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식 노동자의 흥망성쇠

정보를 다루는 일에 종사하며 상품 생산에는 관여하지 않는 지식 노동자들은신자유주의와 세계화의 수혜자가 될 것으로 여겨졌다그러나 생성형 AI와 극도로 경쟁적인 노동 시장은 이들 역시 빈곤으로 몰아가고 있다.

출처: Campaign Creators, Unsplash

최근 벤처캐피털 회사 안드리센 호로위츠(Andreessen Horowitz)가 주최한 미국 정부 관계자 및 기업인들의 모임에서제이디 밴스 부통령은 지난 50년간의 미국 경제 정책에 대해 놀라울 만큼 솔직한 분석을 내놓았다그는 아이디어는 이랬다부유한 국가들이 가치사슬에서 상위로 올라가고가난한 국가들은 단순한 일을 맡게 된다는 것이었다라고 말했다.

그가 의미한 바는, 1970년대 이래로 세계화의 지지자들은 미국 같은 곳의 일부 노동자들이 제조업 일자리를 잃더라도 대부분은 적응할 것이라고 예상했다는 점이다. 2010년대에 밈처럼 유행한 표현을 빌리자면그들은 코딩을 배우게 될” 것이었다광산 대신 노트북을 들게 된 미국 노동자들은고부가가치 일자리가 집중되는 국가로서글로벌 사슬에서 글로벌 사우스(Global South)의 노동자들보다 높은 위치를 점유하게 될 것으로 보았다그러나 실제로 벌어진 일은밴스의 표현대로 그들이 하층을 잘 해내기 시작하면서고급 영역까지 따라잡기 시작했다는 것이었다.

밴스의 이러한 묘사는 어떤 면에서는 미국 정치인들에게 기대되지 않던 정직함을 보여준다냉전 이후 미국의 지도자들은 세계화를 진보’, ‘통합’, ‘근대화라는 매끄러운 수사로 포장해 팔아왔다이는 국가 단위로 작동하는 낙수효과 경제학의 일종이었고부유층을 더 부유하게 만드는 동시에 저개발’ 국가들을 끌어올릴 수 있다는 약속이었다물론 그 이후 생활 수준이 실제로 상승한 지역도 있었다특히 동아시아에서는 극적인 성장을 이루었다그러나 세계 대부분의 지역에서는 국가 기관과 복지의 붕괴라는 재앙과 함께평범한 성장에 그쳤다.

세계화의 해악에 대해 분노를 표출하면서밴스는 국가 간의 패권 경쟁이 본질적으로 제로섬 게임인 세계관을 제시한다그러나 이 내러티브에서 빠져 있거나 의도적으로 무시된 것은세계화로 인해 누가 이득을 보고 있는지를 결정짓는 핵심 축인 계급에 대한 진지한 분석이다. ‘국가라는 이름 아래 한데 묶여 있는 것은산업과 지역을 넘나들며 끝없이 이윤을 극대화하려는 착취자들과그 탐욕스러운 축적 욕망의 대가를 고스란히 떠안는 피착취자들이다.

자신을 미국 노동계급의 대변자라고 자처하면서밴스와 그와 유사한 정치인들은 억만장자 후원자들에게서 시선을 돌리려 한다대신 그들은 외국 노동자들이나 모호하게 규정된 자유주의적 도시 엘리트를 공격 대상으로 삼는다이 과정에서 그들은 블루칼라와 화이트칼라 노동자들 사이의 분열을 이용한다.

포디즘과 탈포디즘

밴스와 같은 포퓰리즘 우파 정치인들이 향수를 느끼는 경제 체제는 흔히 자본주의의 포디즘 시대라고 불리는 시기다자본주의의 황금기로 불리는 전성기 당시미국 노동자 여섯 명 중 한 명꼴로 자동차 산업에 직접적 혹은 간접적으로 종사했지만현재는 그 수치가 고작 3퍼센트 미만에 불과하다.

포디즘은 사회 전반에 걸친 대량 소비와공장에서의 대량 생산으로 정의되었다이는 테일러주의 원칙에 따라 노동 방식과 도구장비를 고도로 표준화함으로써 효율성을 극대화하려는 조직 원칙이었다포디즘은 자본주의 성장의 특별히 성공적인 시기를 나타냈다예컨대 미국에서는 1947년부터 1979년까지 비관리직 노동자의 평균 임금이 연평균 2퍼센트 상승했고실질 GDP는 연평균 7.3퍼센트 성장했다반면 1979년 이후에는 임금이 연 0.3퍼센트 오르는 데 그쳤고실질 GDP 역시 연 4.9퍼센트 상승에 머물렀다.

