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국 돌아온 것은 외주화를 통한 구조조정
정부가 공공부문 비정규직 대책 5월 시행을 앞두고, 4월 기획예산처와의 협의를 거쳐 5월 중 노동부 장관을 위원장으로 하는 추진위원회 심의를 거쳐 최종 무기계약 전환 대상자 선정을 마무리하려는 가운데 이번 대책이 ‘생색내기’에 불과하고 오히려 외주화를 확산시킬 것이라는 노동계의 반발이 이어지고 있다.
또한 19일로 입법예고 예정인 기간제법과 파견법 시행령이 비정규직 노동자들을 보호하기는커녕 오히려 기간제, 파견직 허용 업종을 확대하는 방안으로 마련되고 있는 것으로 알려져 정부가 비정규직을 보호하겠다고 만든 법이며, 대책이 오히려 비정규직 노동자를 확산시키는데 한 몫하고 있다고 노동자들의 분노가 모아지고 있다.
특히 공공부문 비정규직 대책의 경우 정부가 대책을 실현하기 위한 예산도 마련해 놓지 않은 상황이라 제대로 된 대책은 기대하기 더욱더 어려운 상황이다. 실제 각 기관들은 무기계약 전환 대상자 명단을 내고 “무기계약 전환 시 필요한 소요예산을 정부로부터 지원 받겠다”라고 밝히고 있지만 기획예산처는 예산 불가입장을 굽히지 않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각 기관은 무기계약으로 전환시킬 인원까지 ‘합리적 이유’를 만들어 외주화 계획을 낼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결국 노동계의 지적대로 정부의 공공부문 비정규직 대책은 비정규직을 확대하는 것을 물론이며 외주화를 통한 노동자들의 구조조정을 불러올 것이 불가피하다.
공공기관은 정부 탓, 정부는 기획예산처 탓
이에 17일, 정부종합청사 앞에서는 공공기관에서 일하는 노동자들이 정부의 비정규 대책이 “비정규 확산의 주범”이라고 지적하고 나섰다. 기자회견에는 철도노조 KTX 승무지부, 새마을호 승무원, 전국평생교육노조, 전국공공연구노동조합, 공공노조 의료연대지부, 보건의료노조, 민주노동당 등 공공부문 노동자들이 대거 참여해 정부 대책의 문제점을 지적했다.
민세원 KTX서울열차승무지부 지부장은 “이철 사장은 KTX, 새마을호 승무원들을 외주화하는 이유에 대해 다른 이유는 없고 기획예산처에서 기관 평가 시 인건비 퍼센트 절감을 중요하게 여기고 있기 때문이라고 밝힌 바 있다”라며 “승무원들의 외주화를 통한 구조조정은 철도노동자 전체의 구조조정으로 이어질 것이 분명하다”라고 지적했다.
정규직화 노사합의도 물거품으로 만드는 비정규 대책?
더욱 심각한 것은 정부의 공공부문 비정규직 대책으로 인해 이미 체결된 노사합의까지 물거품이 되고 있다는 것이다. 이 일은 노동부 산하 기관에서 벌어지고 있다. 2005년 한국산업인력공단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고용불안에 맞서 66일 간의 파업 투쟁을 통해 노동부 장관까지 나서서 노사합의를 이끌어 낸 바 있다. 노사합의는 “2007년까지 단계적으로 정규직 전환을 추진하되, 2007년도에는 우선 비정규직의 50% 수준까지 전규직 전환이 되도록 적극 추진한다”는 것이었다. 하지만 공공부문 비정규직 대책 발표 이후 사측은 무기계약으로 전환할 수 있다라는 식으로 입장을 선회하고 있다.
이에 대해 어옥준 전국평생교육노조 부위원장은 “무기계약은 정규직이 아니며 영원히 비정규직이 될 수밖에 없는 상황”이라고 지적하고, “노동부는 기획예산처 탓을 하고 기획예산처는 노동부가 거짓 약속을 한 것이라고 말하며 노사 합의를 휴지조각으로 만들고 있다”라며 “예산도 확보하지 않고 차별을 시정하겠다는 것은 사기다”라고 목소리 높였다.
배워도 소용 없네~ 박사도 모두 비정규직!
비정규직에는 박사들도 예외가 아니다. 과학기술부는 지난 2월 정부출연기관의 연구 인력은 무기계약 대상에서 제외되며, 정규직 전환은 원칙적으로 금지한다는 입장을 각 기관에 전달한 바 있다. 전국공공연구기관노조에 따르면 24개 정부출연기관의 무기계약 전환 계획서에는 연구인력 3천 2명 중 458명 만 무기계약 전환 대상자로 선정했다. 연구기관의 핵심 업무를 담당하고 있는 연구인력은 무기계약 전환 대상자에서 대부분 제외된 것이다.
