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성현 지도부는 이날 만 하루를 넘긴 마라톤 회의 끝에 총선 비례대표 선출권 위임을 ‘전략 공천’에 한정한다는 타협안을 제시했지만, 당초 심 의원이 사실상 자주파 지도부의 불출마 선언과 함께 강도 높은 혁신을 주장했던 것에 비하면 크게 후퇴한 안이었다. 이마저도 중앙위원들의 만장일치를 이루지 못해 모든 논의가 원점으로 돌아간 채 오전 2시 50분경 회의가 종료됐다.
이 가운데 당내 평등파인 ‘전진’ 소속 중앙위원들은 타협안에 당내 자주파의 종북주의, 패권주의에 대한 문제의식이 반영되지 않은 것에 불만을 품고 집단 퇴장했다. 비대위 구성을 둘러싸고 갈등이 최고조에 이른 자주파와 평등파는 이날 회의에서 욕설과 막말, 삿대질이 오가는 격한 말싸움을 벌였다.
‘비례대표 선출권’ 정파 갈등..지도부 안건 자진 폐기
이날 중앙위원회는 당초 예정보다 1시간 30분 늦어진 오후 3시 30분경 개회됐다. 앞서 당 지도부는 개회 시각을 연기해가며 비대위의 권한을 놓고 난상토론을 벌였으나, 합의를 이루지 못해 중앙위원회에 제출했던 비대위 구성 안건을 지도부 스스로 폐기했다. 김선동 사무총장은 “심상정 의원이 제기했던 (자주파 지도부의) 총선 비례대표 불출마 문제를 강제하는 것은 수용하기 어렵다는 의견이 있어 성안된 안을 만들지 못했다”고 밝혔다.
▲ 김형탁 전 대변인의 대표발의로 ‘대선패배에 대한 명확한 평가와 전면적인 당 쇄신을 위한 비대위를 구성한다’는 내용의 현장발의안이 중앙위원 42인의 서명을 받아 상정됐다. |
김형탁 전 대변인은 “비상시국인 만큼 당 쇄신에는 전면적인 권한이 요구된다”며 “당헌은 당원직선제만 명시되어 있고 비례후보 선출권은 당규 개정 사안으로 중앙위원회에 권한이 있기 때문에 당헌에 위배되는 것이 아니다”고 비대위에 전권을 부여하면 안 된다는 주장에 반박했다.
김형탁 전 대변인은 “북핵 문제에 대해 ‘정말 유감이다’라고만 밝히는 것이 잘못된 질서에 저항하는 진보정당의 모습이냐”고 당내 ‘종북주의’ 문제를 언급하며, “이 문제에 대해 우리는 다만 미봉하고 타협해왔고, 그런 타협이 민주노동당을 썩게 만들었다”고 말했다.
“당 혁신 웃기고 있네” “나가는 건 패권주의 아니냐”
이에 중앙위원인 이용식 민주노총 전 사무총장이 “민주노동당이 썩다니 뭐가 썩었다는 거야”고 소리를 질렀고, 당내 자주파와 평등파 간 욕설, 막말 싸움이 벌어졌다. 한석호 중앙위원이 “이번 기회에 다 얘기해보자. 용산지구당 사태, 광주 사태 다 얘기해보자”고 말하자 자주파 중앙위원 중 한 사람이 “한석호 나와”라고 고함을 쳤다.
▲ 이용식 중앙위원이 “민주노동당이 썩다니 뭐가 썩었다는 거야”고 소리를 지르면서 자주파와 평등파간에 고성이 오갔다 |
이어 무대를 기준으로 아래 좌석에 앉아있던 자주파와 위 좌석에 앉아있던 평등파 당원들이 서로를 향해 삿대질을 하며 “반성의 기미가 하나도 없다 새끼들” “뭐야 이 새끼야 나와” “이놈의 당은 위아래도 없어 XX놈의 새끼들”이라는 말을 주고받았다. 보다 못한 사회자가 오후 5시 20분경 정회를 선포하며 “우리는 서로 적이 아니니 부디 진정하시고 서로 감정을 정제하고 토론하자”고 호소했지만 싸움은 그치지 않았다. 상황을 지켜보던 당직자는 “이러시면 한나라당이랑 똑같아요”라고 만류했다.
오후 5시 50분경 속개된 회의에서 자유토론이 열렸지만 양 정파는 총선 비례대표 선출권과 종북주의, 패권주의 문제를 놓고 여전히 평행선을 달렸다. 오후 10시경 문성현 대표는 정회를 선포한 뒤 확대간부회의를 재소집, 오전 12시경 타협안을 제시하며 심상정 의원과도 유선을 통해 의견 일치를 이뤘다고 밝혔다. 타협안은 △비대위 권한은 최고위원회 권한에 한정하고 필요한 경우 위임 여부를 결정하며 △총선 비례대표 선출권은 여성, 비정규직 할당과 같은 ‘전략 공천’으로 국한해 비대위에 일임한다는 내용이다.
이에 현장발의안을 낸 김형탁 전 대변인 등 중앙위원들은 “확대간부회의의 합의안은 ‘바깥에 몇 자리 내놨으니 당신들 들어오십시오’라고 공천권을 가지고 장사하라는 것”이라며, 비대위의 권한이 심 의원의 당초 제안에 비해 축소되고 종북주의 청산 등에 대한 문제의식이 담겨있지 않은 것을 문제 삼아 타협안에 반대했다.
한 차례 정회 후, 이들은 당초 입장에서 한발 물러서 ‘종북주의 문제, 패권주의 문제, 당 강령 정신 및 당 민주주의 실현 3가지 사항을 의제화해 비대위에서 토론한다’는 내용을 회의 결과에 삽입해줄 것을 요구했다. 그러나 이같은 요구가 받아들여지지 않자 오전 1시 55분경 표결을 거부하고 단체 퇴장했다.
당내 평등파 ‘전진’을 중심으로 한 이들 중앙위원은 회의장을 퇴장하면서 “토론조차 못하게 하는 당에 더 이상 미래가 있냐” “야 이게 진보정당이냐 새끼들아” “당 혁신 웃기고 앉아 있네”라며 막말을 퍼부었다. 자리에 앉아있던 자주파 중앙위원들은 질세라 “정치적 책임 질 수 있냐” “나가는 건 패권주의 아니냐”고 소리를 질렀다.
한편 문성현 대표는 천영세 원내대표를 직무대행으로 임명한 뒤 이날 최고위원회와 함께 총사퇴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