뜻밖의 결과라고 했다. 그러나 그는 “그간 민주노조 6년 운동에 대한 조합원들의 평가다”라고 담담히 대답했다. 그는 철도노조 21대 지도부 선거에서 신임 위원장으로 당선된 엄길용 위원장 당선자다.
▲ 이정원 기자 |
엄길용 위원장 당선자를 만났다. 그는 왜 철도노조 위원장으로 당선되었을까.
“조합원 동지들의 선택입니다. 개인적으로 평가해 보자면 바꿔야 한다고 얘기했던 것에 조합원들이 동의한 것 같아요. 어렵게 민주노조를 만들고 6년이 지났는데, 6년의 경험들이 조합원들에게 오히려 실망을 안겨줬던 것 같아요. 투쟁은 끊임없이 해 왔는데 지도부는 조합원을 보호하지 못하고, 끊임없이 몰아치는 구조조정에 맞서 투쟁을 해 왔는데 남는 것은 없고. 그래서 조합원들이 바꿔보자고 저를 선택한 것 같아요”
“키가 커서 싱겁지 않냐”라는 재밌는 말로 시작한 인터뷰에서 엄길용 위원장 당선자는 조합원이 자신을 선택할 수 있었던 상황을 조목조목 설명했다.
철도 노동자 앞에는 어느 때보다 험난한 길이 놓여져 있다. 정부는 공공기관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실태가 심각하다며 대책까지 마련하고 있지만 그 대책은 오히려 공공기관 노동자들을 비정규직으로 내몰고 있다. 또한 비정규직 노동자들을 보호하겠다며 비정규직 관련 법안들을 만들었지만 이 또한 많은 노동자들을 오히려 비정규직으로 만들거나, 비정규직 노동자들은 정리해고시키는 법안임이 증명되고 있다.
"철도 노동자의 저력을 믿는다"
이런 어려운 조건이 당선자에게는 조금 부담스러울 수도 있을 것 같았다.
“사실 벅차요. 하지만 막막하지만은 않아요. 6년 동안의 민주노조 경험은 철도노동자의 저력을 만들었다고 생각해요. 흔들리지 않는 지도부와 제대로 된 정책만 있다면 뭐든지 가능하다고 생각해요. 철도공사와의 싸움은 물론이며 대정부 싸움도 가능하다고 생각해요. 철도공사와 정부가 구조조정 정책을 포기하지 않으면 이는 철도노동자의 생존권의 문제이기 때문에 대립할 수밖에 없을 것 같습니다. 도저히 양보할 수 없는 불가피한 상황이라고 생각하구요. 제대로 준비해서 싸워야 할 것입니다”
많은 과제들 중에 제일 먼저 해결해야 할 과제를 물었다. 엄길용 당선자는 노동통제의 심화로 드러나고 있는 철도공사의 ERP(전사적자원관리) 시스템 추진에 대한 전면 재논의와 일 년 가까이 파업을 진행 중인 KTX 승무원과 새마을호 승무원 문제를 꼽았다. 또한 무너져 버린 노조의 일상적인 활동들을 복원해야 함을 강조했다.
"ERP부터 빨리 막아야 합니다. 지난 집행부가 이에 대한 조건부 합의를 하긴 했지만, 철도공사는 이조차도 무시하고 멋대로 ERP를 추진하고 있습니다. 전면 재논의 할 수 있는 투쟁을 배치해야 합니다. 이는 분초를 다투는 문제라고 생각해요. 더불어 파업 1년이 다 되어가는 KTX 승무원들의 문제, 또 새마을호 승무원 문제를 시급한 현안 문제로 해결해야 할 것입니다"
▲ 이정원 기자 |
"이를 위해 중요한 것은 약해져 있는 현장의 일상 활동을 복원하는 것이에요. 6년 동안 끊임없는 투쟁 속에서 오히려 노조는 많이 취약해졌습니다. 간부층도 취약해지고 말이죠. 다시 시작한다는 생각으로 처음처럼 해야 할 것 같아요"
엄길용 위원장 당선자는 “다시 시작”해야 한다고 했다. 다시 시작한다는 의미에 대해 조금 자세히 물어봤다.
“다시 시작한다는 것은 노동조합의 기초를 다시 되돌아보겠다는 겁니다. 노민추 시절부터, 민주노조 6년 동안 축적된 역량이 있지만 다시 돌아보니 현장의 역량이 아주 취약해졌더라구요. 노동조합 하면 기본적으로 원칙을 가지고 진행해야 하는 것들이 있는데 이것이 제대로 안 되고 있는 거죠. 교육사업을 포함해서 기본적인 일상 활동을 강화할 것입니다. 지금 상황에서는 아무리 좋은 것을 내놔도 제대로 할 수 없거든요. 다시 처음처럼, 노조의 기본적 활동을 강화하며 투쟁해 나갈 겁니다”
"비정규직 문제 특별위가 아니라 조합 핵심 사업으로"
KTX 승무원들의 파업이 오는 3월 1일이면 1년이 된다. 철도공사의 외주화에 맞서 KTX 승무원들이 1년 가까이 투쟁하고 있지만 철도공사는 꿈쩍하지 않고 있다. 이 철 사장은 말 바꾸기를 일삼고 있다. 또한 철도공사는 오히려 외주화 정책을 거침없이 진행하고 있다. 그래서 새마을호 승무원들도 투쟁에 나섰다. 이들은 모두 비정규직 노동자들이다. 그래서 철도공사의 구조조정에 최우선으로 선택되었으며 철도공사에서 쫓겨나고 있다. 정규직 노조인 철도노조 이 문제를 어떻게 해결할 수 있을까. 엄길용 위원장 당선자는 철도노조가 직접 나서 이 문제를 반드시 해결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당장에 해결할 수 있는 처방제가 있다고 말할 수는 없습니다. 문제는 이전에 철도노조가 이 문제를 적극적으로 대응했다고 말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노조 차원에서 비정규직 문제를 미조직비정규직특별위원회라는 체계로 대응하다보니까 사업이 이원화되고 노조 전체의 사업으로 녹아나지 못했습니다. 저는 비정규직, 외주화 문제를 차기 집행부의 핵심 사업으로 잡아야 한다고 생각해요. 특별위원회가 아니라 이제는 비정규실로 편재해서 좀 더 조직적 역량을 강화시켜야 할 것입니다.
