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약 미국의 세계 경제 리더십 주장을 훼손하려는 시나리오를 구성하고자 한다면, 그것은 트럼프 행정부와 닮은 모습일 것이다.
이러한 행정부는 미국 달러가 세계 기축통화이자 국제 무역의 주요 통화로서 자리 잡고 있는 상황이 이미 시대착오적이며, 세계 경제에서 미국의 비중이 줄어들고 있다는 감각을 더욱 강화한다.
1970년대 이래로, 미국의 금융 패권이 머지않아 종말을 맞이할 것이라는 담론은 끊이지 않았다. 지난 반세기 동안 미국의 경제 리더십의 미래에 대한 이 같은 추측은 내가 ‘금융 공상과학(fin-fi(ction))’이라고 부르는 일종의 역사경제적 미래론을 낳았다.
달러 패권의 종말에 관한 담론은 줄곧 추측에 그쳐왔다. 왜냐하면 달러가 ‘반드시 몰락해야 한다’는 것이 불가피해 보이기는 해도, 그에 맞서는 역방향의 힘이 실제로는 강력하기 때문이다.
이러한 반작용의 핵심에는 ‘네트워크 효과’가 있다. 이 효과는 달러를 다른 어떤 국제 통화보다 더 환전 가능하고 유용하게 만든다. 유로화도 위안화도 달러만큼 폭넓게 수용되지 않으며, 미국 금융시장이 지닌 개방성, 깊이, 정교함에 비할 수 없다.
네트워크 효과는 어떤 통화든 국내든 국제든 그것의 환전 가능성과 광범위한 사용을 설명하는 핵심 요소이며, 달러의 회복력을 설명하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한다. 이는 이른바 ‘흐름 요인’이라고 부를 수 있는 요소들이다. 즉, 계속해서 생산되고 재생산되는 힘들이다. 석유 한 배럴이 달러로 거래될 때마다, 새로운 대출이 달러로 발행될 때마다, 달러 기반 파생상품이 거래될 때마다, 달러 패권을 떠받치는 힘은 계속해서 강화된다.
이러한 ‘흐름 요인’ 외에도 우리가 간과하지 말아야 할 것이 있다. 그것은 일종의 ‘저장 요인’이라고 부를 수 있는 것들이다. 이 점은 내가 톈진에서 열린 여름 다보스 포럼에서 ‘달러 함정’으로 유명한 에스와르 프라사드(Eswar Prasad)와 나눈 흥미로운 대화에서 절실하게 느낀 바다. 호텔 1층 로비에서 우연히 마주친 우리는 자연스럽게 이번 회의의 주요 주제였던 미국 통화의 미래에 대해 이야기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에스와르는 이 문제에 대해 대화할 때 흔히 등장하지 않는 한 가지 데이터로 나에게 강한 인상을 남겼다. 그것은 바로 ‘미국의 순대외자산(Net International Investment Position)’이었다.
2025년 1분기 미국 상무부 경제분석국(BEA)이 최근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현재 미국의 순대외자산은 마이너스 24조 6,100억 달러다. 즉, 미국이 외국에 지고 있는 부채가 미국이 다른 나라에 가진 자산보다 90%에 달하는 GDP만큼 더 많다는 뜻이다.
프라사드가 “달러 함정”에서 처음 제시한 핵심 논점은, 미국이 세계 다른 나라들을 ‘갈고리에 걸어 놓았다’는 것이다. 달러 가치가 하락하면 미국의 수출품과 새롭게 매입한 자산 가격은 더 저렴해지지만, 전체적으로는 기존 미국 자산에 투자 해둔 외국 투자자들이 손해를 본다. 같은 말을 반대로 표현하면, 현재 24조 6,100억 달러 규모의 자산을 달러로 보유한 외국 투자자들로 이루어진 거대한 연합체가 달러 가치를 지지해야 할 이해관계를 갖고 있다는 뜻이다.
