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MB는 우주가 겨우 38만 년 되었을 때 하늘에 새겨진, 우주에서 가장 오래된 빛의 순간을 포착한 스냅샷이다. 출처: ESA / Planck Collaboration, CC BY
138억 년 전, 우주는 에너지와 물질의 폭발적 생성으로 시작되는 빅뱅(Big Bang)으로 탄생했다. 이 사건은 매우 먼 과거에 발생했지만, 그때 생성된 복사(radiation)는 지금도 온 우주 공간을 가득 채우고 있다. 우리는 이를 우주 마이크로파 배경복사(CMB: Cosmic Microwave Background)라고 부른다.
우주의 빛은 빅뱅 후 약 38만 년이 지난 시점에서 처음으로 출현했다. 이 빛은 인간의 눈으로는 볼 수 없지만, 적절한 관측 장비를 통해 탐지할 수 있다. CMB는 우주의 가장 오래된 '사진'이자, 우주의 기원과 그 이후의 진화를 이해하는 데 있어 가장 강력한 도구 중 하나로 활용되고 있다.
빛의 첫 번째 여정
우주 마이크로파 배경복사(CMB)는 아주 먼 옛날에 발생한 빛으로, 현재도 모든 방향에서 지구로 도달하고 있다. 이 빛은 마이크로파 대역에 해당하는 파장을 지니고 있기 때문에, 가시광선 영역에서는 눈에 보이지 않는다. 오늘날 이 복사의 온도는 절대온도 2.725K, 즉 섭씨 –270.425도로 매우 낮다. 이는 원시 우주의 잔재이며, 빛이 처음으로 자유롭게 이동할 수 있게 되었을 때 남겨진 신호다.
우주의 초기 상태는 매우 조밀하고 고온이었으며, 그 속에서 빛은 자유롭게 움직일 수 없었다. 광자(빛의 입자)는 자유전자와 끊임없이 충돌하면서 갇혀 있었고, 그 결과 광자는 전파되지 못했다. 하지만 우주가 팽창하고 냉각되면서, 빅뱅 이후 약 38만 년이 지난 시점에 전자와 양성자가 결합해 중성 원자를 형성하게 되었다. 이 과정을 재결합(recombination)이라고 부른다.
그 순간부터 광자는 자유를 얻었고, 방해받지 않고 공간을 가로지르기 시작했다. 이때 우주의 첫 번째 빛이 탄생했다. 바로 이것이 오늘날 우리가 관측하는 우주 마이크로파 배경복사(CMB)다.
이 빛은 그 이후로 지금까지 우주 공간을 계속 이동해 왔으며, 오늘날에도 모든 방향에서 지구에 도달하고 있다. CMB는 우주 초창기의 모습을 간직한 '유물'로서, 우주의 기원과 초기 조건에 대해 매우 귀중한 정보를 제공한다.
빅뱅의 메아리
우주 마이크로파 배경복사의 발견은 전혀 예상치 못한 사건이었다. 1965년, 물리학자 아르노 펜지어스(Arno Penzias)와 로버트 윌슨(Robert Wilson)은 미국 뉴저지에 위치한 벨 연구소(Bell Labs)에서 위성 통신용 안테나를 실험하던 중이었다. 이들은 어디를 향해도 사라지지 않는 지속적인 신호를 감지했으며, 그 원인을 설명할 수 없었다.
그 신호는 하늘의 모든 방향에서 동일하게 들어왔고, 알려진 어떤 천체와도 관련이 없었다. 곧 다른 과학자들이 그 신호가 빅뱅 이후 남겨진 복사임을 해석해냈다. 이 빛은 우주가 밀도 높고 뜨거웠던 시절에 갇혀 있었으나, 그 후 자유롭게 방출되었고, 수십억 년을 거쳐 오늘날 우리에게 도달한 것이다.
