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서울역에 모인 KTX승무원들이 행진에 앞서 집회를 가졌다. 묵념중인 KTX승무원/이정원 기자 |
▲ 넉 달만에 승무 제복을 갖춰 입은 승무원들/이정원 기자 |
▲ 우산을 받쳐들고 KTX의 영정을 품에 안았다./이정원 기자 |
▲ 줄지어 행진하고 있는 KTX승무원들/이정원 기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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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일 궂은 비가 내린 21일, 파업 113일째를 맞는 KTX승무원들이 서울역부터 청와대까지 행진을 벌였다.
오후 1시 서울역 광장에 모인 200여 명의 KTX승무원들은 승무원 제복을 차려입고 쪽진 머리에 검정색 구두를 갖추어 신는 등 넉 달 전에 열차에 오르던 차림 그대로 나섰다. 다른 점은 'KTX승무원 대량 정리해고, 직접고용 보장하라'는 글이 적힌 띠를 두른 것.
정혜인 부산KTX승무지부 지부장은 행진에 앞서 "넉 달 만에 정복을 입은 동지들이 너무 예쁘고 당당해 보여 자랑스럽다"며 "이제 모든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노무현 대통령에게 간다"고 선언했다.
KTX열차의 영정사진을 품에 안고 우산을 받쳐든 모습으로 서울역을 출발한 KTX승무원들은 서대문에 위치한 경찰청 앞과 한명숙 국무총리실이 있는 광화문 정부종합청사 앞에서는 함성을 지르고 구호를 외쳤다. 제복 차림으로 줄지어 행진하는 이들의 모습을 많은 시민들이 지켜보며 관심을 보였다.
▲ 몇 번이나 공권력을 투입해 KTX승무원들을 연행한 경찰, 그 경찰청 앞에 섰다./이정원 기자 |
▲ 한 손에는 우산, 한 손으로는 구호를 외친다./이정원 기자 |
▲ 이정원 기자 |
▲ 이 구두를 신고 KTX열차 안을 하루에도 몇 번씩 왕복했지만, 비에 젖어 청와대로 가는 길의 발은 아프다./이정원 기자 |
▲ 한명숙 국무총리가 있는 정부중앙청사. 승무원들을 맞아주는 것은 총리가 아닌 경찰/이정원 기자 |
두 시간여 만에 청와대 근처 청운동사무소 앞에 도착한 승무원들은 '노무현 대통령께 드리는 호소문'을 낭독하고 정혜인 부산지부장, 한효미 서울부지부장, 박말희 상황실 차장 등 대표단을 통해 청와대에 호소문을 보냈다.
KTX승무원들은 23일에도 오후 2시에 종각에서 '500인 동조단식 및 1500인 선언 참가자 합동집회'를 갖고 청와대까지 행진을 벌일 예정이다.
▲ 폴리스라인을 따라 세종로 거리를 행진하고 있는 승무원들/이정원 기자 |
▲ "KTX승무원 대량 정리해고, 철도공사 직접고용 보장하라"/이정원 기자 |
▲ 청와대로 호소문을 들고간 대표단을 기다리고 있는 승무원들/이정원 기자 |
노무현 대통령께 드리는 호소문
저희는 KTX승무원입니다. 지난 5월 15일 철도공사와 철도유통으로부터 정리해고를 당했지만, 이에 굴하지 않고 110일 넘게 파업투쟁을 벌이고 있는 KTX승무원입니다. 그간 저희는 철도공사와 정부에 정리해고 철회와 직접고용을 요구하며 성실한 대화를 촉구해 왔습니다. 그러나 철도공사는 KTX승무원에 대한 위탁방침을 절대 변경할 수 없고, 문제를 해결한 권한도 없다는 말만 되풀이하였습니다. 최초의 여성총리이고 사회적 약자들에 대한 관심과 애정이 남다른 분이었던 한명숙 총리께도 KTX승무원의 절박함을 호소하였지만 노사문제에 정부가 나서기 힘들다는 답변을 들었을 뿐입니다. 이에 우리는 국정의 최고책임자이자, 첨예한 사회갈등을 조정하고 해결할 책임과 의무를 지녔다고 믿는 대통령께 우리들의 문제해결을 위해 적극 나서 주실 것을 호소하고자 합니다.
고속철도 승무원 2년의 세월, 꿈과 희망이 좌절과 절망으로 변하고 말았습니다.
2004년 4월1일, 고속철도가 개통했습니다. 갓 대학을 졸업한 사회초년생들이었던 저희들은 꿈과 희망으로 가득 찬 들뜬 마음으로 KTX승무원으로 채용되었습니다. 철도공사는 KTX승무원들을 ‘고속철의 꽃’이라 칭하며 앞에 세워 KTX를 홍보했고, 저희들은 북한을 거쳐 시베리아를 통해 유럽까지 뻗어나갈 KTX에서 일하게 되었다는 자부심으로 포부를 갖고 일을 시작했습니다. 그러나 항공사 승무원에 준하는 대우를 해주겠다던 온갖 달콤한 약속은 시간이 흐를수록 열악해지는 노동조건과 비인격적 대우로 인해 거짓임이 드러났습니다. 근무하면 할수록 오히려 월급이 줄어들고 보건휴가조차 제비뽑기 선착순에 당첨되어야 쓸 수 있고, 법에 보장된 주휴일에 근무를 강요당해야 했으며 조금이라도 관리자들의 부당한 요구에 문제제기를 하면 내년 재계약에서 탈락시키겠다는 협박에 시달려야 했습니다.
