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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기후위기의 주된 책임은 누구에게 있나? _기후정의로 기후불평등을 타파하자
기후위기는 불평등의 문제입니다. 기후위기의 책임은 대기업과 부유층에 집중되어 있는 반면에, 그 피해는 빈곤층과 사회적 약자에게 불균형하게 전가되고 있습니다. 기업들은 이윤을 얻기 위해 우리 모두의 자연적 생존 기반인 기후와 생태를 맹렬히 파괴하고 있고, 그 결과로 시민들의 생명과 안전이 위협당하고 있습니다. 올해 3월에 경상도에서 발생한 산불은 역사상 최대 규모로 서울시 면적의 1.7배에 달하는 산림을 불태우며 수십 명이 사망했습니다. 폭우로 인해 반지하 주택에서 목숨을 잃은 일가족, 매년 여름 닥치는 폭염으로 치명적인 온열질환에 노출되는 건설노동자, 이주민 노동자, 배달노동자, 쪽방촌 주민들, 폭우에 의한 침수로 오송지하차도에서 목숨을 잃은 시민들, 기온상승과 가뭄, 폭우로 경작에 피해를 보는 농민들, 해양온난화로 어획량이 감소한 어민들.
기후재난 피해는 기업의 이윤보장을 최우선으로 떠받들고 있는 사회경제체제의 결과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기후위기를 해결하는 열쇠는 기후정의를 위한 체제로 전환하는 것입니다. 기후위기를 초래한 원인 제공자들에게 분명한 책임을 물어야 합니다. 광장에서 울려 퍼졌던 ‘존엄과 평등’이라는 가치에 따라, 사회경제적 차별과 불평등을 타파하고 모두의 존엄한 삶을 보호하기 위한 사회체제로 전환해야 합니다. 경제적 불평등을 줄이고, 공공 서비스를 확대하며, 소득을 공평하게 분배해야 합니다.
가장 우선하는 과제는 기후와 생태를 희생해 부와 소득을 얻고 있는 대기업과 부유층에 합당한 책임을 묻는 일입니다. 한국에서 배출되는 온실가스의 64%를 10개의 대기업이 배출하고 있습니다. 10대 재벌의 사내 유보금은 900조 원이 넘습니다. 이들 기업은 기후를 파괴하면서 막대한 이윤을 축적하고도 아무런 책임을 지지 않고 있습니다. 또한, 기후위기를 초래하고 있는 사람들은 ‘우리 모두’가 아니라 소수의 부유층입니다. 지구 온도 상승의 65%는 부유층의 고탄소 소비 때문입니다. 전 세계적으로 상위 10%의 부유층은 1990년 이후 배출된 온실가스의 절반 이상에 책임이 있습니다. 소득수준이 증가하면 그에 따라 1인당 온실가스 배출량도 증가합니다. 부유층은 상품 과소비, 사치품 구매, 대형 저택, 고급 승용차, 잦은 항공여행, 생태파괴 산업에 대한 투자 등을 통해 지구를 위험에 빠뜨리고 있습니다.
우리나라는 탄소불평등이 극심한 나라 중 하나입니다. 소득 상위 10%의 부유층은 상품 구매로만 1인당 연간 14톤의 탄소를 배출하고 있습니다. 하위 10%의 1인당 연간 상품 구매 배출량(0.6톤)의 23배나 달하는 양입니다. 이들이 운행하는 대형 승용차의 연간 배출량은 하위 50%의 1인당 배출량의 2배입니다. 이런 방식으로 최상위 1% 부유층은 쪽방촌 거주민보다 45배나 되는 탄소를 배출하고 있습니다. 우리나라 최상위와 최하위 계층의 소득격차는 점점 더 벌어지고 있고, 2024년 상위 10%의 연평균 소득은 2억 1천만 원으로 하위 10%의 1천만 원의 20배를 넘어섰습니다. 그에 따라 탄소배출의 격차도 더욱 커지고 있습니다.