겉보기에 이 주장은 익숙한 ‘과도한 특권’ 이론의 반복처럼 들릴 수 있다. 즉, 미국이 세계 다른 나라들로부터 달러화로 끊임없이 차입함으로써 매년 무역적자를 감당할 수 있다는 점에서, 미국의 순대외자산이 마이너스라는 사실은 놀랍지 않다는 해석이다.
하지만 이러한 단순한 설명은 이 불균형이 나타난 시기와 맞지 않는다. 미국이 전통적으로 대외부채를 축적해 온 경향이 있는 것은 사실이지만, 순대외자산이 대규모로 마이너스로 급격히 전환된 것은 2010년대 이후부터다. 이 시기 미국이 막대한 무역수지 적자를 기록한 것도 사실이지만, 순대외자산의 악화 속도는 무역적자 규모만으로 설명하기에는 훨씬 더 가파르다.
출처: NBER
현재 계정 적자는 2010년대에 실제로 축소되었지만, 순대외자산은 그 어느 때보다도 급격하게 마이너스로 추락했다.
출처: Atkeson et al
앤드루 앳키슨(Andrew Atkeson), 조너선 히스코트(Jonathan Heathcote), 파브리치오 페리(Fabrizio Perri)의 불균형 원인과 결과에 관한 세부 연구에 따르면, 이 이야기는 세 단계로 구성된다.
첫 번째 단계(1992년~2002년)에서 미국의 순대외자산(Net Foreign Asset, NFA) 위치는 GDP 대비 –5%에서 –18%로 악화되었으며, 이는 경상수지 적자의 증가와 궤를 같이했다. 두 번째 단계(2002년~2010년)에서는 경상수지 적자가 계속되는 가운데 NFA 위치는 대체로 안정적이었다. 이는 선행 연구자들이 “미국의 특별한 특권” 시기라고 불렀던 시기로, 미국이 해외 자산에서 얻는 높은 수익률을 통해 무역적자를 금융할 수 있는 것으로 보였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 특권은 세 번째 단계(2010~2021년)에서 끝났다. 이 시기에 NFA 위치는 GDP 대비 40% 이상 하락했는데, 이는 경상수지 적자가 GDP 대비 대체로 안정적이었음에도 불구하고 발생한 일이었다. 2021년까지 미국의 NFA 위치 하락은 “특별한 특권” 시기를 무력화했을 뿐만 아니라, 1992년부터 2021년까지 누적된 경상수지 적자로 설명될 수 있는 수준보다도 더 낮아졌다.
세 번째 단계에서 이러한 급락이 일어난 주된 이유는 미국의 주가가 급등한 반면, 다른 나라에서는 그런 일이 벌어지지 않았기 때문이다.
미국인들이 해외 주식과 기타 금융 투자에서 보통 수준의 수익을 올리고 있는 동안, 외국인들은 미국 내 자산에서 매우 높은 수익을 올리고 있었다.
연구자들은 지난 10년간 미국 주식이 글로벌 시장보다 더 높은 수익률을 보인 이유에 대해 두 가지 가능한 설명을 제시했다. 첫 번째는 미국 기업들이 국가 회계에 잡히지 않는 생산 자본에 상당한 투자를 했다는 것이고, 두 번째는 이들 기업이 시장 지배력을 높이고 이에 따라 독점 이윤이 증가했다는 것이다.
만약 첫 번째 설명이 옳다면, 미국은 공식적으로 보고된 것보다 훨씬 큰 무역 및 경상수지 적자와 함께 낮거나 마이너스인 측정 산출량의 시기를 겪었어야 한다. 그러나 연구자들은 이러한 현상이 관찰되지 않았다는 점에서, 비측정 투자(unmeasured investments)가 미국의 순대외자산(NFA) 포지션 악화에 일부 기여 했을 수는 있지만, 지배적인 요인일 가능성은 낮다고 결론지었다.
반면 독점 이윤의 증가와 기업 소유주에게 돌아가는 부가가치의 비중 증가라는 설명은 NFA 변동과 다른 거시경제 지표와 훨씬 더 잘 들어맞는 것으로 보인다. 외국인 투자자들이 미국 기업 부문의 약 30%를 보유하고 있는 만큼, 이들이 누리는 미국 기업 부문의 수익성 증가분은 미국 GDP의 약 1.3%에 해당하는 연간 수익 흐름과 일치한다.
