, 각 운동의 부분 활동가와 조직 간의 '당적 관계'가 만들어지지 않으면 돌파구가 만들어지지 않을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이상훈 ‘당적 관계라는 게 뭘까’라고 생각을 해보면, 하나는 자본주의가 강제하는 노동자 계급의 파편화를 의식적으로 부정하고, 보편적․정치적 결집을 이뤄내서 체계 비판적이고, 통합적 정세분석력을 갖으면서 하나의 일관된 공동행동 프로그램을 구성할 수 있는 단위가 필요하다는 것으로 이해된다. 그런데 그것이 20세기에는 당이었다. 그러나 21세기에는 당이 될 수 없다.
정해진 청사진을 놓고, 승패를 가리는 논쟁을 통해 상호 복속되는 논쟁의 시대는 지나갔다. 지금 시기에는 정해진 청사진을 가지고 새로운 당을 만드는 작업이 아니라, 체계형성적이고, 사상형성적이고, 이를 추구하는 열린 토론과 상호교육이 중요하다. 그런 의미에서 ‘포럼’ 정도로 그치는 조직대안을 가지고는 실천프로그램 강제할 수 없다고 하셨는데, 지금 상황에서는 예를 들어 ‘세계사회포럼’의 긍정적 요소들을 한국에서 실현하기 위한 프로그램이 필요하다. 지금 시민단체들이 주도하고 있는 ‘한국사회포럼’의 형태가 아닌, 실제로 투쟁하는 사회운동 조직들이 주도하는 ‘한국사회운동포럼’ 등을 통해 체계비판적이면서도, 권위적이지 않고, 통합적인 정세분석 능력을 통해서 결합력을 유지하면서, 공동의 행동프로그램을 자유롭게 제안하고 실행할 수 있는 열린 토론과 상호교육의 장을 구상해 볼 수 있을 것이다. 여기서부터 출발하자는 것이다.
이상훈, 한국사회운동포럼
박래군, 전국네트워크
김태연, 전국활동가조직
김완, 사이버대선후보
유영주 한국사회 진보운동 전체 과제의 맥락에서 각각의 고민을 구체화해 상호 제안할 수 있는 게 있는가
이상훈 올해 들어 문화연대와 인권운동사랑방에 ‘세계사회포럼’의 긍정적 요소를 한국사회에서 실현하자는 의미에서 ‘사회운동포럼’을 실행해보자고 제안했다. 통합적인 공동의 행동을 위한 체계가 필요하고, 각각의 정치적 실천을 위한 조직적 구상들이 있을 텐데, 이와 별도로 새로운 사회운동의 연대연합과 시민교육을 위한 열린 토론과 상호교육의 장이 필요하다는 문제의식이 있다. 이런 부분들을 향후 논의해봤으면 좋겠다.
박래군 전국네트워크 정도의 고민 수준인데 지역 내에서 각 부문 활동가들이 반세계화, 지역문제 등을 논의하는 모임들이 곳곳에서 만들어져야 한다는 문제의식이 있다. 구체적 모델들을 만들어내고, 그 안에서 모범적 모델들을 확산시켜 나가자는 논의들을 진행하고 있는 상황이다. 예를 들어 평택의 경우 ‘주민들이 빠져 나가니까 투쟁이 끝나는 것 아니냐’는 지적이 있는데 주민들이 이주한다고 하더라도 이 투쟁은 계속되어야 하는 투쟁이다. 그런데 이 주체의 공백을 어떻게 채울 것인가에 대한 고민이 있고, 이 평택투쟁, 반전평화투쟁의 주체를 만드는 것으로부터 이 구상을 실천해 볼 계획이다.
김태연 전국활동가조직 준비사업을 하고 있는데, 출발할 때 공감대는 ‘노동운동 수준에서 기업별노조 극복하고, 지역으로 나오자. 동원되는 구조가 아니라 주체적으로 서자’고 했다. 그런데 ‘지역으로 나오자’ 그러면, 기존에 자기공장에서 눈을 돌려 지역의 다른 공장에 관심을 갖는 수준을 못 넘는 문제가 있더라. 그게 아니라 지역사회의 여러 문제로 시선이 넓어져야 하는데, 이게 교육으로 가능한가? 교육을 하면, 한 달에 1-2번 이상 더하겠는가? 안된다. 지역의 다른 문제 등에 대한 연대는 포럼 등의 형태를 빌릴 수 있을 것이지만, 지역에서의 ‘해방구’로서의 모델이 가능하기 위해서는 일종의 지역 ‘인민위원회’ 정도의 구조로 자리 잡아야 하는데, 현재는 일상적 연대가 안 되고 있다. 앞서 제기된 전국네트워크, 진보100대 과제 등 다양한 경로를 통한 실험 해 볼 수 있을 것 같고. 이런 논의를 계속 진행해야 할 것이다.