이에 대해 박병수 전국공공연구노조 한국과학기술연구원지부 사무국장은 “정부출연기관 비정규직 노동자 중 최소 66% 이상이 정규직과 동일한 업무에 종사하고 있음에도 정부는 무기계약 대상자에서 이들을 제외하는 것은 물론이며, 사용자들은 비정규직 노동자들을 일시적, 간헐적, 보조적 업무에 종사하고 있다고 현실을 왜곡해 보고하고 있다”라고 설명했다.
실제 과학기술부 산하 정부출연기관에 최근 5년간 신규 채용된 연구 인력 6천 315명 중 67.7%인 4천 276명이 비정규직으로 채용되었으며, 박사는 채용인력 2천 185명 중 49.2%인 1천 75명이 비정규직으로, 석사의 경우는 78.1%가 비정규직으로 채용되었다. 노동부가 마련하고 있는 기간제법 시행령에는 2년 후 정규직 전환에 예외 직종으로 박사학위를 갖고 해당분야에 종사 하는 자 등을 포함하고 있어 박사학위자들의 비정규직화도 급속하게 이뤄질 전망이다. 박병수 사무국장은 정부의 기간제법 시행령에 대해 “엉터리 시행령”이라 꼬집었다.
국립병원들, 분리직군 계획 내
사람의 생명과 직결되는 병원에도 비정규직의 바람은 불고 있다. 특히 비정규직 비율은 사립대학 병원보다 국립대학 병원이 평균 20~30% 높은 상황이다. 이런 상황에서 국공립대 병원들은 정부의 비정규 대책에 따라 무기계약 전환 대상자를 선정하고 있지만 무기계약 전환 대상자들을 별도의 직군으로 묶어 차별을 고착화 시키는 분리직군을 시도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공공노조 의료연대지부에 따르면 강원대병원과 제주대병원의 경우 기간제 노동자의 무기계약 전환 이후 임금체계에서 별도직 신설을 명시하고 있다.
이에 대해 오은영 공공노조 의료연대지부 서울대병원분회 사무장은 “서울대병원은 2006년 노사합의한 비정규직 정규직화 인원 206명 등 215명 이외의 비정규직과 관련해서는 직종별, 부서별 직무분석을 한 후 정규직과 비정규직의 업무를 구분하고 적정인력을 산출해 부서별로 인력을 재조정하겠다는 계획을 내고 있다”라며 “무기계약 전환 대상자 선별은 전체 직종에 대한 직무분석이 들어가면서 구조조정으로 연결될 가능성이 크다”라고 지적했다. 이어 오은영 사무장은 “비정규직 업무 또한 무기계약-기간제-임시직-파견-외주로 구분해 업무에 따른 고용형태의 구분은 물론이며 임금형태의 구분까지 연동시켜 가며 분리직군을 실시하려 하고 있다”라고 설명했다.
비정규직 보호는커녕 고용만 더 불안하게 만들어
결국 정부가 비정규직의 고용을 안정하겠다고 만든 공공부문 비정규직 대책이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고용을 안정시키기는커녕 예산이 확보되지 않아 외주화를 확대시킬 것으로 보이며, 무기계약직으로 전환되더라도 직군을 분리하면서 차별을 고착화시키는 등의 효과를 낳아 노동형태를 더욱 불안정하게 만들 것으로 보인다.
기자회견 참가자들은 “수차례 요구했음에도 정부는 기관별로 제출한 계획서를 공개하지 않고, 각 기관의 인사노무 또는 비정규 담당들을 모아 놓고 예산지원 불가, 자체적으로 해결, 기간제 사용사유 조항 적극 활용을 통한 기간제 사용지속 등을 노골적으로 이야기 하고 있다”라고 정부의 행태를 폭로하고, “애초부터 예산증액 및 정원증원에 대한 계획이 반영되지 않은 정부 대책에 제대로 된 기관별 계획을 기대하기란 불가능한 것이었다”라며 “공공부문 비정규 대책은 비정규직 확대와 외주화 등 구조조정을 야기하는 대책이다”라고 강력히 비판했다.
공공부문 노동자들은 정부의 공공부분 비정규 대책이 시행될 예정인 5월에 집중 투쟁을 진행할 계획이다.