2) 배출권 거래제로 기후위기 막을 수 있나?_역대 정부의 대표적인 그린워싱
한국은 10대 기업집단이 국내 온실가스 총 배출량의 2/3를 차지하고, 816개 기업의 배출량은 한국 총 배출량의 80%에 다다릅니다. 이들 기업의 배출을 억제하지 않고는 기후 대응은 무망한 일입니다. 이명박 정부 이래로 기업의 배출을 규제하는 핵심적인 정책은 온실가스 배출권 거래제입니다. 그런 점에서 거대 야당인 민주당이 배출권거래제에 관해 어떤 정책을 약속하고 있는지는 매우 중요합니다. 민주당 이재명 후보 공약에서는 온실가스 배출을 줄이기 위한 이행방법으로 ‘배출권거래제 유상할당 비중 확대’를 말하며, 이를 통해 ‘정의로운 전환’을 비롯한 ‘기후대응기금’을 확충하겠다고 합니다. 이 공약에는 유상할당 비중을 몇 %로 할 건지 목표치가 없고, 배출권 가격을 높이겠다는 아무런 언급이 없으며, 또한 이것을 ‘정의로운 전환을 위한 실현 방안’으로 제시했다는 점에서, 역대 정부들의 그린워싱 정책이 반복될 가능성이 대단히 높습니다.
배출권거래제는 그동안 배출자들의 책임을 묻기는커녕 오히려 이들 기업을 면책시켜 주고 더 나아가 기업들의 이윤 획득 수단으로 설계⬝운영되어 왔습니다. 10대 대규모 배출기업들은 그동안 배출권을 팔아서 4,700억 원의 이익을 얻었습니다. 단적인 예가, 대한민국 전체 온실가스 배출량의 13%를 배출하는 포스코는 그동안 배출권거래제를 통해 오히려 1,649억 원의 이익을 얻었습니다. 무상배출권 할당 비율이 지나치게 높고, 배출권 가격은 지나치게 낮아서 생기는 문제입니다.
온실가스 배출권 거래제란?
정부가 온실가스 배출 허용 총량을 정하여 온실가스를 배출하는 각 기업에 연간 단위로 배출권을 할당하고, 어느 기업이 감축을 많이 해서 배출권이 남으면 이를 다른 기업에 판매하고, 반대로 어느 기업이 감축을 적게 해서 배출권이 부족할 경우 다른 기업으로부터 부족한 배출권을 사는 제도입니다. 기업 재무 회계에서 배출권은 시장에서 사고팔 수 있는 금융자산입니다. 기업은 온실가스 감축비용과 시장의 배출권 가격을 비교해 비용 효과적으로 직접 감축하거나 배출권을 구매하는 의사결정을 합니다. 여기서 ‘무상 배출권’이 중요합니다. 국가가 각 기업에 배출상한선을 느슨하게 잡아 무상 배출권을 많이 준다면 기업은 온실가스 감축을 위한 노력을 할 필요가 없습니다. 가령, 연간 1억 톤의 온실가스를 배출하는 기업이 무상 배출권으로 1억 톤을 받았다면, 이 기업은 감축 노력을 전혀 할 필요가 없습니다. 반면에, 이 기업이 약간의 감축노력으로 1억 톤 이하로 배출하거나, 국가가 할당해 주는 무상 배출권이 증가한다면, 배출권을 팔아서 이익을 얻을 수 있습니다.
