블라디미르 보르툰은 폴 하이데만의 『Rogue Elephant』를 검토하며, 트럼프주의를 단순한 개인주의적·혼란적 현상으로 보는 주류 해석을 비판한다. 그는 트럼프의 부상이 ‘러스트벨트 유권자들의 반란’만이 아니라, 분열된 미국 자본가계급 내부의 재편과 특정 자본 분파들의 결집에 기반했다고 주장한다. 공화당은 전통적으로 “기업의 정당”이었지만, 신자유주의 이후 자본 내부의 균열이 심화되면서 제조업 일부, 추출산업, 사모펀드, 암호화폐 자본, 그리고 신흥 테크-군사 복합체 등이 새로운 권력 블록을 형성해 트럼프주의를 떠받쳤다. 특히 이 블록은 권위주의적 신자유주의와 공세적 제국주의를 결합한 정책 노선을 지지하며, 이는 단순한 ‘혼란’이 아니라 특정 계급적 이해관계를 반영한다. 글은 트럼프주의를 이해하려면 유권자 분석을 넘어 자본 내부의 경쟁과 동맹, 그리고 국가 권력을 둘러싼 분파적 투쟁을 물질주의적으로 분석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데이비드 하비는 마르크스가 19세기 영국 맨체스터 산업자본주의를 토대로 자본주의의 ‘운동 법칙’을 이론화했지만, 자본을 본질적으로 세계적 체계로 이해했다고 강조한다. 오늘날 자본주의는 방글라데시 의류공장, 중국 선전의 폭스콘, 실리콘밸리의 빅테크, 글로벌 금융과 군산복합체 등 다양한 형태로 전개되며, 불균등 발전 속에서 서로 다른 노동 조건과 계급 구성을 만들어낸다. 따라서 사회주의 전략도 특정 역사적 모델을 고정적으로 모방할 것이 아니라, 각 지역의 물질적 조건과 자본 축적 방식에 대한 구체적 분석에 기초해 새롭게 구성되어야 한다. 하비는 마르크스의 핵심 유산은 특정 결론이 아니라, 생산관계와 물질적 조건에서 출발해 자본의 동학을 파악하는 방법론에 있으며, 오늘날 사회주의 역시 실리콘밸리와 선전, 글로벌 공급망과 금융권력까지 포괄하는 분석 위에서 재구성돼야 한다고 주장한다.
독일 나치의 부상 과정을 연구한 역사학자는 극우·네오나치 집회에 맞서 물리적 충돌로 대응하는 전략이 오히려 극우 세력에 유리하게 작용할 수 있다고 지적한다. 1920년대 베를린 ‘레드 베딩’에서 벌어진 나치와 반파시스트의 폭력적 충돌은 나치가 자신들을 ‘좌파 폭력의 피해자’로 포장하고 치안 강화를 명분으로 권력을 확대하는 데 활용됐다. 오늘날에도 극우는 의도적으로 충돌을 유도해 혼란과 공포를 부각시키려 하며, 이에 맞서기 위해서는 직접 대치 대신 거리두기 집회나 대안 행사 등 비폭력적이고 전략적인 방식으로 대응해야 민주주의를 지키는 데 효과적이라고 강조한다.
TNI(초국적연구소)의 14번째 『국가 권력(State of Power)』 보고서는 전 세계적으로 확산되는 파시즘과 극우 세력의 부상을 분석하며, 단순한 정치 현상이 아닌 구조적 위기의 산물로 조명한다. 보고서는 경제적 이해관계와 자본의 지원, 사회·생태 위기를 극우가 어떻게 정치적으로 무기화하는지를 짚고, 권위주의적 질서 강화의 배경을 해부한다. 동시에 이러한 흐름에 맞서기 위한 전략과 대안을 제시하며, 민주주의와 사회정의를 지키기 위한 집단적 대응의 필요성을 강조한다.