이 발견은 빅뱅 이론을 직접적으로 입증한 첫 증거였으며, 당시 존재하던 경쟁 이론들을 밀어내고 우주론의 새 시대를 열었다. 그 이후 과학자들은 이 우주 배경 복사를 정밀하게 연구해, 우주의 기원과 진화에 대한 수많은 비밀을 밝혀왔다.
우주의 가장 오래된 지도
우주 마이크로파 배경복사는 우리가 가진 가장 오래된 우주의 지도이다. 이 복사는 하늘의 모든 방향에서 도달하고 있으며, 이를 통해 우주가 단지 38만 살이었을 때의 모습을 재구성할 수 있다. 과학자들은 이 복사를 정밀 분석해, 온도가 약 10만 분의 1 수준으로 미세하게 다른 지역들, 즉 이방성(anisotropy)이라 불리는 작은 변화를 발견했다.
이러한 미세한 차이는 초기 우주에 존재했던 밀도 요동(density fluctuations)을 나타내며, 이후 별, 은하, 그리고 현재 우리가 보는 모든 우주 구조의 씨앗이 되었다.
이 이방성을 연구하면 우주의 구성, 나이, 초기 상태, 그리고 이후의 팽창 과정을 더 정확히 이해할 수 있다. 또한, 우주 마이크로파 배경복사는 빅뱅 직후 급팽창을 설명하는 '우주 인플레이션 이론'을 검증하는 데도 핵심적인 역할을 한다.
이 인플레이션 과정의 신호 중 하나인 원시 중력파(primordial gravitational waves)는, 배경복사의 편광(polarization)에 특정한 흔적을 남길 수 있다. 따라서 CMB는 우리가 지구상에서 실험적으로 재현할 수 없는 고에너지 물리 현상을 탐색할 수 있는 유일한 관측 창으로 기능한다.
이러한 분석 덕분에, 과학자들은 우주의 곡률, 암흑 물질 및 암흑 에너지의 양, 그리고 우주의 팽창 속도와 같은 우주론적 주요 매개변수들을 정밀하게 측정할 수 있게 되었다.
우주 배경복사를 관측하기 위한 기술
우주 마이크로파 배경복사를 정밀하게 감지하는 일은 절대 간단하지 않다. 이 신호는 매우 약하며, 우주 공간의 다른 복사원에서 나오는 잡음에 쉽게 묻힌다. 이를 관측하기 위해서는, 하늘의 온도 분포를 미세하게 측정할 수 있는 고감도 센서를 갖춘 우주 망원경이 필요하다.
이러한 장비는 지구 대기나 인공 전파 간섭으로부터 멀리 떨어져 있어야 하며, 칠레 아타카마 사막, 남극, 또는 지구 궤도를 도는 위성에 배치된다. 실제로, NASA와 ESA는 각각 COBE, WMAP, 플랑크(Planck) 등과 같은 위성 임무를 통해 이를 수행해왔다.
스페인 오비에도 대학교(Universidad de Oviedo)에서도 우주 배경복사 연구에 참여하고 있다. 이곳 연구진은 인공지능(AI)을 활용한 분석 기법을 개발해, 관측 데이터에서 원래의 신호를 잡음과 간섭으로부터 효과적으로 분리하고 있다. 이를 통해 우리는 우주의 초기 순간을 더욱 정확하게 복원하고, 현대 우주론의 핵심적인 질문들에 접근하고 있다.
아직 밝혀야 할 부분도 많다. CMB의 편광을 정밀하게 측정하거나, 원시 중력파의 흔적을 검출하는 일은 현재로서는 미해결 과제로 남아 있다. 하지만 언젠가 우리는 그 빛을 분명히 볼 수 있을 것이다.
[출처] ¡Hágase la primera luz del universo! La explicación científica del fondo cósmico de microondas
[번역] 하주영
- 덧붙이는 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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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라 로드리게스 카보(Sara Rodríguez Cabo)는 스페인 오비에도 대학교(Universidad de Oviedo)의 물리학 연구원이다. 참세상은 이 글을 공동 게재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