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보진영의 대통합을 달성한다는 한국진보연대(준)가 9일 출범을 앞두고 있지만, 반대 단체들의 냉담한 반응 속에 ‘반쪽짜리 상설연대체’가 될 공산이 크다.
8일 기자간담회를 통해 알려진 한국진보연대(준)의 구성 단체는 민주노총, 전국농민회총연합, 민주노동당, 전국빈민연합 등 22개 단체다. 이는 지난 2000년 범진보진영의 공동투쟁체로 출범했던 전국민중연대 소속 단체조차 포괄하지 못하는 수준이다.
한국진보연대(준)는 “노동자, 농민, 빈민, 청년, 학생 등 기층 대중조직을 중심으로 진보적 정당 및 진보적 학술, 양심적 종교, 문화예술, 시민 여성 등 광범위한 단체와 개별 인사를 망라”한다는 취지지만, 시민단체 및 지역단체의 공감대를 끌어내지 못하고 있다.
특히 노동자의힘, 다함께, 문화연대, 사회진보연대, 민주화를위한전국교수협의회(민교협) 등 좌파 성향의 단체는 진보진영의 상설연대체 건설에 반대 입장을 표명해왔다.
민족, 자주의 기치로 정치적 차이를 존중한다?
한국진보연대(준)가 8일 밝힌 강령은 △민족자주(강대국의 패권주의 반대) △신자유주의 세계화 반대△민중생존권 쟁취 △민중주체의 민주주의 △6.15공동선언 이행과 자주적 평화통일 △국제진보적 평화세력과의 연대다. 특정 정치 경향에 편중됐다는 비판에도 불구하고 한국진보연대(준)는 ‘민족자주’ 조항을 유지했다. 이러한 상황에서 “정치적, 노선적 차이를 존중하는 공동투쟁을 전개한다”는 전망은 ‘빛 좋은 개살구’가 될 수 있다는 것.
김하영 다함께 운영위원은 “기획단에 참여할 당시 ‘민족자주’ 조항을 삭제해야 한다는 문제제기를 했다”며 “어떤 단체는 강령을 삭제할 경우 ‘민족, 자주조차 표방하기 어려운 연대체가 무슨 의미가 있느냐’는 회의론이 나올 수 있다는 말을 하기도 했다”고 밝혔다.
김하영 운영위원은 “상설연대체 구성 단체들이 정치적으로 독립성을 보장받으면서 복수의 쟁점을 둘러싼 공동 전선으로써의 활동이 가능한가에 대해 부정적”이라고 전했다.
“한국진보연대는 ‘민족진영 중심’ 상설연대체”
최준영 문화연대 정책실장은 “사회운동이 직면한 위기의 원인을 진단하고 해법을 밝히려면, 신자유주의와 세계화에 대한 정세 토론이나 미국 자본주의 위기에 대한 토론 등을 통해 거시적인 전망을 제시하는 것이 순서”이며 “이러한 단계를 건너뛰고 조직이나 연대체를 정비해 목표를 이룬다는 발상 자체가 상당히 잘못된 것”이라고 지난 달 22일 <참세상>에 밝힌 바 있다.
한국진보연대(준)가 일정에 쫓겨 충분한 합의 과정을 거치지 못했음은 준비위원회도 인정한 사실이다. 심지어 지역 등 내부 단위에서조차 이견을 조율하지 못한 상태에서 계획을 강행했다는 문제제기도 나오고 있다. 준비위원회가 무리를 감행하면서까지 급속도로 일정을 추진한 이유는 무엇일까?
한국진보연대(준)의 논의 과정을 추적했을 때, 다수 조직인 민족 통일진영 중심으로 운동 진영을 재편하려는 정치적 의도가 강하다는 지적이다. 한국진보연대(준)가 밝히고 있는 “중심성을 분명히 하는 상설연대조직”이란 ‘민족 통일진영 중심의 상설연대조직’이라는 것. 여기에 민주노동당을 하위 조직으로 포섭해 향후 대선까지 영향력을 행사하겠다는 전망이다.
이에 대해 최준영 정책실장은 “사회운동의 위기를 논의하는 과정에서 결과적인 대안이 사실상 민중연대와 통일연대의 통합 건으로 나온 것 자체가 그간 계속 제기된 공동투쟁체의 ‘운영’이나 운동의 내용과 의제들에 대한 문제제기를 그대로 사장시킨 것”이라고 지적한 바 있다.
한편 노동자의힘은 상설연대체와 별도의 ‘좌파 공동투쟁체(좌파 연대운동체)’ 건설을 내부 과제로 삼았다. 장혜경 노동자의힘 중앙집행위원은 “좌파 공동투쟁체를 통해 사안별 공동투쟁 뿐만 아니라 좌파 단위의 독자적인 공동 투쟁을 조직할 수 있는 방안을 모색 중이다”라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