이 간결하면서도 강력한 분석은 달러 체제를 둘러싼 논쟁에서 자주 간과되는 정치경제적 핵심 요소를 제공한다. 우리는 달러 패권에 대해 이야기할 때, 미국의 과도한 특권이 초래하는 불균등한 교역 조건으로 인해 세계 전체가 피해를 입는다는 식으로, 국가 단위의 구도로 표현하는 경향이 있다. 미국 국채의 ‘안전 자산’ 지위가 궁극적으로는 미국의 군사력에 기반을 둔다는 주장도 자주 제기된다. 이 두 주장 모두 일정 부분 사실이다. 그러나 앳키슨(Andrew Atkeson) 외 연구진이 상기시키듯, 글로벌 투자자들이 미국으로 몰리는 이유는 단지 미국이 보호를 제공하거나 유일무이한 안전 자산을 발행하기 때문만이 아니다. 그보다는 미국이 자국 내 불균형적인 정치경제 구조 덕분에 과도한 수익을 안겨주는 투자처이기 때문이다. 미국은 기업이 이윤을 창출하기에 매우 좋은 장소이며, 그것이 궁극적으로 투자자를 끌어들이고 미국의 대규모 순대외부채를 설명하는 핵심이다. 외국 자본의 관리자들은 미국에서의 수익 잔치에 열광적으로 동참해 왔다.
그렇다면 미국의 순자산 포지션이 심각하게 적자로 전환된 이후, 이 기회를 가장 적극적으로 활용한 주체는 누구였을까?
2000년대부터 익숙한 이야기가 하나 있다. 바로 미국의 불균형한 정치경제가, 중국과 같은 수출흑자국의 불균형한 계급정치의 대응물이라는 것이다. 클라인(Michael Pettis)과 페티스(Matthew Klein)는 2000년대 중국발 쇼크, 즉 중국의 막대한 수출 급증이 하나의 ‘계급 전쟁’이었다고 주장한다.
그들의 분석은 자본 흐름, 환율, 제조업 무역수지 사이의 상호작용에 초점을 맞추며, 당시 미국의 대외투자 수익이 높았던 덕분에 뒷받침되었던 순국제투자포지션(NII)에 대해서는 상대적으로 덜 주목한다. 그러나 2010년대 이후 그 균형은 무너졌다. 주식시장만 놓고 보자면, 세계는 ‘미국 예외주의’의 시기로 접어들었다. 그렇다면 이 불균형적인 미국 성장의 시기에 주요 외국 수혜자는 누구였을까?
이 질문에 답하려면 국제통화기금 출신 지안 마리아 밀레시-페레티(Gian Maria Milesi-Ferretti)의 논문 ‘많은 채권국, 하나의 거대한 채무국’(Many Creditors, One Large Debtor)을 참고할 수 있다. 이 논문에서 그는 미국의 외채 급증을 외국 투자자별로 분해한다. 자본계정과 금융대차대조표 자료를 일관되게 구성하는 데에는 수많은 기술적 문제가 있지만, 그는 몇 가지 분명한 결론에 도달한다.