또한 그동안 KTX, 새마을호 승무원들의 투쟁은 같은 조합원이면서도 노조가 주체가 되어서 풀어내는 방식이 아니었어요. 그동안 법에 호소한다거나 여론을 형성하는데 주력했는데, 앞으로는 노조가 주체가 되어서 앞장서서 투쟁을 다시 만들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산별 건설, 새로운 로드맵이 필요하다"
철도노조 앞에 놓여있는 중요한 문제로 산별노조 건설의 문제를 짚지 않을 수 없다. 철도노조는 지난 12월 26일 운수노조를 민주버스노조, 민주택시연맹, 화물통준위와 함께 출범시킨 바 있다. 그리고 지난 1월 19일 공공서비스노조와 운수노조는 통합연맹인 전국공공운수노동조합연맹도 출범시켰다. 이들은 2007년 말까지 대산별 건설을 목표로 달리고 있기도 하다. 이런 과정에서 철도노조의 역할은 크다. 공공연맹에 속해 있었던 노조로서 공공서비스노조와 운수노조를 잇는 가교 역할이며, 조합원 숫자로도 대산별 구성을 할 노조 중 큰 노조에 속하기 때문이다.
"참 예민한 문제입니다. 철도노조는 이제 청산절차를 거치면 없어지고, 운수노조는 출범을 했습니다. 그러나 지금처럼 진행된 운수노조는 문제가 많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물론 산별노조를 건설해야 한다는 데에는 동의합니다. 하지만 부끄럽지만 철도는 짧게는 5개월 길게 봐도 7~8개월 내에 모든 상황을 논의했어요. 겉에서 볼 때는 대단하다라고 평가할 수 있겠지만 실제로는 산별노조 건설 논의에 있어 조합원들은 배제되어 있었습니다.
조합원들이 산별노조에 대한 이해가 부족한 상황이에요. 철도노조가 소산별이라는 평가도 있었는데, 내부에서도 직종별 이해관계에 따라 투쟁이 제대로 안 되는 상황도 있었고, 비정규직 문제에 대한 조합원들의 이해가 많이 부족한 상태입니다. 소식지로, 인터넷으로 알렸다고 해도 그게 다 알린 것이 아니잖아요. 유세 과정에서 보니까 산별노조 건설에 대해 너무 모르더라구요. 철도노조가 없어진다고 하니까 깜짝 놀래는 조합원까지 있더라구요. 필요한 것은 새롭게 내용을 채워가는 것이라 생각합니다. 산별노조를 완성시켜 나가는 로드맵을 새롭게 제출해서 제대로 건설하는 과정을 만들어야 할 것입니다"
▲ 이정원 기자 |
"양보할 수 없는 투쟁 앞에 놓여 있다"
엄길용 위원장 당선자는 철도공사와 정부가 추진하고 있는 철도산업 구조개편이 더 이상 진행되지 않도록 저지선을 쳐야 한다고 말했다. 그리고 철도는 반드시 공공성이 확보되어야 한다고 했다. 이것이 비정규직 문제를 해결하고, 고용안정을 쟁취하는 것이라 했다.
"유세 다니면서 가장 강조했던 것은 지금 우리는 양보할 수 없는 투쟁 앞에 놓여 있다는 것이었습니다. 구조조정 문제, 고용문제... 대립할 수 밖에 없다는 것이구요. 조합원 다수가 저를 선택한 것은 단순한 표가 아니라 마음의 준비라고 생각해요. 당선되었다고 하니까 한 후배가 배낭 언제든지 쌀 준비되어 있으니 말만 하라고 하더군요.(웃음)
하지만 집행부가 일방적으로 일을 추진한다고 일이 되는 것은 아니라고 생각해요. 조합원 다수와 함께 할 수 있는 사업을 배치할겁니다. 몸이 조금 더 피곤할 순 있겠지만 조합원들이 조합 사업에 적극적으로 결합해 주셨으면 좋겠어요. 그럼 절대 실망시키지 않는 집행부가 되겠습니다"
엄길용 위원장 당선자는 작년 서울지방본부 문화체육국장이었다. 주말이면 조합원들과 산을 오르고 공을 찼다. 그는 조합원들과 가장 가까이 있고 싶었다고 했다. 조합원과 함께 하는, 조합원의 마음을 읽는, 절대 물러섬 없는 위원장을 기대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