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대위는 대선 평가, 당 혁신, 총선 대책 사업을 전개하는 것을 임무로 하며, 다수 정파의 비례대표 독식 구조를 해결하기 위해 올해 총선에 한해 전략공천권을 행사할 수 있도록 했다. 비대위가 전략공천 방안을 마련해 당대회의 승인을 받아 집행하며, 이를 통해 비대위가 전략명부 후보를 추천하면 당원 총투표를 거쳐 확정하는 방식이다. 이와 같은 비대위의 권한은 최고위원회 수준으로 한정했고, 임기는 총선 이후 차기 지도부 선출 이전까지로 정했다.
심상정 비대위원장은 수락 연설을 통해 “패권주의, 종북주의에 대해 성역과 편견이 없이 평가할 것”이라고 밝혔다. 전략공천에 대해서는 “독립적인 평가위원회를 세우겠다”고 말했다. 민주노동당이 이날 ‘심상정 비대위’ 출범에 성공하면서 내분이 최악의 국면에 치닫는 것은 막았지만, 갈등의 불씨는 종북주의, 전략공천 문제를 논의할 당대회로 고스란히 옮겨진 셈이다.
[출처: 진보정치 정택용 기자] |
‘전략공천’ 놓고 진통..합의 못해 결국 표결로
민주노동당은 이날 오후 3시 서울 관악구민회관에서 중앙위원회를 열고 비대위원장 인준 및 비대위 구성과 역할 승인에 대해 논의했다. 이에 대해 확대간부회의 ‘다수안’으로 지난 10일 중앙위원회에 제출된 전략공천권을 골자로 하는 안건과 함께, 이 중 전략공천권만을 삭제한 자주파 측의 수정동의안이 현장발의를 통해 상정됐다.
장원섭 중앙위원은 안건 발의 취지에 대해 “당원 피선거권 등 당헌당규에 위배되며, 정당에서 당헌당규를 넘어서는 비대위가 추진될 경우 이를 무력화시킬 수 있다는 법원 판례가 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이에 자주파로 알려진 정성희 중앙위원이 “안건에 규정된 전략공천권이 피선거권을 침해한다는 것은 과도한 해석”이라고 반박했다.
이어진 찬반토론에서 비대위 권한을 둘러싸고 대치한 중앙위원 간에 고성이 오가기도 했다. 원안에 찬성한 이선근 중앙위원이 “수정안을 만든 사람들은 반진보적이자 미국식 정치를 추종하는 세력”이라고 공격하자, 반대 측에서 “미국식 정치를 추종한다니”라고 소리를 질렀다.
반대 입장에 선 김미희 중앙위원이 “비대위원장이 권한 위임을 요구하는 것은 중앙위원을 못 믿겠다는 것이며 모욕적인 처사다. 그렇지 않으면 왜 언론에 당을 비판하는 발언을 했나”라고 비난하자, “무슨 모욕을 줬다는 거냐” “안건에 대해 토론을 하라 지금 뭐하는 거야”라는 고함이 터져 나왔다.
표결 결과 수정동의안은 재석 272명 중 77명 찬성으로 과반에 미달해 부결됐고, 161의 찬성표를 얻은 원안이 통과됐다. 심상정 비대위원장 인준에 대해서도 만장일치를 이루지 못해 결국 표결에 들어갔다. 심 의원은 무기명 투표 결과 찬성 178, 반대 74, 무효 2, 기권 1표로 오후 6시 50분 최종 선출됐다.
▲ 12일 중앙위원회 표결 모습. [출처: 진보정치 정택용 기자] |
울먹인 심상정, “십자가 짊어질 각오로 제2창당”
수락 연설을 하기 위해 연단에 오른 심상정 비대위원장은 고개를 떨군 채 울먹이며 한동안 말을 잇지 못했다. 심 의원은 “목놓아 울고 싶은 심정으로 이 자리에 섰다”며 “당의 참담한 현실에 자책과 번뇌로 날을 지새우고 있는 당원 동지들과 민주노동당을 걱정 어린 눈으로 보고 계신 국민들게 머리 숙여 송구하다는 말씀을 드린다”고 밝혔다.
이어 “백척간두의 민주노동당을 책임지기에 저는 턱없이 부족한 사람이고, 이 자리에 서기까지 많은 날들을 불면의 밤으로 지새야 했다”고 그간의 고충을 토로하며 “그러나 이 길이 우리 민주노동당을 살리는 유일한 길이라면 부족한 힘이나마 십자가를 짊어질 각오로 동지 여러분의 결정을 받아 안겠다”고 말해 당원들의 박수갈채를 받았다.
심 위원장은 “탈당을 결심하거나 신당 또는 재창당을 주장하는 동지들의 공통점은 이대로의 민주노동당은 안 된다는 인식”이라며 “오늘 출범하는 비대위는 민주노동당의 낡은 요소들을 성역 없이 과감하게 혁신하고 믿음직한 진보로 거듭나기 위한 제2창당의 시작을 알리는 대국민 약속”이라고 말했다.
▲ 고개 숙여 인사하는 심상정 비대위원장. [출처: 진보정치 정택용 기자] |
심 위원장은 “민주노동당과 진보진영의 수많은 논란을 불러왔던 패권주의, 종북주의, 주관주의를 서로가 선언적으로 규정하는 것이 아니라 실천과 사업을 성역 없이 편견 없이 평가과정을 통해 정립해 나갈 것”이라고 밝혔다.
비대위 권한에 대해서는 “오직 민주노동당을 국민들 속으로 성큼 다가서게 하는 그 하나의 목적으로 사용하겠다”며 “국민들에게 신망 있는 분을 내세우기 위해 공정하고 독립적인 평가위원회를 세워, 당원들의 평가를 받고 국민들에게 검증 받겠다”고 말했다.
심 위원장은 “그동안 말이 말을 낳고 수많은 예단과 억측 속에 갈등과 분열이 조장되는 것을 보면서 너무 마음이 아팠다”면서 “비대위를 믿고 힘을 모아달라. 동지 여러분과 함께 혁신과 제2창당으로 이명박정권에 맞서는 강력한 진보야당을 만들어 나가겠다”고 힘주어 밝혔다.
정파 격돌 ‘2라운드’ 당대회 2월 중 열릴 듯
곧바로 천영세 직무대행에게 의장권을 넘겨받은 심 위원장은 ‘1월 중 임시당대회 소집’ 안건에 대해 “1월 말에 임시당대회를 연다고 하면 비대위 구성에만 일주일 정도 걸려 대선 평가와 당 혁신안을 만드는 데 주어진 시간은 일주일뿐인데 이 안에 효과적인 준비가 가능할 지 자신이 없다”며 구정 연휴가 지난 뒤 ‘2월 20일 이전’으로 시기를 조정할 것을 제안했다.
이에 김형탁 중앙위원이 “종북주의, 패권주의를 성역 없이 평가하겠다는 의장 말씀에 감사하게 생각하나 1월 달에 당대회가 소집되지 않으면 어느 하세월에 평가할 수 있겠냐”며 반대 입장을 밝혔다.
결국 ‘빠른 시일 내’ 비대위가 임시당대회 시기를 공포한다는 안건이 만장일치로 통과되면서 심상정 비대위원장이 오후 7시 30분경 회의 종료를 선포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