“채권국 측에서 미국의 부채 증가에 대응하는 주요 상대국은 유럽과 아시아의 선진국들이며, 이들 국가에서는 대규모 경상수지 흑자에 의해 순자산 축적이 이루어졌다. 미국 내 보유 자산의 가치 상승은 미국 내 주식 및 외국인직접투자(FDI) 보유 비중이 높은 국가들, 이를테면 캐나다 같은 앵글로색슨 국가들 및 노르웨이와 중동의 일부 산유국처럼 대규모 국부펀드를 보유한 국가들에 집중되었다. 반면 중국의 경우, 경상수지 흑자가 축소되고 통화가 상당폭 절상되면서 국내외 GDP 대비 채권국 지위가 모두 하락했다. 금융대차대조표 분석 결과, 채권국 지위 상승은 일반적으로 정부의 순금융포지션, 비금융기업의 순금융포지션(이는 주가와 비금융자본의 위치에 따라 결정됨), 보험회사나 연기금 같은 제도적 투자자의 대차대조표 규모와 양의 상관관계를 보였다. 이들은 해외 주식에 대한 높은 투자 성향을 통해 대외순자산을 높이는 데 기여할 수 있다. 노르웨이와 싱가포르는 정부의 대외순자산과 순자산 사이의 관계를 가장 생생하게 보여주는 사례이며, 이 관계는 일반적으로 다른 국가에도 적용된다. 또한 이들 요인은 대만의 매우 큰 채권국 지위를 설명하지 못하는데, 이는 지정학적 요인과 관련 있을 가능성이 크다.”
다시 말해, 미국 경제에서 발생한 과도한 수익의 주요 수혜자는 다른 선진국들과 미국의 세계적 패권 연합에 속한 국가들이었다. 이는 원래의 ‘달러 함정’ 논의의 조건을 전환시키는 중요한 발견이다.
2000년대와 2010년대 초반 신흥국, 특히 중국에서의 막대한 외환보유고 축적은 글로벌 달러 체제의 미래 문제를 ‘중국의 부상’이라는 도전과 맞물리게 했다. 이는 지정학적 문제일 뿐 아니라, 선진국과 신흥국 사이의 경사(傾斜)를 따라 무역이 재편되면서 서구 내부의 불평등과 사회질서에 대한 의문도 제기하게 했다. 달러 체제는, 아무리 빠져나가고 싶어도 도망칠 수 없는 함정처럼 보였다. 흑자가 클수록 미국에 대한 채권도 커졌고, 그 함정은 더욱 깊어졌다.
앳키슨(Atkeson) 외 연구진의 발견은 언뜻 보기에는 2000년대 달러 체제를 ‘계급전쟁’으로 진단한 기존의 분석을 강화하고 확장하는 듯하다. 2010년대 세계 투자자들은 미국의 이윤 주도 주식시장 호황으로 과도한 수익을 얻었다. 그러나 앳키슨 외의 세 단계 연대기 분석을 마일레시-페레티(Milesi-Ferretti)의 미국 채권국 분석과 결합하면, 2000년대와 2010년대 사이의 뚜렷한 차이가 드러난다.
2000년대는 새로운 세계경제가 열리던 시기였다. 주요한 역동성은 신흥국의 성장과 미국의 경상수지 적자 확대에 있었다. 반면, 2010년대는 ‘차이메리카(Chimerica)’의 정체와 후퇴가 나타난 시기였다. 대신 ‘새로운 채권국’은 대부분 미국 패권 블록의 핵심 회원국들로 구성되었다. 이들의 금융 자산은 미국의 호황을 누리는 금융 시장 안에서 안전하고도 편안하게 수용되었다. ‘달러 함정’이라는 표현은 오히려 그들을 과대평가하는 것이다. 함정에 빠졌다고 하려면 탈출하고자 하는 충동이 있어야 한다. 2000년대의 신흥국들, 특히 중국에 대해서는 그 말이 어느 정도 들어맞을 수 있다. 그러나 2010년대의 ‘새로운 채권국들’에 대해서는 그러한 충동이 거의 없었다. 그들의 경험은 오히려 ‘금박을 입힌 새장(gilded cage)’에 더 가까웠다. 냉전사 서술의 용어를 빌리자면, 이것이 제국이라면, 이는 ‘초대받은 제국(empire by invitation)’이었다.
[번역] 이꽃맘
- 덧붙이는 말
-
애덤 투즈(Adam Tooze)는 컬럼비아대학 교수이며 경제, 지정학 및 역사에 관한 차트북을 발행하고 있다. ⟪붕괴(Crashed)⟫, ⟪대격변(The Deluge)⟫, ⟪셧다운(Shutdown)⟫의 저자이다. 참세상은 이 글을 공동 게재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