승무원이 되고 1년이 지난 2005년, 회사에 의해 우리는 노동조합에 가입하게 되었습니다. 노동조합이 무엇이고 어떻게 활동하는 것인지도 몰랐지만 끊임없이 계속되는 사측의 불법적이고 비상식적인 조치들에 맞서 우리는 자연스럽게 노조를 통해 대응해 나갔습니다. 하지만 철도유통은 철도공사에, 철도공사는 철도유통에 서로 책임을 떠넘기며 모르쇠로 일관했습니다. 철도공사는 하청을 준 자회사에 모든 법적 책임을 떠넘기는 대가로 능력도 없고 사업성도 투명하지 않은 부실자회사의 뒤를 봐줍니다. 왜 KTX승무원들이 철도공사와 하청업체인 자회사 사이에서 이리저리 떠넘겨지며 인권과 노동권, 근로기준법조차 보장받지 못한 채 소모품으로 전락해야 합니까! 이런 부당한 현실에서는 KTX열차의 안전과 서비스를 담당하는 본연의 역할에 충실할 수조차 없습니다.
KTX승무원들의 직접고용 요구에 대해 이미 사회적 공감대가 형성되었습니다.
저희들의 노조활동과 투쟁으로 철도공사가 KTX여승무원을 위탁 비정규직으로 고용하고 있다는 사실과 이로 인해 발생하는 문제점들이 세상에 알려졌습니다. 전윤철 감사원장은 KTX여승무원을 철도공사가 직접 고용하는 것이 옳다고 했습니다. 국회 여러 정당의 여성의원들도 철도공사가 승무원들을 직접 고용하라고 촉구한 바 있습니다. 노동계뿐만 아니라 시민단체, 여성단체, 종교단체, 민변, 참여연대 등도 KTX여승무원의 주장이 옳고 정부와 철도공사가 이 문제를 책임 있게 해결하라고 성명을 내고 기자회견도 했습니다. 파업투쟁 100일이 되던 6월8일에는 사회인사 500인 동조단식과 1500인 선언운동으로 KTX승무원의 정당한 요구를 대통령께서 해결해야 한다고 주장했습니다.
저희는 KTX승무원의 요구가 정당하고 당연한 권리라는 신념이 있습니다.
철도공사는 ㈜한국철도유통으로부터 회수한 승무사업권과 판매사업권을 ㈜KTX관광레저로 넘겼습니다. 그리고 승무원들의 직접고용 요구를 철저히 무시하고 문제해결을 위한 어떠한 대화나 노력도 하지 않은 채 KTX승무원들에게 ㈜KTX관광레저로의 이적만을 강요하였습니다. 철도공사는 감사원으로부터 부실회사 판정을 받은 자회사로 이적을 강요하면서도 설명과 동의를 구하려고 노력하지 않고 이적을 거부하면 정리해고 할 것이라는 협박만을 했습니다. 철도공사의 협박이 두렵고 정리해고되어 KTX를 떠나게 되는 것이 괴로웠지만 KTX승무원으로 본연의 업무를 수행하며 KTX와 함께 성장하고 발전할 꿈과 희망, 그리고 포기해선 안 될 신념으로 세운 요구이기에 결코 파업을 포기할 수 없었습니다.
아무리 어렵고 힘들다 하더라도 KTX승무원들은 굴하지 않을 것입니다.
장기파업의 고단함이 저희를 힘들게 합니다. 정리해고로 어려워진 생계문제가 동료들을 떠나가게 만듭니다. 투쟁이 계속되고 있음에도 복귀자 운영과 신규인력 채용으로 승무사업을 강행하고 있는 철도공사의 무책임하고 폭력적인 처사가 우리를 분노하게 만듭니다. 정부와 철도공사에 의해 난생 처음 공권력에 연행되었고 유치장으로 끌려갔습니다. 경찰서에서 검찰에서 중죄인 취급을 받으며 손목에 수갑까지 찼을 때를 생각하면 열심히 살아온 선량한 국민으로서 분노가 치밉니다. 들어보지도 못했던 온갖 법적 조치로 두려움과 공포를 주고 있는 합법적인 폭력은 저희를 벼랑끝으로 밀쳐내고 있습니다. 하지만 그럴수록 저희는 더욱 포기할 수 없습니다. 그 어떤 희생을 치르더라도 저희가 옳기 때문에, 저희의 투쟁에 이 땅의 차별받는 모든 비정규직 노동자와 하청 노동자들의 빼앗긴 희망과 권리가 함께 하고 있기 때문에 절대로 포기하지 않습니다. 좌절할 수 없습니다.
이제 노무현 대통령께서 나서 주십시오.
노무현 대통령께선 비정규직 노동자의 아픔을 이해하신다 하셨습니다. 노무현 대통령께서 제1의 정책과제라 말씀하신 사회양극화 해소는 이 땅 8백5십만 비정규직 노동자와 하청 노동자들이 겪고 있는 뼈저린 차별을 없애야 가능하다는 것을 아실 것입니다. 오랫동안 사회적 약자를 위해 노력해왔던 대통령께서 KTX승무원들의 요구를 외면하지 않을 것이라 생각합니다. 절망과 고통을 강요하는 사회에 좌절하지 않고 꿈과 희망으로 나아가려는 저희 KTX승무원들의 기대와 바람을 저버리지 않고 귀 기울여 주실 것이라 믿습니다.
2006년 6월 21일
서울, 부산 KTX승무원 일동 드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