먼저, 무상배출권 문제를 살펴 보겠습니다. 정부가 기업들에 100% 무상으로 배출권을 할당하면, 기업은 온실가스 감축을 전혀 하지 않고도 배출한 온실가스에 대한 아무런 책임을 지지 않아도 됩니다. 한국 정부는 배출권거래제 1차 계획 기간(2015년~2017년)에는 배출권 전량을 무상으로 할당했고, 2차 계획기간(2018년~2020년)에는 36개 업종에 3%의 유상할당을 하고 나머지 업종은 100% 무상으로 할당을 했습니다. 3차 계획기간(2021년~2025년)의 실제 유상할당 비율은 4.3%밖에 되지 않았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기업들의 온실가스 배출량이 증가했음에도 불구하고, 국가가 할당해 주는 무상 배출권도 함께 증가함에 따라 오히려 배출권을 팔아서 이익을 얻었던 것입니다. 이렇게 온실가스를 감축하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배출권이 남은 기업은 2019년 기준으로 109개였습니다. 여기에는 포스코, 삼성전자, SK 하이닉스, 현대자동차, LG 유플러스, 롯데케미, 한화솔루션 등 주요 대기업들이 두루 포함돼 있습니다. 정부가 2015년 이래로 10년 동안 배출권거래제를 통해 기업들로부터 징수한 총수입은 1조 4천억 원에 불과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국제 기후정의운동은 배출권거래제가 실질적인 온실가스 감축을 이룰 수 없는 '그린워싱'이자 '거짓 해법'이라는 입장을 뚜렷이 하고 있습니다. 그나마 배출권거래제가 조금이나마 배출 감축에 영향을 미치려면 높은 탄소 가격이 매겨져야 하겠죠. 그러나 국내 탄소배출권 가격은 지나치게 낮습니다. 2015년 제도 도입 초기 이산화탄소 톤당 11,000원이었고, 2025년에는 그보다 더욱 떨어져서 8,900원에 불과합니다. 이는 유럽연합의 배출권 가격인 톤당 10만 원의 10분의 1에도 미치지 못하고, 심지어 중국의 배출권 가격인 톤당 15,000원보다도 낮은 가격입니다. 이처럼 국내 배출권 가격이 현저하게 낮기 때문에, 기업들은 배출 감축을 위해 특별히 노력할 필요가 없는 것입니다. IPCC 보고서는 파리협정의 1.5℃ 온도 상승 억제 목표 달성을 위해 필요한 탄소 가격 수준을 분석해 오고 있습니다. 2018년의 <1.5℃ 특별보고서>에서는 톤당 18만 원이라고 하였고, 2021년 <제6차 보고서>에서는 35만 원이라고 분석하였습니다. 이는 국내 탄소 가격의 35배에 해당하는 가격입니다. 국제 기후정의운동은 이에 대해서조차 비판적인 입장이지만, 이 차이는 한국의 배출권거래제가 얼마나 무책임하게 운영되고 있는지를 단적으로 보여줍니다.
국민의힘과 민주당 정부들이 그동안 운영해 온 배출권거래제는 ‘정책 실패’를 넘어 ‘국가의 도덕적 파탄’이라고 해도 무방합니다. 대한민국이 IPCC의 권고에 따라 2035년까지 온실가스 배출량을 60% 감축한다는 목표를 설정하고, 배출권을 100% 유상할당하며, 탄소 가격을 톤당 35만 원으로 한다면 기업들은 매년 81조 원의 탄소가격을 지불해야 합니다. 최소한 이런 방식으로라도 배출권거래제를 운영하지 않는다면 민주당의 배출권 거래제 공약은 혹세무민의 기만적인 제도일 뿐입니다.
3) ‘부자 증세’ 없는 기후정책은 허구다_기후정의를 위한 조세정책
기후생태위기에 대처하는 최선의 정책은 최상위 부유층의 부와 소득을 줄이는 한편, 공공서비스를 확대해 가는 것입니다. 최상위 부유층의 넘치는 소득을 줄여 이들의 구매력과 과소비를 급격히 감소시킬 필요성이 있습니다. 사회가 평등해 질수록 높은 소득과 화려한 지위재를 추구할 문화적 압력이 줄어들고, 영속적인 소비주의에서 탈피할 수 있습니다. 보다 평등한 사회일수록 1인당 온실가스 배출량이 낮아진다는 연구 결과는 많습니다. 공공 서비스와 공공재로 사회적 삶의 기본적인 필요들–주거교통보건과 의료교육에너지식량정보접근 등–을 제공한다면 생태적 부담을 줄이면서도 모두의 좋은 삶을 만들 수 있습니다.
