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코뮤니즘은 노동을 단순히 줄이거나 기술로 대체하는 것이 아니라, 생산의 사회화를 통해 노동과 자연의 관계를 근본적으로 재구성하려는 전략이다. 이는 생산수단의 사적 소유를 폐지하고, 사회 전체가 민주적으로 생산과 소비를 결정함으로써 필요한 사회적 욕구를 충족시키면서도 생태적 균형을 회복하려는 시도다. 탈성장은 소비 절제를 강조하지만 대안 체계에 대한 구체적 전략이 부족하고, 사치공산주의는 현실적 자원 제약을 무시한 공상에 가깝다고 비판하며, 메르칸탄테는 노동자 계급이 생태 위기 해결의 주체가 되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블라디슬라프 소티로비치(Vladislav B. Sotirović) 박사는 우크라이나를 ‘상상된 공동체’로 규정하며, 이 국가 정체성이 역사적·언어적 실체보다는 외부 정치적 개입과 반러시아 정서에 기반한 인위적 구성물이라고 주장한다. 그는 특히 우크라이나의 민족 형성과 분리 정체성은 러시아와 폴란드 사이의 지정학적 경계에서 비롯된 것으로, 로마 가톨릭 교황청과 독일, 오스트리아-헝가리 등이 오랜 세월에 걸쳐 반(反)러시아 전략의 일환으로 형성·조장한 결과라고 본다. 이 글은 우크라이나의 정체성 형성을 반정통적이고 종파 중심적 시각에서 해석하며, 서우크라이나 지역의 친서방 성향은 역사적 가톨릭 세력권의 유산이라고 지적한다. 또한, 우크라이나를 지정학적 '완충지대'로 간주하며, 현재의 친서방·반러 정서는 제1차 세계대전 이후 독일 및 서방의 지정학적 도구화의 연장선이라는 시각을 제시한다.
나미비아에서 잘 알려진 헤레로족과 나마족 집단학살(1904~1907) 이후, 독일 식민당국은 ‘부시맨’으로 불리는 산(San)족을 조직적으로 사냥하고 학살했다. 19111~913년 사이 400여 개의 대대적인 토벌 작전이 이뤄졌고, 당시 8,000~12,000명이던 인구는 1923년에 3,600명으로 급감했다. 독일 정착민들은 부시맨을 위협적인 ‘야생 동물’로 간주하며 제거 대상으로 삼았다. 이후 남아프리카 공화국 식민통치와 현대 나미비아 정부하에서도 부시맨의 차별과 강제 이주는 지속됐고, 오늘날 이들은 대부분 열악한 노동 환경 속에서 생존하고 있다. 관광산업은 전통 복장을 입은 '순수한' 부시맨 이미지를 소비하지만, 이들의 고통스러운 집단학살과 억압의 역사는 철저히 지워지고 있다.
오늘날 미국의 유대인 좌파가 이스라엘의 팔레스타인 탄압에 반대하며 거리로 나선 것은 갑작스러운 일이 아니다. 이들은 19세기 말부터 미국 내에서 노동운동과 민권운동, 반제국주의 운동을 주도해 온 반시온주의 전통의 계승자다. 특히 1930~40년대 공산주의 운동과 결합된 유대인 좌파는 시온주의를 제국주의적 민족주의로 규정하며, 아프리카계 미국인 등 타 민족과의 연대를 강조했다. 이런 전통은 오늘날 Jewish Voice for Peace, DSA 같은 단체들로 이어지며, 단절이 아닌 계보로서 반시온주의를 계승하고 있다.
프리드리히 엥겔스는 『반뒤링론』(Anti-Dühring)에서 자본주의가 위기를 단순히 겪는 것이 아니라 구조적으로 이해하지 못한다고 비판했다. 그는 자본주의가 경제, 사회, 정치, 생태 전반에서 내적 모순으로 인해 위기를 자초한다고 지적하며, 이 모순은 생산과정에서 비롯된 불균형, 소외된 노동, 권력의 집중, 자연과의 단절 등으로 드러난다고 분석했다. 엥겔스의 사유는 단순한 역사적 유산이 아니라, 현재의 다중적 위기를 통합적으로 사고하고 변화의 가능성을 모색할 수 있게 하는 비판적 도구로 여전히 유효하다.