포디즘의 쇠퇴는 1970년대에 시작되었고국제 경쟁의 격화가 그 원인이 되었다독일(서독)과 일본 같은 다른 선진 자본주의 국가들이 미국과 유사한 상품을 생산하기 시작했다이들 국가의 낮은 임금과 생산 능력의 중복은 궁극적으로 가격을 하락시켰고결국 기업의 이윤에도 압박을 가했다.

이러한 붕괴의 효과는 미국 내 상품 생산 방식과 소비 패턴의 변화로 나타났다점점 복잡해진 글로벌 공급망이 조정하는 린(lean) 공장이 국내의 대량 표준화 제조업을 대체했다자동화컴퓨팅통신 기술의 발전은 더 유연하고 지리적으로 분산된 노동력을 관리할 수 있도록 하면서 이 전환을 가능하게 했다.

사람들의 소비 방식 또한 달라졌다보통의 미국인들조차 점점 더 개인화된 다양한 상품에 더 저렴한 가격으로 접근할 수 있게 되었다신흥 하위문화에 맞춘 다양한 의류부터 무한히 커스터마이징 가능한 펑코 팝(Funko Pop) 피규어에 이르기까지이 같은 소비 방식은 곧 전 세계 중산층의 열망이자 기준으로 자리 잡았다.

하지만 포디즘의 쇠퇴는 동시에 글로벌 노스(Global North)의 노동운동 약화로 이어졌다가장 직접적인 원인은 공장의 해외 이전과 조직화한 노동자들의 대량 해고였다이 노동자들은 서비스 부문이 요구하는 더 작고 공간적으로 분산된 작업장으로 밀려났고그 결과 조직화할 수 있는 역량이 크게 제한되었다.

이 시기는 노동조합에 치명적인 패배를 안겼고한때 산업의 중심지였던 미국 러스트 벨트(Rust Belt), 영국 북부프랑스 북부 등은 급속한 탈산업화를 겪었다이는 공장의 해외 이전표준화된 컨테이너 운송전산화된 재고 관리빠른 통신망그리고 다양한 기술 혁신으로 가속화되었다.

그 결과 세계 경제는 데카르트적 분할 구조를 띠게 되었다. ‘지적·창조적·관리적’ 노동이 수행되는 북반구의 정신(mind)물리적 재화를 생산하는 남반구의 신체(body) 사이의 분할이 나타난 것이다. 1994년 미국캐나다멕시코 간 체결된 북미자유무역협정(NAFTA)과 2001년 중국의 세계무역기구(WTO) 가입은 이러한 경향을 더 심화시켰다생산은 대부분 아시아로 옮겨졌고초기에 한국과 대만을 거쳐 결국 중국 본토로 집중되었다.

이들 국가는 대규모 농촌 인구와 실용적인 통치 방식이라는 특성을 바탕으로항상 대기 중인 노동력 풀과 엄격한 노동 규율을 동시에 제공했다가장 대표적인 사례인 중국은 이른바 기숙사 노동 체제(dormitory labor regime)’를 도입했고이는 노동자들을 작업장 내 밀집 숙소에 배치함으로써 공장 관리자가 노동자의 일상 생활 전반을 전례 없이 통제할 수 있도록 했다.

비록 소수의 동아시아 개발도상국들이 세계화의 수혜를 입었지만이 네트워크에 통합된 대부분의 국가들—이집트부터 남아프리카공화국인도네시아에 이르기까지—은 금융 자본의 통제 아래 국가 역량과 복지 체계의 침식만 겪었고저부가가치 서비스와 영세 상품 생산에 갇힌 채 남아 있게 되었다.

지식 경제의 부상

한편컴퓨팅 및 통신 기술의 급속한 발전은 새로운 계급의 지식 노동자를 탄생시켰다이들은 데이터 모델러소프트웨어 개발자시스템 설계자금융 분석가네트워크 엔지니어 등으로 구성되었다이 새로운 계급은 점점 더 분산되는 자본자원정보상품의 흐름을 중개하는 역할을 맡았다이들은 더 높은 임금이나 지분 소유를 통해 기업 이익에서 더 많은 몫을 직접적으로 확보하면서 상대적인 안정성을 누렸다이 노동 계층은 탈포디즘 자본주의의 관리자이자 조정자로 자리 잡았고이들의 생활 수준과 소비 능력은 점차 향상되었다.