국민의힘과 민주당 정부들은 이와 정반대의 길을 걸어왔습니다. 이 정부들은 ‘성장 이데올로기’를 공유하며 공공서비스의 민영화, 사회보장 지출 삭감, 임금과 노동 잠식, 부유층 감세, 불평등 확대 정책을 펴왔습니다. 윤석열 정부는 법인세, 종합부동산세, 상속증여세, 금융투자소득세 등 대규모 감세 정책을 추진했습니다. 윤 정부의 감세규모는 80조 원이 넘고, 그로 인해 2023년 한 해 동안 줄어든 국세 수입이 56조 원이 넘습니다. 민주당은 엄혹한 내란 국면에서 국민의힘과 적대하면서도 유독 금융투자소득세 폐지에 선뜻 합의했고, 종부세와 상속세 완화, 법인세 인하 등 부자 감세에 대해서는 국민의힘과 감세 경쟁을 하고 있는 실정입니다. 민주당의 감세 법안 발의 건수는 국민의힘보다 더 많았습니다.
이재명 후보는 대선 10순위 공약인 ‘기후위기 대응 및 산업구조 탈탄소 전환’ 공약에서, 공약 실현을 위한 재원조달방안에 대하여 ‘정부재정 지출구조 조정분, 2025~2030 연간 총수입증가분으로 충당’한다고 밝히고 있습니다. 정책의지를 확인할 수 있는 지표는 해당 정책 실행을 위한 재원 조달 방안이 있는지 여부입니다. 이 후보의 공약이 말하는 ‘정부재정 지출구조조정분’이란 정부가 예산을 편성하고 집행하는 과정에서 기존의 지출 항목과 규모를 재검토하여 비효율적인 부분을 줄이고 새로운 정책목표나 사회적 요구에 부응하기 위해 재원을 재분배하는 것입니다. 윤 정부는 엄청난 규모의 부자 감세를 해주고는 건전재정을 이룬다면서, 지출구조조정으로 매년 23조 원 정도의 재량지출 삭감을 해왔습니다. 삭감된 예산으로는 연구개발예산, 공공임대주택 예산, 공공의료기관 지원금, 소상공인 손실보상금 등 대부분 민생복지 예산들이었습니다. 이재명 후보와 민주당은 기후 대응 정책 실행을 위해 윤 정부처럼 민생⬝복지 예산을 삭감하겠다는 것인가요? 또한, 이 후보와 민주당은 ‘연간 총수입증가분’을 어떻게 확보할 예정인지 아무런 계획이 없습니다. 10대 공약 그 어디에도 정부 총수입의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하는 국세 수입의 증가 방안이 없는 것입니다.
이번 대선에서 기후정의를 위한 대안을 제시하고 있는 유일한 후보는 민주노동당 권영국 후보입니다. 민주노동당 권영국 후보는 정책공약 5순위로 ‘기후정의 확립으로 생태평등 사회로의 전환’을 정하고 있고, 정책목표로 ‘기후불평등을 해소하고 기후정의를 확립하여 생태평등사회로의 전환’을 내걸고 있습니다. 그 이행방법으로 ‘기후정의세수 기반 대규모 공적 투자로 기후위기 속 모두의 존엄한 삶 보호’를 제시하고 있고, 재원조달방안으로는 ‘소득세 법인세 등의 최고세율 인상 등을 통한 기후정의세 도입과 국책은행인 녹색공공투자은행을 통한 재원 조달’이라고 명시하고 있습니다. 기후정의세의 구체적인 내용들은 정책공약 1순위 ‘증세를 통한 불평등 해소’에서 밝히고 있는 일련의 조세정책들입니다. 상속증여세 최고세율 90%로 상향, 순자산 100억 원 이상 보유자 대상 부유세 신설, 소득세와 법인세의 최고세율 인상, 금융투자소득세와 가상자산세 당장 30% 신설, 윤석열 정부에서 추진된 부자 감세 원상복구 등을 제안하고 있습니다. 이렇게 확보된 세수로 정의로운 탈탄소 사회로의 전환을 위한 재원을 마련하고, 기후생태위기로부터 우리 모두의 존엄한 삶을 보호할 수 있습니다. 이것이 신속하고 정의롭게 공공재생에너지를 확대하고 기후위기에 대응할 수 있는 유일한 길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