마르크스의 후기 사상을 중심으로, 사회주의 코뮌이 언제 반제국주의 투쟁의 일부가 될 수 있는지를 분석한 글이다. 마르크스는 러시아 농촌 공동체 등 주변부의 공동체가 제국주의에 맞선 저항의 거점이 될 수 있다고 보았고, 이는 베네수엘라, 볼리비아, 브라질 등 라틴아메리카에서 실현되고 있다. 이들 지역의 코뮌은 고립된 자치 공동체가 아니라 국가 권력과 연결된 반제국주의 전략의 일부로 작동하며, 특히 베네수엘라의 ‘엘 파날 코뮌’은 정치·경제적 저항의 핵심 거점이자 팔레스타인 해방 투쟁과 연대하는 상징으로 부각된다.
경제학자 에밀리아노 브란카초는 오늘날의 세계 질서 위기를 ‘레닌의 순간’으로 정의하며, 자본주의의 제국주의적 팽창이 군사적 충돌로 이어지는 전환점에 도달했다고 진단한다. 그는 미국의 막대한 대외 부채가 패권 유지에 결정적 제약이 되고 있으며, 트럼프는 그 부채의 인격화된 존재일 뿐이라고 분석한다. 유럽의 재무장은 자율적 제국주의 구축 시도이며, 미중 간 긴장이 고조되며 신제국 간 충돌 가능성도 커지고 있다. 노동계급은 해체되어 저항의 주체로 기능하지 못하고 있으나, 자본 집중의 모순은 체제 전복의 가능성도 동시에 열어둔다며, 브란카초는 오늘날 우리가 다시 레닌을 기억해야 할 시점이라고 강조한다.
고대 로마는 수공 노동자를 멸시하던 극히 위계적인 사회였지만, 노동자들은 동업조합(collegia)과 파업, 보이콧을 통해 권리를 요구하고 저항했다. 특히 제화공, 제빵사, 방직공, 화폐 주조공 등은 집단행동으로 계약 조건을 개선하려 했으며, 이는 오늘날의 노동운동과 유사한 양상을 띠었다. 사라 본드는 이런 역사적 사례들을 통해 계급투쟁이 근대에만 국한된 것이 아니며, 고대 노동자들 또한 자기 권리와 존엄을 위한 투쟁을 해왔음을 밝히고 있다.
로마 공화정의 평민회는 하층 시민들이 직접 법안을 제안하고 통과시킬 수 있었던 예외적인 대중 정치 제도로, 다섯 차례의 평민 철수 운동과 함께 법적 평등을 쟁취하는 데 핵심적 역할을 했다. 시간이 흐르며 귀족화된 평민 엘리트의 등장과 제국의 확대는 평민회의 기능을 약화시켰고, 결국 독재자 술라와 아우구스투스의 등장 이후 제도는 형식적 존재로 전락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평민회의 역사는 구조화된 대중 정치가 불평등과 권력 집중에 어떻게 대응할 수 있는지를 보여주는 역사적 사례로, 오늘날 퇴행하는 복지제도와 약화된 시민 참여 구조에 대한 중요한 반성을 제공한다.
민족주의는 반드시 파시즘으로 향하지 않지만, 파시즘은 언제나 민족주의를 자신의 도구로 삼아왔다. 저자는 파시즘이 민족주의를 재해석해 민족의 유기적 일체성, 전시 동원 상태, 배타적 순혈성, 국교를 넘는 국가 숭배, 절대적 지도자 숭배로 변형시킨다고 분석한다. 이 글은 민족주의의 스펙트럼을 역사적·정치적으로 조망하며, 그 안에서 파시즘이 어떻게 자신만의 이데올로기를 구축하는지를 추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