세계화 옹호자들의 시각에서이러한 새로운 일자리들은 탈산업화로 인한 손실을 상쇄할 것으로 여겨졌다그러나 이 일자리들이 제공한 이익은 극도로 불균등하게 분배되었고상위 소득층 일부가 대부분의 이익을 독식했다예컨대 미국의 소득 불평등을 나타내는 지니 계수는 1971년 0.45에서 2023년 0.59로 증가했고이는 제2차 세계대전 이전 이후 처음 나타난 수치다.

북미에서는 이 상위 지식 노동자 계층이 세계화의 대부분 이익을 차지했다유럽에서는 비교적 높은 세율이 이 불균형을 다소 완화했으며새로운 중산층이 얻은 이익 일부를 복지국가의 잔존 체계를 통해 보다 넓은 노동계층에게 재분배했다그러나 실제로는 이 두 모델 모두 수익이 발생하는 주요 거점들과는 괴리되어 있었다수익은 대부분 중국과 멕시코의 공장방글라데시와 베트남의 방적 공장에서 창출되고 있었다.

이 새로운 경제의 상징적인 사례는 스웨덴의 패션 소매업체 H&M이다. 2024이 회사는 18억 달러의 영업이익을 기록했고평균 세율은 24.9퍼센트였다그러나 방글라데시에서는 사실상 세금을 거의 내지 않았다이곳에서 H&M은 전체 의류의 약 20퍼센트를 생산하고 있다. H&M의 의류 디자이너는 연간 최대 10만 달러를 벌 수 있지만방글라데시 봉제 노동자의 월 최저임금은 최근에서야 113달러로 인상되었고이는 연간으로 환산하면 고작 1,356달러에 불과하다.

생성형 AI와 자본의 내향적 전환

최근 몇 년 사이세계화된 경제로부터 이익을 누려온 소수의 노동자들마저도 압박을 느끼기 시작했다생성형 AI의 부상과 그에 대한 광범위한 불안은 이러한 맥락에서 읽을 수 있다. 2022년 11월 ChatGPT가 출시된 이후그래픽 디자인카피라이팅프로그래밍 등 수많은 형태의 노동이 점점 더 공장에 집중되었던 규율의 논리 아래로 편입되고 있음이 점차 분명해지고 있다.

물론 생성형 AI에 과도한 과장이 따라붙기도 했고이 기술이 아직 완전하지 않은 것도 사실이지만컴퓨터 코드 작성이나 제품 디자인마케팅 이미지 생성 등의 능력은 빠르게 향상되고 있다지금 이 시점에서산업적 프롤레타리아화 과정이 이제껏 예외로 여겨졌던 정보 기반 및 창의적 노동 형태에까지 점진적으로 도달할 수 있다는 결론은 더 이상 과도하지 않다.

우리가 인공지능이 인간 지능을 초월할 것이라는 공상적 개념혹은 4차 산업혁명과 같은 거창한 선언을 받아들이지 않더라도현재 수준의 생성형 AI는 자본가들이 다양한 지식 노동자들에게 임금 규율을 강제하는 데 도움을 줄 수 있을 정도로 기능하고 있다대량의 텍스트를 빠르고 효율적으로 탐색하고 처리하는 AI의 능력은정보의 발견·선별·구성에 기반한 직종에 특히 위협이 되고 있다.

이러한 모델들은 소프트웨어 개발 및 컴퓨터 프로그래밍의 특정 측면을 자동화하는 데도 사용되고 있으며이는 프로그래머의 기술을 탈숙련화시키고 그들이 누려왔던 협상력을 약화하고 있다예를 들어생성형 언어 모델은 이제 웹사이트나 모바일 앱의 프로토타입을 만들기 위한 대부분의 코드 구조를 한두 시간 안에 생성할 수 있으며이는 평균적인 소프트웨어 개발자가 며칠에 걸쳐 해야 했던 작업이다마케팅콘텐츠 제작광고와 같은 영역에서도 생성형 AI 모델은 직원들의 작업 중 상당 부분을 대체할 수 있다그것이 얼마나 잘 해내느냐는 핵심이 아니다시장의 힘이 ‘AI 쓰레기(AI slop)’를 새로운 기준으로 바꿔놓을 수 있는 현실에서는그것을 막을 장벽이 거의 없다.