노엄 촘스키가 제프리 엡스타인과 교류한 사실을 계기로, 그의 사상과 삶에 존재해온 ‘분절된 이중성’을 비판적으로 조명한다. 저자는 촘스키가 미국 제국주의를 비판하면서도 한편으로는 미 국방부 자금을 지원받아 언어를 컴퓨터 알고리즘처럼 보는 이론언어학을 발전시켰고, 이는 군사·감시 기술 발전과 맞닿아 있었다고 지적한다. 또한 학문적 권위에 도전하는 비판자들에게 배타적으로 대응한 태도까지 언급하며, 이러한 모순적 면모가 엡스타인과의 관계를 합리화할 수 있었던 배경일 수 있다고 주장하면서, 인간은 논리적 기계가 아니라 모순과 자기합리화를 동시에 품는 존재임을 강조한다.
클라라 마테이의 『자본주의로부터의 탈출』(Escape From Capitalism)을 비판적으로 검토하며, 자본주의는 고장 난 체제가 아니라 착취와 불평등, 긴축을 정상적으로 재생산하는 체제라고 주장한다. 마테이는 이윤의 논리와 필요의 논리가 근본적으로 충돌하며, 긴축·실업·권위주의는 자본주의의 실패가 아니라 작동 방식의 결과라고 분석하고, 진정한 민주주의는 정치 영역을 넘어 경제에 대한 민주적 통제로 확장돼야 한다고 강조한다. 필자들은 여기에 덧붙여, 사회민주주의의 한계와 계급 형성·정당 조직의 중요성을 지적하며, 개혁이 아니라 자본주의 자체와의 단절을 지향하는 사회주의 전략이 필요하다고 결론짓는다.
브루스 스프링스틴의 최근 항의곡을 출발점으로, 우디 거스리·밥 딜런·닐 영 등으로 이어지는 미국 저항 음악의 전통이 어떻게 국가 폭력, 인종차별, 전쟁에 맞서 형성되어 왔는지를 추적한다. 저항 음악은 언제나 긴급한 정치적 사건에 대한 즉각적 응답이었으며, 억압받는 이들의 기억과 분노를 집단적 목소리로 전환해 사회운동의 상징이 되어 왔다. 오늘날 트럼프 시대의 미국에서도 항의 음악은 여전히 권력 비판과 연대의 도구로 기능하지만, 동시에 국가 권력을 찬양하는 음악 역시 공존하며 정치적 문화투쟁의 장을 형성하고 있다.
프랑스에서 극우 정당인 국민연합(RN)에 대한 지지는 단순히 세대 차이로 설명하기 어렵다. 전 세대에 걸쳐 성소수자, 여성, 소수자에 대한 관용은 꾸준히 증가하고 있으며, 특히 젊은 층은 가장 진보적인 태도를 보인다. 그러나 2022년 대선에서는 오히려 젊은 세대일수록 RN이나 좌파 후보인 멜랑숑을 지지하는 경향이 높았고, 이는 불만족, 교육 수준, 정치적 거리감 등 다양한 요인이 결합된 결과로 보인다. 세대는 투표 성향의 일부 요인이지만, RN 지지는 결국 교육 수준이 낮고 사회경제적으로 불안정한 계층에서 더 많이 나타나는 경향이 있으며, 최근에는 고령층에서도 RN 지지가 증가하는 추세다.
‘프롤레타리아 독재’는 마르크스주의 핵심 개념 중 하나로, 노동계급이 권력을 잡아 계급 없는 사회로 이행하는 과도기를 의미했다. 레닌과 스탈린은 이를 정당화하며 강력한 국가 폭력과 일당 체제를 구축했고, 스페인 내전과 동유럽, 아시아 국가들에서도 다양한 형태로 실현됐다. 그러나 20세기 후반, 서유럽 공산당들은 이 개념에서 점차 거리를 두었고, 1976년 프랑스 공산당은 공식적으로 이를 폐기했다. 결국 이 개념은 민주주의와 양립하기 어려운 억압 체제로 인식되며 역사 속으로 퇴장했다.
1940~50년대 미국에서 제작된 극지방 중심의 지도들은 냉전 시기 세계를 위협과 기회의 공간으로 묘사하며 대중에게 지리적 사고를 요구했다. 이 지도들은 단순한 정보 전달을 넘어, 미국 주도의 새로운 세계 질서를 정당화하는 데 기여했고, 트럼프 세대에 깊은 인상을 남겼다. 오늘날 북극에서의 지정학적 긴장과 ‘그린란드 인수’ 같은 정책은 이러한 시각의 연장이며, 지도는 여전히 국제 질서를 이해하고 설계하는 강력한 도구로 남아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