박래군 전국네트워크를 구상한 계기는 노동운동이 운동의 중심이 되는 게 맞는데, 그렇게 하기 위해서는 노동운동 아닌 다른 부문이 함께 모여 서로 비판하고, 논의을 해야 하지 않나 싶다. 시민운동은 크게 기대할 게 없고, 위험할 수 있다. 이미 신자유주의와의 파트너쉽을 형성해가고 있다. 지역 내 인권, 평화, 생태 등이 모여 지역사안에 합의하고, 실천하면서 거기에 노동운동을 끌어들이는 방식. 기존에도 노동운동이 지역에 결합을 해왔다. 민중연대가 했었다. 그러나 과거와 질적으로 다른 연대를 사회운동에 요구하고 있다. 각각의 지역에서 작은 단위든, 큰 단위든 모여지는 것이 중요하겠다. 인권, 생태, 등이 독자적인 자기운동을 할 수는 있으나 서로가 다 모이지 않는 한 사회변화는 요원하지 않나 생각한다.
김태연 이르면 3월 경 혹은 상반기 안에 현재의 문제의식을 가지고, 대중토론회 등을 함께 해보자
이상훈 일회적인 토론회를 단발적으로 기획하지 말고, 사회운동포럼이라는 제도 만들어 놓고, 그 안에서 토론회 등을 진행할 수 있다. 이것을 단순히 포럼이 아닌 새로운 정치활동의 양식으로 만들어보자는 제안이고, 공동으로 한번 짜보자는 것이다.
유영주 미래구상, 한국진보연대, 민주노총, 민주노동당 등이 대선 대응 논의에 활발한 모습이다. 한국사회당이나 노동자의힘 등도 대선기획 논의를 구체화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문화연대는 사이버대선후보 운영 계획을 갖고 있다. 현재 진보진영의 대선 대응에 대해서는 어떻게 평가할 수 있나. 중기적 전망 속에서 볼 때 대선, 총선에서 좌파 독자적인 후보전술을 구사하는 것과 하지 않는 것 두 경우 모두 검토할 수 있을 것이다. 대선 또는 총선에서 사회운동과 노동운동의 의제와 목소리를 담은 후보전술을 운용하는 것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나
김완 사이버후보전술이 사회운동의 고유적 흐름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이것은 형식이자 방법이다. 정치사회운동 그 자체라기보다는 어떤 방식으로 담아낼 것인가의 문제. 대선에 대한 고민이 공유되거나, 합의되지 않을 것 같다는 생각도 있었다. 여러 가지 투쟁해왔지만, 대중들의 인식에 직접적 영향 주는 것은 시각적인 것들이 아니었나 싶다. 이런 차원에서 재미있게 해보자, 막연하게 가벼운 것이 아니라 신자유주의 정치형식을 깨는 방식을 통해서 다른 방식이 가능하다는 것을 보여줄 수 있지 않을까하는 발상에서 시작되었다.
좌파독자 후보 전술과 관련해 ‘정치적 집권을 통해 사회변혁적 요구들이 해결될 것인가’라는 차원의 고민이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좌파적 관점에서 계급정당 만들어 후보전술 쓸 수 있는 실력과 조건이 되는가? 낼 수 있으면 좋으나, 현실적으로 불가능한 것 아닌가라는 생각이 든다. 대선 후보전술과 관련해서는 공개적인 논의가 필요할 것 같다. 우리들만의 논의로 그칠 우려가 있다.
이상훈 2002년 공투본 전술이 성공했어야 했는데, 이게 성사 안 된 게 굉장히 아쉽다.
김태연 선거는 어떤 선거든 다 비슷하다. 선거 국면에서 후보가 없으면 안 된다. 개인적으로 민중경선의 방식이 적극적으로 검토되어야 하지 않나 생각한다. 처음부터 ‘좌파 독자후보’라는 것은 다른 얘기다. 여러 가지 정세와 조건이 고려되어야 하는데, 좌파 독자후보는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민주노동당 후보만으로는 좌파입장을 떠나서, 신자유주의 세력에 대해 총력전으로 대응하기에는 벅차다. ‘거대한 소수전략’이라했지만, 이미 실패했다. 쉽지 않다. 민주노동당도 거대한 소수전략 실패에 대한 내부적 평가도 있는 것 같다. 사회당의 경우 좌파후보 내는데, 논의해 볼 문제다. 문제는 남은 부분인데, 이를 결집할 수 있는, 귀 담아 들을 만한 제안주체가 있어야 할 것 같다. 이에 대해 3월 경 함께 모여 이야기해 볼 수 있을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