지식 귀족의 몰락

2000년대 초철학자 마이클 하트와 안토니오 네그리의 저서 『제국』(Empire)이 성공을 거두면서, 1970년대 이래 이탈리아 마르크스주의자들 사이에서 특히 인기 있던 현대 노동 분석의 한 흐름에 대한 관심이 다시 불붙었다마우리치오 라자라토(Maurizio Lazzarato), 파올로 비르노(Paolo Virno), 그리고 네그리 자신과 같은 이른바 포스트 노동자주의(post-workerist)’ 사상가들은 정보 기반문화 기반그리고 소통 기반의 네트워크 노동 형태가 측정에 덜 취약하고규율과 상품화의 회로에 흡수되기 어려운 특성을 지녔다고 주장했다그들은 비물질적이고 인지적인 노동 속에서 자율성과 협력그리고 탈자본주의적 생산 형태의 가능성을 보았고이는 곧 착취적 노동으로부터의 해방을 의미했다.

그러나 돌이켜 보면이러한 아이디어들은 결국 이러한 비물질적’ 노동 형태가 실제로 전개된 방식과는 상당히 어긋나 있었다애자일 소프트웨어 개발정량화된 콘텐츠 제작 등 최근 지식 노동의 다양한 형태에서 나타난 전개와 마찬가지로생성형 AI는 바로 이 겉보기에 자율적인 노동 형태들에 공장식 논리를 확장했고그것을 일상화하고 규율할 수 있는 형태로 만들었다예를 들어그래픽 디자이너는 이제 하루가 걸리던 3D 모델링 작업을 한 시간 안에 끝내라는 요구를 받게 되었고고용주는 미드저니(Midjourney)나 유사한 AI 도구의 사용을 명령할 수 있게 되었다.

오늘날 자본의 그물망은 점점 조여들고 있다선전의 폭스콘 공장에서 일하는 반도체 노동자부터베를린의 지니어스바 직원쿠퍼티노 애플 본사의 기술 노동자에 이르기까지이들을 연결하는 망은 점점 더 균질화되고 있다저임금 노동자와 고임금 노동자의 자본에 대한 위치는 극적으로 다르지만이들 모두가 하향 곡선을 공유하고 있는 현실은 분명하다.

기술 부문에서 특히 상징적인 징후로는미국 내 컴퓨터 프로그래머의 고용률이 1980년대 이래 최저 수준으로 떨어졌다는 점이다이런 압박은 노동자들의 협상력을 눈에 띄게 약화했고그 대상은 단지 임금에만 그치지 않는다. 2018구글 직원들은 메이븐 프로젝트(Project Maven)’를 통해 미국 군과 협력하려던 회사의 계획을 저지해낸 바 있다그러나 작년에는 가자 지구에서 벌어진 집단학살에 대한 구글의 공모에 항의했던 50명 이상의 노동자가 즉시 해고당했다한때 자신의 조건을 협상할 수 있었던 지식 경제의 귀족은 지금 서서히 권좌에서 밀려나고 있다.

지금이야말로세계 곳곳의 공급망을 따라 단절된 채 흩어져 있는 노동자들을 분열시키는 원자화를 극복하기 위해 싸워야 할 때다북반구 자본주의가 내향적으로 전환되는 속도가 빨라지는 지금우리는 외부를 향해 눈을 돌려야 한다데이터 센터 엔지니어의류 노동자플랫폼 노동자코발트 광산 노동자그리고 세계 자본주의의 그늘저부가가치의 최하단에 밀려난 모든 사람과의 연대와 동맹을 구축해야 한다오늘날의 자본은 반세기 전보다 훨씬 더 막강한 적이다성공적인 노동운동을 만들어내기 위해서는그 자본의 모든 연결 지점을 따라 의도적으로그리고 단호하게 연대를 구축하고 조직해나가는 것이 필수적이다.

[출처] The Rise and Fall of the Knowledge Worker

[번역] 하주영 

덧붙이는 말

비닛 라비샹카르(Vinit Ravishankar)는 베를린을 기반으로 활동하는 독립 연구자이자 작가, 편집자다. 그는 인공지능의 정치경제를 주제로 연구하며, 《레프트 베를린(The Left Berlin)》과 《디스정션스》(Disjunctions) 매거진의 편집위원으로 활동하고 있다. 모스타파 압두(Mostafa Abdou)는 프린스턴대학교 박사후 연구원으로, 언어와 인지, 알고리즘화의 사회문화적 함의에 대해 연구하고 있다. 그는 《디스정션스》(Disjunctions) 매거진의 편집위원으로도 활동 중이다. 참세상은 이 글을 공동 게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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